입력 : 2019.09.30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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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Mk 시리즈 전차

지상전의 왕자가 등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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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9월 솜 전투에 모습을 드러낸 Mk I. 비록 전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무기사에 새로운 역사가 열린 순간이었다.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제1차 대전 초기인 1914년 9월, 마른 전투에서 프랑스가 독일의 진격을 극적으로 저지시키는 데 성공했다. 양측의 전력이 워낙 팽팽하다 보니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싸움이 잠시 멈춘 동안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참호를 파기 시작했다. 결국 여기서 시작되어 700여 km에 이르는 전선 전체는 순식간 참호로 연결되었다. 그것이 지옥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천신만고 끝에 독일군 참호를 점령한 뉴질랜드군. 제1차 대전의 참호전에서 공격에 나선 이들은 마땅한 돌파 수단이 없어 많은 애로를 겪었다. < Public Domain >

이후 상대 진지를 점령하기 위해 1~2백 미터를 전진하는 동안 쉴 새 없이 가해지는 포격과 상대편 참호 속에서 날아오는 기관총탄에 많은 병사들이 비명횡사했다. 보병이나 기병이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 이외에 다른 돌파 수단이 없다 보니 벌어진 비극적인 모습이었다. 이프르, 베르됭, 솜 등에서 벌어진 격전들이 워낙 유명하지만 지옥의 참호전은 제1차 대전 서부전선에서 그저 하나의 일상이었다.

이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자 당연히 대안을 찾기 위해 분주해졌다. 적진을 점령하려면 목표 지점까지 아군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참호 지대의 거친 야지를 돌파해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새로운 무기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영국은 마치 지상에서 움직이는 전함이라고 보고 1915년 2월, 해군 내에 처칠을 위원장으로 하는 지상함 위원회(Landship Committee)를 조직한 후 개발에 착수했다.

보빙턴 전차박물관에 전시 중인 리틀윌리 < (cc) Andrew Skudder at Wikimedia.org >

위원회에 파견된 해군의 윌슨(Walter Wilson) 중위는 트랙터를 주목했다. 여기에 탑승자를 보호할 수 있는 중장갑을 두르고 움직이면서 공격할 수 있도록 하면 목적에 부합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트랙터 제작사인 윌리엄 포스터의 트리턴(William Tritton)과 협력해 리틀윌리(Little Willie)로 명명한 프로토타입을 제작했다. 장갑으로 인해 무게가 늘어나 속도가 시속 3km에 불과했지만 2.5m 폭의 참호를 통과할 수 있었다.

리틀윌리를 검토한 결과 충분히 실용화가 가능하다고 본 위원회는 실제로 운용할 당사자인 육군의 요구 사항을 참조해 본격적인 전투 차량 개발에 착수했다. 그렇게 해서 1915년 12월, Mk(Mark) I이 완성되었다. 리틀윌리에 빗대어 빅윌리(Big Willie)라고도 했지만 위원회 내에서는 어머니(Mother)라는 명칭으로 많이 불렸다. 이후의 역사를 반추한다면 가장 적합한 이름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해필드파크에서 실험 중인 Mk I 프로토타입. ‘어머니’라고 불렸는데 이후의 역사를 생각한다면 상당히 의미 있는 이름이었다. < Public Domain >

Mk I은 각종 시험을 거쳐 이듬해 2월, 150대 양산이 결정되었다. 영국군은 그해 9월로 예정된 솜 전투에 최초로 실전 투입을 결정하고 그때까지 완성된 60대를 공급했지만 운송 과정 중 발생한 여러 문제로 49대만 전선에 배치될 수 있었다. 하지만 여러 기계적 문제로 인해 정작 전투가 개시되었을 때는 18대만 가동되었을 뿐이고 보병을 이끌고 적진까지 도달한 것은 5대에 불과했다.

때문에 Mk I의 최초 실전을 실패로 보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개발과 배치가 급박하게 이루어지면서 기계적 신뢰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던 상태였고 이전에 없던 새로운 무기였기에 이를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참조할 만한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비록 최초의 전과 자체만 놓고 본다면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이는 이후 지상전의 방법을 완전히 바꾼 새로운 무기인 전차가 활약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49대가 투입되었으나 적진까지 도달해 임무를 완수한 것은 5대에 불과했다. < Public Domain >
Mk I은 제작과 운송 과정 중에 물 공급 차량처럼 기만하기 위해 탱크(Tank)라는 암호명을 사용했다. 그렇게 사용된 탱크는 오늘날 전차를 의미하는 일반 명사가 되었다. 이후 영국은 Mk I을 기반으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흔히 Mk 시리즈라고 불리는 개량형, 파생형인 Mk II, III, IV, V, VI, VII, VIII, IX을 연이어 개발했고 나름대로 인상적인 전과도 올렸다. 그렇게 전차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특징

 오늘날 전차는 무한궤도로 움직이는 차체에 360도 회전하는 포탑을 장착한 형태로 정형화되어 있다. 하지만 Mk 시리즈에서 이런 모습을 떠올리기는 힘들다. 다만 전차에게 필수적인 3대 요소라 할 수 있는 화력, 방어력, 기동력을 모두 갖추었다. 다시 말해 전차는 Mk 시리즈가 역사를 개막한 이후 수많은 실전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오늘날의 모습으로 진화해 왔다는 의미다.

QF 6 파운더포를 장착한 Mk IV 수컷 전차 < Public Domain >

Mk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마름모꼴의 차체에서 무한궤도를 갖추고 있고 참호와 철조망 지대를 쉽게 돌파할 수 있도록 무게 중심이 낮다. 전면에는 조종석이 위치하고 무장은 측면에 설치된 돌출부인 스폰슨(Sponson)에 설치되어 있다. 다양한 형태로 제작이 이루어졌는데 크게 무장을 기준으로 QF 6 파운더포를 장착한 형식을 수컷(Male), 기관총만을 탑재한 것은 암컷(Female)로 구분했다.

Mk I의 장갑은 소화기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으나 수류탄이나 대물 저격용 철갑탄에 격파되었다. 이후 등장한 후속 시리즈들은 장갑을 강화하거나 각종 구조물을 장착해 방어력을 향상시켰다. 이처럼 방어력의 그다지 강한 편이 아니었음에도 차체가 10m 정도이고 무게가 30톤 가까이 나갔으나 엔진이 105마력에 불과해 기동력은 형편없었다. 때문에 참호 지대 돌파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될 수 있었다.


운용 현황

Mk I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솜 전투 당시인 1916년 9월 15일에 플레흐-꾸흐스레트(Flers–Courcelette)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에 처음 사용되었다. 기계적 신뢰성이 낮고 제대로 된 운용 기법을 알지 못했기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실패했다. 다만 이를 처음 마주한 일선의 독일군 병사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중화기로 격파가 가능했지만 효과적인 대처 방법 마련에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벌어진 파스샹달(Passchendaele) 전투에도 투입되었으나 여전히 인상적인 전과를 보이지 못해 일각에서 부정적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국은 개량된 Mk 시리즈를 지속 투입해 경험을 쌓으면서 전차 운용에 관한 각종 기법을 터득했고 이후 1917년 11월 벌어진 캉브레(Cambrai) 전투에서 Mk IV를 주축으로 하는 460대의 전차를 집중 투입해 독일의 방어선을 돌파하는데 성공했다.

캉브레 전투에서 격파된 Mk IV. 많은 희생이 있었으나 집단 돌파 전술을 구사해 많은 전과를 얻었다. < Public Domain >
이는 슈나이더(Schneider) CA 1, 생 샤몽(Saint-Chamond)처럼 독자적으로 전차를 개발해 운용 중이던 프랑스군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끼쳐 1918년 7월에 벌어진 수아송(Soissons) 전투에서 승리하는데 원동력이 되었다. 종전과 더불어 Mk 시리즈 생산은 중단되었고 영국에서도 퇴출이 이루어졌으나 러시아, 독일 등으로 흘러 들어간 일부 물량이 내전 등에서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다.


변형 및 파생형

Mk I : 초기 양산형. 후방에 참호 돌파 시 균형을 잡기 위한 별도의 바퀴가 부착되었으나 기대만큼 효과적이지 않아 제거됨. 150대 생산

Mk I < 출처: Public Domain >
Mk II : 해치, 구동 계통에 개량이 이루어짐. 50대 생산
Mk II < 출처: Public Domain >
Mk III : 훈련용 전차. 50대 생산
Mk III < 출처: Public Domain >
Mk IV : 격벽을 설치하고 연료 탱크의 위치를 이전해 승무원 거주성을 높이고 철갑탄을 방어할 수 있도록 방어력이 향상된 개량형. 수컷 420대, 암컷 595대 포함 1,220대 생산
Mk IV < 출처: (cc) Peter Trimming at Wikimedia.org >
Mk V : 1인이 조종할 수 있도록 엔진, 변속기의 성능이 향상된 개량형. 400대 생산
Mk IV < 출처: Public Domain >
Mk VI : 미국의 요청으로 설계된 Mk V의 경무장 실험작
Mk VI < 출처: Public Domain >
Mk VII : Mk V의 차체를 연장하고 조종 성능을 향상시킨 실험작
Mk VII < 출처: Public Domain >
Mk VIII : 300마력 엔진을 장착해 기동성을 늘린 개량형. 7대 생산 후 종전으로 단종
Mk VIII < 출처: Public Domain >
Mk IX : APC처럼 30명의 인원이 탑승할 수 있는 개량형. 3대 생산 후 종전으로 단종
Mk IX < 출처: (cc) Mightyhansa at Wikimedia.org >


제원[Mk I]

생산업체: 윌리엄 포스터, 메트로폴리탄 캐리지
도입 연도: 1916년
중량: (수컷) 28톤 / (암컷) 27톤
전장: 9.91m
전폭: 4.19m
전고: 2.49m
장갑: 6~12mm
무장: (수컷) 호치키스 6파운더 OF ×2 / .303 빅커스 기관총 ×3
         (암컷) .303 빅커스 기관총 ×5
엔진: 다이믈러-나이트 6기통 V16 엔진 105마력(78kW)
추력 대비 중량: 3.7마력/톤
서스펜션: 롤러
항속 거리: 38km
최고 속도: 6km/h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