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9.2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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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허리케인 전투기

너무나 강렬했던 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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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벌어진 에어쇼에서 시범 비행 중인 허리케인 Mk I < 출처: (cc) Alan Wilson at Wikimedia.org >


개발의 역사

1931년, 영국 항공성은 전투기 스타일이 복엽기에서 단엽기로 넘어가는 시대적인 트렌드에 발맞추어 기존 노후기 대체를 위한 신예기 도입 사업을 시작했다. 10년 후의 제2차 대전에서는 그저 그런 속도가 되어버리지만 일단 처음 목표로 설정한 최고 시속 400km는 당시만 해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대공황의 여파 등으로 예산 확보가 어려워서 사업은 시작부터 지지부진했다.

1935년 11월 최초로 비행에 성공한 K5083 프로토타입. 만일 전쟁 위험이 없었다면 경쟁에서 스피트파이어에게 밀려 양산에는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 출처: Public Domain >

그러던 1933년, 독일에 등장한 나치 정권은 커다란 변화를 야기했다. 여러 차례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평화를 유지시켜 온 베르사유 체제를 호전적인 히틀러가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서서히 제1차 대전 후의 짧았던 평화가 끝을 보이고 새로운 전쟁에 대한 암운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1935년 재군비를 선언한 독일은 순식간에 세계 최강의 공군력을 구축했다.

수수방관하던 영국도 군비 증강에 나서야 했다. 사업이 지체되면서 불과 몇 년 만에 공군력 격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이기에 몹시 급했다. 슈퍼마린에서 제안한 스피트파이어가 스펙이나 각종 실험에서 좋은 결과를 보였으나 정작 이를 선정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모노코크 구조에 전금속제여서 제작비가 비싼 데다 즉시 양산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영국은 당장 한기의 전투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기체 측면에 프로펠러와 연동 된 기관총을 장착한 허리케인 실험기 모형 < 출처: Public Domain >

반면 호커(Hawker)에서 제안한 K5083은 최고 속도가 시속 507km에 이를 만큼 그럭저럭 준수한 평가를 받았지만 복엽기인 퓨리(Fury)를 바탕으로 한 과도기적 전투기여서 성능이 스피트파이어에 뒤졌고 독일의 Bf 109를 상대하기도 어렵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제작이 쉽고 가격도 저렴해서 즉시 양산이 가능했다. 만일 이를 선정한다면 독일과의 양적 격차를 신속히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고심을 거듭하던 영국 공군은 두 기종 모두를 양산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일단 한정된 예산을 고려해 K5083으로 양적 격차를 메우는 동안 스피트파이어의 양산 체계를 완성하여 도입을 순차적으로 늘리자는 의도였다. 때문에 평시라면 자연스럽게 시제기로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를 K5083이 극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영국을 구한 또 하나의 전설인 허리케인(Hurricane)이다.

1940년 제1편대 소속의 허리케인 Mk I. 최대한 빨리 수적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스피트파이어와 함께 제식화되었다. < 출처: Public Domain >
초기형 허리케인 Mk. I이 1937년 10월 12일에 초도 비행에 성공한 후 실시된 각종 실험에서 좋은 결과를 보여주자 영국 공군은 1,000기를 발주했다. 아직은 어떻게든 전쟁을 막기 위해 영국이 독일을 유화적으로 달래던 시기였고 그렇게 조금이나마 확보한 시간은 허리케인의 양산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1939년 9월 1일, 제2차 대전이 발발했을 때 허리케인으로 무장한 19개 비행대를 실전에 배치할 수 있었다.


특징

제2차 대전 내내 사용된 전투기들 모두에게 적용되는 공통적인 특징처럼 허리케인도 최초 프로토타입과 후기 양산형이 전혀 다른 전투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변화를 보여 왔다. 처음에는 1930년 이전 전투기처럼 목재 골격에 방수천을 덮은 형태였지만 1939년 양산 분부터는 스피트파이어처럼 많은 부분이 강철 골격으로 바뀌었고 주익은 두랄루민으로 만든 풀 메탈 스트레스 스킨으로 대체되었다.

초기 양산형 허리케인을 대상으로 정비 훈련 중인 모습. 스킨이 제거되어 동체와 주익의 구조를 엿볼 수 있다. < 출처: Public Domain >
하지만 기본적으로 복엽기를 기반으로 설계가 이루어져 구조가 단순한 만큼 내구성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때문에 스피트파이어, 머스탱과 동일한 롤스로이스 멀린 엔진을 장착했음에도 속도가 뒤졌고 기동력도 떨어졌다. 대신 피탄 시 생존율이 높았고 야전에서 보수도 쉬었으며 조종이 편리했다. 이는 전투기 가동률을 높이는데 고민이 많던 1940년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에 상당한 장점이 되었다.
1942년 대지 공격기로 임무를 전환한 허리케인 Mk IIC의 비행 모습. < 출처: Public Domain >
기본적으로 허리케인은 스피트파이어가 충분히 배치될 때까지 간극을 메우기 위한 한시적 목적의 전투기였다. 따라서 데뷔 당시부터 경쟁 전투기와 비교해서 뒤진 측면이 많았다.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급한 불을 끄는 데 일조하고 이후 꾸준히 개량을 거듭하며 전쟁 말기까지 생산되어 활약했지만 스피트파이어의 공급이 충분히 이루어지자 임무를 공격기로 전환하거나 2선 급 전투기로 투입되었다.


운용 현황

허리케인은 전쟁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날 것이 확실시되던 1944년 7월까지 총 14,487기가 제작되었다. 대부분을 개발자인 호커와 자매사인 글로스터(Gloster Aircraft)에서 만들었고 약 10퍼센트 정도인 1,451기가 CC&F(Canadian Car and Foundry)에서 캐나다군 공급을 위해 면허 생산되었다. 1941년을 기점으로 2선급으로 밀려났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생산 기간도 길었고 제작 수량도 많은 편이라 할 수 있다.

1939년 11월 파견된 프랑스 주둔 기지에서 허리케인을 근처에서 여가를 즐기는 영국군. 기체 외피를 방수천으로 제작한 초기형 Mk I이다. < 출처: Public Domain >

1939년 10월 30일, 프랑스에 파견된 영국 원정군 소속 허리케인이 국경 지대를 정찰 중이던 독일 공군의 Do 17P를 요격한 것이 최초의 전과다. 하지만 이때는 양측 모두 확전을 자제하던 상황이라서 더 이상 의미 있는 교전은 없었다. 1940년 5월 10일,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면서 본격적으로 전투에 투입되었는데 우려대로 공대공 전투에서 Bf 109에게 압도당했지만 폭격기 저지에는 좋은 성과를 냈다.

허리케인이 명성을 떨친 때는 1940년 10월부터 약 넉 달 동안 벌어진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였다. 싸움이 시작되었을 때 독일은 1,200여 기의 작전기를 투입했으나 이를 막아야 할 영국의 전투기는 800여 기였고 이중 Bf 109에 맞설 수 있는 스피트파이어는 200여 기가 조금 넘었다. 따라서 영국은 레이더로 독일의 접근을 파악한 후 스피트파이어가 Bf 109를 유인하면 허리케인이 폭격기를 공략하는 전략을 수립했다.

시범 비행 중인 허리케인 Mk I.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에 49번 출격하여 3기의 적기를 격추하고 2기에게 치명타를 안겨준 역전의 용사다. < 출처: Public Domain >
이는 대단한 효과를 발휘해 결국 제2차 대전 발발 후 처음으로 독일을 좌절시켰다. 항공전사에서는 이때 주력기로 활약한 Bf 109와 스피트파이어의 명성이 높지만 격추 당한 독일기의 70퍼센트는 허리케인에 의한 전과였다. 비록 조연이었지만 넉 달 동안 남긴 활약상이 주연 못지않았을 정도로 커서 허리케인은 당당한 항공전사의 전설이 되었다. 이후 2선 급 전투기나 공격기 역할을 담당하며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곳곳에서 활약했다.


변형 및 파생형

Mk I : 2엽 또는 3엽 목제 프로펠러가 장착된 초기 양산형


허리케인 Mk I < 출처: (cc) Alan Wilson at Wikimedia.org >
Mk I (revised) : 금속제 프로펠러, 장갑판 등을 추가한 개량형
허리케인 Mk I (revised) < 출처: (cc) Alan Wilson at Wikimedia.org >
Mk IIA : 2단 슈퍼 차저가 장착된 멀린 XX엔진 탑재
허리케인 Mk IIA < 출처: (cc) Alan Wilson at Wikimedia.org >
Mk IIB : 250파운드 또는 500파운드 폭탄 2발을 장착할 수 있는 공격기형
허리케인 Mk IIB < 출처: (cc) Alan Wilson at Wikimedia.org >
Mk IIB Trop : 엔진 먼지 필터가 장착된 북아프리카 전선 공급형
허리케인 Mk IIB Trop < 출처: Public Domain >
Mk IIC : 프로펠러 회전자, 대지 공격 능력 등이 향상된 개량형
허리케인 Mk IIC < 출처: (cc) Tony Hisgett at Wikimedia.org >

Mk IID : 40mm 포를 장착한 대전차전형

Mk T.IIC : 이란 공군용 2인승 훈련기

Mk III : Mk II에 미국 팩커드에서 면허 생산한 멀린 엔진을 장착한 모델

Mk IV : 폭장 능력과 대지상 공격 능력이 향상된 개량형

허리케인 Mk IV < 출처: (cc) Marko M at Wikimedia.org >

Mk V : 멀린 27엔진을 장착할 예정이던 계획형

Mk X : 캐나다 CC&F에서 제작한 Mk II

허리케인 Mk X <출처: Public Domain>

Mk XI : 영국 공군용으로 엔진을 장착하지 않고 캐나다 CC&F에서 제작한 Mk II

Mk XII : 멀린 29엔진을 장착해서 캐나다 CC&F에서 제작한 Mk II

허리케인 Mk XII < 출처: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Mk XIIA : 멀린 III 엔진을 장착해서 캐나다 CC&F에서 제작한 Mk II
 
씨(Sea) 허리케인 : 해군용 함재기형

씨 허리케인 < 출처: Public Domain >
힐슨(Hillson) F.40 : Mk I을 기반으로 한 실험용 복엽기


제원[Mk IIC]

전폭 : 12.19m
전장 : 9.84m
전고 : 4.0m
주익 면적: 23.92㎡
최대 이륙 중량 : 3,950kg
엔진: 롤스로이스 멀린 XX V-12 수랭식(1, 1850hp)
최고 속도 : 547km/h
실용 상승 한도 : 10,970m
전투행동반경 : 965km
무장 : 20mm m 히스파노 기관포 4문
2개소 하드 포인트에 1,000파운드 폭장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