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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의 역사

1830~1890년대 사이에는 군용 소총의 세대 교체가 놀랄만한 속도로 진행됐다. 특히 1850~70년대 사이는 총기 개발과 사용 모두의 패러다임이 엄청나게 바뀌었고, 동시에 총기의 세대 교체도 눈부신 속도로 진척됐다.

영국은 1853년에 뇌관 격발 기구와 프랑스에서 개발된 미니에탄을 사용하는 라이플(강선총)인 엔필드(Enfield) P53을 도입했다. 이 총은 명중률과 사거리에서 기존의 활강식 총기들과는 차원이 다른 성능을 보여줬지만, 불과 10여 년 사이에 이 총의 구식화는 빠르게 진행됐다. P53은 전장식(前裝式), 즉 탄환을 총구로부터 밀어 넣는 방식이었지만 오래지 않아 후장식(後裝式), 즉 총열 뒤쪽으로부터 탄환을 넣는 방식의 군용 소총이 실용화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후장식 군용 소총으로 처음 열강의 주력소총이 된 것은 프로이센의 드라이제(Dreyse) 니들건(Needle gun: 독일어 원어는 Zündnadelgewehr)이다. 이 총은 1840년대에 처음 채택되었지만 프로이센군의 예산 압박으로 생산 속도가 제대로 맞춰지지 않아 본격적으로 프로이센군의 주력이 된 것은 1860년대부터의 일이다. 1850년대까지만 해도 이처럼 개발국 자신의 보급률이 낮은 데 더해 니들건 특유의 약점, 즉 종이 탄피를 사용해 가스 누출이 많아 탄속이 빠르지 않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다는 점 등으로 인해 영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후장총 대신 엔필드 P53처럼 미니에탄을 사용하는 전장총을 주력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1860년대부터 상황이 급격하게 바뀌었다. 먼저 남북전쟁이 벌어지면서 머나먼 미국에서 후장식 총기의 위력이 서서히 입증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인 상황은 유럽에서 벌어졌다. 그동안 비싸고 비실용적이라고 여겨졌던 프로이센의 드라이제 소총이 예상을 깨고 실전에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1864년에는 프로이센군이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Second Schleswig War)에서 덴마크군을 참패시켰고 1866년에도 프로이센군은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압승했다. 물론 여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었지만, 드라이제 소총 역시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적이 서서 한 발을 쏘는 동안 앉거나 누워서 그 몇 배를 발사할 수 있는 드라이제의 능력이 확실한 차이를 낳았던 것이다.

바다 건너 대륙에서 드라이제가 활약하는 것과 남북전쟁을 모두 지켜본 영국은 서둘러 자국군도 후장식 총기로 무장시키려 했다. 그들에게는 후발 주자의 장점이 있었다. 독일만 해도 종이 탄피를 써야 했지만, 영국은 이미 금속 탄피를 사용할 수 있는 시기로 접어들었기에 가스 누출 등의 문제는 훨씬 덜 신경 쓸 수 있었다. 하지만 후발 주자의 단점도 있었다- 신형 소총을 채택한 지 얼마 안 됐는데 그걸 또 바꿔야 할 판이었다.

아무리 당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다지만, 수 십만 정의 P53을 이미 생산-배치해 놓은 마당에 그것을 아예 새로운 총으로 대체한다는 것은 적잖은 부담이었다. 이는 영국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겪은 딜레마였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P53을 후장식 총기로 개조해서 쓰자는 것이었다. 영국은 기존의 P53을 가장 적은 노력으로 개조하면서도 실용성 충분한 후장식 총기로 쓸 수 있는 솔루션을 찾느라 애썼는데, 이런 영국의 바램에 가장 가까운 것이 미국인 발명가 제이콥 스나이더(Jacob Snider)가 내놓은 아이디어였다.

이렇게 해서 스나이더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개조된 엔필드 P53소총이 ‘스나이더-엔필드(Snider-Enfield)’ 소총으로, 1866년부터 생산되어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소총 중 하나로서 활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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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스나이더-엔필드는 앞서 언급한 대로 기존의 전장식 엔필드 P53소총을 후장식으로 개조한 것이다. 애당초 영국군이 개조안을 찾을 때에도 중요한 조건으로 내건 것이 1. 기존의 격발 기구를 최대한 활용할 것, 2. 목재 부속을 최대한 덜 깎고 개조할 수 있을 것, 이 두 가지였다. 물론 그 외에도 세세한 다른 조건들이 있었겠지만, 이 두 가지는 원래의 총열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과 함께 어떻게든 P53을 덜 개조해서 만들려는 영국군의 ‘짠돌이 정신’의 상징이었다. 격발 기구는 가장 부품 숫자가 많고 제작과 조립에 손이 많이 갔으며, 목재 부품 역시 새로 만드는 게 꽤 번거롭고 비싼 데다 총의 내구성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부분이라 이걸 최대한 덜 깎아서 재활용하려 했던 것이다.

스나이더-엔필드의 개조법은 비교적 단순했다. 총열 뒷부분을 조금 자르고 약실을 원래보다 약간 더 앞에 깎고, 원래 약실이 있던 부분은 열고 닫히는 금속 블록(브리치 블록)으로 막아뒀다. 브리치 블록은 말 그대로 경첩이 달린 금속 덩어리로, 닫히면 약실 뒤를 막는 마개 역할을 하며 내부에 공이가 있어서 소총의 해머(공이치기)가 때리면 장전된 실탄의 뇌관을 찌르게 되어있다.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말 그대로 총열 뒤에 뚜껑 하나 달아 놓는 지극히 단순한 수준이었다. 어찌나 단순한지, 멀리서 보면 스나이더-엔필드는 P53과 쉽게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브리치 블록을 열어 약실이 개방되면 거기에 탄을 밀어 넣고 브리치 블록을 닫으면 된다. 문맹자도 쉽게 가르칠 수 있는 이런 직관성은 이 총의 중요한 장점 중 하나였다. <출처: Public Domain>

원래의 디자인은 말 그대로 그냥 뚜껑이다 보니 쓰다 보면 느슨해지면서 갑자기 열려버릴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에드워드 본드(Edward Bond)라는 엔지니어가 내놓은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개조되었다. 개조 방법은 간단한 것으로, 브리치 블록에 간단한 고정 멈치를 추가해서 이걸 조작해야 열리게 하는 것이었다. 이 방법은 의외로 효과적이어서 빠르게 보급되었다.

사용된 탄약은 원래의 총열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P53과 같은 .577구경(14.7mm)의 탄두를 가진 .577스나이더(14.7x51mm)탄이었다. 초기의 .577 스나이더탄은 탄피 본체는 종이였지만, 밑바닥 부분은 구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완전한 종이 탄피보다는 가스 누출이 훨씬 적었다. 이 종이-금속 혼합 탄피는 곧 금속으로만 만들어진 탄피로 바뀌었는데, 금속이라고 해도 지금과 같은 일체형 탄피가 아니라 제대로 압출 성형된 바닥 부분에 얇은 구리판을 말아서 만든 몸통으로 구성된 2중 구조였다. 보기에는 상당히 엉성해 보이지만 의외로 실전에서 괜찮은 신뢰성을 보였다. 오히려 후계 탄약인 .450 마티니-헨리 탄약의 초기형보다 사막에서의 신뢰성은 더 낫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후기(좌)와 말기(우)의 탄약. 후기 탄약은 황동 프레스로, 본체는 구리판을 감아서 만들었으며 이 총의 현역 기간 중 가장 흔히 사용된 타입이다. 반면 말기 탄약은 본격적인 탄피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초기부터 뇌관은 현대적인 센터파이어 복서(Boxer) 방식을 채용했다. <출처: Public Domain>

탄피 배출은 앞서 언급한 레밍턴 롤링 블록에 비해 좀 번거로웠다. 탄피를 약실에서 끄집어내는 갈퀴는 있다. 브리치 블록을 열어젖힌 뒤 블록 자체를 뒤로 살짝 후퇴시키면 탄피가 갈퀴에 잡혀 밖으로 나오기는 한다. 문제는 탄피를 밖으로 튀어나가게 하는 차개가 없기 때문에 탄피를 손으로 잡아서 뽑아내든가, 총 자체를 뒤집어서 탄피를 떨어트려야 했다.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기존의 전장식 소총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빠르고 쉬운 것이었고, 실제로 발사 속도는 기존 엔필드 P53과 비교해 약 3배에 달했다. 게다가 발사 속도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사수가 거의 어떤 자세에서도 신속한 재장전과 사격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엄폐물 뒤에서의 사격을 훨씬 쉽게 했다. 그러면서도 사거리나 명중률은 기존의 P53과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영국군은 전장총으로 무장한 적과 싸운다면 확실한 우세를 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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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 운용

총기의 발달이 엄청난 속도로 진행된 19세기 후반인 만큼, 스나이더-엔필드가 영국군의 주력 소총이던 시기는 짧다. 불과 8년 뒤인 1874년에 더 발달된 소총인 마티니-헨리가 등장하면서 2선급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당대 최강의 경제력을 자랑하던 대영제국이라 해도 막대한 식민지를 경영하던 입장에서는 단시간에 소총을 교체할 수는 없었고, 1880년대까지도 적잖은 영국군 2선급 부대나 예비군, 민병대 등이 스나이더로 무장했다. 특히 식민지 변방의 현지인 부대들에서는 그 수명이 엄청나게 길어서 무려 1900년대까지도 사용되고 있었다. 식민지의 현지인으로 구성된 부대들은 원래 영국 정규군보다 늘 한세대 뒤떨어진 총을 받는 게 전통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적에게 노획될 확률이 높은 변방에서는 그 식민지 현지인 부대보다도 더 구식이 지급된 것이다.

스나이더-엔필드의 첫 실전은 1868년에 벌어진 막달라 전투(Battle of Magdala)였다. 에티오피아와 영국군 사이에 벌어진 이 전투에서 영국군은 병력(약 13,000명)으로도 에티오피아군(약 9,000명)보다 많았지만, 당시 신형이던 스나이더-엔필드로 무장한 병력이 상당수 포함된 만큼 화력은 병력의 차이를 압도하는 엄청난 차이가 났다. 게다가 에티오피아군은 창을 들고 영국군 정면으로 돌격해 들어오는 실수를 저질렀다.

스나이더-엔필드의 화력은 엄청났다. 영국군의 한 연대는 90분간 진행된 전투 동안 1만 발 넘는 실탄을 에티오피아군에게 퍼부었고, 이런 식으로 곳곳에서 퍼부어진 화력은 전투를 사실상의 일방적 학살처럼 변모시켜 버렸다. 영국군은 20명이 부상을 입고 그중 두 명이 나중에 사망하는데 그쳤지만, 에티오피아군은 700명이 죽고 1,200명이 부상을 입어 그중 대다수가 나중에 사망했다.

기존의 소총을 개조한 것과 신규 생산형(Mk.3)을 합치면 약 80만 정의 스나이더-엔필드가 만들어졌는데, 그중 상당수는 일본으로 넘어갔다. 이미 1860년대부터 수출이 시작되었는데, 특히 기존의 P.53을 개조한 것이 아니라 새로 생산된 Mk.3형이 등장하면서 수출은 더 늘어난 듯하다.

당시 일본은 개항과 메이지 유신 등을 거치면서 현대식 무기를 필사적으로 수입하고 있었는데, 특히 나가사키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영국 상인 토마스 글로버가 사츠마 및 조슈 지역의 유지들과 결탁해 영국제 무기의 수입에 열심이던 덕분에 엔필드 P.53및 스나이더-엔필드를 상당수 들여올 수 있었다(이런 무기 수입 자금 등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잘 아는 미츠비시 그룹이 세워지는 기틀이 마련된다). 가장 먼저 두드러지게 사용된 것은 보신전쟁(戊辰戦争, 1868~1869)이었는데, 메이지 유신으로 구성된 새로운 정부군과 옛 막부군이 충돌한 이 전쟁에서 아직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스나이더-엔필드는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다. 당시 막부군은 여전히 전장식의 엔필드 P53등으로 주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신정부군이 사용하던 스나이더-엔필드는 비교적 적은 양이지만 높은 화력으로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다. 한 전투에서는 단 10정의 스나이더 엔필드로 무장한 정부군 방어대가 4배의 병력으로 돌진해 오는 적을 격퇴하는데 성공하는 등 기존의 전장총보다 훨씬 빠른 연사가 가능한 이 총의 위력은 보신 전쟁에서 구 막부군이 패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뒤 1877년에 벌어진 세이난 전쟁(西南戦争) 무렵에는 대량의 스나이더-엔필드가 수입되어 일본군의 주력소총이 되었다. 일본군은 일단 근대적 군대로 양성되면서 막부 말기-메이지 초기에 마구잡이로 수입되었던 총기들 중 몇 종류를 추리는 단순화 작업을 거쳤는데, 그 과정에서 구조가 단순하고 일본 국내에서의 탄약 국산화도 나름 진척을 보이던 스나이더-엔필드를 주력 소총 중 하나로 대량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이 총이 세이난 전쟁에서도 정부군의 승리를 가져온 원동력 중 하나였다. 당시 정부에 반기를 든 사츠마 지방의 사족, 즉 옛 사무라이 계층은 주 무장으로 지방의 정부 무기고 등에서 강탈한 전장식 소총 -주로 엔필드 P.53-으로 무장했고, 그 때문에 스나이더-엔필드로 무장한 정부군에게 초반부터 상당한 피해를 입은 끝에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그 뒤 1880년부터 국산인 무라타 소총으로 주력소총을 바꾸기 시작했지만, 무라타총의 조달 속도가 느려 청일전쟁 무렵까지도 상당수의 스나이더가 2선급 부대에서 활용되고 있었다.

구한말에도 1880년대를 중심으로 청나라와 일본 모두로부터 상당수의 엔필드 P.53과 스나이더 엔필드가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80년대면 청나라도 일본도 서서히 다른 신형 총기로 기존의 엔필드 계열 총기들을 대체하던 시점이라 가능했을 듯하다. 하지만 상당수는 이미 혹사당한 상태로 들어온 중고이다 보니 파손되거나 고장난 것이 많았고, 실제로도 사용해야 할 때 사용이 불가능한 총이 많아 전력으로서는 의외로 큰 도움이 안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스나이더-엔필드뿐 아니라 사실상 구한말에 도입된 외국제 소총 대부분에 해당되는 것으로, 아예 중고로 들어왔거나 신품으로 들어왔더라도 유지 보수의 문제와 탄약 수급의 문제 등으로 인해 전력으로서 활용 가능한 숫자는 전체 도입량의 일부에 불과한 것이었다. 구한말 군사력이 아시아 몇 위라는 등의 글이 인터넷에 많이 돌아다니는데, 이는 도입된 소총 등 무기의 양만 따진 것이고 그것들이 얼마나 전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따진다면 과연 구한말의 군사력이 강했는지 의문을 제기해야 할 것이다.

스나이더-엔필드의 역사는 이것으로 끝은 아니다. 이 총은 네덜란드나 러시아, 심지어 네팔에서도 복제품이 만들어져 사용되었으며 20세기에도 세계 각지에서 사용된 기록이 적지 않다. 또 상당수는 민간에 불하되어 사용되었으며 적지 않은 숫자가 산탄총으로 개조되어 수렵용으로 사용되는 등 영국군에서 사용되었던 것보다 훨씬 오랜 기간 동안 총으로서의 생명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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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원

무게 : 3.8kg
길이 : 1.25m
사용탄 : .577스나이더(14.7x51mm)
유효사거리 : 약 55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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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홍희범 | 군사전문지 편집장

1995년 월간 플래툰의 창간 멤버로 2000년부터 편집장으로 출간을 책임지고 있다. 2008년부터 국군방송 및 국방일보 정기 출연 및 기고를 하고 있으며, <세계의 총기백과>, <밀리터리 실패열전> 등을 저작하고 <2차세계대전사>, <컴뱃 핸드건>, <전투외상 응급처치>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