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이 끝날 무렵인 1860년대 중반, 세계 각국의 군용 소총은 빠르게 후장총으로 변할 조짐을 보였다. 남북전쟁을 통해 금속 탄피를 사용하는 후장식 총기의 실용성이 충분히 입증되었고, 또 산업혁명이 진전되면서 예전 같으면 불가능하던 금속 탄피 및 복잡한 후장식 총기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사실 후장식 군용 총기 자체는 이미 1847년부터 실용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프로이센의 드라이제(Dreyse) 니들건(Needle gun)이 최초로 대량 사용된 군용 후장식 소총의 영예를 누린 것이다. 비록 이 니들건 자체는 종이 탄피를 사용한다는 점 때문에 보급되는 데 다소 한계는 있었지만, 1866년부터 프랑스군이 사용하던 샤스포(Chassepot) 소총에도 같은 방식이 채택되는 등 적잖은 영향을 다른 나라들에 끼쳤다. 하지만 종이 탄피는 금속 탄피에 비해 저렴하기는 해도 단점이 훨씬 많았고, 남북전쟁을 통해 금속 탄피의 실용성이 입증되면서 곧 금속 탄피가 군용 총기의 대세로 자리 잡게 된다.

이런 가운데, 자연스럽게 총기 업체들의 급선무는 저렴하면서도 튼튼하고 생산성 좋은 후장식 총기 설계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때마침 1863년, 미국의 엔지니어인 레너드 가이거(Leonard M. Geiger)는 새로운 후장식 총기의 설계에 대한 특허를 얻었는데, 이 특허에 주목한 것이 바로 미국의 총기 업체 레밍턴사(당시의 Remington Firearms)의 엔지니어인 조셉 라이더(Joseph Rider)였다. 그는 가이거를 설득해 뉴욕주에 있던 레밍턴 공장에서 함께 일하게 하는 한편으로 함께 원래의 특허를 개선한 설계를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롤링 블록(Rolling Block)’으로 불리는 구조였다. 레밍턴은 이 구조를 도입한 총기를 생산하면서 큰 성공을 거뒀는데, 진짜 중요한 것은 이 성공이 운 좋게도 레밍턴이 파멸하기 직전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레밍턴은 사실 남북전쟁 후반에 콜트사와 함께 군용 리볼버를 대량으로 미군에 납품할 수 있었다. 콜트사의 권총이 지나치게 비싼 가격을 부른 데다, 1864년에는 콜트사 공장에 화재가 발생해 납품 지연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레밍턴이 미 군납 권총 시장을 장악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865년에 남북전쟁이 끝나면서 미군의 주문은 급격히 끊어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북전쟁 당시에 쓰이던 총들이 민수 시장에 방출되어 시장이 포화 상태가 되면서 레밍턴의 재정 상태는 악화되었다.

그런 가운데 등장한 롤링 블록 구조는 레밍턴에게 구세주가 되었다. 이 구조를 사용한 총기의 판매로 회사가 위기에서 벗어난 것이다. 단순히 위기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사실상 19세기 후반에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군용 총기 업체 중 하나로 성장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롤링 블록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총기 업체 레밍턴을 있게 만든 주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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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롤링 블록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설계였다. 롤링(구르는) 블록이라는 이름 그대로, 약실 뒤쪽을 회전식의 노리쇠(브리치 블록)가 막아준다는 아주 단순한 구조이다. 먼저 사수는 해머(공이치기)를 뒤로 젖힌다. 그러면 브리치 블록을 움직일 수 있다. 장전하려면 브리치 블록 위에 있는 돌출부를 손가락으로 밀어서 블록을 뒤로 후퇴시킨다. 이때 약실이 열리며, 열린 약실로 탄을 넣으면 된다. 그다음 브리치 블록을 다시 앞으로 밀어서 닫는다. 이것이 장전 및 격발 준비의 끝이다.

격발은 이 상태에서 방아쇠를 당기면 된다. 그러면 해머가 전진해 브리치 블록의 공이를 때려 격발이 이뤄지는데, 해머는 단지 격발만 할 뿐 아니라 브리치 블록을 때리는 동시에 브리치 블록이 뒤로 밀리지 않게 하는 일종의 브레이크 역할도 동시에 수행한다. 이것은 당시 후장식 총기 설계자 다수에게 큰 고민 중 하나이던 폐쇄, 즉 약실을 얼마나 단단하게 막아주느냐의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후장식 총기는 발사 시에 약실을 확실하게 막으면서도 발사 후에는 신속하게 열어서 탄피 배출과 재장전이 쉽게 가능해야 했는데, 롤링 블록 구조는 해머를 폐쇄 기구의 일부로 활용해 이 문제를 상당히 간단하게 해결한 것이다.

발사가 된 다음에는 해머를 뒤로 젖히고 다시 브리치 블록을 열어 약실을 재개방한다. 이때 차개에 의해 탄피는 자동으로 배출된다. 탄피가 나오면 사수는 새 실탄을 약실에 넣고 브리치 블록을 닫은 뒤 다시 방아쇠를 당기면 된다.

물론 이처럼 해머를 완전히 젖힌 상태에서 재장전을 한다는 점이 안전에 신경 쓰는 사용자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었다. 잘못하면 장전 과정이 끝나기 무섭게 원하지 않는 시점에서 발사가 이뤄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군에 납품된 1871년형 모델에는 장전이 끝나고 브리치 블록이 닫히는 순간 해머가 절반만 젖혀진 상태(하프콕)로 되돌아가는 안전 장치가 추가됐다. 사수는 다시 해머를 뒤로 젖혀야 사격이 가능했다. 이 특징은 모든 롤링 블록 총기에 적용된 것은 아니다.

롤링 블록은 앞서도 언급했듯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는데, 이는 단순하면서 동시에 고장도 적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또 다른 대표적 후장식 단발 소총인 마티니-헨리 소총(영국)과 비교하면 단순함은 확실하다. 마티니-헨리는 움직이는 부품이 37개 있다. 반면 롤링 블록 구조는 22개뿐이다. 부품 숫자도 적지만 조작도 매우 단순하고 또 직관적이기 때문에 -총알 넣는 자리 뒤에 뚜껑이 닫혀있으니 그걸 여닫으면 된다는 수준- 여전히 문맹자가 적지 않던 당시의 많은 나라 군대에서는 훈련이 매우 쉽다는 이유로도 애용되었다. 게다가 단순하기만 할 뿐 아니라 명중률도 높았고, 실제로 1870년대의 많은 소총 사격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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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 현황

롤링 블록 구조는 소총에 가장 흔히 사용되었지만, 정작 가장 먼저 생산이 시작된 것은 권총이었다. 이 구조를 응용한 권총이 1865년에 미 해군에 납품되었던 것이다. 비록 해군용의 M1865 권총은 수천 정이 납품되는 데 그쳤지만, 재정적으로 위태롭던 레밍턴에게 숨 돌릴 틈은 줄 수 있었다. 뒤이어 1867년에는 미 해군이 또 수천 정의 카빈(기병총) 모델을 구입했다. 미 해군은 롤링 블록 카빈에 꽤 좋은 인상을 받았고, 1869년에는 라이플(보병총) 모델을 채택해 10,000정을 주문했다. 미 해군과 해병대에 지급하기 위해 주문한 이 총들은 레밍턴사에서 생산되지는 않고 정부 소유의 스프링필드 조병창에서 생산되었지만, 대신 1정에 1달러씩의 로열티를 레밍턴에 지급했다. 당시의 1달러는 지금으로는 거의 20 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이므로 로열티는 약 20만 달러. 지금 기준으로 계산해 봐도 큰 금액은 아니었다.

이렇게 생산된 총은 M1870이라는 이름으로 납품됐는데, 이 총들은 전부 군납이 거부되고 반품 처리됐다. 가늠자의 위치가 약실에 너무 가깝게 설치되어 사용이 위험하다는 이유였는데, 해군으로서는 다행히도 당시 터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당시 한 자루라도 총기를 더 필요로 하던 프랑스에 이 반품된 총을 전부 팔아치울 수 있었다. 이 돈으로 해군은 12,000정을 새로 주문해 배치할 수 있었다.

해군에 뒤이어 뉴욕주 민병대(오늘날의 주방위군)가 개량형인 M1871을 스프링필드 조병창에 주문해 2만 정을 납품했지만, 미 육군은 결국 제식 채용을 거부했다. 총 자체의 성능에는 호의적이었지만, 기존에 쓰던 전장식 소총을 개조할 수 있는 구조인 트랩도어(Trapdoor) 구조를 더 선호하던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레밍턴은 제식 소총을 미 육군에 대량 납품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그러나 레밍턴은 미국에서 놓친 기회를 해외에서 크게 잡았다. 때마침 유럽 국가들은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강대국의 뒤를 따라 후장식 소총을 채택하는데 관심이 컸는데, 그중에서도 1864년에 후장식 소총으로 무장한 프로이센군과 싸워 참패한 덴마크군이 가장 먼저 레밍턴의 고객이 되었다. 곧바로 인접국인 스웨덴-노르웨이 왕국(당시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한 나라)도 여기에 가세했고, 이렇게 해서 이 두 나라는 M1867로 불리는 버전을 사용하게 되었다. 덴마크는 41,800정, 스웨덴-노르웨이는 10,000정의 완성품과 2만 정분의 기관부를 주문했지만 특히 스웨덴은 20만 정 이상을 자국 내에서 라이선스 생산했다. 그리고 1869년에는 이집트가 또 레밍턴에게 6만 정을 주문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1870~80년대 사이에 레밍턴 롤링 블록 소총은 수출 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총 자체가 우수한 점도 있었지만, 당시 미국만큼 우수한 품질의 소총을 빠르게 대량으로 납품할 수 있는 나라가 몇 없었다.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 등은 방대한 자국군 수요를 맞추다 보니 수출에 상대적으로 소홀한 면이 있던 반면 미국은 군용 총기의 대량 생산 능력은 충분한데 자국군의 수요는 크지 않았고, 또 레밍턴 롤링 블록은 미군에 납품도 되지 않았기에 수출에 힘을 쓰기 쉬웠던 것이다.

레밍턴 롤링 블록 및 그 파생형을 다 합치면 수 천만 정이 생산된 것으로 추산된다. 생산 기간도 거의 70년에 육박하는데, 이것은 AK소총이나 마우저 볼트액션 소총 등의 걸작들과 충분히 비견될 수 있는 수준이다. 사용 국가의 숫자도 40개를 넘으며, 과테말라 국기에는 아직도 롤링 블록 소총이 그려져 있을 정도이다. 비록 19세기 끝 무렵부터 볼트액션 소총의 등장으로 빠르게 주력의 자리에서 벗어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는 원래 사용되던 저압의 흑색 화약탄 대신 7mm 마우저 등 고압의 무연화약 소구경탄을 쓸 수 있게 개조되어 생산되기도 했다. 그만큼 롤링 블록 액션의 내구성이 높다는 증거이다. 심지어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프랑스와 영국이 소해정이나 2선급 부대 등에서 사용하기 위해 레밍턴사에 롤링 블록 소총을 재주문해 납품받을 정도였다.

레밍턴 롤링 블록은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있다. 먼저 신미양요 당시 미군이 이 총을 사용한 것이 첫 번째 인연이다. 악연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이는 신미양요 당시 투입된 병력이 육군이 아니라 미 해군과 해병대였기 때문이다. 화승총으로 무장한 조선군은 사거리와 위력, 발사 속도, 명중률 모두 압도적으로 우세한 롤링 블록 소총 앞에 맥을 못 췄다. 방탄 성능을 기대했던 면갑도 강선총의 높은 관통력 앞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두 번째 인연은 개화기에 있었다. 개항 이후 조선의 군제가 현대식으로 개편되면서 서구에서 신형 총기를 도입하는 과정에 당시 가장 수출 시장에서 인기 있던 군용 소총인 레밍턴 롤링 블록도 상당수가 도입된 것이다. 신식 군대를 편성하는 과정에서 소총과 군수품이 특정 국가에 편중되는 것을 견제할 목적으로 1884년에 3~4천정 정도가 도입되었다고 전해진다. 이것은 구한말에 도입된 총기로는 꽤 많은 수준에 속한다. 하지만 1880년대에는 이것 말고도 마우저 G71, 스나이더 엔필드, 무라타 13년식 등 다양한 총기가 도입되면서 탄약의 호환성부터 시작해 수많은 문제가 있었고, 결국 레밍턴 롤링 블록도 을미사변 등의 상황에서 일본 등 열강의 횡포를 저지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레밍턴 롤링 블록 소총들은 주요국들의 제1선 소총에서 물러난 뒤에도 후진국들에 중고로 넘어가거나 민간에 불하되는 등 20세기에도 상당 기간 명맥을 이어갔으며, 현재도 클래식 총기로서 이탈리아 등지에서 복각품이 발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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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원(스웨덴군용 M1867)

사용탄 : 12.17x42mm 혹은 12.17x44mm
길이 : 1.35m
총열 길이 : 951mm
무게 : 4.32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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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홍희범 | 군사전문지 편집장

1995년 월간 플래툰의 창간 멤버로 2000년부터 편집장으로 출간을 책임지고 있다. 2008년부터 국군방송 및 국방일보 정기 출연 및 기고를 하고 있으며, <세계의 총기백과>, <밀리터리 실패열전> 등을 저작하고 <2차세계대전사>, <컴뱃 핸드건>, <전투외상 응급처치>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