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8.22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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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T-64 전차

현실이 이상을 쫓아가지 못한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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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빙카 애국박물관에 전시 중인 T-64B1. 최초 구상대로 완성되어 1960년대 초에 등장했다면 T-64는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오랫동안 보유했을만한 전차였다. < (cc) Alan Wilson at Wikimedia.org >

개발의 역사

제2차 대전이 끝났지만 그토록 고대하던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공공의 적이던 독일은 철저할 정도로 몰락했지만 새로운 세계 질서의 주도권을 놓고 미국과 소련의 새로운 대결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직접 충돌하지 않았지만 권총부터 핵폭탄에 이르는 모든 무기 분야에서 상대보다 좋은 것을 갖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지난 전쟁을 치르며 확고한 지상의 왕자가 된 전차도 마찬가지였다.

최초 프로토타입인 Object 430. 여러 문제로 말미암아 개발에 실패했다. < 출처: (cc) Serguei S. Dukachev at Wikimedia.org >

전차와 기갑 전력에서 최강이라고 자부한 소련은 해당 분야의 우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T-54, T-55 같은 전차를 줄줄이 선보였다. 하지만 곧바로 미국이 M47과 M48로 대응하고 나섰고 이들보다 강력한 M60의 배치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당연히 미국의 입장에서는 소련의 행보가 두려워서 그런 것이었지만 정작 소련은 자신들이 경쟁에서 뒤진다는 생각이 들어 갈수록 조바심이 커져 갔다.

기존 전차의 성능을 조금씩 개량하는 방식으로는 확고하게 우위를 확보할 수 없다고 판단한 소련은 지금까지 존재한 전차들과 차원이 다른 새로운 전차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이에 따라 1958년에 실시한 사업에서 KMDB 설계국의 Object 430가 T-55를 바탕으로 하는 OKB-520 설계국의 Object 140을 제치고 본격적으로 개발에 들어갔다. Object 430는 공격력, 방어력, 기동력 모두에서 최고를 목표로 했다.

T-64의 개발을 이끈 알렉산드르 모로조프. T-34, T-44, T-54를 연이어 개발한 전차 분야의 최고봉이었으나 T-64는 상당히 애를 먹었다. < 출처: Public Domain >

통상 소련 전차는 주포의 구경에 비해 관통력이 작고 정확도가 떨어지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APFSDS탄을 사용하는 대구경 활강포를 장착해서 공격력을 향상시킬 예정이었다. 또한 이를 이용해 대전차 미사일도 발사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여기에 더해서 기존 소련 전차들이 사용하던 목측식 대신 서방의 전차처럼 영상합치식 광학 거리측정기를 탑재해 명중률도 향상시키고자 했다.

그런데 공격력이 좋아도 방어력이 빈약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즉 전투에서 살아남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이에 Object 430는 기존에 존재하는 모든 HEAT탄을 막아낼 수 있는 복합장갑의 장착을 예정했다. 서방도 개념 연구를 그때야 시작했을 만큼 소련의 준비는 상당히 빨랐다. 여기에 더해 터보차저로 출력을 향상시킨 신형 디젤 엔진과 개선된 주행 장치를 장착해 기동력 향상도 이루려 했다.

개발이 지연되면서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T-62가 먼저 등장했다. 임시 대타였지만 일선에서 호평이 이어지면서 주력 전차가 되었다. < 출처: (cc) Andshel at Wikimedia.org >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적용하려던 대부분의 기술이 그때까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후 5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개발에 진척이 없는 데다 미국이 M60을 본격적으로 배치하자 소련군은 당장의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지난 경쟁에서 패한 Object 140을 부활시켜 이를 바탕으로 화력을 강화한 Object 165를 임시 대타로 삼았다. 이것이 또 하나의 베스트셀러 전차인 T-62이다.

당연히 이런 군부의 선택은 KMDB 설계국에게 압박이 되었다. 이에 Object 430을 폐기하고 대신 여러 문제점을 손 본 Object 432로 방향을 틀어서 마침내 1962년 개발을 완료했다. 이후 대대적인 성능 평가를 받은 후 T-64라는 제식명을 부여받고 1966년에 양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초도 물량을 공급받은 일선의 반응은 너무 문제가 많다며 부정적이어서 곧바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했다.

T-64의 기반이 된 Object 432 프로토타입 < 출처: (cc) Alexander Chebanenko at Wikimedia.org >
이처럼 생산과 동시에 개선과 개량이 이루어지면서 본격적인 배치는 1969년에 이르러서야 이루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이때는 T-62가 대량 보급된 상태였고 이를 후속할 T-72도 조만간 개발 완료될 예정이었다. 한마디로 본격 배치와 더불어 입장이 어중간한 상태가 된 셈이었다. 이처럼 T-64는 구상 당시에 시대를 앞섰지만 현실이 이상을 쫓아가지 못해 전차 개발사에서 주역이 되지는 못한 전차라고 할 수 있다.

특징

차원이 다른 전차를 목표로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T-64는 외형에서부터 차이가 많다. 우선 이전 전차들은 5개의 대형 보기륜을 장착한 단순한 형태였지만 T-64는 서방 전차처럼 6개의 소형 보기륜과 별도의 지지륜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순한 구조 변화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후 후속한 T-72, T-80, T-90도 같은 방식을 채용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소련 전차의 주행 계통에 커다란 한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전 소련 전차들과 달리 서방 전차처럼 보기륜의 크기가 줄고 지지륜이 추가되었다. < 출처: (cc) NVO at Wikimedia.org >
자동장전장치를 장착한 덕분에 탄약수가 필요 없게 되면서 승무원이 3인으로 줄어들었고 그만큼 포탑을 작게 만들어 피탄 면적과 전차의 중량을 줄일 수 있었다. 사용 중 사수가 부상당하는 등의 문제점이 드러나기는 했지만 운용 상 이점이 많다고 판단해 T-64 이후 등장하는 소련(러시아) 전차는 자동장전장치와 3인 운용 체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개발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복합장갑으로 방어력을 향상시키는 데 성공했다.
T-64A에 처음 장착된 125mm 구경 활강포는 이후 등장하는 러시아 전차의 기본 무장이 되었다. < 출처: (cc) Smell U Later at Wikimedia.org >
초기 생산형에는 115mm 구경의 D-68 활강포를 탑재했으나 서방이 105mm 구경의 L7 전차포를 실용화하자 1969년부터 제작된 T-64A 형부터는 현재 러시아군의 주력인 T-90도 사용 중인 125mm 2A26 활강포를 장비했다. 1976년부터 양산된 T-64B는 주포발사 대전차 미사일인 9M112를 발사할 수 있도록 사격통제장치가 개량되어 최대 4,000m에 위치한 기갑차량의 요격이 가능하다.

운용 현황

T-64는 1987년까지 약 13,000대가 생산되었다. 냉전이 종식되고 대전차 무기의 발달로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어버린 최근에 등장하는 전차들과 비교한다면 엄청난 생산량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사상 최대를 자랑하는 T-55은 말할 필요조차 없고 같은 시기에 함께 주력으로 활약했던 T-62, T-72에 비해서도 적은 수량이다. 요구 수준 달성에 시간이 걸린 것이 가장 큰 이유다.

2008년 우크라이나 군사퍼레이드에 등장한 T-64BM. 소련 시절에 T-64는 해외 제공을 거부했을 만큼 귀하게 여겼던 자산이었고 현재 대부분을 우크라이나군이 운용 중이다. < 출처: (cc) Michael at Wikimedia.org >
T-64B에 이르러 결함이 상당 부분 해결되었지만 이미 그때는 가격이 훨씬 저렴하고 성능도 그다지 차이가 없는 T-72와의 경쟁에서 밀린 상태였다. 이를 기반으로 개발된 T-80이 한때 주목을 받았으나 러시아군 주력전차를 놓고 벌인 경쟁에서 T-90에 밀렸다. 때문에 콩고민주공화국에 수출된 중고품 25대를 제외하고 소련 해체 후 KMDB 설계국이 위치한 우크라이나에서 대부분 운용 중이다.

변형 및 파생형

T-64 : D-68 115mm 활강포를 장착한 초기 양산형

T-64 < 출처: (cc) Serguei S. Dukachev at Wikimedia.org >
T-64A : 2A26 125mm 활강포를 장착한 양산형
T-64A < 출처: (cc) Alan Wilson at Wikimedia.org >
T-64AK : T-64A 기반 지휘전차
T-64AK < 출처: (cc) Vitaly V. Kuzmin at Wikimedia.org >

T-64R : T-64를 T-64A 사양으로 개조한 개수형

T-64B : 9M112 대전차미사일 운용 가능 후기 양산형

T-64B < 출처: (cc) Andrew Bossi at Wikimedia.org >

T-64BK : T-64B 기반 지휘전차

T-64B1 : T-64B 개량형

T-64B1K : T-64B1 기반 지휘전차

T-64AM : T-64A에 6TD-1엔진을 탑재한 개수형

T-64AKM : T-64AK에 6TD-1엔진을 탑재한 개수형

T-64BM : T-64B에 6TD-1엔진을 탑재한 개수형

T-64BM < 출처: (cc) Нацгвардія України at Wikimedia.org >

T-64B1M : T-64BM 사양으로 개수된 T-64B1

T-64BMK : T-64BM 사양으로 개수된 T-64BK

T-64B1MK : T-64BM 사양으로 개수된 T-64B1K

T-64BM2 : T-64B의 근대화 개수형

T-64BM2 <출처: Armor of Valor >

T-64BV : 콘닥트 반응 장갑을 장착한 개량형

T-64BV < 출처: (cc) Andrew Butko at Wikimedia.org >

T-64B1V : T-64BV 사양으로 개수된 T-64B1

T-64BVK : T-64BV 사양으로 개수된 T-64BK

T-64B1VK : T-64BV 사양으로 개수된 T-64B1K

T-64U : T-84에 준한 T-64B의 근대화 개수 형.

T-64U <출처: palba.cz>

제원[T-64A]

생산업체 : KMDB
도입 연도 : 1964년
중량 : 38톤
전장 : 9.225m
전폭 : 3.415m
전고 : 2.172m 
장갑 : 압연장갑, 복합장갑
무장 : 125mm D-81T(2A46) 활강포×1
          12.7mm DShK 중기관총×1 
          7.62mm RKT 기관총×1
엔진: 5TDF 5 기통 디젤 엔진 700마력(522kW)
추력 대비 중량: 18.4마력/톤
서스펜션: 토션 바
항속 거리: 500km
최고 속도: 50km/h
양산 대수: 13,000대 이상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