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8.0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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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슈베러 구스타프

강력했지만 효율적이지는 못했던 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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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에 투입된 사상 최대의 거포였던 슈베러 구스타프. 도라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 출처 : CC BY-SA 4.0 >


개발의 역사

프랑스가 1929년부터 공사를 시작한 마지노선은 가히 자타가 공인하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독일의 대항마인 지그프리트선은 여기에 비하면 그저 제한적인 방어물이었다. 그런데 이 철옹성의 등장은 프랑스의 국방 정책이 완전히 수세적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했다. 지난 1923년에 배상금 지연을 빌미로 호기롭게 군대를 보내 루르를 점령했던 프랑스의 자신감은 사라졌고 어느덧 방어선 안에서만 안주하고자 한 것이다.

프랑스를 공략하려는 독일에게 마지노선은 까다로운 장애물이었다. <출처: Public Domain>
반면 나치의 집권 후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엿보던 독일에게 마지노선은 두통거리였다. 전통적으로 요새 공략에 사용되는 무기는 강력한 대구경의 거포다. 지난 제1차 대전 당시에도 빅베르타, 슈나이더 520mm, BL 18인치 같은 많은 거포들이 활약했다. OKH(독일 육군 최고사령부)는 지난 전쟁에서의 전훈을 바탕으로 설계된 마지노선을 격파하려면 더욱 강력한 새로운 거포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제1차 대전 당시 영국군이 사용한 BL 18인치 열차포. 이처럼 거포에 관한 기술은 충분히 축적된 상태였다. <출처: Public Domain>
1934년 OKH는 당시 프랑스가 보유한 야포의 사거리 밖에서 사격을 가해 7m 두께의 철근 콘크리트 또는 1m 두께의 장갑판을 격파할 수 있는 공성포(攻城砲)의 소요를 제기하고 크루프(Krupp)에 개발을 의뢰했다. 당시의 기술력으로 파괴력을 늘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탄두의 크기를 키우는 것이었다. 개발을 이끈 뮐러(Erich Müller)는 이 정도의 파괴력을 발휘하려면 탄두가 7톤 정도는 되어야 할 것으로 보았다.
미 육군 병기박물관에 전시 중인 80cm 포탄. 무게 7톤의 철갑탄은 7m 두께의 철근 콘크리트 또는 1m 두께의 장갑판을 관통할 수 있다. < 출처: (cc) Jan Wellen at Wikimedia.org >
문제는 이런 탄두를 30km 이상 떨어진 목표까지 발사하려면 적어도 포신의 구경이 70cm 이상에 길이가 30m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이 정도의 포신을 거치하고 발사 시의 충격을 흡수하려면 포 전체의 무게가 1,000톤을 넘어야 했다. 포의 크기가 이 정도라면 목표를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까지 이동해 방렬하는 것부터 힘들다. 이에 따라 분해해서 열차로 목표 부근까지 이동한 후 조립해 사용하는 방식으로 설계가 이루어졌다.
포탄 장전을 위한 슈베러 구스타프의 기중기 <출처: Public Domain>

거포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 뿐이지 이미 함포, 요새포 등이 있었으므로 기술적으로 제작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뮐러는 70cm에서 100cm에 이르는 다양한 구경의 포신을 놓고 검토를 거친 후 80cm 구경을 선택하고 1937년부터 제작을 시작했다. 사용 목적이 특화되고 고려할 변수도 많지 않다 보니 순조롭게 개발이 이루어져 1939년 말, 실사격 테스트에서 군부의 요구 사항을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이 거포를 일반적으로 ‘무거운 구스타프’ 또는 ‘거대한 구스타프’ 정도의 의미인 ‘슈베러 구스타프(Schwerer Gustav, 이하 구스타프)’라고 부르는데, 당시 크루프의 사장인 구스타프 쿠르프(Gustav Krupp von Bohlen und Halbach)의 이름을 딴 것으로 알려진다. 반면 독일군에서 정식으로 붙인 이름은 ‘80cm 포(80-cm-Kanone (E))’로 당시 독일이 사용한 여타 무기들처럼 기능과 용도만 단순히 표기한 것이다.

1943년 측근들을 대동하고 구스타프를 관람하는 히틀러 < Public Domain >

독일 군부는 1940년 봄까지 납품을 원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결국 그해 5월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했을 때 필살기로 여기던 구스타프는 동원될 수 없었다. 군부가 준비 부족을 이유로 침공을 만류했음에도 도발 욕구가 충만한 히틀러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덕분에 구스타프 외에도 마지노선 격파를 위해 개발 중이던 카를 자주구포, 레오폴드 열차포 같은 여타 거포들도 정작 프랑스 침공전에 사용되지 못했다.

독일연방군 박물관에 전시 중인 구스타프 모형 < (cc) Daniel Perez Suti at Wikimedia.org >

당시 독일은 마지노선이 설치되지 않은 아르덴 산악 지대로 주력 부대를 돌파시키는 전략으로 프랑스를 굴복시켰다. 제1차 대전의 전훈을 바탕으로 개발된 무거운 중포가 독일군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된 속도전과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2문의 구스타프는 독소전쟁이 발발한 이후인 1941년 11월이 되어서야 실전에 배치될 수 있었다. 크루프는 전통대로 초도 생산품은 무료로 납품했고 두 번째 포는 7백만 마르크에 판매했다.


특징
슈베러 구스타프의 해설영상 <출처: 유튜브 American Heroes 채널>
구스타프의 포탄은 4.8톤의 고폭탄(HE)과 7톤의 구조물 관통용 철갑탄(AP)이 있다. 고폭탄의 경우 47km, 철갑탄은 38km인 사거리는 당대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다. 1960년대까지 핵전쟁 대비용으로 사용된 마지노선을 파괴할 목적으로 탄생한 거포답게 철갑탄의 운동에너지가 아이오와급 전함에 탑재된 16인치 주포의 6.8배에 이르러 현재까지 실전에서 사용된 가장 강력한 포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포탄, 장약, 신관 장전 상태를 재현한 전시물 < (cc) Jan Wellen at Wikimedia.org >
구스타프는 열차포로 구분되지만 열차가 운반 수단이자 포가(砲架) 구실까지 하는 여타 열차포와 차이가 있다. 완전 분해된 상태로 전용 열차에 실려 이동하고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진지와 반원형의 전용 복선 철도를 구축한 후 그 위에 포를 조립해서 사용한다. 이동 시간을 제외하고도 이런 준비에 대략 3주 정도가 소요되며 운용을 위해 250명의 포병 이외에 2,500명의 공병, 방공포병, 경비병 등이 필요하다.
네덜란드 군사박물관에 전시 중인 구스타프 모형처럼 복선의 철로 위에 설치되었다. < (cc) Zandcee at Wikimedia.org >
포신의 최대 앙각은 48도이고 좌우 조준은 반원형 복선 궤로 포를 이동시켜서 한다. 30~45분마다 1발 정도 발사가 가능한데 1942년 6월 6일 하루 동안 16발 발사한 것이 최대 기록이다. 포탄이 엄청난 만큼 포신의 수명도 짧아 대략 100발 정도 사격 후 교환해 주어야 했다. 이처럼 위력이 대단하지만 구스타프는 용도가 제한되고 사용하기도 불편한데다 많은 병력과 보급이 필요해서 실용적인 무기가 아니었다.

운용 현황

구스타프는 1942년 크림반도 남단에 위치한 세바스토폴 공략전에서 유일하게 사용되었다. 흑해로 나가는 출입구인 세바스토폴에는 요충지답게 옛 제정러시아 시절부터 지형을 이용해 구축한 요새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었다. 독일은 6개월 동안 공격을 가했음에도 함락시키는 데 실패하자 작전을 바꾸어 점령 대신 파괴를 선택하고 구스타프 1번포를 비롯해 당시 가용할 수 있는 포병 전력을 대거 동원했다.

포탄 및 장약을 장전 중인 모습 < CC BY-SA 4.0 >
전투에 투입된 구스타프는 6월 5일 첫 사격을 실시한 후 6월 17일까지 총 46발(일부 자료에는 48발)을 발사했다. 스탈린 요새, 몰로토프 요새, 시베리아 요새, 막심 고리키 요새 등을 차례로 공격해 많은 전과를 올렸다. 특히 6월 6일에 ‘백색 절벽’으로 알려진 해수면 30m에 설치된 소련군 탄약고를 격파하고 근처에 정박 중이던 소련 해군 함정을 격침시켜 거대한 공성포의 존재 이유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슈베러 구스타프의 포탄 발사 모습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단지 이것이 구스타프가 전쟁사에 흔적을 남긴 모든 것이었다. 세바스토폴 전투 후 본국으로 돌아가 정비를 마친 1번포는 이후 레닌그라드 인근에 배치되었으나 사격을 하지 않았다. 2번포는 1942년 9월에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투입되었으나 역시 실사격이 없었다. 이후 이들은 후방으로 이송되어 보관 중 패전이 가까워졌을 무렵 노획을 막기 위해 폭파 처리되었다.
세바스토폴 전투 당시 구스타프의 공격을 받고 격파된 막심 고리키 I 해안포대 < Public Domain >


변형 및 파생형

1번포 : 유일하게 실전에서 활약했다. 도라(Dora)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세비스토폴 전투 당시 포신을 올린 모습 < CC BY-SA 4.0 >
2번포 : 일부 자료에는 2번포가 도라라고 하기도 한다. 도라는 크루프 개발팀의 수석 엔지니어 아내의 이름이라고 하는데 그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견인에 사용된 2량 편성 D311 디젤기관차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3번포 : 프랑스 깔레에서 영국 런던을 공격할 수 있도록 로켓 발사체를 이용하면 사거리가 190km에 이르도록 설계된 52cm 구경에 43m 포신을 갖춘 거포였지만 완성되지 못했다.


제원

무게 : 1,350톤
전장 : 47.3m
포신 : 32.5m
전폭 : 7.1m
전고 : 11.6m
구경 : 80cm
유효사거리 : 47km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