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7.0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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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드레드노트 전함

해군의 사상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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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함거포 시대를 개막한 역사적인 전함 드레드노트 <출처: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화약의 발명은 무기 체계와 전쟁의 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바다 위에서의 싸움도 마찬가지였다. 이전까지 해전은 상대방 선박으로 병력이 건너가 점령하거나 화공으로 태워버려 승패를 결정지었다. 충각(衝角)처럼 직접 공격하는 방식도 있었지만 붙어서 싸워야 하는 것은 그대로였다. 그러다가 화약을 이용한 함포가 등장하며 멀리 떨어져서도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시대로 진입했다.

일단 많은 포탄을 상대에게 퍼부어야 이길 수 있었기에 17세기부터 전열함(Ship of the line)이 대세가 되었다. 유럽이 이를 앞세워 세계 침략에 성공하자 함포를 중시하는 시류는 더욱 진화해서 1892년에 이르러 회전식 포탑을 장착하고 장갑을 강화한 전함(Battleship)이 등장했다. 초기의 전함들은 원거리에 위치한 적과의 교전을 위해 주포를 선체 전후에, 중거리 교전을 위해 다양한 구경의 부포를 측면에 설치했다.

1892년 건조된 프레 드레드노트급 전함인 미 해군의 텍사스(USS Texas) <출처: Public Domain >

무조건 포를 많이 달던 전열함 시대의 전통 때문인데, 이런 수백 년 간 이어진 해군의 사상을 깨버린 엄청난 사건이 1905년에 벌어졌다. 쓰시마해전에서 일본 해군은 3척의 어뢰정을 손실했지만 무려 21척의 러시아 군함을 격침시키고 7척을 나포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모두의 예상을 벗어난 이런 결과가 나온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의 함포 사거리가 러시아보다 길고 화력도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주력함은 원거리에서 상대를 격파할 수 있는 대구경 주포를 위주로 무장하는 것이 옳다고 보게 되었다. 사실 이런 생각은 함포의 사거리가 늘어나고 보다 정확하게 목표를 타격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 19세기 말부터 여러 나라에서 주장되었다. 특히 전통의 영국 해군은 제1해군 경(First Sea Lord, 해군참모총장) 피셔(John Fisher) 제독의 주도로 이미 그런 사상에 부합한 전함 드레드노트(HMS Dreadnought)의 제작을 시작한 상태였다.

해군의 무기 체계와 전쟁 사상에 엄청난 영향을 남긴 드레드노트급 전함, 순양전함의 개발을 이끈 존 피셔 제독. <출처: Public Domain >

드레드노트는 중구경 부포를 폐지한 대신 대함 무장은 대구경 주포로 통일했다. 사거리가 늘어난 만큼 떨어진 명중률을 보완하기 위해 탄착 지역에 일제 사격을 가하는 공격 방식을 택했다. 기본적으로 먼 거리에서 공격을 가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만일 적함의 사정권 내에서 교전이 벌어질 경우를 대비해 당시까지 개발된 함포의 공격을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장갑을 둘렀고 순양함과 비슷한 고속 순항이 가능했다.

그런데 아직 가능성이 입증되지 않았고 획득 비용도 이전 함의 3배에 이르러 정부는 물론 해군 내에서도 건조를 반대하던 의견이 많았다. 바로 그때 벌어진 쓰시마해전은 이런 반대 목소리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숫자가 많아도 질적으로 뒤지면 소용없다는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20세기 중반에 대함미사일이 등장하기 전까지 상대의 체급이 크면 교전을 회피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 정도였다.

석탄을 태워 발생한 연기를 내뿜으며 항해 중인 드레드노트. <출처: Public Domain >

이런 시대상을 배경으로 1906년 취역한 드레드노트는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20세기 중반까지 해군의 사상을 새롭게 지배한 거함거포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군비 경쟁을 벌이고자 한다면 새로 건조되는 전함은 적어도 드레드노트 정도의 성능을 갖추어야 했다. 이후 이런 스펙에 맞춘 전함을 흔히 드레드노트급 혹은 노급(弩級)이라 부르고 이전의 전함을 프레 드레드노트급(Pre-Dreadnought) 혹은 전노급(前弩級)으로 구분한다.

등장 당시 드레드노트는 천하무적이었지만 당연히 이후 등장하는 전함들은 적어도 이보다 강해야 했다. 불과 4년 후인 1910년 주포를 일렬로 배치하여 일제 사격이 가능한 영국 해군의 오리온(HMS Orion)이 등장하는데, 별도로 슈퍼 드레드노트급(Super-Dreadnought) 혹은 초노급(超弩級)급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처럼 드레드노트는 거함거포에 의해 결판을 내는 20세기 중반까지 해전의 사상을 지배하도록 만든 기념비적 전함이다.

드레드노트 탄생 후 불과 4년 만에 등장한 오리온. 이후 등장한 전함들을 별도로 슈퍼 드레드노트급이라 한다. <출처: Public Domain >


특징

드레드노트는 1908년식 Mk. X 함포를 2연장으로 묶은 5개의 포탑(총 10문)을 장착했다. 12인치 구경에 무게 386kg의 포탄을 포구 초속 831m의 속도로 발사할 수 있으며 9,140m 사거리 내에서 현측 장갑 269mm를 관통할 수 있다. 이는 당시까지 존재한 모든 전투함들을 일격에 격파할 수 있는 수준이다. 자위용으로 12파운더포 27문을 장착했지만 근거리 방어는 경순양함이나 구축함 같은 호위 전력이 담당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2연장 포탑에 장착한 12인치 Mk. X 함포 <출처: Public Domain >
드레드노트는 처음부터 원거리 교전을 상정하고 개발되었기에 방어력도 철저히 이에 특화되었다. 사거리 내 포격전이 벌어질 경우 대부분의 당대 기존 전함들이 사용한 8인치 함포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도록 개발되었다. 당시 보편적으로 사용된 크루프 장갑(Krupp armour)을 둘렀고 선측처럼 보다 방어력에 신경을 써야 하는 부위는 당대 최신 기술이 접목된 크루프 시멘트 강재(Krupp cemented steel)를 사용했다.
관통 실험 후의 6인치(150mm) 크루프 장갑판 <출처: Public Domain >
1884년 개발된 증기 터빈 엔진을 처음 사용한 터비니아(Turbinia) 상선이 당대 최고인 34노트의 속도를 발휘했다. 함의 속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고심하던 영국 해군의 눈에 증기 터빈 엔진이 들어왔지만 대형 함에 사용된 적이 없었다. 고심 끝에 구축함에 두 대의 증기 터빈 엔진을 직렬 연결해 시험해 좋은 결과가 나오자 드레드노트에 이런 방식으로 증기 터빈 엔진이 장착되면서 순양함과 맞먹는 21노트의 쾌속 항진이 가능했다.


운용 현황

드레드노트는 군함 역사에 신기원을 열었지만 새로운 시도를 처음 해본 실험 함에 가까웠다. 때문에 여타 동급 함의 건조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를 운용한 결과를 바탕으로 성능이 보다 향상된 후속 함의 탄생을 이끌었다. 이후 열강들의 전함 확보 신경전은 국력을 쏟아부었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심각했는데, 영국의 해상 패권에 독일이 도전하면서 20세기 초에 벌어진 건함 경쟁은 제1차 대전의 발발 이유 중 하나가 되었을 정도다.

이처럼 강력한 후속 전함들이 줄줄이 등장하면서 드레드노트는 급속히 2선급 전력으로 밀려났다. 8년 후 제1차 대전이 발발하자 구식 전함들로 구성된 제3전함전대의 기함으로 활동했다. 당시 프레 드레드노트급이 수적으로 전대 전력의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사실상 전투 투입이 어려워 후방에서 경계 작전만 수행했다. 드레드노트가 이들로 이루어진 전대의 기함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전쟁 발발 당시에는 구식이 되었다는 의미다.

마지막 출항 중인 독일 해군의 U-29 잠수함. 드레드노트의 충돌 공격을 받고 침몰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
1915년 3월 18일, 독일 잠수함(SM U-29)을 들이받아 격침시켰는데 드레드노트가 충각을 설치하지 않는 최초의 전함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이후 1919년에 퇴역했고 1923년에 해체되며 생을 마감했다. 선령을 고려할 때 연습 함 정도로 운용할 수 있었지만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주력 함 보유에 제약이 생기자 우선 폐기 대상이 된 것이었다. 자신으로 인해 시작된 군비 경쟁의 종착점을 스스로 찍은 셈이었다.


변형 및 파생형

넬슨 경(HMS Lord Nelson (1906))

드레드노트와 같은 시기에 건조, 취역, 퇴역한 영국의 마지막 프레-드레드노트 전함. 여러모로 비교 대상이 되는데 통상 드레드노트가 3배 정도 위력이 앞서는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다르다넬스 해전 참전처럼 제1차 대전에서의 활약상은 드레드노트보다 인상적이었다.

드레드노트(HMS Dreadnought (1906))
드레드노트 전함 <출처: Public Domain >

벨레로폰(HMS Bellerophon (1907))

후속 제작된 본격 양산형 드레드노트 전함으로 총 3척이 건조된 벨레로폰급의 초도함

벨레로폰 전함 <출처: Public Domain >


제원

- 만재 배수량: 20,730톤
- 전장: 160.6m
- 선폭: 25.0m
- 흘수: 9.0m
- 추진기관: 밥콕-윌콕스 보일러×18 / 23,000마력(17,000kW)
            4축 스팀 터빈 세트 2기 
- 속력: 21노트
- 항속 거리: 6,620마일
- 무장: 12인치(305mm) 2연장포 × 5
        12파운더(76mm) 단장포 × 27
        18인치(450mm) 어뢰발사관 × 5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