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의 역사

소련은 제2차 대전에서 독일을 굴복시키는 데 가장 커다란 역할을 담당한 나라다. 덕분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음에도 단순히 승전국의 지위를 넘어 종전 후 초강대국의 위치에 올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쟁 당시보다 더 치열하게 군비 경쟁을 벌여야 했다. 나치보다 더 강력한 미국과 대립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권총부터 핵폭탄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상대보다 앞서고자 했던 냉전시대의 모습이었다.

그중에는 지난 전쟁을 통해 지상전의 왕자로 등극한 전차도 있었다. 소련이 T-54, T-55를 연이어 선보이며 기선을 잡자 미국이 M47, M48로 대응하고 나섰다. 이에 소련은 기존 전차를 개량하는 방식이 아닌 차원이 다른 신개념의 전차를 개발해 확고하게 전력의 우위를 유지하고자 했다. 이렇게 벌어진 경쟁에서 1957년 KMDB(하르코프 모로조프 설계국)의 오비옉트(Object) 430이 개발 대상으로 채택되었다.

훗날 T-64가 되는 오비옉트 430은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할 수도 있는 대구경 주포, 자동장전장치, 영상합치식 광학거리측정기, 복합장갑, 터보차저 엔진 등을 장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당대 기술력으로 즉시 구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 프로젝트는 제대로 진척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반면 서방 측은 이후 베스트셀러가 되는 M60, 레오파르트 1, 치프텐 등의 개발에 진전을 보였다.

초조해진 소련 군부는 T-64의 개발 전까지 발생하는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한 임시 대타 제작에 착수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오비옉트 430과 경쟁을 벌였던 UVZ(우랄열차공작창)의 오비옉트 140 이었다. 성능이 검증된 T-55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개발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오비옉트 165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한 프로젝트의 핵심은 화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애초 100mm 구경의 D-10포를 개량한 D-54포를 탑재해 화력을 늘리려 했으나 개발 중인 서방의 전차들이 105mm 52구경장 L7 전차포를 탑재할 예정임이 밝혀지자 계획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했다. 무턱대고 구경만 늘릴 수 없기에 일단 같은 크기로 파괴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활강포가 대안으로 등장하면서 D-54의 머즐브레이크를 제거하고 강선을 없앤 115mm 구경 U-5TS 전차포가 탄생했다.

2A20라고도 불리는 U-5TS 전차포는 강선이 없어 T-55의 D-10 포에 비해 정확도가 떨어졌으나 포구 속도가 빨라 관통력이 1.5배 정도 되었고 사거리도 2배 정도 늘어났다. 충분히 이점이 있다고 판단한 군부는 1960년, 새로운 활강포를 주포로 채택한 오비옉트 166으로 명명된 신예 전차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를 전차에 올리려면 차체, 포탑, 포신안정장치 등의 대대적인 개량이 필요했다.

반드시 해결해야 했으나 하루빨리 배치를 요구하는 군부의 조급증이 커서 개발진은 어려움이 많았다. 1960년 미국이 M60의 배치를 시작하자 초조해진 당시 육군 총사령관이던 추이코프가 개발진을 찾아가 "돼지 위에 포를 얹어 놓고 그걸 전차라고 우겨도 상관없으니까 당장 전차를 내놔!"라고 다그쳤을 정도였다. T-62는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개발을 완료하고 1961년부터 일선에 배치되었다.

그런데 잠시 임무를 대행할 것이라는 계획과 달리 T-62는 이후 22,000대 이상 제작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T-64의 개발이 계속 지지부진하기도 했지만 일선에서의 평가가 예상보다 좋았기 때문이었다. 비록 실전 활약상은 인상적이지 않았으나 이후 T-72와 현재 러시아군의 주력인 T-90의 탄생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고 현재도 많은 중소 국가에서 주력 전차로 활약하며 무기사에 커다란 흔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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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T-62는 양산형 전차로 최초로 활강포와 APFSDS(날개안정분리철갑탄탄)을 장착했다. 최신 전차의 주요 무장으로 사용 중이어서 활강포의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포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강선이 없었으므로 가장 오래된 형태다. 소련은 U-5TS가 서방의 L7 보다 구경도 크고 포구 초속도 빠른 데다 관통력이 뛰어난 APFSDS를 사용해 공격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이에 걸맞도록 관측, 조준 장비가 개량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데뷔하다 보니 강력한 공격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웠다. 물론 이런 문제점을 소련도 잘 알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T-62을 한시적인 대타로 생각했기에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T-64의 개발 지연으로 시나브로 주력 전차가 되고 이후 여러 국지전에서 실망스러운 전과를 보이자 결국 개량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전작인 T-55보다 장갑의 두께가 5~15퍼센트 정도 늘어났지만 방어력은 평범한 제2세대 전차 수준 정도라고 할 수 있다. 피탄을 회피하기 위해 전고가 낮고 포탑이 둥근 소련 전차의 사상을 충실히 따랐으나 대신 승무원의 거주성이 나쁘고 포의 부앙각이 좁다. 무게에 비해 엔진이 강력한 편이어서 주행력이 양호한 편이고 특히 광폭의 궤도를 채택해서 험지에서 기동력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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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 현황

대타로 예정했지만 1978년까지 체코슬로바키아 면허 생산분 1,500여 대를 포함해 무려 2만 여대가 제작되었다. 소련을 비롯한 20여 개국에서 사용했고 현재도 아프가니스탄, 앙골라, 쿠바, 베트남, 시리아 등에서 현역으로 활약 중이다. 북한은 1970년대에 약 500대를 직도입하고 이후 이를 역설계하여 천마호, 폭풍호 같은 데드카피형을 생산 중이다. 따라서 현재 지구상에서 유일한 T-62 생산국이라 할 수 있다.

1969년 발발한 중소국경 분쟁에 처음 투입된 후 중동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 등을 비롯한 수많은 전쟁, 분쟁에서 활약했다. 1973년 발발한 제4차 중동전쟁 당시에 이집트, 시리아에 공급된 T-62들이 상당히 선전했지만 고질적인 훈련 부족과 떨어지는 작전 구사 능력 때문에 M60은 물론 1세대 전차인 M48에도 곤욕을 치렀다. 이처럼 전반적으로 실전에서의 활약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다.

처음 등장 시에 호평을 받았지만 대단히 좋다는 것이 아니라 그럭저럭 쓸 만한 전차라는 의미였다. T-55에 비해 특별히 장점이 없다며 바르샤바 조약국 중 불가리아만 도입했고 면허 생산한 체코슬로바키아도 전량 대외에 공급만 했을 정도였다. 1983년 레이저 거리 측정기와 탄도 계산기 등을 도입한 개량형 T-62M처럼 지속적인 개량을 통해 성능을 향상시켰지만 그때는 T-72가 주력이 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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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형 및 파생형

T-62A(오비옉트 165) : 100mm D-54TS 강선포를 장착 초기 저율 생산형

T-62 Obr.1960(오비옉트 166) : 115mm U-5TS 활강포를 극초기 양산형

T-62K : T-62 Obr.1960 기반 지휘전차

T-62KN : TNA-2 탐색 장비를 탑재한 지휘전차

T-62 Obr.1967 : 엔진 데크가 개량되고 수중 도하 기능이 향상된 극초기 후반 양산형

T-62 Obr.1972 : 도섭 기능 등이 향상된 개량형

T-62 Obr.1975 :  레이저 거리 측정기를 장착한 개량형

T-62D : 증가 장갑, 능동 대전차미사일 방어 장치, V-55U 엔진 등을 장착한 개량형

T-62D-1 : V-46-5M 엔진으로 환장한 T-62D

T-62M : 디지털 사통장치 장착, 9M117 대전차미사일 발사가 가능한 개량형

T-62M-1 : V-46-5M 엔진으로 환장한 T-62MD
 
T-62M1 : 9M117 대전차미사일 운용 능력을 갖추지 않은 다운그레이드형

T-62M1-1 : V-46-5M 엔진으로 환장한 T-62M1

T-62M1-2 : 차체 전면의 증가 장갑을 장비하지 않은 T-62M1 다운그레이드형

T-62M1-2-1 : V-46-5M 엔진으로 환장한 T-62M1-2

T-62MD : KAZ 1030M 대전차미사일 방어 장치를 장착한 모델

T-62MD-1 : V-46-5M 엔진으로 환장한 T-62MD

T-62MK : T-62M 지휘전차

T-62MK-1 : V-46-5M 엔진으로 환장한 T-62MK

T-62MV : 증가 장갑이 아닌 폭발 반응 장갑을 장착한 개량형

T-62MV-1 : V-46-5M 엔진으로 환장한 T-62MV

T-62M1V : 9M117 대전차미사일 운용 능력을 갖추지 않은 다운그레이드형

T-62M1V-1 : V-46-5M 엔진으로 환장한 T-62M1V

TO-62 :  화염방사차

IT-1 : T-62를 기반으로 한 구축전차

BTS4-V : 구난전차

Tiran-6 : 이스라엘 개조형

천마호 : 북한 데드카피형. 일부 자료에서는 면허생산이라고도 함

폭풍호 I : 천마호 개량형

선군호 : 폭풍호 개량형

TV-62 : 불가리아 자체 개발 구난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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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원

- 생산업체: 우랄열차공작창(Uralvagonzavod)
- 도입 연도: 1961년
- 중량: 37톤
- 전장: 9.34m
- 전폭: 3.30m
- 전고: 2.40m 
- 장갑: 압연장갑, 주조장갑(포탑)
- 무장: 115mm U-5TS 활강포×1
        12.7mm DShK 중기관총×1 
        7.62mm RKT 기관총×1
- 엔진: V-55 12기통 4행정 수랭식 디젤 엔진 581마력(433kW)
- 추력 대비 중량: 14.5마력/톤
- 서스펜션: 토션 바
- 항속거리: 450km
- 최고 속도: 50km/h
- 양산 대수: 22,700대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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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