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의 역사

1차 세계대전 중 등장한 대표적인 신무기가 전차(탱크)이다. 1916년에 처음 실전에 투입된 전차는 최전선 부대, 특히 얼마간 일방적으로 전차의 공격을 받아야 했던 독일군에게는 상당히 골치 아픈 존재였다- 비록 초기에 전차가 올린 전과가 기대보다 많이 나빴음에도 말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전차는 당시 보병이 가진 무기들로는 쉽게 저지할 수 없었다. 애당초 전차의 장갑판 자체가 가장 일반적인 소총이나 기관총탄을 막겠다고 두른 것이다. 게다가 초기에는 과거에 보지 못한 것이 나타났다는 미지(未知)에 대한 공포가 더해지면서 효과적인 대응이 더욱 어려웠다.

물론 가장 쉬운 해결책은 포를 끌고 와서 직사로 사격해버리는 것이었다. 당시 전차의 장갑은 어지간한 경량 야포라도 일단 맞추기만 하면 쉽게 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야포는 이미 1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최전선에 나와있을 물건이 아니었다. 급한 대로 상당수의 야포가 최전선으로 돌려지기는 했지만 야포의 본질은 원거리에서의 간접사 화력 지원이지 최전방에서의 직사 화력 지원이 아니었고, 또 적의 포격에 노출되기 쉬운 데다 거추장스러운 야포를 최전선에 늘 노출시키는 것은 여러모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보병부대에도 자체적으로 적 전차를 상대할 수 있는 수단을 줘야 했는데, 일단 초반의 공포를 극복하자 의외로 적 전차를 상대할 수단들은 없지 않았다. 여러 발의 수류탄을 묶은 집속수류탄을 적 전차의 지붕 위에 얹어 놓든가 장애물을 설치하든가 화염방사기를 사용하는 등의 방법도 있지만,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저지하는 방법으로 초기에 가장 흔하게 사용된 것이 탄두를 거꾸로 끼워서 평평한 쪽이 앞을 향해서 날아가게 만든 역전(逆轉) 탄두(Inverted bullet)였다. 뾰죽한 끝부분이 장갑판에 닿으면 튕겨 나가거나 탄이 깨지는 등의 문제가 종종 일어났지만, 끝이 평평한 상태에서는 최대한 안 튕겨나가고 관통할 확률이 높아졌다. 설령 관통을 못하더라도 장갑판 위에서 최대한 퍼지면서 그 충격으로 장갑판 안쪽이 깨져 파편이 차 내에 튀어버리는 등으로 피해를 줄 수 있었고, 또 관측창 등에 사격하면 모서리에 맞았을 때 내부의 납이 파편화 되어 차 내로 튀기 쉬운 등 예상 외로 전차에 피해를 줄 방법이 많았다.

하지만 이 역전 탄두는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기본 탄두보다 약간 대장갑 능력이 높아졌을 뿐 결국은 일반 소총탄이기 때문이다. 곧 영국군이 전차 장갑을 약간 두껍게 하는 등의 개량형을 내놓자 그 효과는 금방 사라졌다. 게다가 역전 탄두는 잘못하면 약실 내에서 폭발하는 등의 문제를 일으켜(대개의 경우 추진장약도 원래보다 더 넣었다) 병사들이 기피했고, 또 소총이 아닌 기관총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는 문제도 있었다.

그래서 그 다음에 나온 대안이 바로 K탄(Patrone SmK)이다. 쉽게 말해 탄두 안에 철심, 즉 관통자가 들어있는 철갑탄이었다. 이미 1차 세계대전 이전에 개발은 되어있었지만 딱히 어디에 쓸지 애매해 정식 채택이 안 되어있던 탄종이라는데, 참호전 양상이 진행되면서 적 관측수나 저격수가 사용하는 방탄판 등을 관통할 목적으로 조금씩 실전에 쓰이다가 때마침 딱 알맞은 용도가 나온 것이다. 특히 K탄은 기관총으로도 사격이 가능하므로 소총만 쓸 수 있던 역전 탄두보다 훨씬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K탄도 관통 후 위력이 충분하지 못 할 때가 많았다. 애당초 관통력 자체도 100m 정도 거리에서 12~13mm 두께의 장갑판을 관통할 확률이 1/3 정도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즉 확실한 대전차 수단은 아니었다. 게다가 1917년이 되자 영국군의 전차도 더 개선된 모델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K탄의 위력은 더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더 강력한 철갑탄을 개발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설령 개발한다 쳐도 미봉책이 될 것은 분명했다. 기존의 소총이나 기관총에서 쏴서 관통력을 높이는 탄약은 한계가 당연히 있을 테니 말이다. 곧 독일군은 보병이 운용할 수 있으면서도 적 전차에 대적할 수 있는 무기 체계가 필요하다고 깨달았고 그에 대한 개발을 시작했다.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은 최대한 빠르고 쉽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고, 그 결과 등장한 것이 세계 최초로 대전차임무를 위해 특화된 ‘대전차화기’인 T-게베어, 즉 ‘대전차 소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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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T-게베어라는 이름은 T(탱크) 게베어(Gewehr: 소총), 즉 ‘탱크 쏘는 총’이라는 단도직입적인, 속된 말로 ‘돌직구’적인 이름이다. 정식 명칭도 Tankgewehr M1918, 즉 1918년형 대전차 소총이라는 여전히 돌직구적인 이름이다.

모든 총기가 그렇듯 이 총도 먼저 총 그 자체보다 탄약을 개발해야 했다. 독일이 개발한 탄약은 13.2mm TuF라는 탄이었다. 탄두 직경 약 13.2mm, 탄피 길이 92mm의 이 탄에 TuF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Tank und Flieger, 즉 ‘전차 및 항공기’라는 의미였다. 51.5g의 큼직한 탄두를 785m/s의 속도로 발사해 15,900J에 가까운 엄청난 운동에너지를 얻는 이 강력한 탄약은 이름이 말하듯 전차뿐 아니라 갈수록 고도와 속도가 높아지는 항공기를 상대하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개발되었다.

이 탄의 위력은 T-게베어에서 사격할 때를 기준으로 할 때 100m에서 26mm, 500m에서도 18mm의 장갑판을 관통하는 위력이 있었다. 이는 당시 존재하는 사실상 모든 전차에 대해 500m까지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으로, 비록 관통한 뒤 내부의 주요 시설이나 승무원을 명중시켜 무력화해야 한다는 조건은 있었지만 전차에게는 확실한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문제는 탄보다 총이었다. 독일은 다급했고 이 탄을 쓰는 총을 가장 빨리 설계하고 생산할 방법을 강구했다. 그 결과 나온 방법은 간단했다. 그들에게 가장 익숙한 소총인 마우저 볼트액션 소총을 문자 그대로 이 탄에 맞게 키우는 것이었다. T-게베어는 그야말로 ‘뻥튀기한 볼트액션 소총’이 되었고, 덕분에 길이는 169cm, 무게는 18.5kg(탄 1발 장전시 기준)이라는 초 헤비급 화기로 완성되었다.

하지만 이처럼 거대한데도 불구하고 탄창은 없었다. 덕분에 사수는 단 한 발만 장전하고 사격한 뒤 다시 탄을 약실에 한 발 장전하고 쏴야 하는 완전 단발식으로 이 총을 운용해야 했는데, 이것 역시 다급하게 개발된 탓도 있을 것이다. 기존의 소총탄과는 크기도 무게도 차원이 다른 새로운 탄약을 원활하게 급탄할 탄창 등을 새로 개발하는 것도 하루가 급하던 당시의 상황에서는(1917년부터 개발에 들어가 1918년에 실전 배치가 이뤄졌다.) 최대한 시간 절약을 하려는 시도였을 것으로 보인다. 또 운용 목적상 단발로도 큰 무리는 없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현대에는 이런 종류의 대구경 저격총은 일반 소총보다 원거리 저격을 한다는 전제로 개발되지만, 이 시대에만 해도 그런 고려는 없었다. 운용은 어디까지나 500m까지의 적 전차를 맞춘다는 전제였고, 500m라도 전차는 여전히 꽤 큰 표적이다. 게다가 이 시대에 이 총의 강렬한 반동을 견딜 조준경이 적당한 크기로 완성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따라서 이 총의 조준 장치는 가장 일반적인 기계식 조준 장치(가늠자-가늠쇠)로 만들어졌다. 반면 손잡이는 워낙 덩치가 크고 무거운 데다 반동도 강한 무기라는 점 때문에 기존의 소총 개머리판 손잡이와 달리 수직에 가까운 독립된 권총손잡이가 달려있다.

한 가지, 아무리 급하게 만들어졌어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개머리판의 어깨받이다. 일반 소총처럼 철판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 총의 강렬한 반동을 생각하면 가죽이나 고무 등의 쿠션을 달아줬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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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 운용

T-게베어는 1918년 5월부터 오베른돌프(Oberndorf am Neckar)의 마우저사 공장에서 출고되었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의 약 반년 사이에 거의 16,000정 가까운 수량이 생산되었다. 물론 이 총들 중 상당수가 전선에 배치되기 전에 전쟁이 끝났지만, 그만큼 독일이 대전차 능력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증거일 것이다.

독일군은 이 총을 2인 1조의 대전차 저격조를 최소 단위로 운용했다. 그리고 이 저격조를 필요에 따라 여럿 전선에 배치해 적 전차를 저지하는데 투입했다. 2인 1조로 투입한 것은 기본적으로 사수와 탄약수로 나눈 것으로, 사수가 사격하는 동안 탄약수가 신속하게 새 탄을 재장전해 발사 간의 간격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기본 목적이었다.

하지만 사수와 탄약수는 고정된 임무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탄약수나 사수나 최대한 같은 수준으로 T-게베어를 다룰 수 있어 필요하면 얼마든지 임무를 바꿀 수 있었다. 특히 이 총의 엄청난 반동은 자칫 사수가 자세를 조금만 잘못 잡으면 어깨에 엄청난 통증, 혹은 부상까지 유발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반동을 제어하거나 완화하기 위한 수단이 사실상 없는 총이다 보니 사수는 정말 견착을 잘 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이 총은 ‘2연발 총’이 될 수 있었다- 오른쪽 어깨로 한 발 쏜 다음 도저히 못 버텨서 왼쪽 어깨로 또 한 발 쏘고, 그것으로 더 이상 못쓰게 되는 사태가 실제로 없지 않았던 모양이다. 또 워낙 무겁고 큰 총이다 보니 잘 준비된 사격 진지에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사격하는 방식이 주로 선호되었다.

일단 전선에 출몰한 T-게베어들은 무시 못 할 위력을 발휘했다. 적잖은 숫자의 연합군 전차들이 관통당해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문제는 등장이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생산된 숫자에 비해 실제 야전에 배치된 숫자는 상당히 적은 편이었고, 그러기 전에 전쟁은 끝나고 말았다.

숫자도 숫자지만 총 자체의 한계도 있었다. 발사 속도가 느린 단발총인데다 관통한 뒤에도 내부의 승무원이나 주요 장비까지 직접 맞혀서 피해를 입혀야 하는 총탄이다 보니 실제 효과는 한 차량에 여러 자루의 T-게베어가 동시에 사격을 집중해야 확실하게 효과가 나오는 등의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 독일군도 여기에 대한 생각이 없던 것은 절대 아니다. 어떻게 보면 T-게베어는 일종의 임시방편적인 무기였다. 정말 독일군이 대전차 화기 겸 대공 화기로서 크게 기대한 무기가 따로 있었다. 바로 MG18 TuF였다.

T-게베어에 쓰는 13mm 탄약을 사용하는 기관총으로 개발된 MG18 TuF는 이름인 TuF(Tank und Flieger)가 말하듯 대공/대전차 겸용으로 개발된 중(重)기관총이었다. 맥심 기관총을 크게 부풀린 설계로, 총 자체의 무게는 37kg에 달하는 이 기관총은 간단하게 말해서 나중에 미군이 도입하게 되는 M2HB(브라우닝 Cal.50)와 성격이나 크기나 성능이 상당히 유사한 기관총이었다. 만약 이 총이 제대로 생산되어 전선에 배치되었다면 1차대전의 전차들은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MG18은 1차대전에서는 아예 실전에도 투입되지 못했다. 1918년 11월에 전쟁이 끝날 시점에서 약 50정이 생산된 것이 고작이었고(원래 예정 자체도 1919년부터 실전 투입 목표), 그 뒤로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 개발과 생산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그 뒤 독일군은 이 정도 급의 탄약과 총기에 관심을 잃었고, 이로 인해 독일군에도 미군의 M2HB에 해당하는 독자적인 중(重)기관총이 보편화될 기회를 잃었다.

한편으로 T-게베어에 사용한 13mm 탄약을 노획한 뒤 미국이 .50구경(12.7mm)탄약을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는 100% 완전한 것은 아니다. 사실 거의 같은 시기에 미군은 독자적으로 앞으로 등장할지도 모를 독일의 전차나 당장 골치 아픈 적 항공기 대처 등을 위해 새로운 기관총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즉 개발 자체의 시작은 독일의 13mm와는 별개로 시작된 것이다. 다만 탄약을 새로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독일의 13mm 탄약이 노획되면서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것은 맞는데, 그래도 12.7mm 탄약의 시제품이 완성되어 존 브라우닝이 이 탄을 가지고 시제품 설계와 제작을 마친 것이 1918년 11월의 시점임을 생각하면 설령 독일의 탄약을 노획하지 않았어도 .50구경의 개발은 어떻게든 진행되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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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형

사실 이 총 자체의 파생형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이 끝난 뒤 대전차 화기에 대한 개발 요구는 한동안 거의 없었고, 각국 군대에서 다시금 대전차 화기를 새로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한참 지난 1930년대부터의 일이라 T-게베어를 직접적으로 모방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뻥튀기된 마우저 볼트액션 소총’이라는 콘셉트는 1930년대 중반에 폴란드가 이어받았다. 폴란드가 1935년에 완성한 Wz35 대전차 소총이 바로 그런 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개발된 총이기 때문에 이 총은 원래의 T-게베어와는 상당히 다른 면모를 많이 가지고 있다.

일단 4연발 탄창이 달려있고, 또 무게도 10kg으로 많이 가벼워졌다. 이렇게 무게가 가벼워진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총구에 특별하게 설계된 소염제퇴기가 달려있어 사수가 느끼는 반동이 상당 부분 경감됐고(65%나 감소되면서 당시의 일반적인 볼트액션 소총과 큰 차이 없는 수준까지 줄어들었다고 한다), 또 사용 탄약이 탄피를 104mm까지 늘려 (당시 평균적인 탄피 길이가 54~63mm 사이) 탄속을 엄청나게 높이는 대신 구경은 7.92mm로 억제한 것이라 관통력에 비해 반동이 낮은 편이기도 했다. 덕분에 T-게베어에 비하면 꽤 가벼운 무게를 유지할 수 있었다.

폴란드군은 이 총을 소대에 1정, 중대에 3정씩 배치했고 각 총은 2인 1조로 유지했다.

Wz35의 관통력은 입사각 30도 기준으로 300m 거리에서 장갑판 15mm, 100m 기준으로 33mm에 달했다. 이 관통력이면 1939년 9월에 침공해 들어온 독일군 전차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1호 전차나 2호 전차 상대로는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총이 아니었다. 너무 비밀 유지에 몰두하는 바람에 1939년 9월 시점에서 여전히 실제 이것을 운용할 줄 아는 병사의 숫자도 적은 데다 이것을 어떻게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지휘관은 더더욱 적었다. 이 때문에 제대로 운용하기만 했다면 독일군 기갑부대의 진격에 적잖은 장애를 초래했을 이 무기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패전한 뒤에는 독일군에 노획되어 독일군용 대전차 소총으로 일부가 쓰이고 일부는 핀란드나 이탈리아 등에 나눠졌다.
제원

- 무게 15.9kg(실탄과 양각대 제외)
- 길이: 169.1cm
- 사용탄: 13.2x92mm SR
- 탄창: 없음
- 총열 길이: 955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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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홍희범 | 군사전문지 편집장

1995년 월간 플래툰의 창간멤버로 2000년부터 편집장으로 출간을 책임지고 있다. 2008년부터 국군방송 및 국방일보 정기 출연 및 기고를 하고 있으며, <세계의 총기백과>, <밀리터리 실패열전> 등을 저작하고 <2차세계대전사>, <컴뱃 핸드건>, <전투외상 응급처치>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