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의 역사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Luftwaffe)’의 집중적인 런던 공습을 겪은 영국 정부는 2차 세계대전에 종지부를 찍은 핵 무기 확보에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영국이 단독으로 핵을 개발하기에는 미국과 같은 인적 자원이나 자원이 없었으므로 홀로 핵 개발을 추진하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영국은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에 동참하기로 하면서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 영국 총리와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1882~1945) 미 대통령은 1943년 8월 캐나다 퀘벡에서 ‘퀘벡 협정’을 체결하고 양국의 핵 개발 프로젝트를 하나로 합치게 되었다. 1945년이 되면서 미국과 영국의 과학자들은 핵무기 개발에 성공해 각각 히로시마(広島)와 나가사키(長崎)에 핵폭탄을 한 발씩 투하하여 전쟁을 조기 종결하는데 성공했지만, 영국 국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앨런 넌 메이(Alan Nunn May, 1911~2003) 박사를 시작으로 클라우스 푸크(Klaus Fuch, 1911~1988), 도널드 맥클린(Donald Maclean, 1913~1983) 박사 등이 소련 스파이로 밝혀지거나 소련에 핵 개발 정보를 제공한 것이 밝혀지면서 영국에 대한 미국의 신뢰는 금이 가게 되어 양국의 핵 공동 개발은 중단되고 말았다. 이에 영국은 1946년 7월부터 독자적인 핵 개발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고, 1946년 8월부로 아더 테더(Arthur Tedder, 1890~1967) 공군 참모총장(원수)이 핵무기 개발을 정부에 정식으로 요청함에 따라 영국만의 자체적인 핵 개발이 추진되었다. 영국은 5년여 만에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으며, 1952년 2월 17일에 첫 핵실험을 실시했다. 한편, 1950년대 초부터 미-소 경쟁 구도가 뚜렷해지기 시작하자 영국은 미국이 소련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유럽에서 철수하면서 핵우산을 거둬가는 상황을 우려하게 되었다. 영국 정부는 이에 대비하기 위해 핵무기의 조기 양산과 실전 배치에 박차를 가하여 본격적인 첫 영국의 핵무기인 블루 다뉴브(Blue Danube) 자유낙하식 핵폭탄을 1953년부터 실전 배치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핵무기의 실전 배치가 이루어지자 소련을 핵으로 견제하기 위한 투발체 연구에 들어갔으며, 원거리의 적을 위협 및 견제하기 위해서는 장거리 폭격기를 이용한 폭격이 가장 주효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영국 왕립공군(RAF: The Royal Air Force)은 2차 세계대전의 경험을 통해 호위 세력이 없는 폭격기는 적의 요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음을 알았으므로 폭격기 자체에 고급 레이더와 미사일 회피 능력을 갖추고, 제트 엔진을 장착하여 폭격기의 생존성을 높이는 것이 필수라고 판단하였다. 이에 왕립공군은 적의 요격 시도를 회피하기 위해 고고도에서 초음속 비행이 가능한 장거리 폭격기의 개발을 추진했으며, 요구도로 4,500kg 폭탄 한 발을 싣고 2,800km 떨어진 표적을 타격할 수 있는 중폭격기의 개발을 목표로 삼았다. 해당 폭격기의 순항 속도는 고도 11,000m~15,000m 사이에서 903km/h를 유지해야 하며, 최대 이륙 중량은 45,000kg를 넘지 않고, 재래식 폭탄도 9,100kg 가량 수납이 가능해야 했다. 요구도를 확정한 왕립공군이 입찰을 시작하자 총 6개 업체가 제안서를 제출했으며, 왕립공군은 이 중 아브로(Avro)사가 제출한 아브로 698 설계를 채택했다. 아브로 698은 아브로사의 수석 설계사인 스튜어트 데이비스(Stuart D. Davies, 1906~1995)와 기술국장 로이 채드윅(Roy Chadwick, 1893~1947)의 주도로 개발되었으며, 이들은 까다로운 왕립공군의 요구도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날개 면적이 넓은 삼각익을 채택하여 항속 거리를 늘리고, 연료 및 무장의 수납 공간을 늘리는 방법 외에는 해답이 없다고 판단했다. 통상적으로 삼각익 날개는 독일의 알렉산더 리피쉬(Alexander Lippisch, 1894~1976) 박사가 선구자로 알려져 있으나, 채드윅과 데이비스는 리피쉬 박사의 방식과는 다른 접근법으로 삼각익 설계에 도달했다. 하지만 1947년 8월, 채드윅이 아브로사의 튜더 2(Tudor 2) 시제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에 윌리엄 패런(William Farren) 박사가 그의 업무를 승계했으며, 일정이 소폭 밀리긴 했으나 1948년 1월에 두 대의 698기 시제기 개발 승인이 나오면서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됐다.

아브로는 설계가 대략적으로 확정되면서 698기의 개발을 추진하고자 했으나, 사실 아브로는 창업 이래 한 번도 삼각익 항공기를 개발해 본 적이 없었으므로 우선적으로 개념을 실증하기 위한 축소형 항공기인 아브로 707을 제작했다. 아브로 707은 수평 미익이 없는 삼각익 항공기로, 이는 향후 개발할 벌칸의 1/3 크기 축소 모델 항공기였다. 707 개념 실증기는 50º 정도 후퇴한 삼각익을 채택했으며, 수평 미익이나 카나드는 전혀 설치하지 않은 단순한 설계였다. 주익의 트레일링 에지(Trailing edge)에는 상승타와 에일러론(aileron)의 비행면을 모두 설치했으며, 주익 면의 위아래에는 수납 방식의 에어브레이크를 달았다. 707은 어디까지나 개념 실증을 위한 시험기에 불과했으므로 제작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글로스터 미티어(Gloster Meteor)의 캐노피를 비롯, 타 항공기의 부품을 다수 모아다 활용하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아브로는 최초 시제기를 한 대 더 만들어 고속 비행용 모델 710으로 명명하려 했으나 개발 간 시간 소요가 너무 클 것으로 예상되자 제작을 취소했으며, 대신 707 설계를 일부 변경해 고속 비행용으로 개조하면서 707A로 명명했다. 아브로는 롤랜드 포크(Roland “Roly” Falk, 1915~1985) 중령을 시험 비행 조종사로 지정하여 1950년 9월에 초도 비행을 성공시켰으며, 707A 형상은 이듬해인 1951년 7월에 비행에 성공했다.

아브로는 698 형상의 시제기인 VX770을 제작하면서 핵폭발 때 발생하는 열 방사선을 튕길 목적으로 유광 백색을 칠했으며, 판보로(Farnborough)에 설립된 왕립 항공연구소 내 풍동 시험장에서 VX770의 시험을 실시했다. VX770은 주 조종석에만 사출좌석을 설치하고, 롤스-로이스(Rolls-Royce) 사의 RA.3 에이본(Avon) 엔진을 4기 장착한 상태로 롤랜드 포크가 비행하여 1952년 8월 30일에 초도 비행에 성공했다. 이렇게 698기가 공식적으로 공개가 되면서 명칭을 어떻게 붙일 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업체 측은 자회사인 아브로 캐나다(Avro Canada)와의 관계를 과시할 목적으로 기체에 오타와(Ottawa: 캐나다 수도)라는 명칭을 붙이고자 했고,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면서 어벤저(Avenger), 아폴로(Apollo), 아세가이(Assegai), 알비온(Albion) 등의 명칭이 제안되었으나 모두 채택되지 않았다. 당시 영국 공군 참모본부는 V급(V-Class) 폭격기 개발 계획을 진행하면서 698 항공기 외에 비커스 발리언트(Vickers Valiant)와 핸들리-페이지 빅터(Handley-Page Victor) 개발도 함께 추진하고 있었는데, 공군 참모회의는 가급적 3개 기종의 머리글자를 “V”로 맞추고자 했고, 이에 따라 심사숙고 끝에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불과 파괴의 신인 ‘벌칸(Vulcan)’의 이름을 따오기로 결정했다. VX770기는 1953년 1월 주익에 연료탱크를 추가하고, 암스트롱-시들리(Armstrong-Siddley)사의 ASSa.6 사파이어(Sapphire) 엔진을 장착한 후 1953년 7월부터 다시 비행을 재개했다.

아브로는 이후 ‘벌칸’ 양산기 형상에 가까운 VX777을 1953년 9월부터 시험 비행에 투입하면서 9,750파운드 급 브리스톨 올림푸스(Bristol Olympus)사의 올림푸스 100 엔진을 장착했다. 또한 지금까지 시제기에는 조종간 대신 원형의 자동차 핸들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시험 비행 조종사로 활약한 포크 중령의 제안이 채택되면서 VX777에는 전투기와 같은 스틱형 조종간이 설치되었다. VX777은 1954년 7월에 착륙을 실시하던 중 일부 기체가 파손됐으나, 이때 기체 수리에 들어가면서 11,000파운드 급 올림푸스 101 엔진으로 주엔진을 교체했다. VX777기는 이후 1955년 10월부터 다시 비행을 재개했다.

아브로는 두 대의 시제기인 VX770과 VX777을 통해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양산기 제작에 들어갔으며, 이 단계에서 주익의 곡선에 살짝 굴곡을 주고, 주익 상부 면에 와류 발생기를 달았다. 첫 양산 형상인 벌칸 B.1의 초도기인 XA889번기는 1955년 2월에 개조하지 않은 주익을 장착하고 초도 비행을 소화했으며, 1955년 9월에는 포크 중령이 2번기인 XA890기를 몰고 판보로 에어쇼에 참가하여 배럴 롤(Barrel roll) 비행을 선보였다. 하지만 그가 이틀 간 배럴 롤을 실시하자 영국 왕립공군과 민간 항공국은 포크 중령을 소환했으며, 이후 에어쇼에서 이 “위험한” 기동을 실시하지 말 것을 명령했다.

벌칸이 본격적으로 양산에 들어가면서 올림푸스 101 엔진을 장착한 B.1 초도 물량 15대는 은색 도장을 한 상태로 1957년 7월 왕립공군에 인도되었으며, 제230 실전기 전환훈련부대(OCU: Operational Conversion Unit)에 배치되었다. 해당 기체는 1957년 7월에 12,000파운드 급 올림푸스 102 엔진으로 교체한 후 무광 백색으로 도색했으며, 엔진은 이후 올림푸스 104로 교체됐다. 파생형인 벌칸 B.2는 1956년 5월부터 개발에 들어갔으며, 공중급유 파이프가 추가되고 지형추적 레이더 등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또한 소련군의 방공망이 더욱더 밀집된 것으로 판단되자 전자 대응체계(ECM: Electronic Countermeasure)를 장착했고, 당시 영국이 본격적으로 개발한 공대지 핵미사일인 블루 스틸(Blue Steel) 미사일을 통합하기로 하면서 기동성은 다소 떨어지게 됐다. 첫 B.2 형상인 XH533기는 1958년 9월에 초도 비행을 실시했으며, 1959년 3월부터 실전부대에 전개가 시작됐다. 당초에는 B.1 형상도 모두 B.2 형상으로 업그레이드를 실시하기로 했었으나 이 계획은 비용 문제로 취소됐으며, 대신 B.1 기체에 대한 전반적인 기골 보강과 수명 연장이 별도로 실시됐다. B.2 일부 기체는 블루 스틸 미사일 개발이 취소되자 장거리 투발용 폭격기로 개조한 후 미국 더글러스(Douglas)사의 GAM-87 스카이볼트(Skybolt) ALBM(Air-launched Ballistic Missile)을 통합한 B.3 형상으로 업그레이드를 추진했다. 하지만 스카이볼트마저 1962년에 개발이 취소되자 B.3 개발도 함께 취소되고 말았다. 마지막 B.2 형상은 1965년에 인도되어 영국의 본격적인 공세용 핵 전력으로 소련의 핵을 견제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벌칸이 핵 전력으로 군림한 기간은 길지 않은데, 이는 벌칸의 완성 후 영국의 핵 전략에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벌칸 시리즈는 영국이 핵무장 원자력 잠수함을 도입함에 따라 운용 가치가 낮아져 단계적으로 퇴역하게 되었으며,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지지 않은 B.1A 형상이 먼저 1968년까지 모두 퇴역 절차를 밟았다. 수명 주기가 길게 남아있던 B.2 형상 9대는 해상레이더 정찰(MRR: Maritime Radar Reconnaissance) 임무기로 개조되었고, 6대는 공중 급유기로 개조되어 왕립공군에서 운용했으나 대부분의 기체는 1984년까지 퇴역 처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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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벌칸의 동체는 경합금으로 제작되었으며, 연료탱크는 총 14개로 나뉘어 설치되었다. 2개의 대형 탱크는 동체 중앙부에, 2개는 기수 쪽 랜딩기어 바로 뒤에 들어가 있으며, 5개의 탱크는 양쪽 날개 바깥쪽에는 각각 설치되었다. 기체가 연료를 소모하면서 발생하는 중심의 변화는 전자 타이머가 균형을 잰 후 탱크 간 연료를 이동시키는 방법으로 맞춘다. B.2 형상부터는 장거리 폭격을 위해 무장창에 폭탄 대신 증가 연료탱크 두 개를 대신 장착하는 것도 가능했다. 벌칸은 아직 레이더 회피나 스텔스 개념이 등장하기 전에 개발된 항공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독특하게 납작한 형상과 엔진 흡입구의 모양 덕에 RCS가 동체 크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낮게 잡혔다.

최초 벌칸은 공장에서 출고할 때 동체는 금속성 은색으로, 기수 쪽 레이돔의 절반은 검은색으로 도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벌칸 B.1 후기형은 무광 백색으로 도장했었는데, 이는 핵 투발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핵폭발 때 발생하는 열 방사능을 반사하기 위한 도색이었다. 1960년대 저고도 공격 개념이 도입되면서부터는 기체에 하늘빛 회색과 짙은 녹색 위장 무늬가 기체 상부에 칠해졌으며, 배면에는 여전히 흰색으로 도장한 조합이 등장했다. 1970년대에는 B.2 형상부터는 배면만 연한 회색을 칠했으며, 해상정찰용으로 개발한 B.2 MRR부터는 기수 부분을 검은색으로 도장하지 않았다.

벌칸의 항법 및 폭격체계(NBS: Navigation and Bombing System)는 H2S Mk.9 레이더와 항법 폭격 컴퓨터 Mk.1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밖에도 마르코니(Marconi)사의 무선 나침반(ADF), 지상기반 항법장비인 지(GEE) Mk.3, 그린 사틴(Green Satin) 도플러 레이더가 장착되어 지상 속도와 편각(偏角)을 측정했으며, 무전 및 레이더 고도계, 계기착륙 시스템 등도 탑재되어 있었다. 1964년부터는 B.1A 및 B.2 형상에 설치된 GEE가 상위의 항법장비인 전술항공항법체계(TACAN: Tactical Air Navigation System)로 교체되었고, 데카(Decca) 도플러 72식 레이더가 1969년부터 그린 사틴 도플러 레이더와 대체됐다. 후기에 개조된 해상용 항공기인 B.2 MRR 형상은 로란(LORAN) C로 항법장비를 교체해 장착했다. 최초 B.1A와 B.2 형상에 설치된 전자 대응체계(ECM)는 그린 팜(Green Palm) 음성 통신 재머와 블루 다이버(Blue Diver) 메트릭 재머(metric jammer), 레드 슈림프(Red Shrimp) S-밴드 재머, 블루 사가(Blue Saga) 수동 경고 수신기(PWR: Passive Warning Radar), 레드 스티어(Red Steer) 미익 경고 레이더, 채프(chaff: 쇳가루) 살포기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 장비를 모두 아우른 ECM은 기체 미익 쪽 테일 콘(tail cone)에 설치되어 있었으며, 이후 B.2 형상에는 레드 슈림프가 빠지고 대신 L-밴드 재머가 들어가고, ARI 18146 X-밴드 재머가 그린 팜 음성 통신 재머와 교체됐다. 또한 레드 스티어가 레드 스티어 Mk.2로 바뀌었으며, 적외선 미끼(전광탄) 살포기도 추가로 장착됐다. 벌칸에는 자체 방어용 무장이 없으므로 적의 요격 시도가 있을 경우 고고도 초음속 비행으로 추격을 떨쳐내도록 설계했으며, ECM을 이용하여 어느 정도 미사일 공격에 대응이 가능해졌으나 전반적으로 전투기나 요격기의 공격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벌칸의 조종석은 2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층에는 주조종사와 부조종사가, 1층에는 레이더항법사와 항법지정장교, 항공전자장교(AEO)석이 동체 후미 부분에 위치했다. 또한 레이더항법사 좌석 앞에는 혹시 모를 추가 탑승자를 위한 빈 좌석이 하나 있었고, B.2 형상부터는 항공전자장교석 앞에도 빈 좌석이 하나 추가되어 총 일곱 명이 필요에 따라 탑승할 수 있었다. 불가피하게 기체에서 사출해야 하는 경우에는 1, 2층 조종석이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각 층간 사출 절차가 달랐다. 2층에 위치한 조종사 두 명은 사출좌석을 쏴 올리는 방법으로 탈출이 가능했으나, 나머지 1층의 인원은 모두 기체 개폐문으로 가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는 방식으로 탈출했다. 벌칸 시제기에는 조종석에 조종용 핸들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양산기부터는 모두 전투기와 동일한 컨트롤 스틱(Control Stick)으로 대체되었으며, 모든 비행 면의 통제는 전기 유압식으로 이루어졌다. 초기형 벌칸에는 스미스(Smiths)사의 Mk.10 오토파일럿(Autopilot)이 설치되어 있으며, B.2 형상부터는 Mk.10A나 10B 오토파일럿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B.2 형상에는 또한 제네럴 다이내믹스사의 ARI 5959 지형추적 레이더(TFR: Terrain-following Radar)가 장착되어 있었다.

벌칸의 엔진은 브리스톨(Bristol) BE.10 올림푸스(Olympus) 엔진으로 알려진 롤스-로이스 올림푸스 엔진으로, 이중 스풀(spool) 방식의 축류(軸流) 터보제트(Turbo jet)이었다. 벌칸에는 날개 안에 묻힌 형태로 총 네 개의 엔진이 장착됐으며, 좌우 날개에 두 개씩 쌍을 이루어 동체 가깝게 설치되었다. 엔진의 공기 흡입구는 출력이 90% 정도 도달했을 때 독특한 울림 소리를 냈으며, 이는 에어쇼 등에서 관객석 가까이 비행을 하며 지나가면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시제기였던 VX770기는 엔진이 개발되기 전에 비행 준비가 되어 있었으므로 우선 롤스-로이스사의 6,500파운드 급 에이본(Avon) Ra.3 엔진을 장착했으며, 이는 다시 암스트롱-시들리 사의 7,500파운드 급 사파이어 ASSa.6 엔진으로 교체되었다. 시제기 2번기인 VX777은 10,000파운드 급 올림푸스 100 엔진이 장착됐으며, 시험 비행 간 올림푸스 엔진의 개발이 완료됨에 따라 11,000파운드 급 올림푸스 101 엔진이 설치되었고, 양산이 시작된 후 B.1 형상에도 101 엔진이 장착됐다. 이후 1957년경 업그레이드된 B.2형상은 12,000 파운드 급 올림푸스 102 엔진이 장착됐으며, 모든 102 엔진은 향후 업그레이드가 진행됨에 따라 13,000 파운드 급 104 엔진으로 교환됐다. 최종적으로 벌칸 시리즈에는 17,000파운드 급 올림푸스 201 엔진이나 20,000 파운드급 301 엔진이 장착되었으며, 이들 엔진은 향후 애프터버너(afterburner)까지 추가되면서 BAC(British Aircraft Co.)사의 TSR-2 초음속 폭격기에 설치될 예정이었으나 TSR-2 자체가 취소됨에 따라 설치는 무산됐다. 하지만 향후 올림푸스 엔진은 세계 최초의 초음속 민항기가 된 콩코드(Concorde) 여객기의 엔진이 된 올림푸스 302 터보제트 엔진의 바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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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 현황

아브로의 698 벌칸은 삼각익을 갖춘 제트추진 폭격기로, 최초의 양산 형상인 벌칸 B.1 XA897기는 1956년 9월 영국 왕립공군에 인도되었다. 왕립공군은 벌칸을 인수함과 동시에 전 세계 투어를 실시하면서 영연방의 군사력을 과시하고자 했으나 첫 투어의 끝은 좋지 못했다. 1956년 10월 1일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던 기체가 런던 히드로 국제공항에 착륙하던 중 악천후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벌칸은 B.1 형상 45대, B.2 형상 89대로 총 134대가 양산되었으며, 지상시험용으로 사용된 단 한 대만 비행하지 못했다. 벌칸은 1957년 5월에 본격적으로 실전 배치에 들어갔으며, 왕립공군 제83비행대대에 배치되면서 본격적인 핵 억지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벌칸은 101 폭격대대에도 배치되어 1957년 말까지 총 25대의 기체가 왕립공군에서 운용되었다.

벌칸은 영국 왕립공군의 주요 핵 전력인 ‘V-전력(V-Force)’ 삼총사 중 하나였으며, 냉전 시기 내내 영국의 주요 항공 핵 억지력의 중추를 이루었다. 벌칸은 주로 핵무기 투발을 위해 운용되었으나 항속 거리와 탑재 중량이 컸기 때문에 재래식 폭격 자산으로도 운용되었으며, 실제로 1982년 포클랜드(Falkland)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블랙 벅(Black Buck)” 작전에 투입되어 폭격기 용도로 포클랜드에 전개됐다. 당시 벌칸은 대서양 어센션(Ascension) 섬에서 이륙했으며, 중간에 공중급유를 받으면서 약 6,115km를 비행해 포클랜드 제도까지 도달했다. 이때 투입된 벌칸 한 대는 공중급유 중 급유 파이프가 부러지는 바람에 항속 거리가 모자라게 되자 미사일을 대서양에 방기한 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로 회항했다. 당시 어느 편도 들기 곤란했던 브라질은 해당 기체를 즉각 억류했으나 불과 9일 뒤 전쟁이 끝나자 기체를 영국에 반환했다.

벌칸은 영국 왕립공군이 1960년대~1970년대 사이에 저고도 폭격 전술을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총 9대가 해상 레이더-정찰작전용으로 개조되었으며, 해당 형상에는 B.2 MRR(Maritime Radar-Reconnaissance)이라는 제식 명칭이 부여되었다. 또한 1984년경 6대의 기체를 공중급유기로 개조하면서 K.2라는 제식 명칭으로 운용했으며, 왕립공군은 12시간이 넘는 초장거리 비행용으로 기체를 개조한 후 스카이볼트(Skybolt) 미사일을 통합하여 B.3로 명명하려 했으나 계획 자체가 중도에 백지화됐기 때문에 실제로 B.3 형상이 개발된 적은 없다. 벌칸은 현재 전량 퇴역하여 현역으로 운용 중인 기체가 없으나, 퇴역 기체 대부분은 런던의 왕립공군 박물관을 비롯해 영국 전역의 19개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벌칸 중 한 대 XH558기는 퇴역 후 여러 박물관과 사설 기업에 매각되다가 복권 자금 및 일반 공여금을 바탕으로 모금하여 2007년경에 600만 파운드로 복원되었고, 이후 전시 비행용으로 운용되면서 “스피릿 오브 그레이트브리튼(Spirit of Great Britain)”이라는 별칭이 붙었으나 2015년 5월 비행을 끝으로 퇴역했다. 현재 해당 기체는 XL426 및 XM655기와 함께 비행이 가능한 상태로 보관되고 있다.

벌칸이 퇴역하게 된 이유는 영국의 핵 저지 능력에 대한 기조 변화와 관계가 깊다. 영국은 냉전 때에는 지대지, 공대지, 잠대지 자산을 모두 운용하면서 3대 핵 억지력을 행사했으나, 1960년대부터 영국 왕립해군이 핵무기를 탑재한 폴라리스(Polaris) 원자력 잠수함을 운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무리하게 적 방공망을 돌파하여 핵을 투하하는 공대지 투하 방식은 불필요하게 되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폴라리스의 실전 배치가 이루어지면서 영국 국방부는 블루 스틸 핵미사일을 운용 목록에서 제외했고, 이에 따라 벌칸은 오직 WE.177B 전술핵무기만 운용하게 되었으나 평시 15분 출격 대기 임무가 해제되면서 임무 범위가 크게 축소되었다. 영국은 냉전이 종식되어 감에 따라 영국은 키프러스에 전개 중이던 두 개의 벌칸 비행대대를 철수시켰으며, 벌칸의 전략핵 폭격기 임무는 1998년까지 유지되다가 유사한 임무를 부여받고 있던 블랙번(Blackburn) 뷰케니어(Buccaneer), 세페카 재규어(SEPECAT Jaguar), 파나비아 토네이도(Panavia Tornado)와 함께 모두 해제되었다. 벌칸이 퇴역한 후 벌칸의 장거리 폭격 임무는 다목적 전폭기의 성격을 띤 토네이도가 인수했다.

아브로는 벌칸의 해외 수출을 몇 차례 타진했으나 수출이 성사된 적은 없다. 계약에 가장 근접했던 국가는 호주와 아르헨티나였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잉글리시 일렉트릭(English Electric)사의 캔버라(Canberra) 대체용으로 도입을 고려했으며, TSR-2, 제네럴 다이내믹스(General Dynamics)의 F-111C, 노스 아메리칸(North American)의 A-5 비질란테(Vigilante)와 벌칸이 경쟁했으나 결국 오스트레일리아 군은 F-111C을 선택했다. 아르헨티나는 포클랜드 전쟁 전인 1981년 영국 정부에 벌칸 도입을 타진해왔고, 영국 정부는 고민 끝에 벌칸 한 대에 대해서만 판매를 허가했으나 다량의 기체 판매는 불허했다. 이는 이미 영국 정부가 포클랜드 분쟁 가능성을 예측했기 때문에 아르헨티나 공군이 포클랜드 폭격용으로 벌칸을 사용할 것을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아르헨티나는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은 1982년 초에 포클랜드 침공을 단행했으며, 영국은 포클랜드 전쟁 개전과 동시에 모든 군수 물자의 수출을 잠정적으로 중단했으므로 사실상 이 시점에서 벌칸의 수출 시도는 중단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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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형

벌칸 B.1: 초도 양산 형상. 첫 양산기 몇 대는 직선형 리딩에지(leading edge)가 설치되었었으나, 이후 기체부터는 구부러진 2단식 날개가 적용됐다. 초기 기체는 은색으로 도장이 됐다가 이후 무광 백색으로 도색됐다. 기체 상당수가 1959년~1963년 사이에 B.1A 스탠더드로 개조되었으며, 개조되지 않은 230번 기체는 1966년에 퇴역했다. B.1 형상의 마지막 비행은 1979년 3월에 실시됐다.

벌칸 B.1A: B.1 형상에 전자전 대응체계(ECM: Electronic Countermeasures)가 설치된 형상이며, 더 커진 테일 콘(Tail Cone)이 적용됐다. B.2 형상과 달리 B.1A 형상에는 저고도 비행을 위해 광범위한 주익 강화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1966년~1967년 사이에 전량 퇴역했다.

벌칸 B.2: B.1 형상을 개량한 기체로, B.1보다 더 커지고 얇아진 주익(2C 단계 주익)이 적용되었고, 엔진도 17,000파운드 급 올림푸스 201~202 엔진이 설치되었거나 20,000파운드 급 올림푸스 301 엔진이 설치됐다. 외부 공중 전력장치(AAPP: Auxilary Airborne Power Plant)와 RAT(Ram Air Turbine)이 설치되어 전자계통의 출력이 커졌으며, 1960년대에 B.1A 지형추적 레이더(TFR)과 유사한 ECM이 대부분 형상 레이돔에 설치됐다. 1970년대에는 신형 레이더 경고 수신장치(RWR: Radar Warning Receiver)가 미익에 추가 장착되었다.

벌칸 B.2 해상 레이더 정찰기(MRR): B.2 9대를 해상 레이더 정찰(Maritime Radar Reconnaissance)형으로 개조한 형상. 해상정찰용 레이더를 장착하면서 지형추적레이더(TFR)가 제거됐다. 이 중 5대는 다시 개조되어 공기 견본적출용 항공기가 되었다. 기체 하부에 독특한 유광 회색 도장을 한 것이 특징이다.

벌칸 K.2: B.2 형상 6대를 공대공 공중급유용으로 개조한 기체. 마크 17 호스 드럼 장치(HDU)가 동체 후방 테일 콘에 설치됐다. 마찬가지로 지형추적레이더가 제거됐으며, 무장창 세 개에 급유 탱크 세 개가 설치됐다. 벌칸 형상 중 유일하게 위급 상황에서 연료탱크를 분리시켜버릴 수 있다.

벌칸 B.3: 스카이볼트(Skybolt) 공중발사식 탄도미사일(ALBM)을 최대 6발까지 장착할 수 있도록 한 장거리 비행 미사일 투발용 형상 제안. 설계 상 최대 12시간까지 비행이 가능했으나, 실제로 제작되지는 않았다.

벌칸 XH558 “스피릿 오브 그레이트브리튼(Sprit of Great Britain)”: 최초 1960년대에 벌칸 B.2 형상으로 개발되었다가 1973년 MRR 형상으로 개조되었고, 1982년에는 공중급유기로 다시 개조되어 운용하다가 1984년에 퇴역했던 기체. 퇴역 후 1992년까지 왕립공군 전시비행용 기체로 운용되다가 C 월튼(Walton)사에 매각되어 박물관 전시용으로 쓰였으며, 1999년에 국민 모금운동과 복권 자금 등이 투입되어 2007년 10월 18일에 다시 비행을 재개하게 됐다. 해당 기체에는 “스피릿 오브 그레이트브리튼”이라는 별명이 붙어 2008년까지 전시비행용 항공기로 운용되면서 각종 에어쇼에서 비행을 선보였다. 2015년 5월 15일 자로 최종 퇴역했으며, 현재는 택싱(taxing) 정도만 가능한 상태로 유지되면서 XL426, XM655기와 함께 보관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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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원 – 벌칸 B.1 기준

- 종류: 전략폭격기
- 제조사: 아브로(Avro) / 호커-시들리(Hawker-Siddley) 
- 승무원: 5명 (조종사, 부조종사, AEO, 항법 레이더 장교, 항법 지정 장교)
- 전장: 29.59m
- 전고: 8m
- 날개 길이: 30.3m
- 날개 면적: 330.2㎡
- 자체 중량: 37,144kg (승무원 포함)
- 최대 이륙 중량: 77,111kg
- 추진체계: 11,000파운드 급 브리스톨 올림푸스(Bristol Olympus) 101/102/104 터보제트 엔진 x 4
- 최고 속도: 마하 0.96
- 순항 속도: 마하 0.86 (고도 14,000m)
- 항속 거리: 4,171m
- 실용 상승 한도: 17,000m
- 추력 대비 중량: 0.31
- 무장: 
ㄴ 454kg 재래식 폭탄 x 21
ㄴ OR.1001 블루 다뉴브(Blue Danube) 중력 투하 핵폭탄 
ㄴ 400kt 급 바이올렛 클럽(Violet Club) 중력 투하 핵폭탄
ㄴ Mark.5 중력 투하 핵폭탄 (프로젝트 E)
ㄴ 400kt 급 옐로 선(Yellow Sun) Mk.1 중력 투하 핵폭탄
ㄴ 1.1Mt 급 옐로 선 Mk.2 중력 투하 열핵폭탄
ㄴ 레드 비어드(Red Beard) 중력 투하 핵폭탄
ㄴ WE.177B 낙하산 지연식 중력 투하 핵폭탄
- 최대 연료량: 9,280 갤런
- 대당 가격: 75만 파운드(약 95만 8,700달러, 1956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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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