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6.12 08:41

글자크기

[무기백과]

T-34 전차의 개발사

동구권 전차의 역사를 개막하다

0 0
탄생지인 우크라이나 하르키우(하르코프)에 전시 중인 T-34-85. 전차 역사의 걸작이다. <출처: (cc) Ferran Cornellà at Wikimedia.org >


동구권 전차의 역사를 개막한 T-34 전차<출처:유용원의 군사세계>

개발의 역사

전차 역사의 태동기

전차는 1916년 솜전투 당시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후 제1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많은 활약을 펼쳤으나 어떤 구조가 전투를 벌이는데 적합한지, 또한 어떤 식으로 싸워야 효과적인지 밝혀진 것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래서 군부 내에서 전선 돌파의 주역은 여전히 기병이 담당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전차가 앞으로 상당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는 것은 이미 시대의 흐름이었다.

제정 러시아가 1914년부터 1915년사이 개발했던 차르 전차 <출처: Public Domain>
제1차 대전에서는 가능성만 보였기에 전차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전쟁이 끝난 후부터 시작되었다. 어떤 형태가 가장 효과적인 것인지조차 몰라 초소형의 탱케트(Tankette), 속도를 중시한 쾌속전차, 화력을 극대화한 다포탑전차처럼 다양한 모습의 전차들이 선보였다. 그래서 제1차 대전 종전 후부터 제2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약 20년간의 전간기(戰間期)는 전차 역사의 진정한 태동기라고 할 수 있다.
전간기에 개발된 소련의 다포탑 중전차인 T-35 <출처: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혁명의 혼란기를 수습한 후 중공업 분야의 육성에 성공한 소련도 전차에 관심이 많았다. 국토가 거대한 데다 공산주의 확산과 지난 전쟁에서 상실한 옛 제정러시아의 영토를 되찾기 위해 적극적인 군비 증강에 나서면서 전차를 눈여겨보았던 것이다. 지난 전쟁에서 굴욕을 겪은 이유 중 하나가 여타 열강에 비해 무기의 질이 심각하게 떨어졌기 때문이라 생각해서 좋은 무기를 개발하고 도입하는데 열성적이었다.
1939년 할힌골전투 당시의 BT 전차. 수적으로 제2차 대전 발발 당시 소련의 최대 전차 보유국이었다. <출처: Public Domain>

크리스티 현가장치(Christie Suspension)처럼 자력 개발이 어려우면 기술 도입도 마다하지 않았다. 또한 나중에 견원지간이 되지만 베르사유조약으로 무기 개발과 도입에 제약을 받던 독일과 비밀 조약을 맺어 승전국의 감시를 피해 소련 내지에서 합동으로 전차를 연구하기도 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개발과 배치에 나서면서 어느덧 제2차 대전 발발 직전에 이르러 소련은 수적으로 세계 최대의 전차 보유국이 되었다.

실전을 바탕으로 개발이 시작되다

1936년 스페인내전이 벌어지자 소련은 공산주의 확산의 호기라고 판단해 인민전선에 대규모 원조를 실시했다. 이때 성능을 테스트해 볼 겸 해서 이제 막 배치가 시작된 T-26 경전차 281대와 BT-5 고속전차 50대를 지원했다. 소련에서 개발한 전차로는 최초의 실전 투입이어서 당연히 기대가 컸다. 그런데 당시 반군을 지원한 나라가 1935년 베르사유조약을 파기하고 재군비에 나선 독일이었다.

1937년 스페인내전 당시 공화국군이 사용 중인 T-26 전차. 소련은 이때의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전차 개발에 착수했다. <출처: Public Domain>
독일도 이제 막 국산 전차의 개발을 완료하고 배치하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1936년 10월 최초 41대를 시작으로 내전이 끝날 때까지 총 132대의 1호 전차가 공급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대리전에서 화력에서 앞선 소련의 전차들이 우위를 보였다. 사실 그동안 전차 개발에 제한을 받았던 독일이 기술 습득을 위한 목적으로 개발한 1호 전차는 기관총 2정만 탑재해서 전차라고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BT-5는 속도를 위해 방어력을 포기했다가 실전에서 곤욕을 치렀다.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소련제 전차, 특히 BT-5는 기관총에도 뚫릴 만큼 장갑이 빈약해서 곤욕을 치렀다. 속도가 빠르다고 나쁠 것은 없지만 BT-5처럼 단지 속도를 위해 방어력을 포기하다시피 한 전차는 실전에서 그다지 효과가 없음이 밝혀진 것이다. 이처럼 실전을 통해 교훈을 얻은 소련은 방어력이 강화된 새로운 전차의 개발에 착수했다. 이처럼 스페인내전은 이후 소련 전차 개발사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좌에서 우로) BT-7, A-20, T-34 1940식, T-34 1941식 <출처: Public Domain>

1937년 ‘하르코프 코민테른 열차공작창(KhPZ)’ 소속의 엔지니어 코쉬킨(Mikhail Koshkin)은 A-20로 명명된 프로토타입 전차를 선보였다. 장갑이 기존 전차의 2배였고 그동안 전면에나 적용했던 경사장갑을 측면에도 확대해 방어력을 늘렸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중량이 늘어났지만 때마침 개발된 강력한 500마력 V-2 디젤 엔진 덕분에 야지에서 훌륭한 기동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1939년 연이어 발발한 할힌골 전투, 폴란드 침공전, 겨울전쟁의 경험은 신형 전차 개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방어력의 중요성이 다시 한 번 부각되었고 거기에 더해 스페인 내전에서는 충분하다고 판단했던 45mm 포가 화력이 부족하다고 판명된 것이었다. 특히 자신만만하게 참전했다가 치욕을 겪은 겨울전쟁의 결과는 소련군에게 충격이었다. 결국 같은 주포를 탑재하기로 예정된 A-20의 화력을 강화할 필요성이 증대되었다.

소련군은 A-20 전차의 주포를 강화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출처: Public Domain>
이에 따라 76.2mm 포를 탑재하기 위해 포탑이 전면전으로 재설계되었다. 또한 설상, 진흙 지대 등에서 원활히 기동할 수 있도록 광폭의 캐터필러를 장착해 주행력도 개선했다. 이렇게 탄생한 개량형이 A-32 프로토타입 전차다. 각종 시험 결과 소련군은 이를 T-34로 명명하고 제식화하기로 결정했다. T-34는 독소전쟁 초기에 독일군이 감탄했을 만큼 해당 분야 전문가라면 한눈에 뛰어난 성능을 알 수 있었을 정도였다.
T-34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A-32 프로토타입 전차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정작 소련 군부의 권력 다툼 때문에 양산에 이르기까지 온갖 어려움을 겪었다. 1937년 불어닥친 대숙청으로 말미암아 소련 사회는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남을 모함하는 풍조가 만연했다. 5명의 원수 중 3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군부는 더욱 심했다. 특히 그동안 기동전을 주창하던 투하체프스키(Mikhail Tukhachevsky)의 숙청은 이제 막 꽃을 피우려던 소련군 기갑부대의 싹을 꺾어버렸다.
1998년에 있었던 T-34 개발자 미하일 코쉬킨의 동상 제막식 <출처: (cc) Фотокорреспондент Ю. Н. Частов at Wikimedia.org >

이런 혼란기에 최고군사위원이던 쿨리크(Grigorii Kulik)처럼 남의 업적을 최대한 깎아내기 위해 T-34의 채택을 고의로 방해하는 세력까지도 있었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와 과로 때문에 코쉬킨이 요절하는 우여곡절을 겪고 모로조프(Alexander Morozov)가 개발을 이어받아 1940년부터 생산이 시작되었고 이듬해 독소전쟁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약 1,000여 대 정도가 일선에 배치될 수 있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차

독일의 침공 당시에 소련군은 대숙청의 여파로 지휘 체계가 무너진 상태였던 데다 훈련이 부족했고 보급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때문에 효과적으로 운용되지 못했지만 T-34는 일방적으로 이기던 독일군을 놀라게 할 만큼 뛰어난 성능을 발휘했다. 독일군은 제2차 대전 발발 후 연전연승한 경험 덕분에 쉽게 소련군을 밀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이처럼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곤욕을 치렀다.

T-34 전차 1940년 생산형 <출처: Public Domain>
일선에서 T-34의 선전에 대한 보고가 이어지자 소련군은 쓸모없는 여타 전차의 생산을 중단하고 T-34 제작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에 따라 최초 하르코프에 위치한 제183 기관차공장(KhPZ)에서만 생산되다 우랄마쉬(UZTM), 스탈린그라드 트랙터(STZ), 첼랴빈스크 트랙터(ChTZ) 같은 여러 제작소에서 생산이 이루어졌다. 하르코프가 점령되려 하자 공장을 통째로 뜯어 우랄산맥 동쪽으로 이전해 생산을 계속했을 정도였다.
독소전쟁 초기에 격파된 T-34를 살피는 독일 병사. 소련군 내부의 문제로 제대로 운용되지 못했으나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출처: (cc) German Federal Archive >
덕분에 T-34는 제2차 대전 중 가장 많이 만들어진 전차가 되었고 당연히 소련군이 있는 곳이면 항상 함께하면서 결국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소련은 전쟁 초기의 KV 시리즈나 후기의 IS 시리즈처럼 화력 등에서 더 강한 전차를 보유했지만 중형(中型)전차임에도 독일의 중(重)전차인 티거 등과 맞서 싸울 수 있었기에 T-34를 주력으로 사용했다. 그래서 소련(러시아)에서는 조국을 구한 전차로도 불린다.
T-34는 제2차 대전 당시 가장 많이 생산된 전차다. 당연히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 <출처: (c) RIA Novosti archive >

개발 당시에도 그랬지만 많이 만들어지고 실전 결과를 피드백 받아 곧바로 개량이 이루어져서 제작처별로, 시기별로 다양한 변형, 파생형이 존재한다. 그중 1943년부터 양산된 85mm 주포 탑재형인 T-34-85는 좋은 전차가 갖춰야 할 조건을 모두 충족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종전 이후 등장하는 소련 전차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면서 동구권 MBT(주력전차)의 개척자로 취급받기도 한다.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