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사

마우저 C96은 거의 등장 초기부터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기관단총(SMG)이나 PDW에 가까운 역할로 자주 사용되었다. 당시로서는 대용량인 10연발 탄창과 반자동의 연사성, 필요하면 개머리판을 장착해 견착 사격이 가능한 점과 콤팩트함 등은 윈스턴 처칠이나 T. E. 로렌스(“아라비아의 로렌스”)같은 사람들의 손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다. 두 사람 모두 다수의 적에게 둘러싸인 상황, 혹은 일반 권총으로는 닿지 않는 거리의 적을 상대로 C96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모면했다.

1차 세계대전에서도 C96 계열 총기들은 바로 SMG적인 역할에 사용될 때가 많았다. 참호전에서 독일군과 오스트리아군은 C96 계열 권총들의 연사성과 콤팩트함을 요긴하게 잘 사용했고, 1차 세계대전 마지막 해의 독일군 춘계 대공세(일명 루덴도르프대공세)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이처럼 C96이 권총을 뛰어넘는 역할을 자주 맡게 되자 업체인 마우저 자신도 아예 이 총을 기관단총처럼 개조하는 게 어떻겠냐고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1920년대에는 C96을 자동-반자동 사격이 되도록 개조한 시제품이 마우저 사내에서 제작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제품은 결국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한 마우저에 의해 상품화는 이뤄지지 못했다.

막상 C96의 ‘자동화’에 불을 댕긴 것은 독일이 아니라 스페인이었다. 스페인은 마우저 C96의 클론을 여러 종류 만들어 중국 시장에 팔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완전자동 사격이 가능한 버전들도 몇 있었다. 이 완전자동 버전들은 중국 시장에서 서서히 인기를 얻기 시작했는데, 중국 시장을 자신들의 ‘안마당’이라고 생각하던 마우저로서는 이들 스페인제 클론의 존재가 충분히 위협으로 느껴질만 했지만 적어도 반자동만 사격되는 기본형 기준으로는 ‘브랜드 가치’가 위협을 충분히 상쇄할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리지널에 없는 자동 사격이 추가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마우저 측이 얼마나 위협을 느꼈는지는 이들의 대응 타이밍이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히 빨랐다는 것으로 잘 알 수 있다. 스페인의 ‘기관권총형 C96 클론’이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 1927년인데, 독일의 마우저는 1931년에 최초의 제품형 기관권총 버전인 M1931을 완성했고, 또 말 그대로 1931년에 완성하자마자 허겁지겁 1,000정을 중국에 실어 보냈다. 사실 이 총은 설계가 완전히 검증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다급하게 출고된 것인데, 그만큼 마우저가 시장에서 스페인제 클론을 견제하는데 서둘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처럼 정보의 전달이 빠르지 않은 데다 지금보다 해외로의 상품 배송이 오래 걸리는 등 뭐든 지금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던 그 시대로서는 제법 빠른 타이밍이었다.

숫자를 보면 마우저가 서두른 이유를 더 잘 알 수 있다. 스페인제 마우저 클론인 "로열"의 기관권총 버전(마우저 계열로는 최초로 상용화된 기관권총)은 1927년에 출시된 이래 불과 2년 만에 2만 정이 넘게 중국에 수출되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 물량이면 ‘본점’인 마우저도 위협을 느끼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정도였다.

물론 서두른 만큼 M1931에는 결함이 없지 않았다. 급하게 설계하다 보니 스페인제 클론들의 구조를 일부 따라하는 부분마저 있을 정도였다. 가장 큰 결함은 왼쪽에 설치된 조정간이 비교적 쉽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자동사격의 위험이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래 M1931을 설계했던 요셉 니켈(Josef Nickel)의 뒤를 이어 칼 베스팅어(Karl Westinger)가 개량에 나섰다. 이것 역시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었는데, 불과 1년 뒤인 1932년에 개량형인 M1932가 완성되어 출고되었다. M1931은 M1932의 등장으로 5,000정만 생산된 뒤 단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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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M1932는 M712라고도 불린다. 사실 이것은 이 총을 수입하던 미국 대리점인 스토거(Stoeger) 사가 원인이다. 원래 M1931은 마우저에서 R713이라는 상표명으로 출고했다(R는 Reihenfeuerpistole, 즉 ‘연사 권총’의 머리글자). 그런데 어째서인지 스토거는 이것을 M712라는 이름으로 미국에 수입했고, 그 후속작인 M1932도 그냥 M712라고 불러버렸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M712라는 족보 없는(?) 이름이 마치 정식 명칭인 것처럼 굳어졌는데, 이제는 물론 연구자들이나 컬렉터들도 다 알지만 알고도 M712라고 부른다. 따라서 여기서는 편의상 M1932를 M712로 부르기로 한다.

M712는 1930년형 마우저 C96(M1930)을 베이스로 완전자동/반자동 선택 기능을 추가한 기관권총이다. 이 사실 자체는 M1931(R713)과 같지만, M1931에서 제기됐던 몇 가지 문제점들을 개량했다. 일단 내부적으로도 다소 복잡하고 제조가 번거롭던 완전자동 사격 관련 부품 일부가 더 단순한 형태로 개량되었다. 그리고 외부적으로도 변화가 있다. 원래 M1931의 조정간은 총 왼쪽에 부착된 단순한 레버 형태였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사격 시의 진동, 혹은 꺼낼 때 옷에 걸린다든가 하는 등의 이유로 이것이 사용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움직여 원하지 않는 사격 모드 -특히 완전자동- 로 옮겨져 버릴 가능성도 꽤 높았다. 이 때문에 M1932(M712)부터는 조정간에 고정 버튼이 달려있는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돌릴 때 이걸 누르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데, 덕분에 조작은 다소 번거로워졌지만 사고 가능성은 크게 줄어들었다.

M1931과 1932 모두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특징은 바로 탄창이다. C96은 클립 장전식의 고정식 탄창을 사용했으나 10연발이라는 장탄수의 제약이 문제다. 이 때문에 20연발 대용량 탄창도 만들어지기는 했으나 용량이 늘어날수록 클립 장전 방식은 번거로워진다. 10연발 클립을 사용하면 탄창을 채우는데 두 번 손이 가야 하기 때문이다. 또 아무리 클립 장전 방식이 빨라도 탄창 자체를 바꾸는 것보다는 느리고 번거롭다. 또 다른 문제는 고정식 탄창은 장탄수가 늘어나 탄창이 길어지면 그걸 수납할 권총집 겸용 개머리판을 만들기도 불편해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마우저도 새로운 기관권총에 탈착식 상자형 탄창을 사용했다. 10연발과 20연발의 두 종류가 있는데, 10연발 버전은 권총집(겸 개머리판)에 수납한 상태로 보관할 때 요긴하다. 즉 일단 꺼내서 10연발 탄창으로 초기 대응을 한 다음 그것을 20연발 탄창으로 바꿔 계속 싸운다는 것이다. 좀 이상해 보이는 방법이지만, 이처럼 휴대 시와 꺼낸 이후의 교전 시에 다른 탄창을 사용하는 것은 휴대성이 중요시되는 기관권총류에서는 의외로 드물지 않은 경우다. 탄창 교환은 위치 상 권총보다는 소총(특히 AR)류가 어느 정도 연상되는 느낌이다. 이 탈착식 탄창의 도입은 원래 고정식 탄창을 쓰던 스페인제 클론들에도 상당한 영향을 줬고, 실제로 그 이후에 등장한 스페인제 클론인 아스트라 M903등은 마우저와 매우 유사한(심지어 호환성까지 있다!) 탈착식 탄창을 채택했다.

다른 C96 총기들과 마찬가지로 이 총도 권총집을 겸하는 방식의 개머리판과 함께 사용할 수 있다. 표준형 마우저 C96용 개머리판들 중 안전장치 형태가 같은 후기형 개머리판이라면 그대로 호환된다. 사실 이 개머리판이야말로 C96 계열이 기관권총으로서 초기부터 가치가 주목받은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개머리판을 장착하고 견착해야 그나마 ‘컨트롤’이라는 게 어느 정도는 가능했기 때문이다. 개머리판이 없는 상태라면 1분에 거의 1,009~1,100발 꼴에 달하는 높은 발사 속도를 1.2kg 정도의 권총에서 제어한다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물론 개머리판이 달린 권총은 그 시대에 마우저 말고도 많지만, C96 계열에는 그 외에도 기관권총화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특징들이 더 있다. 일단 총구가 손에서 꽤 멀리 떨어진 편이고, 또 다른 권총들에 비하면 조정간을 설치할 자리도 좀 넉넉하다. 게다가 20연발 탄창을 장착하면 이 부분을 다른 손으로 잡고 쏘는 것도 가능하다. 총구가 멀리 있는 편이라 이처럼 두 손으로 잡고 쏠 때 총구 앞으로 손이 뜻하지 않게 가 버리는 사태도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낮다. 권총으로서는 좀 과하게 큰 거 아닌가 싶은 디자인이 기관권총으로서, 보다 정확하게는 일종의 ‘미니 기관단총’처럼 사용해야 할 때 나름 도움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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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의 역사

M712(M1932)는 등장과 함께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여담이지만, M712는 상품명도 M1931과 달리 Schnellfeuerpistole, 즉 ‘속사 권총’이 된다. 속사나 연사나 뜻은 같지만 어떻게든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애를 쓴 듯). 가장 큰 시장인 중국에서의 반응이 역시 가장 좋았다. 1932년부터 1938년 사이에 약 10만 정이 제조되었고, 그 대부분은 중국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이 총의 등장은 스페인 총기 업계에는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아스트라같은 업체는 거의 전적으로 중국 시장에서 "로열"이 거둔 성공만 보고 기관권총 버전의 생산과 판매에 나섰고, 그 와중에 독일 ‘원조’가 기관권총을 내놓자 생산량이 1만 3천정 정도라는 꽤 제한적인 성공밖에 거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M712는 정말 요긴한 무기가 된다. 사실 전면전 상황에서 이런 총이 활약할 일은 별로 없다. 하지만 게릴라전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지는데, 중일전쟁과 국공내전 등으로 게릴라전을 해야 할 일이 한없이 많아진 것이다. 특히 M712가 활약한 것이 사복을 입고 일본군이 점령한 곳 후방에서 게릴라전을 펼친 “편의대”에서의 사용이었다. 이들이 후방에서 일본군을 기습할 때 M712는 최고의 무기였다. 특히 정규전에서라면 단점이 될 빠른 발사 속도는 이들이 쓰기에는 오히려 중요한 장점이었다. 단시간에 화력을 퍼붓고 도망가기에 안성맞춤이었으니 말이다. 마우저 사가 이 총의 생산을 중단한 것도 중국에서의 수요가 떨어져서가 아니라 독일 자체의 재무장으로 공장에 여유가 없어진 데다 독일이 일본과 동맹을 맺으면서 더 이상 중국에 무기를 수출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런 M712의 진가를 잘 기록한 사건은 중국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벌어졌다. 1934년에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알렉산더 1세 국왕이 마르세유에서 암살당할 때 이 총이 사용된 것이다. 범인은 한 자루의 M712를 꽃다발 속에 감추고 접근한 뒤 지근거리에서 난사했고, 순식간에 국왕과 프랑스 외무부 장관, 그리고 그들이 탄 차량의 운전수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그가  독일에서의 수입이 끊어지고 스페인도 내전으로 클론 수출이 어려워졌지만, 중국인들은 중국답게 곧 ‘짝퉁’을 만들게 된다. 물론 혼란기의 중국답게 그 종류도 많고 충분히 정리하기도 어렵다. 독일제 오리지널을 카피한 것도 있는가 하면 스페인제를 카피한 것도 있다. 또 사용 탄이. 45ACP나 9mm인 것도 있다. 그리고 이런 노하우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면서 1980년에는 M712를 베이스로 개발된 기관권총인 80식이 중국에서 등장하기도 했다.

독일 본국에서도 이 총이 군용으로 활용된 바 있다. 중국 수출이 중단되면서 마우저 사에 남아있던 재고 중 약 8천 정이 독일 공군과 무장친위대를 중심으로 납품된 것이다. 수량을 보시면 알 수 있듯 이 총이 제대로 된 기관단총으로 쓰이기는 너무 적었고, 대부분은 모터사이클 운전병들의 호신용 화기로 사용되었다. 제대로 된 기관단총의 생산이 수요를 못 따라가자 이를 보충하기 위해 M712를 임시방편으로 ‘업어 온’ 것이다. 그는 불과 몇 분 사이에 이 세 명 외에도 무려 14명에게 더 부상을 입혔다.

중국에 비하면 적지만 그래도 중남미 등의 국가에서도 M712의 수요는 있었다. 그중 유명한 곳이 브라질이다. 브라질이 수입한 M712의 수량은 500정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이 총을 50년 이상 뒤인 1980년대까지 경찰용으로 운용하는 ‘장수만세’를 기록했다. 그냥 오래 썼을 뿐 아니라, 이들은 이 총들에 개머리판이나 손잡이 등을 추가하는 개조를 거쳐 사용했다. 하지만 개조가 모든 총들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무려 295정이 개조되지 않은 상태로 계속 보관되었다고 전해진다. 브라질은 2000년대까지도 마드센 경기관총을 사용하는 등, 총기가 한번 들어가면 정말 오랫동안 사용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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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에이션

M1931(R713): 1931년에 처음 나온 버전. 마우저 정품으로는 최초의 기관권총 버전이다. 5,000정만 만들어지고 생산 중단.

M1932(M712): 1932년에 등장한 본격적인 기관권총 버전. 10만 정이 조금 안되는 숫자가 만들어진 성공작이다.

아스트라 M903/모델 F: 스페인 아스트라 사에서 M712를 의식해 개발한 기관권총. 사실 C96 베이스의 기관권총 모델 자체는 아스트라가 먼저 만든(M901/M902) 것이지만, M712의 성공에 자극받아 마우저용 탈착식 탄창을 그대로 쓸 수 있게 만든 것이 M903이다. 모델 F는 여기에 발사 속도 조절 기구를 장착, 최저 350발/분 정도까지 발사 속도를 늦춰 컨트롤이 훨씬 용이하게 했다. M903은 생산량이 대략 3,400정인데 그중 2,000정이 독일군에 1940~43년 사이에 납품되었다. 모델 F는 스페인의 국가경찰(Guardia Civil)의 주문으로 약 1,000정 제작.

로열 MM31/34: 스페인의 베스티귀 헤르마노스 사(社)에서 만든 C96 베이스의 기관권총. 사실 로열이 가장 먼저 개발된 C96 베이스의 기관권총이다. 이 총도 M712의 등장에 자극받아 탈착식 탄창을 장착한 버전이 나오기도 했고 MM34에는 발사 속도 감속 장치도 추가되었다. 상표명은 로열이라고 불릴 때도 있지만 ‘아줄(Azul)’로 불리기도 하는 등 일관성이 없다.

PASAM Mod-1, Mod-2: PASAM은 브라질 경찰이 M712에 붙인 제식명으로, “마우저 자동권총”의 포르투갈어 약자이다. Mod-1은 앞에 손잡이를 추가한 개조형이고, Mod-2는 손잡이에 파지가 더 좋은 목재 패널이 추가되고 고정식 개머리판도 추가 장착되었다.

80식 기관권총: M712를 베이스로 중국에서 개발한 기관권총. 클론이라기보다는 구조를 응용한 다른 총이다. 하지만 작동 방식은 기본적으로 같고 디자인 레이아웃도 강한 영향을 받았다. 개머리판은 권총집을 겸하지 않는 탈착식과 권총집을 겸하는 탈착식의 두 가지가 있다. 탄약은 7.63mm 토카레프 탄약과 호환되는 7.62x25mm 탄약을 사용하는데, 기본 규격은 같지만 SMG용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조금 더 강력하다. 중국군 내에서 특수부대 등에서 사용한 듯하지만 수출용으로도 해외에 제안되었기 때문에 정보가 나름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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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원

- 무게 : 1.25kg
- 길이 : 312mm
- 총열 길이 : 140mm
- 탄창 : 10연발/20연발
- 사용탄 : 7.63x25mm
- 발사 속도 : 1,000~1,100발/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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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홍희범 | 군사전문지 편집장

1995년 월간 플래툰의 창간멤버로 2000년부터 편집장으로 출간을 책임지고 있다. 2008년부터 국군방송 및 국방일보 정기 출연 및 기고를 하고 있으며, <세계의 총기백과>, <밀리터리 실패열전> 등을 저작하고 <2차세계대전사>, <컴뱃 핸드건>, <전투외상 응급처치>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