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사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그동안의 소화기에 대한 많은 상식과 고정관념이 뒤흔들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뒤흔들린 것은 사거리와 위력이 얼마나 필요한 지에 대한 관념이었다.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모든 나라들에서 사거리와 위력은 기본적으로 다다익선에 가까웠다. 무연화약의 등장과 그에 수반된 탄의 고속화-소구경화는 비록 예전처럼 무거운 탄환을 적에게 명중시켜 큰 타격을 입힌다는 개념은 폐기시켰고 그에 따라 소총의 반동도 적잖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모든 나라 군대의 소화기 개발에서 기본 개념은 더 멀리, 더 강하게 였다. 자연스럽게 소총탄 자체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저격총에서 쓰일 수준에 가까운 강한 위력과 사거리를 가지게 되었고, 기관총 역시 같은 탄을 쓰는 총기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외의 총기는 호신용의 권총뿐이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이 참호전 양상으로 뒤바뀌면서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총기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참호전에서는 긴 사거리와 위력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에 못잖게 필요한 것이 근접전 능력이었다. 예전에는 사거리가 길고 위력이 강하면 원거리에서 전투의 대부분을 치를 수 있고 근접전은 착검돌격으로 해치우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총기의 사거리와 위력은 종종 적의 참호와 방어 진지에 큰 효과가 없었고 착검해서 적 참호까지 용케 근접해도 그곳에서 제대로 된 착검 전투가 치러지는 것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나마 일단 적 참호 안까지 들어갈 수 있으면 수류탄이나 야전삽, 도끼, 곤봉, 단검 등 온갖 종류의 격투전 무기를 동원해 근접격투전을 치를 수 있었지만, 사실 이 혼란 속에 가장 위력을 발휘할 잠재력을 갖춘 것이 바로 권총이었다.

특히 당시 유럽 그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자동권총을 군용으로 동원할 수 있던 독일군은 참호전에서 권총이 가지는 가치를 일찌감치 깨닫고 대량으로 동원했다. 제식 권총이던 루거 P08은 물론이고 원래 군용으로 쓰지 않던 마우저 C96도 대량으로 주문해 조달했다. 적 참호에 근접했을 때, 혹은 적 참호 안으로 돌입했을 때 자동권총이 매우 쓸만한 근접전 무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특히 중요시된 권총이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P08에 긴 총열(200mm)과 개머리판을 장착한 일명 ‘포병(Artillerie)’ 버전(원래 포병의 개인 방어용으로 개발)인 LP08(Lange Pistole 08), 또 하나는 역시나 일반 권총보다는 긴 총열(약 140mm)과 개머리판, 그리고 당시의 권총 치고는 제법 많은 탄창 용량을 갖춘 C96 및 M1916(9mm)였다. 이 둘은 권총보다는 좀 크지만 소총보다는 압도적으로 콤팩트하고 권총보다 더 안정적인 연사 능력과 아주 약간 더 긴 사거리를 갖춰 근접전용 무기로는 일반 소총보다 선호되는 무장이었다.

특히 독일군이 적 참호에 대한 기습 전술을 다듬고 시행하면서 이들 ‘큼직한 권총’, 즉 피스톨 카빈들은 더더욱 중요시됐다. LP08 같은 경우는 숫제 32연발의 드럼탄창인 ‘달팽이형 탄창(Trommelmagazin)’이 개발되어 지급됐을 정도인데, 그만큼 독일군의 근접 화력에 대한 갈망이 강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근접전에서 더 강한 화력을 원하던 독일군은 단순한 반자동 피스톨 카빈이나 권총을 넘어 아예 완전자동 사격까지 되는 총을 원했고, 곧 루거와 마우저의 완전자동 가능 시제품이 제작되어 일선에서 테스트된다.

그러나 권총의 한계는 역력했다. 아무리 총열을 늘이고 개머리판을 장착한 피스톨 카빈 버전이라 해도 원래 자동사격을 상정하지 않고 만들었던 권총이 베이스였기 때문이다. 당장 발사 속도부터 너무 빨랐고, 그에 맞춰 반동 제어도 어려웠다. 또 권총은 원래 연사를 생각하고 만든 플랫폼이 아니다 보니 내구성도 신뢰성도 급격히 떨어졌다.

이 때문에 1915년에는 슈판다우의 독일 소총 평가 위원회에서 완전히 새로운 참호전용 총기를 개발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이 일을 맡을 것이 베르크만 사의 사주인 테오도르 베르크만(Theodore Bergmann) 및 그 휘하의 기술자들, 특히 휴고 슈마이저(Hugo Schmeisser)였다.

이들은 고민 끝에 ‘권총탄을 쏘는 자동소총’에 가까운 총기를 개발하기로 했다. 참호전에서도 쉽게 휴대가 가능하면서 동시에 자동 사격으로도 용이하게 컨트롤이 가능한 화기를 만들려면 기존의 소총탄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따라서 권총탄을 사용하되 권총보다는 조금 더 크고 무겁게 만들어 내구성과 신뢰성, 그리고 충분히 낮은 발사 속도를 실현하고자 했다. 즉 ‘권총탄을 쏘는 기관총’인 셈인데, 독일인들은 이것을 Machinenpistole, 즉 ‘기관권총’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사용 탄약이 권총탄인데다 애당초 권총이 맡았던 일을 대신할 더 크고 무거운 무기라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인데, 지금까지도 독일어권에서 ‘기관단총’을 Machinenpistole, 즉 MP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때 확립된 전통이다.

이 새로운 무기, 즉 독일인들이 ‘기관권총’이라고 부르는 ‘MP’가 바로 전술적으로 세계 최초의 기관단총이라고 부를 수 있는 MP18/I이다.

---

특징

MP18/I, 혹은 MP18.1은(/I이나 .1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지금도 연구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앞서 언급했듯 ‘전술적으로 세계 최초의 기관단총’이다. 사전적 의미의 기관단총, 즉 ‘권총탄을 자동으로 사격하는 자동화기’는 그보다 먼저 나온 이탈리아의 빌라르 페로사이지만, 이것은 권총탄을 쓸 뿐 전술적으로는 엄연한 공용화기로서의 기관총이다. 반면 MP18/I은 전술적으로도 개인이 휴대하는 근접전 화기로서의 ‘올바른’ 기관단총이다.

MP18/I(이하 MP18)은 당시의 일반적인 소총을 아주 짧게 줄여 놓은 것 같은 스타일을 하고 있다. 당시로서는 개머리판 달린 개인화기의 가장 상식적인 모습이 이것인데, 지금 기준으로 보면 꽤 길고 거추장스러운 기관단총처럼 느껴지지만 1차 세계대전의 기준으로는 피스톨 카빈을 빼면 이것보다 콤팩트한 견착 가능 화기를 찾기란 매우 어려웠다.

MP18은 개머리판과 손잡이를 겸하는 목제 스톡(Stock) 위에 철제 원형 리시버를 갖춘 단순한 구조로 되어있다. 원형 리시버 안에는 총열과 노리쇠, 그리고 노리쇠가 후퇴할 때 이를 받쳐주고 다시 전진시키는 복좌용수철이 들어있는 매우 단순한 구조이다.

MP18은 단순 블로백, 즉 노리쇠의 후퇴 타이밍을 조절하는 아무런 기계적 장치가 없는 구조다. 오로지 쇳덩어리인 노리쇠 자체의 무게와 복좌 용수철의 힘, 두 가지에만 의존한다. 이는 권총탄이라는 저압력 탄약을 사용하는 것과 노리쇠의 무게가 작은 권총 하나에 필적하는 묵직한 수준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또 다른 특징은 오픈볼트, 즉 별도 격발 기구 없이 노리쇠가 전진해 탄이 약실에 밀려 들어갈 때 동시에 격발까지 이뤄지는 격발 방식이라는 것인데, 그래도 후세의 오픈볼트식 기관단총들에 비하면 좀 ‘덜 무식’한 편이라 별도로 분리된 공이는 있다. 단순 블로백과 오픈볼트의 양대 특징은 그 뒤 수많은 다른 기관단총들에도 이어지는 중요한 전통(?)이 된다.

MP18은 반자동 기능이 없는 완전자동 총기였지만, 대신 발사 속도가 느려 자동사격으로도 충분히 사격 발 수를 억제할 수 있다. 분 당 발사 속도가 대략 350~500발/분 사이여서, 조금만 익숙해져도 2~3점사는 물론 한 발씩 끊어 쏘는 것도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권총과 달리 처음부터 견고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대량의 자동사격에도 쉽게 총이 파손되지 않았다. 이 느린 발사 속도와 약 4kg의 무게, 그리고 높은 내구성 덕분에 제대로 견착해 쏘면 MP18은 유효사거리인 100m 이내의 거리에서는 잘만 쓰면 아주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었다.

다만 탄창은 적어도 1차 세계대전 시점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은 부분이었다. 탄창은 자동화기 생산에서 의외로 골치 아픈 부분이다. 다량의 탄창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자동화기도 무용지물이기 때문인데, 막상 쓸만한 탄창을 급하게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도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1910년대의 기술로는 그랬다. 그래서 MP18/I의 설계팀도 최대한 이미 확보해 놓은 탄창을 재활용하는 쪽으로 나갔고, 그 탄창으로 선정된 것이 LP08용으로 이미 수 십만 개가 생산된 ‘달팽이형’ 32연발 드럼탄창이었다.

문제는 이 ‘달팽이’탄창은 원래 권총의 아래에 달려고 만든 물건이라 옆에 달면 상당히 불편해졌다. 또 탄을 탄창에 재장전하기도 번거롭고, 충격 등에 의한 파손도 상대적으로 쉬운 데다 한번 고장 나면 고치기도 어렵고 모양 때문에 휴대하기도 번거로웠다. 하여간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지만, 적어도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다르게 고칠 여유도 없이 그대로 사용될 수밖에 없었다.

---

운용 역사

MP18은 이름에 걸맞게 1918년부터 실전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독일군은 이 MP18을 아주 잘 준비된 대공세, 바로 ‘루덴도르프대공세’로 불린 1918년 봄의 춘계 대공세의 히든카드로 써먹을 작정이었다.

루덴도르프대공세는 그동안 독일이 참호전을 겪으며 배운 전훈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전력이 바로 충격대(Stoßtruppen)였다. 최대한 적의 약점을 노려서 기습적으로 적 참호선으로 투입되는 이들에게 MP18은 적의 참호를 ‘쓸어 버리’는데 최고의 도구였다. 기관총은 물론이고 소총보다도 더 휴대성이 좋으면서 코앞의 적들에게 단시간에 다량의 화력을 퍼부을 수 있는 기관단총의 능력은 공세 전부터 독일군이 큰 기대를 걸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MP18은 그 가치를 충분히 발휘했다. 루덴도르프대공세의 공격 첫날에 공격 대상이 된 영국 제5군의 전선은 가차 없이 뚫렸고 바로 다음날에는 5군 전체가 후퇴해야 했다. 어찌나 최선두 돌격제대의 속도가 빨랐는지 얼마 안 되어 이들에 대한 보급이 이들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비록 독일군의 공세는 오래지 않아 기세가 꺾이고 결국 실패했지만, 이것은 MP18이라는 무기의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전선 돌파 후 전과 확대를 해야 할 독일군 전체의 역량이 이미 바닥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은 패배했고, 그 직전까지 적게 잡으면 5,000정, 많게 잡으면 10,000정 정도의 MP18이 생산되어 대부분 일선에서 사용되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직후에도 이 총은 꽤 바쁘게 움직였다. 독일 경찰 및 내부 혼란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우파 민병대 “자유군단(Freikorps)”에서 MP18을 요긴하게 써먹었기 때문이다. 특히 베를린 등에서 일시적으로 벌어진 혼란에 MP18은 매우 요긴한 시가전용 무기로 활용됐다.

전쟁이 끝나고 맺은 베르사유 조약에서는 뜻밖에 MP18로 대표되는 기관단총에 대한 눈에 띄는 제약은 없었다. 흔히들 이 조약에서 독일의 기관단총 개발과 운용이 규제되었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그런 규제 자체는 없었다. 단 조약과는 별개로 연합국은 독일이 국내 치안유지용으로 어느 정도 수량의 MP18을 보유-운용하는 것은 허용했다. 이 과정에서 MP18은 첫 번째 ‘수술’을 받는다. 탄창을 바꾼 것이다.

원래 휴고 슈마이저는 MP18을 개발하면서 직선형의 20연발 탄창을 사용할 생각이었는데, 전쟁 중에는 ‘달팽이’탄창을 쓰는 것으로 대체했으나 전쟁이 끝나고 여유가 생기면서 굳이 달팽이형 탄창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이 때문에 많은 면에서 우월한 20연발 직선형 탄창을 쓰도록 개조 작업이 이뤄졌는데, 이렇게 개조된 총들에는 ‘1920’이라는 각인이 찍혀 이 총이 불법적인 총이 아니라 정식 바이마르공화국 정부 자산이라는 사실을 표시했다. 또 이 총을 주로 운용하던 독일 경찰은 별도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노리쇠가 맘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하는 방식의 안전장치도 같은 시기에 추가되었다.

베르크만 사에서는 전쟁이 끝난 뒤 이 총의 권리를 스위스의 SIG 사에 팔아넘겼고, 덕분에 이 총은 SIG 사에서 SIG-베르크만 M1920이라는 상품명과 함께 생산될 수 있었다. 비록 엄청난 양이 생산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스위스에서 생산된 것과 전쟁 중 생산된 것을 합치면 거의 3만 정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과정에서 유럽 국가들은 물론 중국까지도 이 총을 구입해 사용했다. 일본 역시 이 총을 수입, 해군 육전대에서 ‘베식 단기관총’이라는 이름으로 시가전용으로 사용했으며 특히 상하이 침공에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일본의 100식 기관단총의 설계에도 이 ‘베식’이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총 자체도 나름 성공적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총의 등장으로 SMG라는 장르가 본격적으로 막을 열었다는 점이다. 또 그 뒤에 나온 SMG(기관단총)들 역시 이 총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2차 세계대전까지 유럽에서 만들어진 사실상 모든 기관단총류는 크건 작건 MP18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고, 유명한 MP38/40역시 이 총으로부터 진화한 ‘후손’에 해당하는 총이다. 영국의 스텐 역시 MP18의 개량형인 MP28을 영국에서 복제 생산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베리에이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파생형

MP18/I: 기본형.

MP18(1920):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에서 20연발 탄창을 삽입할 수 있도록 개조한 모델. 탄창 삽입구 부품을 교체했다.

SIG-베르크만 M1920: 스위스에서 면허생산된 MP18. 원래의 9mm 루거 외에도 .30루거(7.65x21mm), 7.63mm 마우저(7.63x25mm) 등의 다양한 사용탄이 존재한다. 1920~30년대 사이에 여러 나라에 수출되었다.

MP28/II: 1928년에 독일 에넬(Haenel) 사에서 생산한 MP18의 개량형. 자동/반자동 선택이 가능하며 대개의 경우 줄여서 MP28로만 불린다. 주로 수출용으로 생산되었기 때문이 9mm 외에도 7.65mm 루거, 9mm 베르크만(9x23mm), 9mm 마우저 익스포트(9x25mm), 7.63mm 마우저, 심지어 .45ACP 버전도 존재한다. 벨기에 등의 해외에서 라이선스 생산도 이뤄졌으며 스페인 내전 등의 분쟁에도 사용되었다.

칭다오조병창제 카피(16년식): 중국 칭다오조병창에서 복제된 버전. 무단복제가 아니라 나중에 MP40의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하인리히 폴머(Heinrich Vollmer)가 현지에 파견되어 기술 지도를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중국에 널리 사용되던 7.63mm 마우저탄을 사용하도록 설계되었으며 1927년에 만들어져 16년식(중화민국 연호인 민국 16년)으로도 불린다.

---

제원(MP18/I)

- 작동방식 : 오픈볼트 블로우백 방식
- 사용탄 : 9x19mm
- 길이 : 815mm
- 총열길이 : 200mm
- 무게 : 4.18kg(탄 없을 때)
- 탄창 : 32연발(1차대전 뒤 20연발 탄창 사용)
- 발사 속도 : 350~500발/분

---

저자 소개  

홍희범 | 군사전문지 편집장

1995년 월간 플래툰의 창간멤버로 2000년부터 편집장으로 출간을 책임지고 있다. 2008년부터 국군방송 및 국방일보 정기 출연 및 기고를 하고 있으며, <세계의 총기백과>, <밀리터리 실패열전> 등을 저작하고 <2차세계대전사>, <컴뱃 핸드건>, <전투외상 응급처치>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