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사

초창기의 자동권총들 중 가장 처음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총은 아마도 마우저 C96, 혹은 마우저 밀리터리로 불리는 권총일 것이다. 1896년에 개발된 이 총은 41년에 걸친 생산 기간 동안 110만 정 이상이 판매되는 성공을 거뒀으며 1900년 이전에 발매된 자동권총으로는 아마도 가장 처음 손익분기점을 크게 뛰어넘는 대성공을 거둔 권총이 아닐까 싶다.

세계 최초로 상업적 생산을 시작한 자동권총은 독일계 미국인 휴고 보샤트(Hugo Bochardt)가 1893년에 완성한 C93이다. 이 총은 나중에 루거 자동권총으로 발전하면서 결국 성공으로 연결되기는 했지만, C93 자체는 성공과는 제법 거리가 멀었다. 수천 정이 생산되었을 뿐으로, 대부분의 잠재 고객들은 관심을 보이다가도 지나치게 크고 무거운 이 총의 모습에 발길을 돌렸다. 특히 손잡이 위치에 비해 뒤쪽이 지나치게 튀어나와 있는 모습은 보기에도 어색할 뿐 아니라 실용적으로도 밸런스가 좋지 않았다.

당시 독일을 대표하던 총기 업체 마우저(Mauser)에서는 이런 C93의 문제점뿐 아니라 가능성도 엿보았다. 비록 크고 거추장스러우며 밸런스도 좋지 않지만 리볼버보다 많은 탄이 장전될 뿐더러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한 고속 탄약을 사용하는 권총이던 C93은 홀스터를 겸하는 개머리판을 장착하면 일종의 기병용 총기나 개인 방어용 화기로서 무시 못 할 잠재력이 있었다. 이 때문에 마우저 사에서는 기술자인 피델러 형제(Friedrich / Josef Feederle)를 중심으로 보다 실용적인 새로운 권총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로 등장한 것이 바로 C96이다.

꽤 짧은 기간에 개발된 물건이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 사이에 적잖은 알력이 당사자들 사이에 있었다. 먼저 사주인 페터 파울 마우저(Peter Paul Mauer)는 처음에는 이 총의 개발을 싫어했고 처음에는 피델러 형제에게 이 총의 개발을 멈추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곧 이 총의 시장 잠재력을 간파한 마우저는 철저하게 관련 특허를 자신의 명의로 독점하려 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당시 마우저의 대주주이던 루드비히 뢰베(Ludwig Loewe) 사가 바로 보샤트 C93의 제조업체였기 때문이다. 마우저는 뢰베 측이 자신의 프로젝트에 손을 댈 수 있다면 C93의 판매에 지장이 올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방해를 할까 봐 두려워했고, 그 때문에 법적으로 손댈 구실을 최대한 안 만들려 했다. 그러나 동시에 실제 기술적 업무를 가장 많이 맡은 피델러 형제는 특허권 신청처럼 ‘이름이 남는’ 과정에서 심하게 배제당했다. 또 그 과정에서 당시 루드비히 뢰베 사에서 일하던 게오르그 루거도 마우저가 C93을 견제하려는 움직임 때문에 마우저와의 사이가 많이 틀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법적-인간적인 관계와는 별개로 1896년에 C96(C는 Construktion, 즉 ‘제조’ ‘건설’의 의미. 1896년 개발이라는 뜻)권총은 완성되었는데, 당시 해외에 특허 출원 및 홍보를 하면서 이 총을 ‘마우저 밀리터리’, 즉 군용으로도 충분히 쓸만한 마우저 권총이라는 뜻의 이름으로 많이 홍보하게 된다. 그 때문에 영어권에서는 지금도 C96을 마우저 밀리터리라고 부르는 경우가 흔하다.

또 다른 별명은 “브룸핸들(Broomhandle)”인데, 이 총의 권총 손잡이 부분이 빗자루(Broom)의 손잡이(handle)처럼 보인다고 붙여진 것이다.

---

특징

C96은 구조나 형태 면에서 우리가 흔히 아는 권총보다는 소총이나 기관단총을 연상케 하는 스타일로 완성되었다. 이는 마우저 사가 소총 업체로, 그곳에서 일하던 인원들도 자연스럽게 소총 중심의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통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슬라이드 대신 별도의 노리쇠가 존재하며, 총열은 노리쇠가 들어있는 상부 리시버의 일부로 가공되어 있다. 작동 방식은 전형적인 쇼트리코일 구조로, 탄이 발사되면 노리쇠와 상부 리시버는 걸쇠(로킹블록)에 의해 결합되어 몇 밀리미터쯤 함께 후퇴하지만, 곧 걸쇠가 아래로 떨어지면서 상부 리시버는 멈추고 노리쇠만 뒤로 후퇴하면서 약실에서 탄피가 배출된다. 이 구조는 나중에 핀란드의 라티(Lahti) 권총이나 일본의 난부(南部)식 권총은 물론 발터 P38, 베레타 92시리즈 등 꽤 많은 총들에 오랫동안 전수된 방식으로, 보샤트의 토글 액션 방식과 함께 초기 자동권총의 폐쇄/작동 기구로는 가장 성공적인 것 중 하나이다.

작동 방식은 그렇다 치고, 실용성은 어땠을까. 사실 전통적인 ‘권총’의 범주에서 보면 먼저 나온 보샤트에 비하면 나을지 몰라도 여전히 다소 불편한 총임에는 틀림없다. 무게도 1,250g으로 당시 기준으로도 좀 무거운 편이었고, 길이는 30cm가 넘는 데다 덩치에 비해 앞이 가벼워 그냥 권총처럼 파지하고 쏘면 상당한 무게에도 불구하고 총구가 나름 들리는 편이다. 당시의 기준으로도 순수한 권총만으로 쓰겠다면 그다지 편리한 총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총이 성공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당시 기준으로는 많은 장탄수였다. 10연발 탄창은 당시로서는 대부분의 권총이나 소총을 압도하는 화력이었다. 또 탄창이 교환식이 아니라 고정식이고 재장전은 볼트액션식 소총처럼 클립을 이용하는 점도 당시로서는 나름 중요한 장점이었다. 아무리 탄창이 대용량이라도 그 장점을 제대로 살리려면 재장전이 제대로 이뤄져야 하는데, 당시만 해도 탄창은 상당히 비싼 물건이기 때문에 값싼 클립을 탄창 대신 휴대할 수 있는 C96은 나름 당대의 고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특징들에 더해 C96을 수십 년 간 인기 상품으로 남아있게 한 중요한 이유는 이 총이 단순한 권총이 아닌 ‘피스톨 카빈’, 그것도 꽤 효율적인 피스톨 카빈이라는 점이었다. 사실 권총에 필요하면 개머리판을 달아 소총 비슷하게 쓰는 피스톨 카빈의 존재는 1896년에도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지만, C96은 피스톨 카빈 중에서도 성공적인 피스톨 카빈이었다. 개머리판은 권총집 대용으로 쓰기 때문에 평소에 개머리판과 권총을 함께 휴대하기도 편했고, 사용 탄약인 7.63mm 마우저탄(7.63x25mm) 역시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한 고속 탄이기 때문에 예상 외로 긴 사거리 -100~200m- 를 발휘할 수 있었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 해도 최대 1,000m까지 조절되는 C96의 탄젠트식 가늠자는 좀 ‘오버’인 면이 있지만, 마우저는 이 총의 생산이 끝날 때까지 이 ‘오버’스러운 가늠자를 고집했다.

물론 초창기의 권총다운 문제점이나 시행착오가 없다면 거짓말이다. 일단 생산성이 썩 좋은 총은 아니다. 부품 숫자 자체는 37개 정도로 꽤 적은 편이지만, 대신 각각의 부품들은 가공에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리시버 등의 주요 부품부터 안쪽에 들어가는 작은 부품들에 이르기까지, 현대의 권총들에서 흔히 보이는 원가 절감 및 생산성 향상의 노력은 사실상 보이지 않는 복잡한 형상의 절삭가공품이다. 게다가 격발 기구의 주요 부품들은 핀이나 나사못을 거의 쓰지 않고 마치 퍼즐처럼 서로 맞물려 결합되는데, 문제는 이게 어느 정도 숙련되지 않으면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즉 야전에서의 정비성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안전장치 역시 조작성이 좋지 않고 원하지 않을 때 밀리는 등의 부작용이 있어 오랫동안 사용자들에게 불평의 대상이었다. 마우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랫동안 애썼지만, 결국 완전하게 만족스러운 디자인은 내놓지 못한 채 이 총의 생산을 마무리 짓고 말았다.

---

운용 역사

사실 어느 군용 권총 제작사들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마우저 역시 이 총이 각국 군대에서 대량으로 채택되는 것을 바라 마지않았다. 그러나 이런 그들의 바람은 제대로 이뤄진 적이 별로 없다. ‘마우저 밀리터리’라는 영문 상표명에도 불구하고, 이 총을 제식으로 채택한 군대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한 예로 이 총의 첫 대규모 고객이라 할 터키군에서도 초도 발주 수량은 1천 정으로 결코 많지 않았으며 그 뒤로도 터키군의 제식 권총이 C96이 되는 일은 결국 없었다. 그러나 그 뒤로 이탈리아 해군(5천 정), 페르시아(오늘날의 이란)에서 1천 정, 이런 식으로 비교적 적은 물량 씩의 군 혹은 정부기관 주문이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생산라인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런 주문 이상으로 마우저 C96의 수요를 지탱한 것은 실은 상업 구매였다. 간단하게 말해 자기 돈 주고 사서 쓰는 사람들이 만만찮은 수요를 지탱한 것이다. 특히 초창기에 유럽의 장교들이 이 총의 주요 고객이었는데,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권총이 장교에게 지급되는 게 아니라 자기 돈 주고 사서 쓰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국가에는 일종의 제식이라 할 모델이 존재해 장교들도 그것을 사서 쓰는 것이 권장되었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장교들이라면 미덥지 못하거나 구식일 경우가 많던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자국군 제식 권총 대신 10연발의 ‘화끈한’ 화력에 더해 개머리판을 더하면 호신용 반자동 소총처럼 사용할 수도 있는 C96을 더 선호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경우가 19세기 끝 무렵에서 20세기 초 사이의 영국이었다. 영국은 1890년대부터 1900년대 사이의 약 10여 년 사이에 수단반란(1898년)과 남아프리카에서의 보어전쟁(1899~1902)을 겪었고, 이 전쟁에 참전한 영국군 장교들 대부분은 군에서 권장하는 웨블리 리볼버를 사용했으나 무시 못 할 숫자의 장교들은 그 대신 마우저 C96을 자기 주머니를 털어서 구입한 뒤 전투에 참가했다. C96의 영국 대리점을 맡았던 업체인 웨슬리 리처즈(Westley Richards) 사의 기록에는 1897년부터 1905년 사이에 7,901정의 C96이 판매된 것으로 나온다.

이 중에는 다름 아닌 윈스턴 처칠이 구매한 것도 포함된다. 윈스턴 처칠은 기병이었으나 어깨의 부상으로 인해 원래 기병의 주 무장이던 기병도 대신 권총을 사용해야 했는데, 그때 그가 구매해 사용한 것이 바로 C96이었다. 1898년 9월 2일의 옴두르만 전투 당시 그는 이 총을 이용해 목숨을 건졌다. 그는 전투 중에 적 부대와 조우하자 C96을 꺼내 싸웠고, 그 과정에서 적어도 처칠의 주장을 그대로 믿는다면 10발로 다섯 명을 쓰러트렸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마도 경우에 따라서는 당시의 영국군 리볼버로는 그가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C96이 현대사를 본의 아니게 좌우한 셈이다.

이 경험과 그 뒤 남아프리카 전선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그는 마우저 C96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발명품’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남아프리카 전선에서도 그가 C96을 사용해 다수의 적을 최소한 쫓아내는데 성공하기도 하는 등 그 능력을 톡톡히 발휘했는데, 어떻게 보면 그가 이 총을 마치 현대의 PDW와도 같은 개념으로 사용한 셈이다.

이처럼 1차대전 이전까지도 상업적으로 나름 성공을 거둔 C96이지만, 역시 이 총이 가장 대량으로 생산된 시기는 1차 세계대전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원래 이 총이 잘 팔리던 해외 시장으로의 수출은 사실상 정지되지만, 그 대신 무기 부족에 직면한 독일군 및 오스트리아-헝가리군에 의해 대량 주문이 한꺼번에 쏟아졌기 때문이다. 독일군은 1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부터 대량의 C96을 주문했고, 오스트리아군 역시 5만 정을 주문했다.

특히 독일은 1916년에 제식 권총이던 P08의 주문이 군의 요구를 못 따라가자 15만 정의 C96을 주문하면서 이 총들이 제식 탄약인 9mm 루거(9x19mm)탄을 쓸 수 있게 요구했고, 이렇게 생산된 9mm 버전 C96은 M1916이라는 제식명으로 독일군에 납품되었다. M1916은 사용 탄이 혼동되지 않게 하기 위해 손잡이에 큼직한 붉은 “9”자가 새겨졌는데, 이 때문에 영-미 쪽 컬렉터들은 이 총을 “레드 나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비록 15만 정의 주문이 100% 충족된 것은 아니지만, 종전 시까지 거의 14만 정이라는 무시 못 할 수량이 납품되었다. 독일군의 C96 계열 총기들, 특히 M1916은 본격적인 기관단총이 독일군에 출현하기 전까지 참호전 등의 근접전 상황에서 매우 요긴한 화력으로 사용되었다. 심지어 기관단총이 출현한 뒤에도 부족한 기관단총의 수량으로 인해 실제로는 참호 돌격용으로 마우저가 상당량이 함께 사용되었고, 비록 양산과 정식 채택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마우저 사에서 40연발 탈착식 탄창을 단 ‘참호전용 스페셜’을 개발할 정도였다.

또 다른 마우저 C96의 중요 시장은 바로 중국이었다. 중국에 흘러간 C96의 추정량은 1916년부터 1936년 사이에 약 30만 정으로, 중국을 C96의 최대 수입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수요의 대부분은 중국 정부뿐 아니라 당시 중국에 산재해 있던 수많은 군벌들에 의해 채워졌다. 중국은 1910년대부터 1948년까지 사실상 어떤 형태로든 전쟁이 끊이지 않던 땅이고, 그로 인해 무기 수요가 늘 높았지만 그중에서도 C96의 수요는 높았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바로 ‘피스톨 카빈’으로서의 실용성이 첫 번째다. 시가전부터 기마 전투에 이르기까지 권총으로서도, 일종의 PDW로서도, 혹은 기관단총의 대용과도 같은 화력 수단으로서도 C96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실용적인 이유와는 또 다른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다.

1919년부터 1929년 사이, 영국과 미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가 주축이 된 10여 개국은 중국에 대한 무기 금수 조치를 실시한다. 내전 상황으로 인해 ‘중국 정부’가 어느 세력인지 확실히 파악하기 어렵게 되자 내려진 조치였는데, 여기서 권총은 예외였다. 즉 C96은 이 금수 조치에 저촉되지 않는 무기이면서도 소총에 가장 가까운 무기였던 것이다. 비록 이 금수 조치에 많은 허점이 있었고 그나마도 겨우 10년 지속되었지만, 그래도 C96이 이 기간 동안 대량으로 중국에 수입된 나름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이 총이 중국에서 인기를 끈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신분의 상징’으로서의 가치였다. C96은 원래 비싼 총이었지만 중국인들에게는 특히 비싼 총이었고, 그 때문에 가능하다면 이 총을 구입해 자기 물건으로 삼고 싶어하는 군벌이나 마적 두목 등이 얼마든지 있었다. 이 총을 자기 소유로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신분의 상징이었다. 이는 비단 중국만의 현상은 아니었는데, 2차대전까지 알바니아, 세르비아, 중남미 등 수많은 오지의 게릴라나 산적들 중에도 이 총을 신분의 상징으로 생각하고 사진까지 찍힌 사례는 결코 적지 않다.

C96의 또 다른 고객은 제정 러시아와 그 뒤를 이은 구 소련이었다. 제정 러시아 시대에는 귀족이나 부자 장교들의 개인 구매품으로 애용되었지만, 1920년대에는 공산 소련 정권에서 대량으로 이 총을 수입해 군용으로 활용했다. 우리 생각에는 지극히 반공적인 독일이 어떻게 공산국가인 소련에 무기를 수출했나 싶지만,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독일은 가장 친소적인 국가였다. 애당초 독일의 무기 개발은 소련과의 협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했고, 바이마르 정권뿐 아니라 나치 독일도 독소전쟁이 벌어지기 직전까지는 소련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했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이 시기에 소련에 수출된 버전(아래의 베리에이션 참조)을 볼셰비키의 약자인 “볼로” 마우저라고 부를 정도였을까?

이처럼 러시아와 소련에서 마우저가 애용된 것은 소련의 제식 권총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1930년대에 소련이 신형 제식 권총으로 토카레프를 선정하면서 탄 규격을 C96용 탄약과 사실상 같은 것으로 맞췄기 때문이다. 구 소련의 7.62mm 토카레프탄은 사실상 7.63mm 마우저탄의 카피로, 두 탄약 간에는 규격 상 호환성이 있다. 다만 7.62mm 토카레프탄의 상당수는 나중에 기관단총 등에서의 사용도 고려해 추진 장약이 더 강화되었기 때문에 C96에 쓰기는 안전성이 약간 의문시되는 경우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

---

베리에이션

C96은 사실 ‘기본형’ 자체에도 수십 년의 생산 기간 동안 수많은 차이가 있다. 해머(공이치기)의 형태, 안전장치의 형태, 심지어 하부 리시버 측면에 절삭 가공이 되어있는지 완전히 평평한지 여부에 따라 다양한 호칭과 분류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처럼 기본형 안에서의 차이점들은 컬렉터들이면 몰라도 메이커나 사용자 입장에서는 다 같은 ‘기본형’으로 분류되므로 여기서는 일단 생략할까 한다. 여기서는 그런 기본형을 넘어서는 베리에이션들에 대해 다뤄볼까 한다.

콤팩트 버전: 탄창을 6연발로 줄이고 총열도 12cm로 줄인 버전. 기본형과 같은 해에 출시됐다. 부피가 큰 C96을 순수한 권총급으로 줄인 것이지만 인기가 없어 결국 1899년에 단종됐다.

기병용 카빈(Kavallerie Karabiner): C96과 함께 발매된 모델. C96의 피스톨 카빈으로서의 특징을 극대화해 아예 개머리판을 고정시키고 총열을 30cm나 37cm의 긴 것으로 바꿔 말 그대로 ‘소총’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러면 휴대성이 떨어지는 데 비해 얻어지는 이익은 적어 결국 1899년에 단종되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적은 양(약 1,100정)만 생산된 뒤 단종되자 콜렉션용으로 인기를 얻었고, 이 때문에 1차대전 직후부터 기본형을 개조해 카빈형으로 만든 개조품이 외부 업체들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현존하는 마우저 카빈의 대부분은 진품이 아닌 이런 개조품이다.

M1912 익스포트: 남미 및 중국 시장을 노리고 만든 수출용 버전. 강력한 9mm 마우저 익스포트(9x25mm)탄을 사용한다. 많은 양이 생산된 것은 아니며, 그나마도 1914년의 1차대전 발발과 함께 생산이 중단되는 마이너 버전이다.

M1916: 9x19mm 탄약을 사용하도록 개조된 버전. 독일군이 1차 세계대전 중 대량으로 운용했다.

M1920 개조형/M1921 “볼로”: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독일군 및 경찰의 권총은 총열 길이를 10cm를 넘을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권총의 구경도 9mm보다 작아야 했다. 이 때문에 독일 정부가 전쟁이 끝난 뒤 보유하던 수많은 C96 및 M1916은 1920년부터 총열을 짧게 자르고, 또 M1916 중 상당수는 원래의 7.63mm 구경으로 재개조 해야 했다. 동시에 1921년부터 생산된 C96 역시 이런 새로운 규정에 따라야 했는데, 이 시기에 생산된 짧은 총열의 마우저는 M1921로 불리지만 동시에 “볼로”, 즉 볼셰비키로도 불린다. 구 소련에 대량으로 수출되었기 때문이다. M1921은 짧아진 총열에 맞춰 손잡이도 더 짧은 것이 달려있다.

M1930: 1930년부터 생산된 버전으로, 생산 단가를 낮추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디자인 변경이 가해졌으나 이런 것들은 외관 상 쉽게 구분되는 부분은 아니다. 하지만 총열 길이와 손잡이 크기가 오리지널과 똑같이 되돌아왔는데, 이는 이미 이 시기에 이르면 베르사유 조약의 규제가 유명무실해진데다 당시 가장 큰 수출 시장인 중국에서 원래의 사이즈에 대한 선호가 강했기 때문이다. 애당초 그 시기에 이미 구식화가 진행 중이던 이 총에 대한 개량 및 생산을 마우저가 결정한 것도 중국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사실 이 총이 단종된 이유도 독일이 일본과 동맹을 맺으면서 대중국 무기 수출을 중단한 것(+독일 재무장으로 인해 마우저 사에서도 제식 권총인 P08 등의 다른 총기 생산에 투입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한양 16년식: 1922~29년 사이에 만들어진 중국제 카피. 중국 내 조병창들 중 가장 우수한 것으로 추정되던 한양조병창에서 만들어져 중국제 카피 중에서는 가장 우수한 품질을 자랑한다. 대부분의 다른 중국제 카피들과 달리 디테일까지 꽤 정확히 재현되어 있으며 이 때문에 한때 미국에 “중국에서 유출된 오리지널 독일제”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산시 17년식: 1920년대에 산시성의 타이유안조병창에서 만들어진 C96의 카피. 1927년까지 이곳에서는 7.63mm 구경을 유지한 카피를 만들었으나 1927년부터 이곳에서 톰슨의 카피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마우저 카피도 톰슨과 같은 .45ACP탄을 쓰는 버전이 나왔으며 그것이 17년식이다(16년식이나 17년식의 숫자는 ‘민국’, 즉 1911년의 신해혁명을 시점으로 하는 연호이다). 17년식이 대략 9,000정, 그 이전의 7.63mm 구경 모델이 대략 2,000정쯤 나온 듯하다.

기타 다양한 중국제 카피들: 위에 언급한 두 가지 카피 등 몇몇 중국제 카피는 그래도 지방 군벌이 통제하는 나름 규모가 있는 조병창에서 만들어졌으며 이 때문에 어느 정도의 품질관리와 일관성이 있다. 그러나 그 외에도 수많은 ‘대장간’급 공장에서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카피도 무수히 많으며, 이 총들 중에는 모양만 같을 뿐 아예 구조 자체가 다르고 사용 탄약도 .32ACP 정도로 다운그레이드 된 경우도 많다.

스페인제 카피/베리에이션: 스페인의 아스트라(Astra)나 로열(Royal), 아줄(Azul) 등도 1920~40년대 사이에 몇 가지의 마우저 C96 카피를 만들었다. 이 총들은 중국제와 달리 완전한 무단복제이기보다는 나름 스페인식으로 재설계가 이뤄진 것들로, 품질도 전체적으로 잘 관리된 편이다. 특히 높게 평가받는 총이 아스트라 M900으로, 모습은 매우 비슷하지만 퍼즐처럼 결합되는 내부 구조를 핀 결합으로 바꿔 생산성을 높였으며 중국에서도 나름 인기를 끌었다. 심지어 1천정 정도가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에 역수출되어 독일군용으로 쓰이기도 했다. 사실 마우저가 M1930을 생산하게 된 이유 중 하나도 중국에서 스페인제가 서서히 인기를 끌면서 C96의 상품성이 여전히 높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제원(기본형)

- 무게 : 1.25kg
- 길이 : 312mm
- 총열 길이 140mm
- 탄창 : 10연발
- 사용탄 : 7.63x25mm

---

저자 소개  

홍희범 | 군사전문지 편집장

1995년 월간 플래툰의 창간멤버로 2000년부터 편집장으로 출간을 책임지고 있다. 2008년부터 국군방송 및 국방일보 정기 출연 및 기고를 하고 있으며, <세계의 총기백과>, <밀리터리 실패열전> 등을 저작하고 <2차세계대전사>, <컴뱃 핸드건>, <전투외상 응급처치>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