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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 당신 혼자 어떻게… '민따로 장군'의 20년 순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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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4.16 03:37

아내 사별한 민병돈 前 육사 교장, 중풍 극진히 간병 후 추모詩
"집사람과 함께 화단에 묻히고파"

2017년 10월 민병돈 전 육사 교장이 자택 뜰에서 아내 구문자씨를 돌보고 있다.
2017년 10월 민병돈 전 육사 교장이 자택 뜰에서 아내 구문자씨를 돌보고 있다. /아시아엔
'겁 많고 눈물도 많은 당신, 가 본 일 없는 먼 길을 혼자서 어떻게 걸어가지? 함께 가 주지 못하는 남편은 먼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오….'

민병돈(84·예비역 육군 중장) 전 육사 교장이 지난 13일 세상을 떠난 아내 구문자씨를 추모하며 쓴 시의 한 구절이다. 고인은 20년 전 중풍으로 쓰러진 뒤 민 전 교장이 혼자서 극진히 병간호를 해왔지만 최근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됐다. 20년간 변함없이 아내 곁을 지킨 민 전 교장의 '순애보'가 뒤늦게 페이스북·카톡 등을 통해 알려졌다.

육사 15기 출신인 민 전 교장은 현역 시절 '민따로'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다. 평소 강직한 성품으로 대세나 관행에 따르지 않고 '따로' 행동해 사서 고생을 한다는 의미에서 얻은 별명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시절엔 전두환 대통령 측의 위수령 선포를 강력 반대해 좌절시켰고, 1989년 3월 육사 교장 시절 당시 노태우 대통령 앞에서 대북 정책 등을 직설적으로 비판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20년간 아내 병간호를 한 사실은 주위에 알리거나 내색하지 않아 자세한 사정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런 민 전 교장이 아내와 사별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한 무능한 남편의 통곡'이란 헌시(獻詩)를 쓴 뒤 눈물을 펑펑 흘리며 통곡했다고 한다. 민 장군의 오랜 지인인 이상기 아시아엔 발행인(전 기자협회장)은 추모글을 통해 '사모님 간병을 몸소 다 해내신 장군님의 순애보는 아마도 '민따로' 장군님의 또 다른 전설이 아닐까 싶다'고 밝혔다. 이 발행인은 또 '결혼 50년간의 해로, 그리고 사모님이 병석에 누운 20년간, 그 곁에서의 따스한 보살핌은 세대를 뛰어넘는 귀감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예비역 공군 장성은 "아주 오래전에 사모님 재활 치료 하실 때 뵈었던 적이 있다"며 "사모님을 부축해 걷기 운동시키시던 민 장군님의 모습이 현역 시절보다 훨씬 더 멋져 보였다"고 회고했다.

민 전 교장은 아내를 화장한 뒤 유해를 서울 목동 자택 화단에 모실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나는 국립묘지에 묻힐 자격이 있지만 거기엔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이 많아서 나도 나중에 집사람과 우리 집 화단에 함께 묻히려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