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의 역사

대형전투함을 중심으로 편성된 함대가 원양에서 작전 임무를 수행하려면 많은 보급 물자가 필요하다. 직접 전투를 치르지 않더라도 작전 기간 동안 항해용 연료, 식량, 물, 훈련탄과 같은 보급품은 계속 소모된다. 이러한 보급품을 제때 지원하지 못하면 함대의 전투력은 급격하게 떨어진다. 러일전쟁 중에 러시아의 발틱함대는 모항을 출항한 다음 반년이 넘게 장거리 항해를 하면서 중간에서 제대로 보급을 받지 못하였다. 그 결과 피로가 누적되어 사기가 저하되었고, 석탄이 부족하여 최단 거리인 대한해협을 통과하는 항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미리 기다리던 일본 해군에 일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처럼 원양에서 작전하는 대양함대에 대한 보급 지원은 해전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임무에 속한다.

2차대전 당시에 대규모 함대를 보유하였던 미 해군은 여러 종류의 지원함(Auxiliaries)을 건조하여 실전에 투입하였다. 대표적인 지원함으로 탄약을 공급하는 탄약함(AE, Ammunition Ship), 냉동 식품을 비롯한 각종 보급품을 지원하는 급양함(AF, Store Ship), 각종 화물을 수송하는 화물수송함(AK, Cargo Ship), 연료를 지원하는 급유함(AO, Oiler) 등이 있다. 이처럼 다양한 지원함은 크게 2종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급유함(AO)과 같이 액체 화물을 수송하는 유조선이고, 다른 하나는 탄약함(AE), 급양함(AF), 화물수송함(AK)처럼 고체 화물을 수송하는 화물선이다.

1950년대 냉전이 깊어지면서 미 해군은 가장 강력한 전력을 시현할 수 있는 항모기동전단에 집중하였다. 냉전 시대에 미 해군은 10개의 전투항모기동전단을 보유하였다. 항공모함은 함재기가 뜨고 내리도록 고속으로 항해한다. 이에 따라 속도가 느린 군수지원함에서 재보급을 받는 데 문제가 발생하였다. 2차대전 당시에 건조된 미 해군 군수지원함의 항해 속도는 10~15노트(knot) 정도에 불과하였다. 당시만 해도 함대가 작전하는 도중에 보급 물자가 필요하면 그때마다 지원을 요청하였다. 보급 지원을 요청받으면 약속한 지점에서 만나서 재보급을 하였다. 그러나 보급 지원을 요청하여도 장거리 통신이나 기상 문제로 인하여 제때 재보급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2차대전에서 승리한 미 해군은 독일 해군이 사용하던 디트마르셴(Dithmarschen)급 군수지원함을 노획하였다. 디트마르셴급은 미 해군의 군수지원함과는 성격이 전혀 달랐다. 다양한 지원함을 보유하기 힘들었던 독일 해군은 다양한 지원 임무를 하나로 합친 군수지원함을 개발하였다. 디트마르셴급은 유류 9,000톤, 윤활유 400톤과 함께 탄약과 식량을 함께 적재할 수 있었고, 의료시설까지 구비하여 소형 병원선까지 겸하는 다용도 군수지원함이었다. 한편 고성능 디젤엔진(Diesel engine)을 탑재하여 최고 속도는 23노트, 15노트의 순항 속도로 12,500해리(nautical mile)를 항해할 수 있는 획기적인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미 해군은 1945년 5월에 디트마르셴함을 노획하여 평가하였다. 우수한 성능을 인정한 미 해군은 1946년 5월에 디트마르셴함을 함대급유함(USS Conecuh, AO-110)으로 편입하여 1956년까지 현역 함정으로 사용하였다.

구축함장 출신의 전설적인 인물인 알레이 버크(Arleigh Burke) 해군 대장은 1955년 8월에 미 해군 참모총장에 취임하였다. 고속 전투항해를 중시하는 알레이 버크 제독은 고속으로 항해하는 항모기동전단의 해상보급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 미 해군은 독일 해군의 디트마르셴급 군수지원함을 참고하여 군수지원함을 개발하였다. 항모기동전단에 밀착하여 지원하려면 1척의 군수지원함에 유류, 물(淸水), 탄약, 식량 등 다양한 보급품을 적재하고 장거리를 고속으로 항해할 필요가 있다. 서로 종류가 다른 군수지원함을 운용하는 것은 비경제적이라는 개념으로 등장한 신형 군수지원함이 바로 새크라멘토급이다.

새크라멘토급 군수지원함은 항모기동전단과 같은 속도로 항해할 수 있도록 최대 속도가 26노트에 달하며, 자체 연료만으로 10,000해리를 항해할 수 있다. 대량의 보급 물자를 싣고 항모기동전단을 지원하기 위해 새크라멘토급 군수지원함은 구형 지원함의 3~5배에 달하는 5만 톤 급으로 배수량이 증가하였다. 새크라멘토급 군수지원함은 고속전투지원함(Fast Combat Support Ship)이라고도 불리며, 함종 기호는 급유함(AO)과 탄약함(AE)를 합친 AOE를 사용한다. 함종 기호와 같이 새크라멘토급 군수지원함은 액체 화물(유류, 물)과 고체 화물(탄약, 식량)을 혼합하여 적재할 수 있다.

이처럼 혁신적인 개념으로 등장한 새크라멘토급 군수지원함은 1964년부터 4척이 차례로 취역하였으며, 태평양과 대서양함대에서 활약하였다. 새크라멘토급 군수지원함은 다른 국가의 군수지원함의 운용 개념에도 큰 변화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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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선체

다양한 화물을 적재하는 군수지원함은 기본적으로 화물선 선체를 채택한다. 평갑판 선형을 가진 새크라멘토급 군수지원함은 선수에 대형 함교 구조물이 있다. 선체의 중간에는 각종 보급 물자를 다른 함정으로 이송하는 하역 장비가 설치되어 있다. 새크라멘토급 군수지원함의 가장 특징은 헬기를 사용하는 수직보급(VERTREP, Vertical Replenishment) 방식을 처음으로 실용화한 점이다. 헬기를 사용하면 유류와 탄약, 식량 보급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새크라멘토급 군수지원함의 경하 배수량은 19,200톤, 만재 배수량은 53,600톤으로 34,400톤이나 차이가 난다. 이러한 배수량 차이는 새크라멘토급 군수지원함에 얼마나 많은 보급 물자를 적재할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관

선박용 디젤엔진을 선호하지 않는 미 해군은 고속으로 항해하는 대형 군수지원함의 주기관으로 증기터빈(steam turbine)을 채택하였다. 특이한 점은 새크라멘토급의 선도 함과 2번 함에 탑재한 주기관은 아이오와(Iowa)급 전함의 6번 함인 BB-66 켄터키(Kentucky)함의 주기관을 옮겨서 설치하였다는 점이다. 건조 도중에 2차대전이 끝나면서 72% 공정에서 건조가 중단된 켄터키함은 한동안 방치되었다가 1958년에 폐기 처분되었다. 이때 떼어낸 주기관을 새로 건조되는 새크라멘토급 군수지원함에 설치하였다. 새크라멘토급 군수지원함은 4대의 보일러(boiler)에서 생산하는 고압 증기로 2대의 증기터빈을 구동하는 2축 방식을 사용하며, 출력은 아이오와급 전함의 절반에 해당한다.

군수 지원 능력

새크라멘토급은 다목적 군수지원함이지만 기본적으로는 급유함(AO)에 가까우며, 주요 탑재 화물은 177,000 배럴(barrel)의 유류(油類)이다. 유류와 물(淸水)은 전용 호스(hose)를 사용하여 분 당 11 킬로리터(㎘)의 이송 속도로 다른 함정에 공급한다. 새크라멘토급은 유류와 함께 탄약 2,150톤, 보급품 500톤, 냉동 식품 250톤을 동시에 적재할 수 있다. 일반 화물은 갑판에 설치된 전용 하역 장치와 CH-46E 기동헬기를 함께 사용하여 다른 함정에 보급한다.

무장

군수지원함은 전투 지역에서 떨어진 곳에서 활동하지만 유사시를 대비하여 방어 무장을 탑재한다. 새크라멘토급은 건조 당시 범용 무장으로 Mk.56 사격통제장치와 Mk.33 50구경 3인치 연장 함포 4문을 탑재하였다. 이후 1970년대에 수명 연장을 진행하면서 구형 3인치 함포를 철거하였다. 대신 대공 위협에 대비하여 Mk.29 NATO 시 스패로우(Sea Sparrow) 단거리 함대공 미사일 8연장 발사기와 Mk.95 미사일 사격통제장치, Mk.15 팰랭크스(Phalanx) 근접방어 20mm 기관포를 탑재하였다.

탑재 헬기

미 해군의 군수지원함 중에서 가장 먼저 수직보급(VERTREP) 방식을 실용화한 새크라멘토급은 함미에 비행갑판과 격납고가 설치되어있다. 대형 격납고에는 CH-46E 시 나이트(Sea Knight) 기동헬기 3대를 격납할 수 있다.

동급함(새크라멘토급, 4척)

함번	함명	착공	진수	취역	건조	비고
AOE-1	새크라멘토 (Sacramento)	1961.6.30	1963.9.14	1964.3.14	퓨젯 사운드 해군조선창 (Puget Sound Naval Shipyard)	퇴역
AOE-2	캠던 (Camden)	1964.2.17	1965.5.29	1967.4.1	뉴욕 조선소 (New York Shipbuilding)	퇴역
AOE-3	시애틀 (Seattle)	1965.10.1	1968.3.2	1969.4.5	퓨젯 사운드 해군조선창 (Puget Sound Naval Shipyard)	퇴역
AOE-4	디트로이트 (Detroit)	1966.11.29	1969.6.21	1970.3.28	퓨젯 사운드 해군조선창 (Puget Sound Naval Shipyard)	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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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 현황

미 해군은 10척의 항모기동전단을 지원하기 위해 5척의 새크라멘토급 군수지원함을 건조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대형 군수지원함의 건조 비용이 척 당 7,000만 달러까지 상승하자 예산 문제로 1968년에 5번 함의 건조가 취소되었다. 1964년부터 1970년까지 순차적으로 취역한 4척의 새크라멘토급 군수지원함은 태평양함대와 대서양함대에 각각 2척 씩 배속되어 항모기동전단의 작전을 지원하였다. 1984년부터 수명 연장(SLEP, Service Lifr Extension Program) 사업이 진행되었으며, 대공방어 무장이 추가되었다. 노후화한 새크라멘토급 군수지원함은 1994년부터 취역한 서플라이(Supply)급 군수지원함에 임무를 인계하고 2004~2005년에 순차적으로 퇴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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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원

- 함명 : 새크라멘토급
- 함종 : 군수지원함(AOE)
- 경하 배수량 : 19,200톤
- 만재 배수량 : 53,600톤
- 전장 : 241.7m
- 전폭 : 32.6m
- 흘수 : 12.0m
- 최대 속도 : 26노트
- 순항 속도 : 17노트
- 항해 거리 : 6,000 해리/25노트, 10,000 해리/17노트
- 승조원 : 601명 (사관 24) 
- 주기관 : 보일러 × 4, General Electric 증기 터빈 × 2(100,000 마력), 2축 추진
- 무장(미사일) : Mk.29 8연장 NATO Sea Sparrow 함대공 미사일 발사기 × 1
- 무장(함포) : Mk.15 20mm Phalanx CIWS × 2, 12.7 mm 기관총 × 4
- 방어체계 : Mk.36 SRBOC 6연장 발사기 × 1, SLQ-25 Nixie 견인식 어뢰기만기
- ESM/ECM : SLQ-32(V)3 기만기
- 레이더 : Lockheed AN/SPS-40E 대공탐색 레이더, Raytheon AN/SPS-10F 해상탐색 레이더, Raytheon AN/SPS-64(V)9 항해 레이더
- 헬기: CH-46E 기동헬기 ×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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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이재필 | 군사 저술가 

항공 및 방위산업 분야에 대한 깊은 관심과 실무적 경험을 바탕으로, 군용기와 민항기를 모두 포함한 항공산업의 발전과 역사, 그리고 해군 함정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국내 여러 매체에 방산과 항공 관련 원고를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