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4.1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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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BAR

분대지원화기의 대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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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918A2 BAR <출처: National Rifle Associations>

개발의 역사

1917년, 미 육군은 1차 세계대전에 마침내 참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참전을 준비하던 그들은 자신들이 전쟁을 할 준비가 안 되어있어도 너무 안 되어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험해야 했다. 사실상 권총부터 야포까지 모든 무기가 턱없이 부족했다. 소총도 제식인 스프링필드 M1903을 필요한 시간 안에 대량으로 조달할 수 없어 원래 영국 수출용으로만 미국 내에서 생산되던 엔필드 P14 소총을 미군 제식 탄약인 .30-06탄에 맞게 개조한 엔필드 M1917을 더 많이 생산해야 했고, 야포류는 사실상 전량을 프랑스로부터 조달해 사용해야 했다(인치법 사용 국가인 미국의 포병 화기들 상당수가 미터법 구경인 105mm나 155mm 등의 구경 규격을 사용하게 된 것도 이때의 영향이다). 그리고 이런 무기 부족의 정점에 서 있던 것이 바로 기관총 부족이었다.

1차대전 당시의 미군은 거의 전쟁 막바지까지 대부분이 쇼샤 경기관총 등의 외국제 기관총을 주로 써야 했다. <출처:Public Domain>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몇 년이 지난 1917년에는 그 누구의 시점으로 보아도 기관총은 야전의 제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화기였다. 충분한 수량의, 충분한 성능을 가진 기관총이 없다면 사실상 지상 전투는 못 치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런데 정작 미 육군이 1917년 4월에 참전이 확정된 시점에서 보유한 기관총의 수량은 1,100정에 불과했다. 참고로 1차대전이 시작될 시기의 독일군에는 12,500정의 기관총이 있었지만 이것조차 곧 부족하다고 느끼게 된다. 당시의 미군이 얼마나 심각한 기관총 부족 상태였는지 잘 알 수 있다.

이 숫자 자체도 턱없이 부족했지만, 기관총의 종류도 문제가 심각했다. 이 기관총들의 대부분은 구식이거나 생산성이 떨어져 다급하게 대량으로 보유하기에는 문제가 많았고 1차대전의 참호전을 통해 드러난 야전의 가혹한 환경에 버티기도 어려웠다.

천재 존 브라우닝(좌)과 그를 도와 BAR을 개발한 윈체스터사의 프랭크 버튼(우) <출처:Public Domain>

결국 미 육군은 당장 유럽 파견 병력이 실전에서 써야 할 기관총 물량은 프랑스나 영국 -특히 프랑스- 으로부터 조달해 사용해 급한 불을 끄기로 했고, 미국 본토에서는 본토대로 최대한 빨리 새로운 기관총을 선정해 대량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미국에는 한 명의 탁월한 천재가 있었다. 바로 존 M. 브라우닝(John Moses Browning)이었다. 비록 그가 개발한 몇 종류의 기관총들은 M1895 콜트-브라우닝 기관총을 제외하면 미군에서 채택되지 않고 있었지만,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미군에 새로운 기관총이 대량으로 필요하게 되자 미국 내에서 그 이외에 다른 발명가를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Forgotten Weapon의 BAR M1918 해설 <출처: 유튜브>

결국 미군의 참전이 확정되기 직전인 1917년 초, 브라우닝은 자신이 발명한 수랭식 중(重)기관총과 사실상 보병용의 경기관총인 ‘기관 소총(Machine Rifle)’의 두 가지 기관총을 수도 워싱턴으로 가져왔다. 2월 27일에는 군 고위 간부들 및 기자, 정치인들로 구성된 300명의 귀빈들 앞에서 이 두 종류의 총기를 실제 사격하는 시범을 보였고, 여기서 이 두 총은 모두 탁월한 성능을 과시했다. 두 총 모두 미군이 당시에 보유하던 기관총들은 물론이고 해외의 다른 총들과 비교해도 앞서면 앞섰지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능력을 과시했던 것이다.

1917년 5월까지 스프링필드 조병창에서 미 육군 병기국의 간부들이 중심이 된 평가팀에서 그의 두 기관총은 추가 테스트들을 받았고, 그 결과 이론의 여지없이 두 총 모두 채택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이렇게 해서 채택된 두 기관총이 바로 M1917 중기관총과 M1918 브라우닝 ‘자동소총’, 즉 BAR(Browning Automatic Rifle) 이었다.

미 의회 관계자 등을 초청해 개최된 BAR의 시범사격 <출처:Public Domain>

재미있는 것은 사실상 동시에 채택된 두 총인데도 제식명에 표기된 채택 연도가 1년의 차이가 있다는 점인데, 이는 두 총이 같은 번호를 사용할 경우 일선에서 보급 등에 혼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 달라진 것이다.


특징

M1918 BAR <출처:Public Domain>
BAR의 설계 사상은 프랑스가 앞서 설계해 실전 배치한 쇼샤 경기관총(CSRG Mle1915)의 영향을 적잖이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쇼샤도 사실 ‘기관총’이라기보다는 ‘자동소총’에 약간 더 가까운 콘셉트를 가진 총이고, 애당초 이 총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미 육군이 원했던 운용 개념도 ‘보행사격(Walking Fire)’, 즉 보병이 적진을 향해 이동하면서 연발 사격을 퍼부어 적이 참호에서 머리를 들지 못하게 제압하는 기동사격용 자동소총에 더 가까운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BAR이 지원화기로서 개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후술하겠지만, 원래 BAR은 분대지원화기도 아니었다) 경기관총이 아닌 자동소총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2차대전 중의 미군 홍보/교육 동영상 <출처: 유튜브>
이에 따라 BAR은 당시의 기술로서는 사실상 ‘믿을만한 자동화기로서의 한계’에 가까운 경량화를 달성했다. 최초 모델인 M1918의 무게가 7.25kg으로, 그 이전까지 가장 가벼운 자동화기라 할 수 있던 마드센이나 쇼샤 이상으로 경량화되는데 성공했다.
M1918의 리시버 블랭크. 단조나 주조 등으로 만들어진 다음 추가 가공을 거쳐 리시버가 되는 부품이다. 아래는 리시버 규격 도면. <출처:Public Domain>
물론 이런 경량화는 존 브라우닝의 탁월한 설계도 크게 작용했다. 그의 설계는 오치키스 중(重)기관총에서 모티브를 따 온 틸트 볼트(Tilt Bolt) 방식, 즉 노리쇠의 뒷부분이 상하로 움직여 폐쇄되는 노리쇠 작동 방식과 롱 스트로크 가스 피스톤 조합의 가스압 작동 방식을 기초로 최소한의 부피와 무게만을 차지하게끔 설계되었다. 비록 작동 구조 자체는 선례를 바탕으로 만들었다지만, 원래 20kg이 훌쩍 넘는 총을 그 1/3 이하의 중량으로 재설계하는 것은 아무리 연사 능력에 대한 요구가 낮은 경기관총이라고 해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브라우닝은 그냥 가볍게만 만든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대량 생산이 가능할 정도의 실용성까지 설계에 가미했다. 그가 그냥 유능한 총기 설계자가 아니라 ‘천재’라고 불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BAR의 작동 구조를 그린 미 육군의 교육 자료. 노리쇠가 리시버 안쪽에 걸려 폐쇄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출처:Public Domain>
물론 이런 경량화가 가능해진 것은 브라우닝의 천재성 외에 미 육군의 요구가 비교적 ‘소박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프랑스의 쇼샤와 달리 총열이 왕복할 필요가 없어 총열 주변에 큰 무게와 부피가 필요하지 않은 것도 중요한 장점이었지만, 애당초 장시간의 지속 사격을 전혀 요구받지 않은 덕분에 총열부터 시작해 많은 부분에 상당한 경량화를 시킬 수 있었다. 탄창도 20연발 상자형 탄창만을 사용했기 때문에 급탄 기구와 관련된 무게와 부피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1차대전 당시 만들어져 2차대전에도 사용된 BAR용 사수 벨트. 탄입대 외에도 허리에 개머리판을 걸고 지탱할 수 있게 한 금속 컵도 보인다. <출처:Public Domain>
심지어 양각대(바이포드)도 없었다. 미 육군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이 총을 그야말로 ‘자동소총’처럼 병사가 도수 운용하기만 하는 무기로 생각했고, 그 때문에 양각대조차 없었다. 대신 BAR 사수에게 지급된 요대에는 허리에 BAR의 개머리판을 꽂아 넣는 금속제 컵이 달려있어 사수가 적진을 향해 전진하는 동안 허리춤에서 사격하면서 느끼는 무게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시도가 엿보였다.
BAR의 CG 해설 <출처: 유튜브>
다만 이처럼 ‘기관총 같은 소총’의 개념으로 만들어진 BAR은 엄밀하게 따지면 ‘소총도 기관총도 아닌’ 어정쩡한 입지였던 것만큼은 부인하기 힘들다. 소총으로서 사용되기에는 너무 크고 무겁고, 그렇다고 기관총으로서 활용되기에는 연사 능력이 부족했다. 특히 원래 BAR의 주 임무가 공격 시의 적 기관총 제압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연사 능력 부족은 초기부터 나름 문제시 되곤 했다. 이런 점은 실제 이 총이 본격적으로 대량 사용된 2차 세계대전에서 특히 부각되었다. 이로 인해 1938년에는 총구에 양각대를 추가한 베리에이션인 M1918A2가 채택되어 미 육군 및 해병대의 주력 분대지원화기로 사용된다.
M1918A2의 개머리판. 1918과 달리 어깨걸이가 추가되었다. <출처:Public Domain>

M1918A2는 양각대만 추가된 것이 아니다. 발사 속도가 느린 총이다 보니 반자동 기능도 제거되었고, 개머리판도 양산형에서는 플라스틱제로 바뀌었다. 또 발사 속도는 350발/분의 저속 연사와 550발/분의 고속 연사 양자택일이 가능하게 바뀌었다.


운용의 역사

1차 세계대전의 BAR

미 육군은 BAR을 채택하면서 서둘러 양산을 진행했지만, 새로운 총을 양산하는 작업이 뚝딱 끝날 턱이 없었다. 이런저런 문제점을 해결하고 양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은 1918년 2월이었다. 그나마도 초도 분 1,800정은 이런저런 문제들로 인해 대대적인 개수를 받아야 했으며 1918년 6월까지 간신히 4,000정을 생산했다. 매월 9,000정의 본격적 양산이 시작된 것은 1918년 7월부터의 일이다. 1918년 7월 하순에 이르면 3개 회사에서 총 17,000정의 BAR(윈체스터 9,700정, 말린-록웰 5,650정, 콜트 1,650정)이 출고되었다.

존 브라우닝의 아들인 발 브라우닝. 1차대전 당시 미 육군 중위로 실전 참가했다. 사진에서는 아버지의 신작인 M1918을 들고 있다. <출처:Public Domain>

물론 이것도 평소에는 생각하기 힘들던 경이적인 생산 속도였다. 미 육군 및 연합군의 원래 예상대로면 1919년 봄에 독일군을 끝장낼 대공세가 진행될 예정이었으니 이 정도 속도라면 그 대공세에는 미군의 주력 분대지원화기로서 충분한 수량이 배치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전쟁이 너무 일찍 끝나 상당 부분 빗나가고 말았다. BAR의 첫 실전 투입은 1918년 9월이었지만, 그로부터 두 달도 채 안 된 상태에서 전쟁이 끝나버린 것이다. 전쟁이 끝난 시점에서 미군에 납품된 BAR은 52,000정 정도이지만, 그 대부분은 아직 미국 본토에 있거나 유럽으로 건너가는 배 위에 있었다. 유럽 파병군에 실제 지급된 물량은 18,000정이 채 안 되는 물량이었고, 그나마도 그 대부분은 실전 투입이 아니라 훈련에 사용되는 단계였다. 종전 시점까지도 겨우 4,608정이 일선 부대에 지급되었을 뿐이고, 일선 병력의 절대 다수는 불만족스럽기 그지없던 쇼샤 경기관총을 여전히 사용해야 했다.

(BAR이나 M1917 같은 브라우닝 설계의 신형 자동화기 배치가 미군에서 늦은 이유는 또 있었다. 당시의 미군 사령관 퍼싱은 이 두 총이 우수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이 총들이 너무 일찍 독일군에게 노획되면 1919년의 대공세 시점에 독일군이 이를 카피해 배치하거나 최소한 장단점을 파악하고 대응 전술을 너무 일찍 확립할 것으로 우려했다. 하지만 배치를 늦춘 가장 큰 이유는 이런 공포 이전에 충분한 물량의 확보와 보급, 훈련 같은 실질적 문제들이었다)

TFB TV의 BAR 해설영상 <출처: 유튜브>

하지만 이런 늦은 투입에도 불구하고 BAR이 미군 및 연합군에 끼친 영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일단 실전에 투입된 BAR은 미 육군 일선 부대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물론 그 비교 대상이 쇼샤였던 덕도 만만찮기는 한데, 쇼샤와 비교하면 BAR은 반동도 낮고 총도 가벼운 데다 고장마저 압도적으로 적은, 정말 ‘꿈 같은 총’이었다. 심지어 프랑스군도 15,000정의 BAR 긴급 주문을 넣어 쇼샤를 대체하려 할 정도였다(이른 종전으로 결국 실현되지는 못했다).

어쨌든 1918~1919년 사이, 미국은 총 10만 2천정 정도의 M1918 BAR을 생산했다. 원래 미 육군의 주문량은 28만 8천정이 넘는 물량이었으나 전쟁이 끝나면서 계약을 취소했고, 기존 납품된 물량에 더해 기껏 생산라인을 깔고 인력을 고용한 업체들의 상황을 감안해 전부 취소하지는 않아 간신히 10만 정의 물량을 확보한 것이다. 그나마 이렇게 납품된 총들조차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급속히 축소된 미 육군에서 쓸 곳이 없었고, 결국 일부 실전 배치 분량을 제외하면 전량이 미국 각지의 주방위군 무기고 등에 분산되어 보관됐다.

BAR는 초기에는 분대지원화기가 아니라 소대의 편제화기였다. <출처:Public Domain>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BAR을 ‘분대지원화기’로 알고 있지만 막상 1차 세계대전부터 1930년대까지는 진정한 의미의 분대지원화기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는 쇼샤나 루이스 등 다른 나라의 경기관총들도 비슷했다.

당시 미 육군에서 소대는 4개의 분대로 나뉘었고 2개의 분대가 하나의 ‘반(半) 소대’를 구성했다. 그중 첫 번째 반 소대의 제2 분대가 2명의 BAR 사수와 네 명의 탄약수, 한 명의 분대장으로서 자동소총 분대를 구성했고 첫 번째 반 소대의 선임 부사관이 BAR 하나를 추가로 휴대해 총 3정이 1개 소대에 배정되었다. 여기에 종종 1정이 예비로 편성되어 필요하면 투입되곤 했지만, 결과적으로 분대지원화기가 아니라 소대지원화기에 가까운 수준이었고, 각 분대가 독립된 전투 단위로 활동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리고  이런 편제는 1930년대까지 유지되었다.

2차 세계대전

그리고 1939년 9월,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1년도 안되어 프랑스가 함락되자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미군의 참전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지만, 1940년에 영국이 위기에 몰리자 렌드리스법(무기대여법)을 통해 25,000정의 M1918을 영국에 넘겨주기로 결정했다. 이것으로 그러잖아도 부족한 재고는 더욱 부족해졌고, 1941년 끝 무렵에 이르자 미 육군은 M1918A2형의 대대적인 신규 생산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이를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1945년 오키나와의 BAR 사수. M1918A2이지만 양각대가 없다. 실전에서는 무게 경감을 위해 양각대를 없애고 쓰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출처:Public Domain>

1차 세계대전 당시 M1918들은 콜트나 윈체스터, 말린-록웰 등 저명한 총기 업체들에 의해 생산됐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들 저명 업체들은 진작에 다른 군용 총기 생산에 동원된 상태였다. 그 결과 미국 정부는 새로운 업체인 뉴잉글랜드 소화기 주식회사(New England Small Arms Co.), 즉 NESA에 M1918A2의 신규 생산을 맡기고 1차 대전이 끝난 뒤 락 아일랜드 조병창과 스프링필드 조병창에 보관되어 있던 각종 도구나 설비들을 NESA 측에 넘겼다. 하지만 이것들의 대부분은 도움이 되기보다는 장애물에 가까웠다. 이것들의 절반 이상은 1차 세계대전 당시의 공장 설비에 맞춰진 것들이라 20년 넘게 현대화 된 그 당시의 설비들에는 안 맞아 새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NESA는 당시 미국의 저력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애당초 NESA는 총기 업체가 아니라 총과는 아무 관계도 없던 일을 하던 6개 업체가 급히 모여 만들어진 단체였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전쟁이 벌어져 대량의 총기가 요구되면 기존의 총기 업체들을 확장하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정확히 판단해 총기와 무관한 업체들도 추가로 총기 생산에 동원하기로 한 것이다. NESA를 구성하는 업체들은 전쟁 전에는 식기나 현금인출기, 야구 글러브 등의 스포츠 장비, 사무기기 등을 만들던 곳들이었고 이 업체들은 다시 39개의 하청업체들을 끌어들여 총 45개 업체로 구성되었다.

태평양전선에서 BAR 기관총을 발사하는 미해병대원 <출처: Public Domain>

1942년 8월, NESA가 생산 준비를 서두르는 동안 또 다른 업체가 추가됐다. 바로 우리가 잘 아는 IBM이었다. 1943년 봄부터 NESA와 IBM의 본격적인 양산이 시작되었고, NESA는 거의 17만 정의 BAR을 양산해 미 육군과 해병대의 수요를 충당하는데 성공했다. 한편으로 IBM은 2만 정이 약간 넘는 수량만을 생산했지만, 이는 IBM의 능력 부족 때문은 아니었다. IBM 측은 그 당시 더욱 중요시된 다른 물건을 생산해야 했다- 바로 M1카빈이었다. 미 육군은 IBM에 카빈 생산을 더 집중하라는 의미로 원래 10만 정에 달하던 계약 수량을 최종적으로 2만 정까지 감축한 것이다.

이처럼 총기 생산과 형식 자체에도 큰 변화가 왔지만, 운용면에서도 BAR에는 1차대전과는 다른 변화가 일어났다. 원래 미 육군은 앞서 언급한 대로 4개 분대가 1개 소대를 편성하는 방식이었지만, 1939년에는 3개 분대가 1개 소대를 편성하고 그 대신 각 분대의 인원이 8~9명에서 12명으로 늘어난다. 그리고 각 분대마다 1정의 BAR을 지급, ‘분대지원화기’로 편성했다. 결과적으로 소대에 편제된 BAR의 숫자 자체는 1차대전 당시와 그다지 변화가 없었지만, 운용 개념은 큰 차이가 있었다. 이전에는 소대 차원에서 운용되던 지원화기가 이제는 분대별로 독자 운용됐고, 이에 따라 분대 단위로 독립된 상태로도 과거보다 상당한 수준의 전술 운용이 가능했다. 즉 전투의 최소 단위가 소대에서 분대로 바뀐 것인데, 이는 사실 미 육군이 앞서 나간 혁신이라기보다는 해외, 특히 유럽의 선진 군대들의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2차 대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지상군 분야의 선진국이기보다는 후발 주자였다).

BAR는 미군의 분대지원화기, 즉 분대용 기관총으로 활용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2차 세계대전에서 BAR은 미 육군에게 매우 중요한 화력이었다. 비록 독일군이 사용하던 MG34나 MG42에 비하면 화력은 떨어졌고 그 때문에 소대급에서는 M1919 계열의 탄약띠 급탄식 기관총이 추가로 운용되어야 했지만, 적어도 분대급에서 BAR은 상당한 기동성을 제공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독일의 MG34/42는 무게와 부피라는 면에서는 아무래도 BAR에 비해 불리한 것이 사실이었고, 실제로 이런 BAR의 장점을 잘 활용하는 경우에는 나름 전술적인 우위를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미군 분대는 소총수들까지 모두 반자동 소총으로 무장한 만큼, 전체 분대의 화력으로 보면 의외로 BAR의 지원을 받는 미군 분대도 생각만큼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유럽 전선에서도 BAR은 여러모로 활약했지만, 태평양에서도 BAR은 미 육군 및 해병대의 분대지원화기로서 크게 활약했다. 사실 일본군의 경기관총들과 비교했을 때 BAR은 다소 뒤처지는 면은 있었다. 11년식 같은 예외는 그렇다 쳐도, 실제 가장 많이 사용된 96식이나 99식 경기관총과 비교하면 BAR은 탄창 용량이나 총열 신속 교환 능력 등에서 열세이기는 했다. 하지만 야전에서 고장 없이 계속 사격할 ‘신뢰성’이라는 면에서는 BAR이 확실히 앞섰고, 무엇보다 미군은 어지간하면 편제대로 BAR과 탄약이 있었지만 일본의 경우 -특히 전쟁 막바지로 갈수록- 편제 상에는 있는 경기관총이 없는 채 투입되는 분대도 많았으며 탄약 역시 부족했다. 여기에 분대원 전원이 볼트액션 소총으로 무장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M1소총과 BAR로 무장한 미군 분대는 거의 같은 규모의 일본군 분대에 대해 확실한 화력 우위를 가질 수 있었다.

BAR는 미군에게 중요한 화력을 제공했다. 사진 속의 대원은 운반손잡이가 달린 모델을 사용중이다. <출처: Public Domain>

2차 대전 이후의 운용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BAR은 한동안 미군의 주력 분대지원화기로 남게 된다. M1개런드를 대체할 신형 자동소총이 소총과 분대지원화기의 역할까지 동시에 대체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막상 기대의 유망주이던 M14소총의 생산과 배치는 1960년대 초반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자연스럽게 M14를 기반으로 제작된 분대지원화기 M14A1(사실상 M14에 양각대와 완전 자동 기능, 보다 반동 제어가 쉬운 형태의 스토크를 장착했을 뿐 그 외에는 큰 차이가 없음) 역시 배치가 늦어져 버렸다. 간단하게 말해, 미군은 2차대전이 끝나고 약 15~16년간 BAR을 주력 분대지원화기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한국전에 참전한 레인저 대원들이 BAR로 무장하고 있다. 제2 레인저 중대는 흑인병사들로만 구성된 부대였다. <출처: 미 육군>
이 기간 동안 미군은 한국전쟁이라는 또 한 차례의 큰 전쟁을 치러야 했는데, 이 전쟁에서 BAR은 주력 분대지원화기로 크게 활약했다. 비록 미군에 맞서는 공산군은 이론적으로는 화력이 더 강력한 데그차레프 DP28 경기관총으로 무장한 분대를 동원했지만, DP28은 탄창 용량은 커도 전체적으로 BAR에 비해 사용이 불편한 무기인데다 전쟁 초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공산군 부대들 -특히 중국군- 은 편제 상 어떻고를 떠나 현실적으로 자동화기 부족으로 인해 미군만큼의 비율로 분대지원화기를 배치-운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 기간 중 미국은 자국군뿐 아니라 6.25에 참전한 동맹국 군대 및 우방국들에 공여해야 하다 보니 또 한 차례의 BAR 부족을 겪었고, 특히 1950년 11월~1월 사이에 벌어진 대대적인 후퇴와 혹한기 전투 과정에서 다량의 BAR이 소모되었다. 그로 인해 61,000정의 BAR을 추가로 생산해야 했다(당시 이 총의 생산을 맡은 곳이 타이프라이터 업체인 로열 타이프라이터였다).
월남전에 참전한 우리군의 활약을 소개한 대한뉴스. 56초 쯤에 BAR가 보인다. <출처: 유튜브>

1960년대부터 미군은 빠른 속도로 BAR을 퇴역시키지만 그렇다고 BAR의 시대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BAR은 미국의 우방국들에 널리 퍼지게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M16소총이 보급될 때까지 M1소총과 함께 1970년대까지 중요 화기로 사용되었다. 베트남에서도 거의 전쟁 전 기간 동안 다양한 용도로 운용되었고, 필리핀에서는 상당히 최근까지도 사용되었다. 물론 그 외의 다른 수많은 미국 우방국들에서도 BAR은 오랫동안 사용되었고, 일부 국가들에서는 아직까지도 어떤 형태로든 유지되고 있다.


파생형

BAR에는 정말 다양한 베리에이션이 있지만, 여기서는 미군이 정식 채택, 혹은 정식 채택을 염두에 두고 개발하거나 생산된 것들만 따져볼까 한다.

BAR의 미군 채택 베리에이션. 위부터 M1918, M1918A1, M1918A2.

M1918: 최초의 BAR. 1차 세계대전에 가장 먼저 투입된 버전이기도 하다. 문자 그대로 ‘자동소총’에 더 가까운 디자인으로 설계되었으며, 이 때문에 양각대도 없고 반자동 기능이 추가되어있다. 약 10만 정이 생산되었으며 대부분이 M1918A2로 개량되었으나 일부는 원래 상태 그대로 남아 2차대전에 쓰이기도 했다. 또 상당수가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의 홈 가드(향토방위대)용으로 사용됐다.

M1922: 당시의 미국 기병대가 사용하기 위해 개발된 모델. 기병대라고는 해도 당시의 미 육군 기병대는 기계화된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던 중이었다. M1922는 개머리판에 지지대를 추가하고 총열 중간 즈음에 양각대를 설치했으며 총열에도 냉각핀이 추가되었다. 약 500정 정도가 기존의 M1918에서 개조되었다.
M1918A1: 1937년 6월에 제식화된 베리에이션. M1918에 양각대가 추가된 버전이다. 제식화는 되었으나 실제 개조가 진행된 수량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M1918A2: 1938년 6월에 제식화된 베리에이션. M1918 이후에는 실제로 미 육군 및 해병대에 대량으로 운용된 유일한 베리에이션이기도 하다. 특징은 본문 참조. 참고로 원래는 FN 사에서 수입한 발사 속도 조절기와 독립된 권총손잡이가 추가될 예정이었으나 1939년에 이 가능성은 기존 총기와의 부품 호환성을 이유로 원천 봉쇄됐다. 기존의 M1918에서 개조된 물량과 신규 생산 물량이 혼재하며 신규 생산 물량은 1942년에 파이어스톤에서 개발된 플라스틱 개머리판을 장착했다. 2차대전 중에 생산된 물량 외에도 6.25 기간 중에도 어느 정도의 재생산이 이뤄졌다.

M1918A2 실사격 장면 <출처: 유튜브>

제원
(M1918)
BAR의 최초 모델인 M1918.

- 무게 : 7.25kg
- 길이 : 1.194m
- 총열 : 길이 610mm
- 발사 속도 : 500~650발/분
- 탄창 : 20연발
- 사용탄 : .30-06(7.62x63mm)

(M1918A2)

M1918A2.

- 무게 : 8.8kg
- 길이 : 1.215m
- 총열 : 길이 610mm
- 발사 속도 : 300~650발/분
- 탄창 : 20연발
- 사용탄 : .30-06(7.62x63mm)


저자 소개 
 
홍희범
| 군사전문지 편집장

1995년 월간 플래툰의 창간멤버로 2000년부터 편집장으로 출간을 책임지고 있다. 2008년부터 국군방송 및 국방일보 정기 출연 및 기고를 하고 있으며, <세계의 총기백과>, <밀리터리 실패열전> 등을 저작하고 <2차세계대전사>, <컴뱃 핸드건>, <전투외상 응급처치>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