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생방 병과의 정의

화생방(化生放, CBRN-Chemical, Biological, Radiological and Nuclear defense)병과는 화학, 생물, 핵무기의 공격으로부터 아군을 보호하고 피해 확산을 막는 병과다. 처음에는 화학전 임무만 담당했지만 이후 새롭게 위험이 부각되고 전문적인 대처가 필요한 생물학전, 방사능전까지 대비하고 있다. 때문에 대한민국 육군도 제대명을 화학대에서 2011년부터 화생방대로 변경했다. 한마디로 대량살상무기(WMD)에 대처하는 병과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방어 임무를 수행하지만 단어가 주는 이미지 때문에 공격을 펼치는 병과라고 오해하는 경향이 많다. 현재 대부분 국가들이 화생방무기의 사용을 금지하는 조약에 가입하고 있으므로 전시는 물론 평시에도 이들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예를 들어 화학무기 금지협약(CWC) 제1조에 ‘당사국은 화학무기를 개발, 생산, 획득 및 비축, 보유, 이전, 사용하는 것 등이 금지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그럴 뿐이다. 현재 이들 무기의 최대 보유국으로 추정되는 미국, 러시아, 북한 등도 엄연히 조약 가입국이다. 화생방병과가 존재한다는 자체가 적성국이 화생방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당연히 전시에 상대가 화생방 공격을 가한다면 보복 대응해야 한다. 화생방무기를 다루는데 상당한 전문성이 요구되므로 만일 교전 행위에 투입하게 된다면 결국 화생방병과가 해당 임무를 담당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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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생방 병과의 역사

화생방전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화학, 생물, 방사능전을 의미한다. 무기로 사용할 경우 대량 살상이 가능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사실 세부적인 구성, 공격 방법, 효과에서 공통점은 없다. 당연히 탄생과 발전 단계도 다르다. 우선 화학 무기는 고대 전쟁에서 독극물을 뿌렸다는 기록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19세기 말에 국제법으로 살상용 가스 무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했을 만큼 역사가 오래되었다.

화학물질에 의한 대량살상무기로서의 시작과 이에 대한 대처 방법의 등장한 때는 제1차 대전이었다. 1915년 4월 22일, 제2차 이프르 전투 당시에 독일군은 염소 가스로 프랑스군을 공격하며 화학 무기의 새로운 역사를 열었다. 이후 독가스 공격이 벌어지면 병사 개인이 현장에서 즉시 대비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이를 전담해서 처리해야 할 별도의 제대가 필요했다. 그렇게 화학병과가 시작되었다.

이에 비해 생물학전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짧다. 고대 공성전에서 부패한 사체 등을 공격용으로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으나 적진을 오염시키기 위해서라기보다 심리적인 목적이었기에 이런 전투 방법을 생물학전으로 보기는 어렵다. 세균, 바이러스 등이 질병의 원인이라는 사실은 의학과 관련 학문의 발달이 있은 후에서 알게 되었으므로 당연히 무기로 사용을 시도한 것도 20세기 들어서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인류사에서 사람의 목숨을 가장 많이 앗아간 것은 질병이다. 제1차 대전에서 4년 간 1,000만 명이, 제2차 대전에서 6년간 5,000만 명이 죽었지만 그 사이인 1920년대 초에 2년 동안 유행했던 스페인 독감으로 무려 6,000만 명이 사망했다.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생물학 무기는 한번 확산되면 제어하기가 어려워 사용이 쉽지 않다. 때문에 생물학무기를 보유했다고 의심받는 나라는 많지만 아직 밝혀진 실전 사례는 없다.

방사능전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투하되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핵폭탄의 어마어마한 폭발력만 인지했기에 1950년대만 하더라도 핵폭탄을 투하하고 돌격 훈련을 하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방사능을 공격용 수단으로 개발하고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는 방사능의 치명적인 위험성을 인지한 20세기 후반부터 이루어졌다.

핵폭탄은 목표에 도달하기 전까지 막지 못하면 이로 이한 피해는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적의 공격 징후 탐지부터 폭발하기 전까지의 방어는 방공병과의 영역이다. 반면 화생방병과는 전시라면 핵폭탄이 터진 후에, 혹은 핵 오염 물질이 살포된 이후에 안정화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화학전이나 생물학전도 마찬가지다. 역사는 짧지만 화생방은 그만큼 최악의 상황에서 중요한 작전을 펼치는 병과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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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사용하기 어려운 무기

살상력 자체만 놓고 본다면 화생방무기는 가장 적은 투자로 최대의 전과를 올릴 수 있는 효과적인 공격 수단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너무 잔인하고 무차별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각종 조약 등으로 생산, 보유, 사용을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살상과 파괴가 일상인 전쟁에서 전투 수단을 규제하는 것은 모순이라 할 수 있다. 그보다 현실적인 이유는 상대에게 피해를 주면 그 정도로 보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보유하고 있지 않아도 어지간한 국가라면 화학무기는 기존 산업 시설과 재료를 이용해 쉽게 생산해 낼 수 있다. 따라서 대등한 상대와 전쟁을 벌일 때 화생방무기를 사용한다면 당연히 그 이상의 보복도 감내해야 한다. 공격을 받았을 때 대처는 화생방병과의 가장 중요한 임무지만 사실 피해를 완벽히 복구하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내가 받을 피해도 상당하므로 쉽게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제1차 대전 당시에 독가스 사용을 주도했던 독일이 제2차 대전 당시에 유태인 학살에 치클론 B라는 화공품을 대량 사용했음에도 전선에서 대규모 화학전을 벌이지 않았던 이유도 이 때문인 것으로 알려진다. 마치 냉전시대에 핵무기가 세계를 파멸의 위기 속으로 몰고 들어갔지만 워낙 강력해서 강대국 간의 충돌을 막은 것과 비슷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흔히 화생방무기를 가난한 나라의 핵무기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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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임무

앞에 언급한 것처럼 공식적으로 화생방무기를 보유한 나라는 없다. 따라서 화생방병과의 주요 임무는 방어지만 엄밀히 말해 공격을 당했을 때 신속하게 피해를 복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예방 임무도 담당하나 피해가 발생한 후 본격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마치 의무병과와 비슷하다. 실제로 화생방전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의무병과가 담당하고 그 외 시설이나 장비에 대한 부분은 화생방병과의 영역이다.

탐지 측정은 상황 발생 시 화생방병과가 가장 먼저 하는 임무다. 풍속과 풍향에 의해 작용제의 확산 속도가 정해지니 향후 침투 범위를 판단해서 해당 지역에 주둔 중인 아군이나 민간인에게 경보를 내려고 이동로를 통제하도록 상급 부대에 요청한다. 동시에 각종 탐지 장비를 이용해서 오염 물질의 성분을 판단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작용제의 성분을 정확히 판단해야 이에 맞는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다.

탐지 측정이 완료된 후에 실시되는 제독은 화생방병과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 할 수 있다. 제독제로 독성을 중화시키는 것인데 범위가 커다란 지역은 살수차나 분무기에 약품을 타서 살포하고 작용제에 집중 노출된 인원 및 장비는 정밀 제독소를 설치해서 집중적으로 관리한다. 부수적으로 장비를 이용한 연막이나 통제 등의 임무를 수행하기도 하지만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으면 작전 효율 때문에 일선 부대가 직접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성상 화생방병과는 상당한 장비를 운용해야 한다. 작용제의 종류가 많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소모품도 상당하다. 여기에 더해 신속을 요하는 임무가 많기에 보유 장비의 대부분이 기동화, 차량화 되어 있다. 말단 부대에 화생방 주특기 병사들이 배치되기도 하지만 작전의 편의를 위해 대개 사단급 이상의 대규모 부대에서 직할 제대로 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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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