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3.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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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도로프 자동소총

돌격소총의 가능성을 보여준 AK소총의 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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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도로프 자동소총 <출처: Public Domain>

돌격소총의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한 나라는 독일이다. 이 사실은 많은 독자 여러분들이 이미 알고 계실 것이다. 하지만 돌격소총의 가장 핵심적인 아이디어, 즉 ‘권총탄과 소총탄의 중간 탄약을 사용하는 속사성 높은 총기’라는 것 자체는 예상 외로 일찍부터 나타났다. 어떻게 보면 남북전쟁 당시 사용된 스펜서 연발총이나 1894년형 윈체스터 카빈 같은 레버액션식 소총들 상당수가 이런 부류에 속할 것이다. 특히 윈체스터 1894년형은 탄 치수나 위력이라는 면에서 현대의 AK 소총용 M43탄(7.62x39mm)에 근접하는 .30-30탄(탄두 지름 0.3인치=7.62mm, 사용 추진 장약 30그레인=1.94g)을 총과 함께 개발해 사용함으로써 비교적 짧고 가벼운 총으로도 높은 연사 능력을 확보하는(그 대신 사거리와 위력을 약간 희생하는) 현대적 돌격소총의 아이디어를 의외로 비슷하게 실현한 바 있다.

자동장전 화기의 시대에 들어서도 비슷한 사례는 예상 외로 일찍부터 시도되어 나름대로의 성공까지 거뒀다. 1900년대에 개발된 미국의 반자동 소총인 레밍턴 모델8 도 당대의 군용 소총탄들보다 사거리와 위력이 약간 떨어지는 탄약들(.32 레밍턴, .35 레밍턴 등)을 전용으로 개발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뒀다.

레밍턴 모델 8 반자동소총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이런 성공은 어디까지나 민수 시장에 국한된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까지만 해도 각국의 군용 소총탄은 3,000~4,000J 사이의 강력한 위력과 긴 사거리를 자랑했다. 그리고 각국 군대가 이렇게 강력한 소총탄을 고집하는 이상 군용 반자동 소총 혹은 자동 소총의 개발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총의 크기와 무게는 사용탄의 위력, 그리고 약실 압력 같은 요소들에 크게 좌우된다. 간단하게 말해, 강력하고 약실 압력이 높은 탄을 쓸수록 반동이 강한 만큼 총도 더 크고 무거우며 기계적으로도 복잡해지기 쉽다. 특히 크기와 무게는 큰 문제가 된다. 처음부터 가벼워도 10kg, 무거우면 20~30kg까지도 무게를 늘릴 수 있는 기관총이라면 크기와 무게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지만, 처음부터 무게의 제약이 분명한 개인화기인 소총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무리 무거워도 4~5kg 사이를 넘기 힘든 소총이라면 현실적으로 이런 강력한 탄을 사용해서는 반자동 이상의 화기를 만들기는 어렵다. 자동 사격으로 운용하는 순간 강력한 반동으로 제어가 어려워질 것은 누가 봐도 뻔하니 말이다.

설계자인 V. G. 표도로프 <출처: Public Domain>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그리고리예비치 표도로프(Vladimir Grigoryevich Fyodorov) 역시 이런 제약과 한계를 몸소 뼈저리게 겪은 인물이다. 1874년에 태어난 그는 포병 장교가 된 뒤 일찌감치 그 재능을 인정받아 1900년부터 각종 연구 개발에 종사하기 시작했는데, 일찌감치 1906년에는 당시 러시아군의 제식 소총탄이던 7.62x54mm R탄을 사용하는 반자동 소총의 시제품을 개발해 군에서 테스트 받기도 했다.
1906년 제시된 표도로프의 시제 자동소총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7.62x54mm R탄, 혹은 7.62mm 러시안탄의 문제는 비교적 일찍부터 분명해졌다. 탄피의 형태 자체가 림드(Rimmed), 즉 탄피 바닥의 테두리가 바깥으로 심하게 돌출된 데다 탄피의 경사도 심해 탄창식 자동장전 화기에서는 작동 신뢰성을 떨어트릴 우려가 만만찮았다. 게다가 탄의 길이도 길고 위력도 강한 만큼 소총에서는 반동도 강하고 자연스럽게 연사 능력도 떨어지게 됐다.
6.5mm 표도로프 탄의 단면도. 실물은 남아있지 않다. <출처: Public Domain>
그래서 표도로프는 탄 자체를 새로 개발해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그는 6.5mm구경의 림리스(Rimless) 식, 즉 탄피 바닥의 테두리가 탄피 자체의 지름과 동일한 탄약인 6.5mm 표도로프탄을 개발했다. 이 탄은 형태 자체도 작동성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데다 구경이 작은 만큼 탄도 가벼워져 그만큼 반동도 낮았다. 총구 에너지는 3,140J로 3,550J의 7.62x54mm R탄에 비하면 약간 약해지기는 했지만(800mm 길이의 시험용 총열에서의 결과) 그래도 큰 문제는 아니었고, 비록 작동 신뢰성은 생각보다 좋지 못했지만 1913년의 러시아군 테스트에서는 나름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7.62mm탄을 사용한 표도로프의 1912년 시제자동소총 <출처: Public Domain>
그러나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면서 표도로프의 소총 개발 프로젝트는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표도로프는 프랑스로 파견되어 서부전선의 상황을 시찰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그곳에서 프랑스의 쇼샤 경기관총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보게 된 것이다. 여기서 그는 보병이 휴대 가능한 ‘소총에 가까운 자동화기’가 러시아군에도 있어야 한다고 여겼고, 1916년 1월에 러시아로 귀국하자 곧바로 이런 생각을 실천에 옮기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설계했던 반자동 소총을 베이스로 완전 자동 사격이 가능한 자동소총을 개발하는데 착수했다.
표도로프의 대표작인 1916년형 표도로프 자동소총 <출처: Public Domain>
새로운 총의 개발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됐고, 1916년 여름 무렵에는 이 새로운 총의 시제품 8정이 러시아군 일선 부대에서 실전 테스트를 받게 된다. 이런 여러 과정을 토대로 러시아 육군은 표도로프의 신형 소총을 최소한 25,000정 생산하기로 목표를 잡았다. 그 과정에서 이 총은 ‘1916년형 표도로프 자동소총’, 혹은 “아프타마트(Avtomat) 1916”으로 불리게 된다. “아프타마트”는 러시아가 자동소총 혹은 돌격소총을 가리키는 단어로 이때 처음 쓰이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AK가 “아프타마트 칼라시니코바(Avtomat Kalashinikova)”, 즉 “칼라시니코프 돌격소총”의 약자이니 말이다.
표도로프 자동소총의 좌측 모습 <출처: Public Domain>

참고로 이 총기는 영미권에서는 페도로프 소총으로 알려져 있다. 개발자인 표도로프(Федоров)의 이름을 영어식으로 바꾸다보니 페도로프(Fedorov)로 잘못 알려진 탓이다.


돌격소총의 원조?

표도로프 자동소총 <출처: Public Domain>
표도로프 자동소총, 혹은 “아프타마트 표도로바(Автомат Федорова, Avtomat Fyodorova)”는 구조 자체로 보면 아직 시행착오기라 할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이 총의 기본 작동 구조는 쇼트 리코일, 즉 총열이 노리쇠와 함께 짧은 거리(이 총의 경우 약 10mm)를 후퇴해 노리쇠의 개방 타이밍을 늦춰주는 방식으로, 보통 자동소총이라면 피스톤이나 가스활대 등을 이용하는 가스압 작동 방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필요 이상으로 복잡한 구조를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100년도 더 전인 1916년에만 해도 어느 구조가 가장 자동소총이나 경기관총에 적합한지에 대한 논의는 방향이 잡히지 않은 상태였고, 또 가스 피스톤이 지나치게 총의 부피와 무게를 더한다거나 총열 안에 가스를 피스톤 쪽으로 뽑아주는 구멍인 가스 포트가 정밀도에 영향을 끼치는 것 아니냐는 등의 의구심이 아직 존재하던 터라 쇼트 리코일 구조의 선택도 나름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이 구조의 도입으로 발사 속도가 분당 350~400발이라는 매우 낮은 수준으로 떨어져 자동 사격 시의 컨트롤도 예상보다 나쁘지 않았다.
기본 분해가 이뤄진 표도로프 자동소총. 비교적 복잡하고 분해 조립이 어려운 단점이 있었다.<출처: Public Domain>
구체적으로 표도로프 자동소총의 작동은 이렇다. 고정쇠(로킹 블록)가 총열과 노리쇠를 함께 붙잡아 고정시킨 상태에서 격발이 이뤄지며, 격발되면 총열과 노리쇠가 함께 10mm 정도를 후퇴한다. 10mm 쯤 후퇴하면 고정쇠가 움직여 총열과 노리쇠의 결합이 풀리며, 총열은 멈추지만 노리쇠는 계속 후퇴해 탄피를 배출한다. 그 뒤 복좌용수철의 힘에 의해 노리쇠가 다시 전진, 새 탄을 약실로 밀어 넣고 닫히면 다시 총열과 함께 결합되어 발사 준비가 마쳐진다.
표도로프 작동의 기본 원리. 형태는 조금 달라도 원리는 대략 비슷하다. 노리쇠와 총열이 로킹 블록에 함께 걸려 10mm 쯤 후퇴하다 로킹 블록이 아래로 내려가면 총열은 멈추고 노리쇠는 풀려 뒤로 후퇴하게 된다.<출처: Public Domain>
자동소총이니 자동-반자동 조정간도 달려있었고, 또 화력 유지를 위해 탄창도 25연발 짜리가 달려있다. 여기에 앞부분에는 수직 손잡이가 달려있는데, 이것은 프랑스의 쇼샤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표도로프 자동소총의 상부 모습 <출처: Public Domain>
1916년에 완전 자동 소총으로 바뀌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탄약이다. 사용 탄약이 일본군이 사용하던 6.5mm 아리사카(6.5x50mm SR)탄으로 바뀐 것이다. 이 총을 7.62mm 러시안에 맞게 재설계하려면 근본적인 재설계가 불가피했고, 그렇다고 원래의 6.5mm 표도로프 탄약을 새로 생산하는 것도 곤란했다. 러시아는 기존의 소총조차 턱없이 부족하던 터였으니 소총탄을 새로 생산할 여력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침 러시아는 당시만 해도 같은 연합국이던 일본으로부터 76만 정의 38식 소총과 그에 맞는 4억 발의 6.5mm 탄약을 수입한 상태였다.
실제 표도로프 자동소총에 사용된 6.5mm 아리사카 <출처: Public Domain>

물론 일본의 6.5mm탄과 표도로프가 이전에 설계했던 6.5mm 탄약이 구경만 갖고 탄피 길이나 약실 압력 같은 규격이 크게 다르다면 새로운 탄약으로의 재설계에는 큰 곤란이 뒤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제 6.5mm탄의 적용은 아주 쉽게 이뤄졌다. 총 자체의 근본적인 재설계는 거의 없었고, 약실 규격이나 가늠자, 탄창 등 몇 부분의 재설계만으로 쉽게 끝났다.

이는 애당초 전쟁 전에 설계했던 6.5mm 표도로프탄 자체가 일본의 6.5mm탄이나 스웨덴의 6.5mm 마우저 탄약 등 이미 존재하던 6.5mm 탄약들을 강하게 참고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의 6.5mm탄은 러일전쟁 당시의 경험 때문에 러시아군이 아예 제식 탄약을 6.5mm로 바꾸려고 검토하게 만들 정도로 강한 영향을 끼쳤고, 자연스럽게 6.5mm 표도로프와 6.5mm 아리사카는 상당히 비슷한 규격의 탄(6.5mm 표도로프는 6.5x51mm로, 탄피 길이나 굵기도 매우 비슷하다)으로 완성된 것이다.

CG로 구현된 표도로프 소총의 작동방식 <출처: 유튜브>
이 6.5mm탄의 적용으로 러시아는 지금도 표도로프 자동소총을 ‘세계 최초의 돌격소총’이라고 주장한다. 돌격소총이 ‘자동 사격이 가능’하며 ‘자동 사격의 컨트롤을 개선하기 위해 기존 소총탄보다 약한 탄약’을 사용한다는 개념으로 보면 틀린 것은 아니다. 비록 6.5mm 아리사카 탄약이 돌격소총탄으로 분류되기에는 여전히 상당히 강한 탄약(5.56mm나 7.62x39mm 같은 현대 돌격소총탄과 비교하면)이지만, 기존 소총탄보다 약한 탄을 자동소총을 위해 골랐다는 점은 나름 하나의 진보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표도로프 소총의 실제 사격장면 <출처: 유튜브>

참고로 러시아에서 테스트한 결과에 의하면 짧은 점사(아마도 2~3발 정도. 이 총에는 기계적 점사 기구가 없어 사수가 직접 끊어 쏴야 한다)로 사격할 경우 200m 거리에서도 0.6x0.5m 크기의 표적을 꾸준히 맞출 수 있었고 400m에서도 1.1x0.9m의 표적을 명중시킬 수 있어 충분히 사람을 맞출 수 있었다. 800m에서는 2.1x1.85m 크기 표적을 맞히는 수준으로 떨어져 러시아군에서는 이 총의 점사가 500m까지만 유효하다고 평가했지만, 이 정도만 해도 실전에서는 충분히 위협적인 수준이었다. 다만 소총이라는 이유 때문에 본격적인 경기관총에 비하면 꽤 빨리 과열된다는 점(300발 사격하면 아예 작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과열)은 어쩔 수 없는 한계였다.


제한된 사용과 생산

1차대전 중 러시아군에서 이뤄진 시제품의 실전 평가는 꽤 호의적이었다. 8자루의 표도로프 자동소총이 러시아 육군의 1개 중대에 시험적으로 배치되었으며 이곳에서는 일종의 지원화기처럼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평가를 내렸다. 당시 이를 시험했던 중대에서는 자동소총을 가진 사수와 38식 소총으로 무장한 부사수를 1개 팀으로 운용했는데, 부사수가 38식 소총으로 무장한 이유는 그가 대량의 탄약을 운반해야 했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사수와 부사수가 같은 탄약을 공유하는 편이 효율적인 데다, 당시의 시제품은 탄창조차 총에 맞춰 수작업으로 조정했기 때문에 총 하나마다 단 하나의 탄창만 제대로 작동하는 만큼 재장전은 38식 소총용 5연발 클립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부사수는 다량의 클립을 휴대해야 했고, 또 긴 재장전 시간 동안 소총을 이용해 사수를 엄호해야만 했다.

제정 러시아 붕괴 후 신생 소련군은 단기간이지만 표도로프 자동소총을 재생산, 일부는 아래 사진처럼 양각대를 추가해 일종의 지원화기 비슷하게 사용했다. <출처: Public Domain>
이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표도로프 자동소총은 지원화기로서 유용하리라는 평가를 얻었는데, 불행히도 실전에서의 효용성은 입증될 기회를 놓쳤다. 이 총으로 무장한 중대가 1917년의 러시아군 마지막 대공세에서 제대로 된 실전 보고를 작성할 기회도 없이 궤멸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10정의 총이 러시아 해군 항공대에도 보내졌는데, 여기서는 이 총이 기존에 사용하던 프랑스제 쇼샤 경기관총보다 우수하다는 평가를 보낸 바 있다.
표도로프 자동소총은 지원화기로서 가능성을 입증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출처: Public Domain>
그러나 1917년에 신형 자동소총의 주문은 25,000정에서 5,000정으로 급감했다. 전황이 악화되면서 기존 총기의 생산만으로도 러시아의 산업 능력이 크게 딸리는 상황인데다 만만찮게 비싸고 생산에 시간이 걸리는 이 새로운 총의 생산은 러시아 군수 산업에 적잖은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1917년에는 혁명이 벌어졌고, 결국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100정도 채 안 되는 물량만 출고되고 말았다.
소련군은 표도로프를 개조해 수랭식, 혹은 루이스 기관총의 덮개를 추가한 공랭식으로 운용할 것도 검토했으나 결국 실험 단계를 넘어서지는 못했다.<출처: Public Domain>

혁명 이후 공산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 총들은 대부분이 공산군의 손에 들어가 적백 내전에서 실전에 활용되었다. 그리고 일선에서의 평가는 꽤 좋았다. 비록 신뢰성 등에서 부정적인 평가도 있었지만(특히 분해조립과 손질이 상당히 까다로웠다), 종합적으로는 추가 생산과 배치가 필요하다는 결정이 내려졌고 이를 토대로 1922~1925년 사이에 추가 생산이 이뤄졌다. 표도로프 자동소총의 전체 생산량이 3,200정인데, 혁명 이전에 생산된 물량이 겨우 100정임을 감안하면 이 총의 생산량 절대다수가 공산 정권 하에서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925년에 생산은 중단된다. 신생 소련 정부는 이 해에 군 탄약 표준화를 단행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들어온 수많은 다른 탄약들로 인해 군 보급과 훈련에 큰 지장이 생겼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수입되어 러시아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탄약을 쓰는 총들은 최우선 정리 대상이었고, 자연스럽게 표도로프 자동소총 역시 생산이 중단되었을 뿐 아니라 군에서의 사용도 중단되어 모두 회수된 뒤 창고에 보관되었다.

1939~1940년 사이의 핀란드 침공(겨울 전쟁) 당시 촬영된 소련군 선전 사진. 표도로프 자동소총을 들고 있다. 이 총이 촬영된 정말 흔치 않은 당대의 사진이다. <출처: Public Domain>
이 총이 마지막으로 실전에 투입된 것은 1939~1940년의 ‘겨울 전쟁’이었다. 당시 핀란드를 침공한 소련군은 예상 밖으로 강한 핀란드군의 저항에 큰 피해를 입었고, 그 과정에서 핀란드군의 라티 경기관총이나 수오미 기관단총 등에 대항할 소형 자동화기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탄약 호환성 같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보관되어 있던 표도로프 자동소총을 불출해 일선에 지급했는데, 대부분이 군 정보부대에 지급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이 전쟁 과정에서 대부분의 표도로프 자동소총이 소모된 것으로 추정된다.
핀란드군이 노획한 표도로프 자동소총으로 전용 교범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출처: Public Domain>

표도로프 자동소총은 비록 전술적으로는 상당히 진보되고 나름 가치를 입증한 총이었지만, 여전히 돌격소총이라고 분류되기에는 강력한 편이었고 무게와 부피도 돌격소총으로 분류되기에는 큰 편이었다. 게다가 구조가 복잡해 분해와 손질도 불편하고, 야전 신뢰성에도 한계가 있어 그 자체로 러시아군이나 그 뒤를 이은 소련군의 소화기 체계에 큰 영향을 끼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이 총의 역사적 가치는 무시할 수 없다. 이 총이야말로 그 뒤의 소련 자동소총과 돌격소총의 시조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총의 디자인은 그 뒤에 나온 시모노프나 토카레프 자동-반자동 소총들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고, 또 필요하다면 탄약 자체를 바꿔서라도 컨트롤 가능한 자동소총을 만든다는 돌격소총의 발상은 후대에 나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2016년에 발행된 표도로프 자동소총 기념 우표. 러시아는 표도로프 자동소총이 세계 최초의 돌격소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출처: Public Domain>
설계자인 표도로프 자신도 소련의 자동화기 설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비록 제정 러시아군의 고위 장교였지만 그는 공산 혁명 후에도 소련군에 남아 다양한 총기를 설계했다. 비록 그가 설계한 총기들 중 소련군에 직접 채택된 것은 찾기 힘들지만, 소련을 대표하는 핵심 총기 설계자들 대다수-바실리 데그챠료프, 게오르기 슈파긴, 세르기에 시모노프 등등-가 그를 통해 자동화기 설계의 기초를 배웠다. 그의 제자들이 사실상 2차 대전 당시 소련이 사용한 자동화기 대다수를 설계한 것을 감안하면 표도로프가 ‘소련 자동화기의 아버지’라고 불릴 수도 있을 것이다.
Forgotten Weapons의 해설 동영상 <출처: 유튜브 Forgotten Weapons>

표도로프 본인은 스탈린 시대의 가혹한 대숙청도 뚫고 살아남았고, 1943년에는 공병 중장으로 승진했으며 그전인 1928년에는 소련 노동 영웅으로 추대되는 등 정치적으로도 충분한 입지를 굳혔다. 1966년에 92세로 모스크바에서 세상을 떠났으니, 이 정도면 당시의 러시아 총기 설계자로는 아주 성공적인 삶을 산 셈이다.


제원

- 무게 : 4.4kg(25발 탄창+탄약 추가 시 5.2kg)
- 길이 : 1,045mm
- 총열 길이 : 520mm
- 사용탄 : 6.5x50mm SR(6.5mm 아리사카)
- 발사속도 : 350~400발/분
- 탄창 : 25연발
- 총구 초속 : 654m/s


저자 소개  

홍희범 | 군사전문지 편집장

1995년 월간 플래툰의 창간멤버로 2000년부터 편집장으로 출간을 책임지고 있다. 2008년부터 국군방송 및 국방일보 정기 출연 및 기고를 하고 있으며, <세계의 총기백과>, <밀리터리 실패열전> 등을 저작하고 <2차세계대전사>, <컴뱃 핸드건>, <전투외상 응급처치>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