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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종전선언해도 유엔사 유지… 근무요원 2배 이상 늘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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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2.08 03:13

'유엔군 업무 총괄' 웨인 에어 유엔사 부사령관 인터뷰

비(非)미군 출신으론 최초로 유엔사 부사령관에 오른 웨인 에어 캐나다 육군 중장이 7일 서울 용산 미군기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비(非)미군 출신으론 최초로 유엔사 부사령관에 오른 웨인 에어 캐나다 육군 중장이 7일 서울 용산 미군기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웨인 에어(Wayne Eyre) 유엔군사령부(UNC) 부사령관(53·캐나다 육군중장)은 7일 종전(終戰)선언 이후의 유엔사의 위상과 관련, "유엔사는 확고하고 항구적인 평화 체제가 정착될 때까지 지속적인 지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북이 이달 말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에 합의할 경우 유엔사가 해체·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가 군 안팎에서 제기되는 데 대해 종전선언 이후에도 한반도 평화 체제가 확고히 정착될 때까지 유엔사가 존속할 것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6·25전쟁 당시 미군 등 파병 16국과 한국군을 통솔했던 유엔사는 1953년 휴전 이후 정전 체제를 유지·관리하는 역할을 해왔다. 유사시 6·25 참전국들로부터 병력·장비를 제공받아 다시 북한과 맞서는 대한민국 안보의 파수꾼이다. 유엔군사령관은 한미연합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이 겸임하지만 업무가 많아 실질적인 유엔사 업무는 부사령관이 총괄한다. 에어 중장은 작년 7월 비(非)미군 장성으로는 처음으로 유엔사 부사령관에 취임했다.

에어 중장은 이날 서울 용산 미군기지 내 집무실에서 본지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정전협정은 지난 65년간 한반도의 안정을 뒷받침해 왔다"며 "유엔사는 정전협정 집행과 남북 대화 촉진, 한국 평화와 안정을 위한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 최적화된 단독 사령부로서 진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종전선언은 말 그대로 정치적 선언이기 때문에 적어도 평화협정 체결 전까지는 유엔사가 존속돼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평화협정 체결 후의 유엔사 위상에 대해선 "얘기하기 너무 이르다. 정치적인 수준의 결심이 필요한 사안"이라면서도 "유엔사는 한국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69년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고 앞으로도 이를 지속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유엔사가 달라진 형태로 지원 역할을 계속하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에어 부사령관은 종전선언 이후 주일 미군 기지에 있는 유엔사 후방 기지의 역할과 위상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유엔사 후방 기지는 미·일 양국 간 소파(SOFA·주둔군지위협정)에 의해 유지되는 것으로 미·일 양국 간 행정협정을 변경하면 변화가 가능하지만 현재 약화 움직임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지난 수년간 대북 제재와 관련해 (유엔사 후방 기지의) 활용도가 높아졌다"고 했다. 석유 밀수를 위한 북한의 불법 해상 환적 감시 등 대북 제재 이행을 위해 전력 제공국(17국)들의 함정·초계기들이 유엔사 후방 기지를 활용하는 빈도가 크게 늘었단 것이다.

유엔군사령부 역할 그래픽

에어 부사령관은 이날 지난 수년간 유엔사 참모 조직 강화 등 '유엔사의 독자적 역할'이 실질적으로 강화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평상시 유엔사 근무 요원을 10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며, 지난 5년간 유엔사 참여국들의 키리졸브 등 한·미 연합훈련 참가가 늘었다"며 "유엔군사령관은 매달 전력 제공국 대사단을 초청해 회의를 열고 각종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30~40명 수준이던 유엔사 근무 요원이 2~3배 늘어나는 셈이다. 호주 등 8국이 유엔사 참모 요원을 파견 중이고, 지난해 8월 마크 질레트 미 육군 소장이 유엔사 참모장에 취임했다. 종전엔 주한 미군 참모장이 유엔사 참모장을 겸직했지만 처음으로 유엔사 단독 참모장을 두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유엔사 강화가 전작권(전시 작전통제권)의 한국군 전환에 대비해 미국이 '딴살림'을 차리려는 의도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에어 부사령관은 "오해"라고 했다. 그는 "용산기지 평택 이전에 따라 미군 한 사람이 2~3개 직위를 겸직하기 어려워졌고 한·미 동맹에 대한 국제사회 지원 강화 등을 고민해 유엔사 강화가 추진된 것"이라고 했다.

[웨인 에어 부사령관은…]

캐나다 사관학교 졸업, 보스니아·아프간 거쳐 非미군 출신 첫 취임

비(非)미군 출신으론 최초로 유엔사 부사령관이 된 웨인 에어 중장은 열두 살에 캐나다 육군 유소년 생도가 되며 군과 인연을 맺었다. 캐나다 로드사관학교와 통합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988년 임관한 그는 패트리샤 공주 경보병연대(PPCLI) 2대대에서 복무를 시작했다. 6·25전쟁 당시 한국에 가장 먼저 도착한 캐나다군 부대이자 1951년 가평전투에 참전했던 부대다. 에어 부사령관은 키프로스에서 소총 소대장으로 유엔군 임무를 수행한 뒤 크로아티아·보스니아 등에서 평화 유지를 위해 활동했다. 미 18공수군단 작전 부사령관으로 미군과 함께 복무한 경험이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두 차례 복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