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의 역사

19세기말 미군은 급격히 빠른 속도로 신형 총기들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M1892 크랙(Krag) 자동장전소총이나 M1895 리 네이비(Lee navy) 소총 등이 채용되었고, 콜트(Colt)나 스미스&웨슨(Smith & Wesson)에서 만든 다양한 리볼버들이 채용되어 미서전쟁(American Spanish War, 1898)에서 활약했다. 그러나 바로 이 미서전쟁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리볼버의 한계를 가르쳐준 미서전쟁

미국은 미서전쟁을 통해 4개월만에 스페인을 제압하고, 쿠바와 필리핀을 식민지로 점령하면서 제국주의 국가로 부상했다. 특히 필리핀 전선에서는 듀이(George Dewey) 제독의 함대가 1898년 5월 1일 마닐라만으로 돌입하여 스페인군함을 모두 격침시킴으로써 전선을 조기에 제압하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성공에 바탕하여 이듬해인 1899년 5월부터 미 해병대 병력 800여명이 욜로섬에 상륙했다. 최초에는 점령은 평화로웠지만 점차 무슬림인 모로(Moro)족들의 반발이 심해졌다.

특히 기독교인을 죽이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던 모로족 극렬분자인 "후라멘타도(juramentado)"는 미 해병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는데, 이를 모로족 반란이라고 일컫는다. 특히 후라멘타도들은 전투시 출혈에도 싸움을 하기 위해 미리 지혈대를 묶어놓고, 마약까지 복용하며 고통을 참아가면서 치열하게 싸웠다. 당시 미군 장교들은 45구경 탄환을 사용하는 M1873 싱글액션 아미(Single Action Army) 리볼버를 대신하여 구경이 작은 38 롱 콜트(Long Colt) 탄환을 사용하는 콜트 뉴 아미(Colt New Army) 1892 더블액션 리볼버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 탄환은 150그레인 무게의 탄자에 총구초속은 770fps 수준으로 저지력이 다소 빈약했다. 이 탄환은 군용 권총탄으로서도 부족했지만 마약으로 찌든 후라멘타도를 제압하는데는 역부족이었다.

모로족 반란의 진압에 나선 미군들은 특히 권총의 화력부족에 당혹감을 느꼈다. 보고서에 따르면 후라멘타도는 미군이 실린더 채로 쏟아부은 38 롱 콜트 탄환을 모두 맞고서도 전진하여 크리스 단검으로 사수의 목을 베어버렸다고 한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자 공포에 사로잡힌 미군은 우선 예비용으로 보관하고 있던 대구경의 싱글액션아미 리볼버를 다시 지급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45구경탄을 사용하는 콜트 M1902 더블액션 리볼버도 급히 5천여 정이 구매되어 일선에 배치되었다. 이와 함께 윈체스터사의 펌프액션 샷건도 저지력을 인정받아 미 육군과 해병대에서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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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45구경 자동권총을 찾아서

이에 그치지 않고 미군은 병기위원회(Ordnance Board)를 구성하였는데, 추후 톰슨 기관단총을 만든 존 톰슨(John T. Thompson) 대령과 루이스 라가르데(Louis A. La Garde) 대령이 이끌었다. 이 위원회는 근거리 전투에서 적을 확실히 제압하기 위하여 45구경 권총탄을 사용하는 자동권총을 채용할 것을 권고했다. 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미 육군이 38구경 리볼버를 대신하여 45구경 자동권총을 채용하겠다고 밝히자 몇개의 회사들이 신형권총 사업에 관심을 보였다.

심지어는 DWM사는 루거(Luger) 권총을 45구경으로 만든 루거 45 시제권총을 만들어 제출하기도 했다. 당시 콜트사는 천재적인 총기설계자인 존 브라우닝의 설계로 38 슈퍼(Super) 탄환을 사용하는 자동권총을 보유하고 있었다. 브라우닝에게 이 권총을 45구경으로 업그레이드 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다.

1906년 시작된 권총의 시험평가에는 콜트, 새비지(Savage), 스미스&웨슨, DWM, 노블(Knoble), 베르그만(Bergmann), 화이트메릴(White-Merrill) 등에서 만든 시제권총들이 참가했다. 이 중에서 오직 새비지와 브라우닝 설계의 콜트 시제권총만이 추가 평가를 위해 선정되었다. 그러나 추가적인 시험평가 후에도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자, 미 육군은 두 회사에 설계보완을 요청했다. 이 요청에 따라 콜트사에서 만들 새로운 권총은 당연히 브라우닝이 설계를 이끌었다. 그는 프레드릭 무어(Fred Moore)라는 젊은 콜트사의 직원과 함께 천신만고 끝에 새로운 권총을 만들어냈다.

그리하여 1911년 3월 3일 미 육군은 새롭게 제출된 권총으로 새로운 내구성평가를 시작했다. 권총마다 100발을 발사하고 5분간 총기를 식힐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1천 발의 발사가 끝나면 총기를 분해소지 한 후 윤활유를 발랐다. 그리고 6천 발을 발사한 이후에는 총기에 불량탄환을 집어넣고 발사시험을 실시했다. 시험총기는 물과 진흙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산화용액(acid)에도 담궈졌다. 이런 고문 속에서도 브라우닝의 설계는 모든 시험평가를 단 한차례의 탈락없이 통과해냈다. 6천 발의 내구성시험을 통과한 첫 권총이 바로 콜트의 설계였다. 

1911년 3월 20일 미 육군 병기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결과를 발표했다.

"위원회의 의견은 2개의 권총 가운데 콜트사의 것이 우수하다는 것이다. 콜트 권총은 더욱 신뢰성이 높고, 내구성이 뛰어나며, 더 쉽게 분해되어 파손된 부품의 교체가 쉽고, 더욱 정확성이 높다."

위원회의 의견이 발표된 지 9일 만에 미 육군은 새로운 권총을 콜트 자동권총, 45구경, M1911로 분류하고 군용 권총으로 제식채용하였다. 초기에 콜트가 납품한 1911 가격은 1정당 14불25센트였다. 미 육군은 콜트 뿐만 아니라 스프링필드(Springfield)사에서도 생산할 수 있도록 요구했고, 계약조건이 정리되자 1911년 5월 5일 미 육군은 콜트에 모두 31,344정의 1911권총을 계약금액 49만불에 납품받는 계약을 공식 체결했다. 그리고 2년 후인 1913년 해군과 해병대도 1911 권총을 제식채용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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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서 인정받다

1911 권총은 권총이 주무장인 기병대에 우선적으로 지급되었다. 강력한 저지력과 신속한 탄창교환이 가능한 1911 권총은 배치되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일선에서는 리볼버를 대신하여 1911 권총을 요구해왔지만 수요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한 1911 권총의 진면목이 빛난 것은 역시 전장터였다. 1916년 멕시코 전쟁에서 미군은 항공기, 무선전보통신, 군용차량 등 새로운 군사기술을 적용하면서 미래 전쟁을 시험했는데, 바로 그러한 시험 중에 1911 권총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1917년 치머만 전보(Zimmermann Telegram)가 발견되면서 그간 유럽의 전쟁을 방관하던 미국은 드디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결정했다. 참전을 결정할 당시에 미군이 보유한 1911권총은 겨우 6만8천 정이 전부였다. 파병에 필요한 총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대량생산이 요구되었는데, 이는 콜트사가 홀로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에 따라 콜트와 스프링필드 이외에도 레밍턴-UMC사도 생산에 참여하여 양산이 시작되었고, 1차대전 종전까지 약 58만여 정이 생산되어 누적 보유량은 72만3천여 정에 이르게 되었다.

프랑스 전선에서 M1911은 장교 뿐만 아니라 부사관들에게도 지급되었다. 그러나 이외에도 소총으로 무장하지 않은 병사들에게는 오직 권총만이 주무장이었으므로, 이들에게도 1911 권총이 주어졌다. 1911 권총의 파괴력은 미군 뿐만 아니라 독일군에게도 알려지면서, 45구경 탄환에 맞으면 '신사모 만한 구멍이 뚫린다'라는 근거없는 믿음까지 퍼져나갔다.

그러나 1911권총의 능력을 보여준 가장 극적인 사례는 미군 최대의 전투인 아르곤 전투에서 이뤄졌다. 제328 보병연대 소속의 앨빈 요크(Alvin C. York) 상병은  1918년 10월 8일 223고지 점령을 위한 전투에 투입되었다. 전투에서 요크는 뛰어난 저격솜씨로 독일군을 제압하면서 적의 기관총 진지를 압도했다. 불리해진 독일군들이 착검돌격을 해오자 요크는 1911 권총으로 달려오는 6명을 모두 쓰러뜨리면서 적을 압도했다. 엄청난 기세에 질린 독일군 지휘관은 요크의 분대에 항복했는데, 이 전투로 요크는 무려 132명의 독일군을 포로로 잡고 기관총을 30정이나 노획했다.

요크의 교전 사례는 권총이 전장에서 얼마나 유용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가 되었다. 통상 소총이 중심이 되는 전장에서 권총은 쓸모없는 도구로 치부되기 일수였지만, 비상상황에서 권총이 매우 유용한 전투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실제로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군은 요크의 사례를 바탕으로 기관총 사수 등이 총기고장과 같은 비상시에 권총을 사용하도록 교범에 적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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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A1의 등장

1911 권총의 인기는 미국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브라우닝의 설계는 전세계 군과 경찰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아르헨티나, 캐나다, 노르웨이는 모두 콜트사와의 면허계약으로 1914~5년 간에 1911 권총을 자국에서 생산했다. 스페인 총기회사들도 1911에 커다란 관심을 보이면서 라마(Llama-Fabrinor S.A.L), 스타(Star), 아스트라(Astra)의 3개사가 모두 1911의 스페인 버전을 생산했다. 스프링필드도 콜트로부터 라이센스를 받아 3만 정이나 생산했다. 1911은 군 뿐만 아니라 미국 내의 법집행기관으로부터도 큰 인기를 끌어 텍사스 레인저(Texas Ranger), 국경경비대(Boarder Patrol), 금주령 단속반(Prohibition Service Unit) 등의 경찰기관뿐만 아니라 FBI에서도 애용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1911 권총이라지만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가장 큰 지적은 신속한 연발사격시에 총이 다소 제어하기 어렵다는 불만이었다. 콜트는 수정작업에 나섰고 역시 존 브라우닝이 참가했는데, 이는 그의 생전 마지막 작업 중의 하나가 되었다. 목표는 총기의 기본설계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개량하는 것으로, 최종적으로는 기존의 부품을 그대로 활용하면서 부품 몇 개만을 바꾸어도 개량형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우선 메인 스프링 하우징(main spring housing)의 크기를 키워 둥그렇게 만들고 표면에 체커링(checkering) 각인을 했다. 이에 따라 손의 굴곡에 맞게 총을 쥘 수 있게 되어 더욱 확실한 그립이 가능해졌다. 또한 그립 안전장치(grip safety)의 손잡이 크기가 확장되어, 사격시에 해머에 손이 찍히는 일을 줄어들게 했다. 또한 방아쇠 바로 뒷부분의 아랫총몸을 깎아내어 방아쇠를 당길 때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이러한 개선사항들은 1924년에 채택되어, 개량된 권총은 "모델 1911A1"으로 명명되었다.

개선사항은 신규로 미군에 채택되는 총기부터 적용되어 생산되었다. 그러나 기존의 총기들의 경우에는 신규로 생산된 1911A1용의 아랫총몸에 기존의 1911 슬라이드를 장착하는 방식으로 개량되었다. 이러한 개량형은 "트랜지션 모델(Transition Model)"로 불리는데, 추후에 수집가들 사이에서 높은 가격으로 매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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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미군 전쟁의 동반자

1911A1 권총은 2차대전 시기가 되자 더욱 널리 퍼졌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이 참전하게 되자 미군은 무려 1천6백만 명까지 증강하여 유럽과 태평양의 모든 전선에서 싸웠다. 이런 미군의 옆에는 물론 1911 권총이 있었다.

1911A1은 무려 3백만 정이 생산되어 미군 뿐만 아니라 연합군에게도 지급되었다. 이런 엄청난 물량을 당연히 콜트만이 홀로 생산할 수 없어, 레밍턴 랜드(Remington Rand), 이사카(Ithaca), 스프링필드(Springfield Armory), 스위치&시그널(Switch & Signal), 싱거(Singer) 등에서도 같이 생산했다. 전시 생산권총들은 생산 단가를 줄이기 위하여 목제 손잡이 대신 플라스틱을 사용한 점이 특징으로, 그 이외의 부분에서 변경은 없었다. 한편 레밍턴과 이사카에서 생산한 1911 권총들은 새로운 제작기계와 생산공정을 채용하여 생산률은 높이고 노동투입시간을 줄였던 것이 특징이다.

2차대전을 계기로 이미 유명했던 1911 권총은 전세계로 뻗어나갔다. 실제로 영국군은 지급되는 웨블리 리볼버 대신 1911권총을 선호했고, 이는 대부분의 병력들이 유사했다. 2차대전의 끝나고도 1911의 역할은 끝나지 않았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군 뿐만 아니라 한국군에도 많은 양이 공여되어 공산군과의 전투에 사용되었으며, 이후 1911권총은 한국군의 주력 제식권총으로 국산 K5 권총이 보급되기 전인 80년대까지도 사용되었고, 아직도 2선급에서는 사용중이다.

베트남 전에서도 M1911A1 권총은 여전히 활약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이르자 드디어 총기들은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2차대전 시기에 생산된 총기들이 운용수명에 다다른 것이다. 미 의회는 1978년 새로운 권총사업을 시작할 것을 국방부에 권고했고, 이에 따라 1979년부터 차기권총의 선정사업이 시작되어 1985년 베레타 모델 92F 권총이 M9 자동권총으로 제식채용되었다.

M9의 채용 이후에도 1911A1 권총은 미군 특수부대와 해병대에서 한 동안 일선을 지켰다. 특수부대 가운데는 최정예인 미 육군 델타포스(Delta Force)가 커스텀 개조를 거친 1911 권총을 2000년대까지 활용했고, 미 해병대는 아직까지도 1911 권총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미 해병대의 사용모델은 1985년부터 스프링필드 사의 1911A1 권총을 M45로 도입하여 MEU(Marine Expeditionary Unit, 해병원정대)에 지급되었으며, 해병특수전사령부(MCSOCOM)는 킴버(Kimber)사에서 만든 ICQB(Interim Close Quarter Battle) 권총을 채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012년 7월 20일 미 해병대 체계사령부(USMC Systems Command)는 CQBP(Close Quarter Battle Pistol) 사업을 통하여 레일 등 최신 트렌드를 적용한 M45A1을 도입했다.  최근 미 해병대도 글록(Glock) 19M 권총을 채용하면서 2017년 M007이라는 제식명을 부여하면서 1911 권총은 이제 점차 미 해병대에서조차 점차 입지를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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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양욱 | Defense Analyst

서울대학교 법대를 거쳐 국방대학교에서 군사전략을 공부했다. 중동지역에서 군 특수부대를 훈련시키기도 했고, 아덴만 지역에서 대(對)해적 업무를 수행하는 등 민간군사요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수석연구위원 겸 WMD 대응센터장으로 재직하면서 대학에서 대테러실무를 가르치며, 합참·방위사업청, 해·공·육군 정책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본 연재인 '무기백과사전'의 총괄 에디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