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남중국해에서 중국 함정이 미 이지스 구축함에 41m까지 접근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중 함정이 이렇게 가까이 접근한 것은 처음이었다. 바다에서 41m 거리는 충돌 직전의 일촉즉발 상황으로 간주한다. 자동차에 비유하면 두 차가 수십㎝ 이내로 스치듯이 지나가 가까스로 접촉 사고를 피한 것과 마찬가지다.

미·중 양국은 이 사건에 대해 서로 날 선 공방을 주고받아 남중국해 긴장의 파고는 더 높아졌다. 특히 미·중 간 무역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터여서 더 주목받았다

◇美·中 이지스함의 근접 대결

사건은 미 해군 이지스 구축함 디케이터함이 지난달 30일 '항행의 자유' 작전(FONOP) 일환으로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난사군도)의 게이븐 암초 인근 해역을 항해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중국 해군 소속 뤼양급(級) 구축함 란저우함이 디케이터함 앞 45야드(41m)까지 접근해 해당 해역을 떠날 것을 경고한 것이다. 미군 측은 "남중국해 항행은 어디까지나 국제법상 합법 행위"라고 맞섰지만 중국 함정은 더 공격적인 기동을 했다. 란저우함은 '중국판 이지스함'으로 불려 美·中 이지스함 대결이 벌어진 셈이다.

칼 슈스터 예비역 미 해군 대령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종류의 근접 조우 때 진로 변경을 하려면 함장에게는 불과 수초의 시간만이 주어진다"며 "함정들이 1000야드(900여m)만 접근해도 함장들은 매우 긴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해상에서 선박 간 안전거리는 최소 500야드(450m)다. 하지만 군함의 경우 안전을 위해 2000야드(1800m) 이상을 유지한다. 특히 남중국해에서의 충돌을 예방하기 위해 미·중 등 동아시아국 해군은 지난 2014년 서태평양해군심포지엄에서 '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규칙(CUES)'에 합의했다. 국제해사기구(IMO) 회원국들도 평상시 해상에서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국제해상충돌 예방규칙(COLREG)'을 제정해 모든 선박에 적용하고 있다.

중국 군사 문제 전문가인 윤석준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예비역 해군 대령)은 "41m까지 근접한 것은 중국 함정이 충돌 코스로 들어오니 미 함정이 버티다 급히 충돌 방지 기동을 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중국 함정이 CUES 등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실시한 것은 2015년 10월 이지스 구축함 라센함 이후 12차례 이상이다. 미국이 중국의 반발에도 이 같은 작전을 지속하는 것은 중국이 남중국해 전체의 80% 해역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 남중국해 해상교통로(SLOC)가 차단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중국은 9개의 점선으로 남중국해 대부분을 감싸 안은 U자 모양의 선을 긋고 그 안쪽 해역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른바 구단선(九段線)이다.

남중국해는 세계 해운 물동량의 4분의 1인 연간 5조달러(약 5600조원)어치가 통과하는 해상 수송로의 전략적 요충지다. 한·일 원유 수입량의 90%, 중국 원유 수입량의 80%가 이 해역을 통과한다.

◇일본도 남중국해서 첫 항행의 자유 작전

현재 미국은 항행의 자유 작전을 통해 중국 구단선은 국제법적으로 무효라며, 2016년 7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결정(중국 9단선 불인정)을 받아들일 것을 중국에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 항행의 자유 작전을 군사적 위협으로 간주해 미 해군 함정에 점차 감정적 대응을 하면서 양국 간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중국은 올 들어 항모 랴오닝함 등을 동원한 대규모 전투단 무력시위를 비롯, 남중국해에서의 군사적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5월엔 중국 공군 H-6K 전략 폭격기가 남중국해 서사군도의 우디섬에서 첫 이착륙 훈련을 실시했다.

지난 6월 중국 관영 매체는 "중국 해군이 남중국해에서 기뢰 부설 훈련을 실시했다"고 보도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를 미 해군 구축함의 항행의 자유 작전을 차단하겠다는 중국 해군의 의도가 나타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문제는 이에 맞선 대응이 미국은 물론 동맹국까지 확산되는 양상이라는 점이다.

지난 8월 영국 해군 상륙함 알비온함은 일본에서 베트남으로 이동 중 남중국해 서사군도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폈다. 지난달엔 일본 해상자위대가 남중국해에 처음으로 소류급(級) 잠수함을 보내 인근에 배치돼 있던 최신형 헬기 항모 '가가'함(2만7000t급) 및 구축함과 함께 '전략적 해양 안보 작전'을 실시했다. 일본 방위성은 이를 '일본식 항행의 자유 작전'이라고 발표했다.

이제 남중국해에서의 미·중 갈등은 대만과 러시아 등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모습이다. 미 국방부는 지난달 24일 대만에 대한 대규모 무기 판매를 승인하고, 러시아로부터 SU-35 전투기와 S-400 대공미사일을 수입한 중국 군 중앙군사위원회 장비개발부와 주무부장을 경제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이처럼 남중국해 미·중 갈등은 북핵 문제와 함께 동아시아 안보를 가장 크게 위협하는 화약고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양보할 수 없는 패권 경쟁에서 남중국해가 그 최전선에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다.


[남중국해 긴장의 중심엔… 中이 만든 인공섬 7개]

현재 남중국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중 갈등의 중심에는 중국이 이 지역에 최근까지 건설했거나 건설 중인 7개의 인공섬이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암초와 산호초에 인공섬을 만들었다.

지난 5월 로이터통신은 중국이 남중국해의 인공섬 3곳에 2400여 명의 병력이 주둔할 수 있는 막사를 건설 중이거나 세웠다고 보도했다. 위성사진 분석 결과 난사군도의 인공섬 피어리 크로스 암초, 수비 암초, 미스치프 암초 등에 대규모 병영시설이 들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크로스 암초 인공섬은 길이 3㎞, 폭 200~300m에 달한다.

로이터는 전문가를 인용해 피어리 크로스 암초와 미스치프 암초에 2000명 규모의 육전대(해병대)가 머무는 숙소 건물이 있다고 밝혔다. 이들 인공섬에는 활주로를 비롯, 군사시설과 구조물이 190개나 건설되고 있다. 수비 암초의 경우 미사일 포대와 격납고, 활주로 외에 농구장까지 설치됐다. 미 CNBC도 지난 5월 중국이 인공섬 피어리 크로스 암초 등에 순항미사일 발사대를 추가로 건설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남중국해 일원에 순항미사일을 배치한 것은 처음이다.

이에 앞서 중국군은 남중국해 인공섬에 군용 전파 교란 시설을 설치해 미국 항공모함과 함정, 군용기 등의 통신과 레이더 시스템도 방해하고 있다. 중국은 인공섬이 영토라며 주변 12해리(22㎞)를 영해로 간주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인공섬은 암초여서 영해 12해리를 수용할 수 없다며 미 함정들이 '항해의 자유' 작전 때 인공섬으로부터 12해리 이내 수역을 여러 차례 항해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