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의 역사

지프(Jeep)의 등장은 군용차의 역사에 있어서 커다란 획을 그었다. 3m가 조금 넘는 길이에 폭은 1.57m의 작은 몸매였지만, 최대 60마력의 힘에 360kg을 싣고 대부분의 지형을 극복할 수 있었다. 윌리스 MB와 포드 GPW 등을 합쳐 무려 63만 대 이상이 생산되어 2차대전을 승전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이뿐만 아니라 전후에 유럽 전역에 보급되면서 군용차량의 새로운 경향을 만들었다. 영국에서는 지프에 대항하는 자국산 차량으로 랜드로버(Land Rover)를 개발했고, 독일에서는 유니목(Unimog)이 나오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에서는 하프링거(Halflinger)라는 독특한 차량을 탄생시켰다.

오스트리아는 2차대전 이후에 미군으로부터 공여받은 윌리스 MB와 포드 GPW 등 지프를 효율적으로 활용해왔다. 지프야말로 산악지형이 많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유용한 차량이었지만, 전후 10여년이 지나자 지프는 수명연한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오스트리아 육군은 지프를 대체할 국산차량을 요구했다.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차량 제조사인 슈타이어-푸흐(Steyr-Puch)는 천재적인 차량설계자인 에리히 레드빈카(Erich Ledwinka)를 고용하여 오스트리아판 지프를 설계하도록 했다. 새로운 차량에는 하프링거(haflinger)라는 이름이 붙었다.

최초의 모델은 600AP로 시제차량이 1958년에 등장했다. 하프링거는 오스트리아의 국경지대인 티올리언 산맥이 원산지인  산악용 조랑말을 가리킨다. 하프링거라는 이름을 신차에 붙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즉 산악의 좁은 길을 이동하면서도 사람과 물자를 나를 수 있는 작고 단단한 차량을 만들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하프링거는 설계부터 독특했다.

통상 샤시를 만들고 엔진을 붙이는 차량설계와는 달리, 하프링거는 우선 엔진과 트랜스미션의 기본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가벼운 프레임을 얹는 방식을 택했다. 엔진은 푸흐 500에 사용되던 500cc 공랭식 2기통 엔진을 가져와서 643cc로 개조했다. 오프로드 성능을 강화하기 위해 포탈 엑슬 방식을 채용했다.  이렇게 등장한 초기형 700AP(AP는 Allrad - Plattform, 즉 4륜구동 플랫폼이란 뜻)는 약 100대의 선행양산형이 1960년부터 오스트리아 육군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이후 하프링거는 오스트리아군 뿐만 아니라 스위스, 호주, 영국 등에서도 애용되었다. 민간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으며, 제작사인 슈타이어-푸흐는 무려 110개국에서 사용되었다고 추산했다.

사실 하프링거와 유사한 군용차량으로는 미군이 1956년 개발한 M274 트럭(일명 '기계당나귀')이 있다. 그러나 M274는 탄약 등 물자수송이나 무반동총 등 화기의 제한된 운용에 중점을 둔 좀 더 작은 차량이었다. 반면 하프링거는 병력수송과 물자수송 양자가 가능한 지프의 본격적인 대용품이었다는 데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하프링거도 역시 크기에 한계가 있었다. 자중 600kg에 약 500kg을 탑재할 수 있었지만, 1개 분대를 나르기에는 작았다. 그래서 좀 더 커다란 크기의 차량을 개발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슈타이어-푸흐에서는 1965년 하프링거의 덩치를 키운 새로운 차량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차량의 개발도 역시 에리히 레드빈카가 담당했다. 엔진을 후방에 두었던 하프링거와는 달리 신 모델에서는 전방 액슬 위에 엔진이 장착되었으며, 차폭은 1.7m 전장은 4.1m까지 늘어남으로써 크기도 현저히 커졌다. 당연히 탑재중량도 증가하여 내부탑재중량은 2.4톤에 이르렀다. 1969년 드디어 개발이 완료된 새로운 차량에는 핀츠가우어(Pinzgauer)라는 이름이 붙었다. 핀츠가우어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Salzburg) 지역에서 사육되는 소의 품종을 가리키는데, 잘츠부르크를 핀츠가우(Pinzgau)라고도 부르는데서 기인한다.

슈타이어-푸흐는 1971년부터 핀츠가우어의 양산을 시작했다. 슈타이어-푸흐는 이미 1970년대에 미군 험비의 기동성을 뛰어넘는 차량을 만들었으며, 바로 그런 기술력을 인정받아 메르세데스 벤츠가 G바겐의 생산파트너로 푸흐를 선택하기도 했다. 핀츠가우어는 영국, 스위스, 사우디 아라비아, 아르헨티나 등 10여개국에서 채용했다. 핀츠가우어는 1985년까지 생산되다가 1986년부터는 개량된 2세대 모델인 핀츠가우어II가 출시되었다.

그러나 핀츠가우어는 21세기에 들어 저물기 시작한다. 슈타이어-다임러-푸흐(Steyr-Daimler-Puch)가 매그나(Magna)에 매각된 이후, 매그나는 2000년 핀츠가우어의 생산권을 ATL(Automotive Technik Ltd)사로 매각했고, 2002년 ATL사를 미국의 아머홀딩스(Armor Holdings)가 합병했다. 2006년 미군의 FMTV 군용트럭을 만드는 스튜워트&스티븐슨(Stewart & Stevensson)사가 아머홀딩스를 사들였는데, 2007년 이 회사를 다시 BAE 시스템즈사가 사들임으로써 핀츠가우어는 BAE시스템즈의 제품이 되었다.

시대를 풍미한 명품이었지만 핀츠가우어도 한계를 맞이했다. 2008년 경에 이르러 더 이상 추가주문이 없게 되자 BAE시스템즈는 핀츠가우어의 영국 생산공장을 폐쇄하고 라인업을 BAE의 남아공 시설로 옮김으로써 사실상 생산을 종료했다. 이후 BAE는 인수 후에 핀츠가우어의 새로운 제안모델을 선보이기도 했지만, 판매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부활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핀츠가우어는 군용트럭의 역사에서 주요한 발자취를 남긴 채 점차 현역에서 물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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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핀츠가우어는 하프링거처럼 험난한 지형을 극복할 수 있는 오프로드 차량으로 개발되었다. 하프링거처럼 핀츠가우어도 엔진과 트랜스미션을 중심으로 원형 차대를 만들고 여기에 독립된 액슬을 연결한 뒤 그 위에 차체를 올렸다. 센터디퍼렌셜은 기본이고 전후방의 액슬에 모두 라커(locker)를 장착하여 진정한 전륜구동이 가능하다. 우니모그나 하프링거처럼 포탈액슬(portal axle)을 채용하여 지상고는 33.5cm로, 구형 차량임을 감안하면 준수한 수준이다. 진입각과 이탈각이 모두 40도를 넘어 실제로는 차량 기동이 불가능해보이는 지형에서도 기동이 가능하다.

엔진은 1세대 모델은 푸흐에서 자체개발한 2.5리터 4기통 공랭식 인라인 엔진(105마력)을 사용했었으나, 후기형부터는 배기량을 2.7리터로 키웠다. 2세대 모델에서는 폭스바겐사의 6기통 TDI 인라인 엔진을 장착했으며, ZF사의 4단 자동변속장치나 5단 수동변속장치를 채용했다. 120리터나 145리터 연료탱크를 장착하여 항속거리는 800km 정도에 해당하며, 최고 시속은 120km 정도가 한계이다.

중요한 것은 역시 탑재능력이다. 4x4모델은 최대 10명을, 6x6모델은 최대 14명까지 탑승할 수 있다. 6x6 모델은 최대내부탑재중량이 2.4톤에 이르며, 트레일러를 연결하는 경우 최대 5톤까지 견인할 수 있다. 4x4 모델은 조금 더 작은 크기로 인하여 내부탑재중량은 1.4톤 정도이다. 4x4모델은 차량의 자체중량이 3.85톤으로 사양에 의하면 CH-47 시누크 헬기의 내부에 탑재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사실 억지로 밀어넣는 수준이다. 이에 따라 슬링 방식으로 외부에서 견인식으로 이송한다. C-130 수송기에는 당연히 내부에 탑재가 가능하며, C-17 수송기의 경우에는 2열로 탑재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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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현황

핀츠가우어는 모두 29개국에 2만5천여 대가 판매되었다. 1세대 핀츠가우어만 해도 군용과 민수를 합쳐 18,349대가 판매되었다. 주요 사용국으로는 오스트리아, 스위스, 영국, 뉴질랜드, 사우디아라비아, 말레이지아, 세르비아, 마케도니아, 사이프러스, 베네주엘라, 볼리비아, 레바논 등이 있다. 특히 영국은 군용 트럭으로 핀츠가우어를 애용하여 생산시설을 영국내에 만들 정도였는데, 105mm L118 곡사포의 견인용으로 핀츠가우어를 사용해왔다. 아프간 전쟁 이후에는 핀츠가우어의 방탄형인 벡터(Vector)를 2006년 최초 62대를 주문한 데 이어 2007년 추가로 118대를 발주하면서 마지막까지 핀츠가우어를 애용하고 있다.

핀츠가우어는 한편 특수전 부대로부터 사랑받기도 했다. 오스트리아나 영국의 특수부대들에서 애용되었지만 사용자로 가장 유명한 것은 미국의 델타포스였다. 델타포스는 2세대 핀츠가우어 가운데 6x6 구동의 718모델을 채용하여 특수작전 차량으로 채용했다. 이들 차량은 아프간 전선은 물론이고 이라크 자유작전 초기에 울버린 작전 등에 투입되면서 맹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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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형

핀츠가우어는 가솔린/디젤 엔진여부, 4륜구동/6륜 구동인지에 따라 크게 4가지 모델로 구분된다. 각 모델에서 형태에 따라 세부로 구분되는데, 방수포 지붕을 덮을 수 있는 개방형이 M, 폐쇄된 밴 형태가 K, 후방캐빈이 개조가능한 플랫베드 모델이 T, 구급차형이 AMB로 구분된다. 이외에도 전방이 더블캡이고 후방이 플랫베드인 모델은 DK, 밴 형태에 측면 등에 도어가 3개 장착된 모델이 MK, 포터블 쉘터가 장착된 워크샵 모델이 W, 대공포 장착형이 FLA 등으로 구분된다.

710 시리즈
가솔린 엔진에 4x4 구동방식의 차량이다. 세부 모델로는 710M, 710K, 710T, 710AMB-Y, 710AMB-S(쉘터형 앰블런스) 등이 있다. 

712 시리즈
가솔린 엔진, 6x6 모델, 세부형태로는 712M, 712K, 712FLA, 712W, 712DK, 712T, 712AMB-S, 712FW(소방차), 712REC(구난차) 등이 있다.

716 시리즈
디젤 엔진, 4 x 4 모델. 716M, 716K, 716MK 등 다양한 버전이 있다.

718 시리즈
디젤 엔진, 6 x 6 모델. 718M, 718K, 718MK 등 다양한 버전이 있다.

벡터(Vector)
핀츠가우어 718을 바탕으로 방탄화 한 모델. 영국군은 모두 180대를 주문했으며, 영국군 내에서는 PPV(Protective Patrol Vehicle)로 불린다. 방탄화함에 따라 탑재중량은 1.6톤으로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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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원

- 엔진: D24T 폭스바겐 6기통 디젤 터보차저 
- 트랜스미션: ZF 자동 4단, 수동 5단 
- 전장: 4,175mm (4x4), 4,955mm (6x6)
- 전폭:  1,760mm
- 전고: 2,045mm
- 차축간 거리: 2,200mm (4x4), 2,000+980mm (6x6)
- 지상고: 335mm
- 도섭: 700mm
- 자중: 1,950~2,100kg(4x4), 2,350~2,600 (6x6)
- 탑재중량: 1.4t(4x4), 2.4t(6x6)
- 최대속도: 120km/h
- 탑승원: 운전자 1명 + 조수석 1명, 후방석(M형 기준)은 8명(4x4 모델) 또는 12명(6x6 모델)
- 대당가격: 기본가 약 10만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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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양욱 | Defense Analyst

서울대학교 법대를 거쳐 국방대학교에서 군사전략을 공부했다. 중동지역에서 군 특수부대를 훈련시키기도 했고, 아덴만 지역에서 대(對)해적 업무를 수행하는 등 민간군사요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수석연구위원 겸 WMD 대응센터장으로 재직하면서 대학에서 대테러실무를 가르치며, 합참·방위사업청, 해·공·육군 정책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본 연재인 '무기백과사전'의 총괄 에디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