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의 역사

화약을 폭발시켜 탄환을 발사하고 사람이 휴대할 수 있는 정도의 크기로만 관점을 축소해서 본다면 총은 대략 15세기 말부터 본격 사용되기 시작했다는데 대부분 동의한다. 화승총과 오늘날의 소총을 직접 비교하기 곤란할 만큼 어느덧 60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엄청난 기술적 발전이 있어왔다. 그런데 총기의 역사를 획기적으로 바꾸었던 기술적 변혁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예를 들어 오늘날 군경을 포함한 대부분 무력 조직들이 사용하는 자동소총의 기본 메커니즘은 70여 년 전에 탄생한 StG44에 뿌리를 두고 있다. 첨단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무기의 세계지만 놀랍게도 소총 분야는 제2차 대전 말기에 개발된 기술력이 아직까지도 유효하다는 의미다. 사실 이것도 개발된 지 한 세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현역인 M2 중기관총, M1911 권총 등과 비교하면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AK-47을 만든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처럼 몇몇의 뛰어난 엔지니어들이 그런 획기적인 변화를 주도했는데, 그중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활약한 존 브라우닝(John Moses Browning)은 가히 발군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오늘날 사용하는 모든 총기에 관한 기술적 기반을 개척한 인물이라고 단언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M2 중기관총, M1911 권총도 그가 만든 작품 중 하나다.

브라우닝은 개발을 담당하고 생산과 판매는 계약을 맺은 윈체스터, 레밍턴, 콜트 같은 유수의 총기 회사들이 담당하는 식으로 일을 했다. 벨기에의 FN(Fabrique Nationale de Hersta)도 그렇게 인연을 맺었던 회사다. 오늘날 FN은 최고의 총기 제조사 중 하나로 꼽히지만 브라우닝과 처음 거래했던 1897년 당시는 무명이었다. FN은 안중근 의사가 거사에 사용했던 권총으로 유명한 FN M1900을 시작으로 브라우닝이 설계한 권총을 생산했다.

FN M1900이 성공을 거둔 직후 노르웨이, 스웨덴 등이 군경용으로 사용할 권총의 도입을 검토하자 FN은 브라우닝에게 전작보다 위력, 안정성, 정확성 등이 향상된 후속 권총의 개발을 의뢰했다. 이에 브라우닝이 설계하고 FN이 양산한 두 번째 자동권총이 FN M1903이다. 여담으로 20세기 초 유럽에서 브라우닝이 권총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일 만큼 FN이 생산한 일련의 권총들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1903년 개발과 동시에 상당한 호평을 받고 여러 나라에 공급되었고 면허 생산도 이루어졌다. FN은 1927년에 생산을 종료했으나 스웨덴에서는 1942년까지 계속 제작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FN M1903이 납품 경쟁을 벌일 때 상대방이 제출한 권총 중 브라우닝이 개발한 것도 많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 군경 납품을 놓고 FN M1903과 경쟁을 벌여 이긴 콜트 M1911도 그의 작품이다.

이처럼 20세기 초, 권총의 역사는 브라우닝을 빼놓고 논할 수 없다. 때문에 그가 개발하고 같은 해에 유럽과 미국에서 각각 출시된 FN M1903과 콜트 M1903을 같은 권총으로 혼동하는 경우도 많다. 외형이 얼추 비슷하지만 사용하는 크기, 탄환, 구조 등에서 차이가 있는 전혀 다른 권총이다. 여담으로 콜트 M1903은 1945년까지 57만 정이 생산되었을 만큼 상업적으로 FN M1903보다 성공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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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FN M1903은 블로우백(Blow back) 방식으로 작동된다. 간단한 구조지만 권총에서 무난히 작동하려면 반동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탄환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콜트 M1903 같은 경우는 이른바 38구경이라 불리는 .380 ACP 탄을 사용한다. 반면 개발 당시부터 군경용을 목적으로 했던 FN M1903은 파괴력을 늘리기 위해 탄자를 키운 9x20mm 브라우닝 롱(Browning Long) 탄을 사용한다.

브라우닝은 총뿐 아니라 .380 ACP 탄, 45 ACP 탄, 12.7x99mm NATO 탄처럼 지금도 일선에서 사용되는 여러 총탄을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FN M1903의 개발을 의뢰받았을 당시에는 유럽에서 권총탄으로 많이 사용 중인 9×19mm 파라블럼(Parabellum) 탄의 사용을 염두에 두었으나 파괴력이 충분치 않다고 판단되어 별도의 전용탄인 브라우닝 롱 탄을 함께 개발했다. 하지만 파라블럼 탄과 위력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FN M1903은 권총으로서는 크기가 큰 편이었다. 전작이라 할 수 있는 FN M1900이나 같은 시기에 출시된 콜트 M1903과 비교하면 그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반동을 효과적으로 잡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덕분에 어지간한 충격에도 고장이 나지 않을 만큼 튼튼했고 안정적으로 작동되었다. 이후 이러한 설계 사상은 역사상 최고의 권총 중 하나로 손꼽히는 앞서 언급한 콜트 M1911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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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 현황

FN이 벨기에 기업이지만 워낙 내수 시장이 작아 FN M1903은 개발 당시부터 대외 판매를 목적으로 했다. 최초로 구매한 스웨덴은 군경용으로 1907년 1만 정을 납품받은 후 성능에 만족해 Husqvarna m/1907이라는 별도 제식명으로 면허 생산을 했다. 오스만, 러시아 등도 주요 수입국이었고 중남미의 콜롬비아, 파라과이, 엘살바도르 같은 나라에도 판매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벨기에 군경 납품은 이뤄지지 않았다.

약 15만 정이 생산되어 상업적으로 성공했으나 활약 시기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수많은 국지전이 벌어졌던 20세기 전반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다지 많은 수량으로 보기도 힘들다. 오스만과 러시아가 주요 교전국이기는 했으나 사실 자위용 무장인 권총이 전투 중 할 수 있는 역할은 그다지 많지 않다. 또한 전작인 FN 1900이나 제1차 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던 FN 1910과 달리 역사적인 사건에 사용된 사례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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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형 및 파생형

FN M1903 : 기본형

Husqvarna m/1907 : 스웨덴 Husqvarna에서 면허 생산한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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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원

- 제작사 : Fabrique Nationale
- 구경 : 9×20mm 브라우닝 롱
- 탄창 : 7발
- 전장 : 205mm
- 총열 : 127mm
- 중량 : 930g
- 유효사거리 : 50m
- 작동 방식 : 블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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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 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