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평양에서 귀국한 지난 20일 평양정상회담 성과를 설명하면서 "군사 분야 합의서가 제대로 이행된다면 장사정포와 같은 상호 간의 위협적인 군사 무기와 병력을 감축하는 논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 장사정포는 수도권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대표적인 비대칭 위협이다. 장사정포 후방 철수 또는 감축이 이뤄진다면 우리 안보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인정하면서도 "북한 장사정포 철수 추진 과정에서 잘못하면 우리 안보에 공백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북 장사정포 후방 철수 문제는 이미 지난 6월 이낙연 국무총리의 발언으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 총리는 지난 6월 25일 "(북한) 장사정포 후방 이전이 논의되고 있다"고 밝혔다가 "(남북 간에는) 공식 논의되지 않았다"고 정정했다. 북한은 지난 6월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비무장지대(DMZ) 부근에 집중 배치한 장사정포(사거리 50~60㎞)를 후방으로 빼는 문제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국방부는 이를 부인해 왔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남북 군축의 한 사례로 '장사정포'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을 보면, 이번 평양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 간에 이 문제가 어떤 식으로든 논의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DMZ 인근 전방에 장사정포를 1100여 문 배치해 놨는데, 이 중 340여 문이 수도권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최대 사거리 65㎞인 240㎜ 방사포(다연장로켓) 200여 문, 최대 사거리 54㎞인 170㎜ 자주포 140여 문 등이다. 장사정포 340여 문이 동시에 사격하면 1시간 동안 최대 1만6000여 발 사격이 가능할 것으로 군 당국은 분석하고 있다. 이것들은 평상시엔 갱도 진지 안에 숨겨져 있다. 북한이 남북 관계가 경색될 때마다 '서울 불바다' 운운하는 것도 장사정포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장사정포 철수와 그에 상응하는 우리 측 조치를 논의할 때 북한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신원식 전 합참차장(예비역 육군중장)은 "북한은 우리 군의 K-9과 신형 다연장 로켓 '천무', 경기도 동두천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 미 제210화력여단 철수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신 전 차장은 "장사정포 후방 배치 대가로 한·미 화력 자산을 철수하면 우리가 더 손해"라고 지적했다. 미 210화력여단은 북한 장사정포에 맞서 다연장 로켓(MLRS), 사거리 300㎞인 전술 지대지미사일(ATACMS), M109A6 자주포 등 강력한 화력을 보유하고 있다. 북한 장사정포가 빠지더라도 북한 전방 지역에는 122·152㎜ 자주포 등 사거리가 짧은 포병 부대가 그대로 남을 수 있다.

한편 북한은 이번 군사 분야 합의서 협상 과정에서 대규모 군사훈련 중단, 무력 증강 중지, 해상 봉쇄·차단 금지 등을 집요하게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대부분 주한 미군이나 미군 작전과 관련이 있는 부분들이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이 대규모 군사훈련 중단 등을 집요하게 요구했지만 남북 군사공동위원회에서 협의하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고 말했다. 군사 분야 합의서 1조 1항에 그 같은 내용을 담았다. 이에 대해 군 안팎에서는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은 물론 우리 3축 체계를 비롯한 전력 증강 문제에 대해서까지 군사공동위를 통해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