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9.14 08:36

글자크기

[무기백과]

F-104 스타파이터

미래의 항공전을 대비한 제트기의 첫걸음

0 0
F-104 스타파이터 <출처: 미 공군>

개발의 역사

6·25에서 처음 제트기 간의 공중전을 경험한 미군은 MiG-15를 상대로 싸우며 미래의 소련 전투기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더욱 싸고, 가벼우며, 기동성이 높고, 고성능인 전투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록히드 사의 스컹크 웍스(Skunk Works) 수석 엔지니어인 클레런스 존슨(Clarence “Kelley” Johnson, 1910~1990)은 1951년 12월에 직접 한국에 방문하여 전투기 조종사들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고, 이들 상당수는 F-86 세이버(Sabre)로 소련 기체를 상대하면서 작고 기동성이 높은 전투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파악했다. 그는 곧장 미국으로 돌아가 1952년 3월부터 연구팀을 결성하여 3,600kg 급 전투기부터 23,000kg 급 전투기까지 다양한 설계 개념을 연구했지만, 결국 요구 성능을 맞추기 위해 강력한 하나의 엔진을 설치하는 대신 항공역학적으로 가볍고 효율적인 동체를 채택하여 성능을 높이는 쪽을 택했다.

J79엔진과 YF-104 시제기 <출처: 미 공군>
이는 특히 엔진 제조의 명가인 제네럴일렉트릭(GE) 사가 J79 엔진을 내놓으면서 가능했는데, “스컹크 웍스”는 여러 설계안 중에서 이 J79를 탑재한 일명 L-083 설계안을 최종 후보로 채택했다. 스컹크 웍스는 1952년에 F-104 “스타파이터(Starfighter)”의 시험기인 XF-104를 내놓았으며, 이를 1952년 11월 자로 미 공군에게 노스 아메리칸(North American) 사의 F-100 슈퍼 세이버(Super Sabre)를 대체할 경량급 전투기로 제안했다. 이에 따라 미 공군이 정보요청서를 발행하자 록히드 외에도 리퍼블릭(Republic) 사가 XF-91 썬더셉터(Thunderceptor)를 개량한 AP-55를 제안했고, 노스 아메리칸(North American) 사는 훗날 F-107이 된 NA-212를 제출했으며, 노스롭(Northrop) 사는 XF-104와 마찬가지로 GE J-79 엔진을 탑재한 N-102 팽(Fang)을 제출했다. 세 기종은 모두 독특한 특징이 있는 기체였지만, 미 공군의 요구도가 정확하게 반영된 XF-104에게 유리하게 입찰이 흐르면서 결국 1953년 3월부로 두 대의 시제기에 대한 개발 계약이 체결되었다.
XF-104 스타파이터와 록히드의 시험비행사인 토니 르비어(Tony LeVier) <출처: 미 공군>

XF-104는 1953년 4월부로 목업(mock-up)을 만들었으며, 5월부터 시제기 개발에 돌입했다. 하지만 이때까지 J79 엔진의 개발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은 라이트(Wright) 사의 J65 엔진을 장착한 첫 시제기가 1954년 초에 완성되어 3월 4일 자로 에드워즈(Edwards) 미 공군기지에서 초도 비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 비행이 첫 비행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공식적인 첫 비행을 별도로 실시하다가 랜딩기어가 제대로 수납되지 않는 작은 문제가 발생했지만, 비행 자체는 성공적으로 끝냈다. 시제기 2번기는 몇 주 후 실사격 시험 중 파괴되었으나, 미 공군은 1955년 11월 자로 해당 기체의 수락을 승인하면서 공식적으로 미 공군에 배치되었다.

스타파이터는 흔히 표현하기를, 전투기보다는 “인간이 탄 로켓”에 가까운 개념이다. 특히 기수 부분은 로켓처럼 뾰족한 원통형 설계인데다 끝에는 피토(pitot: 항공기 속도 측정을 위한 파이프)관이 길게 뻗어 있고, 얇은 실린더 형태의 동체와 아래로 향한 짧은 날개 모양을 갖추고 있어 전체적인 외양이 로켓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록히드도 F-104 스타파이터 개발 후 언론 홍보자료를 내면서 “인간이 탄 미사일(the missile with a man in it)”이라고 표현했다. F-104는 실제 퇴역 후에도 고속 주행용 경주차로 개조된 적이 있을 정도로 ‘속도’에 특화되어 있던 항공기이며, 조종석조차도 들어가기엔 좁으나 앉고 나면 누운 각도가 형성되어 스포츠카처럼 편안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이하게도 F-104의 초창기 기종은 비상탈출 시 아래 방향으로 사출되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으며, 조종사들은 박차(spur)가 달린 부츠를 신었는데, 이는 좁은 조종석에 반쯤 누운 상태로 들어가 있는 조종사가 긴급 사출을 할 경우 다리가 동체부에 끼는 상황을 막기 위해 사출좌석 의자와 박차 사이에 줄을 달아 놓아 사출이 되면서 다리가 의자에 바짝 붙을 수 있도록 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 ‘카우보이’를 연상시키는 조종사의 패션은 일부 조종사들의 로망으로 자리 잡으며 스타파이터가 ‘미국적인 전투기’의 이미지를 갖는데 크게 일조했다.

F-104 스타파이터 소개 영상 <출처: 유튜브 페이지>


특징

F-104 스타파이터는 국지 방어(point defense) 요격기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상승 속도에 집중하는 대신 항속거리를 포기했다. 물론 필요에 따라서는 외장 연료탱크나 공중 급유를 통해 항속거리를 늘릴 수 있었지만, 동일 등급의 전투기들에 비교한다면 항속거리가 굉장히 짧은 편에 속한다. 외양 면에서 F-104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특유의 짧은 날개로, 길이가 6.4m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F-104는 엔진에서 새어 나온 공기와 날개 위로 흐른 바람을 이용해 저속에서도 양력을 얻을 수 있다. F-104는 크게 두 개의 형상으로 개발되었으며, 기본적으로 6연장 20mm M-61 기관포를 설치해 전술전투기로 운용하는 한편, 추가로 열 추적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을 장착하여 주야간 요격기로도 운용이 가능하게 했다. F-104는 지상 공격 임무를 위해 1,139kg의 무장을 장착할 수 있으며, 외장 연료까지 장착할 경우 최대 전투 범위는 997km에 달한다. 연료 탱크는 전투 돌입 전에 투하하며, 약 898km/h의 속도로 전투를 수행할 수 있다.

날개 끝 윙팁과 동체 하부에 증가 연료탱크를 장착하고 비행 중인 F-104A 기체의 모습. <출처: 미 공군>
F-104의 날개는 주관 폭 두께 비(thickness-to-chord)가 3.36%에 불과하며, 가로세로비 또한 2.45 정도다. 날개의 리딩 에지(leading edge) 역시 0.41mm로 얇아 지상 요원들이 이에 베일 위험성이 있어 이 때문에 정비요원 등은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정비를 해야 했다. F-104는 날개가 얇아 공간이 나오지 않으므로 연료탱크나 랜딩기어가 모두 동체에 설치됐으며, 에일러론(aileron)을 움직이는 유압 실린더 역시 날개에 넣기 위해 두께를 25mm 이하로 제작했다. 동체 역시 얇게 제작되어 있으므로 이 안에 레이더, 조종석, 기관포, 연료, 랜딩기어에 엔진까지 조밀하게 들어갔으며, 작은 동체와 날개 조합 덕에 항력 또한 낮게 발생한다. F-104는 가속도가 높고, 상승률이 좋으며, 최고 속도가 뛰어났지만 선회 성능은 좋지 못했다. 이 때문에 F-104는 비행이 어렵고 위험한 기종으로 악명이 높았으며, 실제로 비행 특성도 좋지 못한 편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비행 기록을 모두 놓고 판단해 볼 때 조종사가 충분히 기종 교육을 받고 제조사의 권장 조건에 따라서 비행한다면 충분히 안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F-104는 고속 공격에는 효과가 좋은 것으로 인정받았으나 선회반경이 커서 근접전(도그파이트)에는 맞지 않는 기체였으며, 무엇보다 이착륙 간 통제가 까다로운 항공기였다. 하지만 저고도비행 성능은 뛰어났기 때문에 여러 국가가 저고도 폭격기로 오랫동안 운용했다.
F-104G형 조종석 <출처: wikimedia.org>
XF-104는 사상 두 번째 음속의 두 배 속도로 비행이 가능한 전투기였으며, 등장과 동시에 당시까지 존재하던 수많은 속도와 고도 관련 기록을 갈아치웠다. 1958년 5월 18일, F-104A형이 마하 1.846을 찍으며 최고 속도 기록을 수립했고, 1959년 12월 14일에는 F-104C형이 31,515m까지 도달하며 기존의 상승 한도 기록을 깼다. 이 기체는 개발과정에서 당시까지 존재하던 최고 속도 기록을 깨기 위해 조종사들이 경쟁적으로 비행을 실시하기도 했다. 특히 이는 미-소 간의 자존심 대결이 불을 붙인 측면도 있는데, 1961년 소련의 MiG-21을 개조한 E-66A가 고도 34.71km에 도달하자 미측도 스타파이터로 이 기록을 깨고자 도전했다. 명 조종사로 유명한 척 예거(Chuck Yeager)는 NF-104 기종을 세 번 이상 타면서 감을 익힌 뒤 1963년 12월 10일 자로 도전에 나섰으며, 오전 중에만 고도 33.13km를 찍었다. 그는 오후 비행에서 로켓엔진을 써 마하 2.2로 상승하며 30.97km까지 올라갔지만, 비행 통제가 좋지 못한 스타파이터의 특징 때문에 수평미익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다가 결국 고도 정점에서 스톨에 빠질 가능성이 보이자 사출을 선택했고, 이 과정에서 크게 부상을 입어 한동안 후유증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F-104가 소련 측의 기록을 깨는 데는 실패했을지 모르나, 이 과정에서 검증된 상승한도와 마하의 속도는 전장의 조종사들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
1963년 12월 4일 NF-104로 비행에 나서는 척 예거의 모습 <출처: 미 공군>
F-104는 로켓 부스터를 장착하여 활주거리 없이 항공기를 쏴 올리기 위한 시험인 ZELL(Zero-Length Launch) 기종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 시도는 독일연방군 공군이 F-104G 기종으로 테스트를 실시했지만 실용성은 낮았기 때문에 ZELL 기체가 정식으로 운용되지는 않았다.
F-104 초도 비행 영상 <출처: 록히드마틴 유튜브 페이지>


운용 현황

F-104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맹국들 대다수가 채택한 전투기로, 미국뿐 아니라 주요 미 동맹국과 우방국인 캐나다, 서독, 이탈리아, 노르웨이,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그리스, 터키, 스페인, 중화민국, 일본 등지에서 1,700대 이상이 판매됐다. 스타파이터는 정작 미군에서는 인기가 없었지만 수출시장에서는 대성공을 거둔 보기 드문 사례다.

편대 비행 중인 F-104A 스타파이터. <출처: 미 공군>

미 공군은 단좌 및 복좌식을 모두 포함해 300대가 넘는 스타파이터를 도입했다. F-104는 앞서 말했듯 6·25전쟁의 교훈을 바탕으로 요격기로서의 능력을 극대화하는데 중점을 두었으며, 이에 따라 설계 중심이 최고 속도와 상승률에 맞춰졌다. 하지만 실제 요격기 용도로 운용한 국가는 미 공군뿐이었는데, 이는 복잡한 전천후 항법장비와 화력 통제 체계를 모두 탑재하기에는 항공기 크기가 작았던 이유가 컸다.

첫 F-104는 1954년 2월 7일에 초도 비행을 실시했으며, 첫 양산 기체는 1958년 1월부터 미 공군에 실전 배치됐다. 최종 기체는 1978년 이탈리아에서 제작되었으며, 이때까지 전 세계 각국에서 총 2,536대의 기체가 운용되고 있었다. 사실 미 공군에서는 평가가 좋지 않은 기체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높은 판매고를 올린 기체라는 점이 특이한데, 이는 서방국가들이 초음속 전투기를 도입하는 분위기가 된 상황에서 도입 단가가 낮은 전투기였기 때문에 폭발적인 판매 기록을 올린 측면이 크다. 특히 스타파이터는 미국을 포함한 7개국에서 생산되었을 뿐 아니라 총 15개국이 운용한 베스트셀러였다.

F-104는 베트남전에 투입되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출처: 미 공군>

미 공군은 베트남전쟁이 발생하면서 스타파이터를 투입했으며, 1967년까지 해당 기체를 동남아에서 운용했으나 적기 격추는 한 대도 기록하지 못한 반면 14대가량이 손실을 입었다. 특히 F-104의 경우 후속으로 투입된 기종들에 비해 탑재중량이 낮은 데다 항속거리도 짧았기 때문에 미 공군에서 그다지 선호하지 않아 1969년부터 예비물자로 전환되었다.

F-104는 상승률이 좋고 저고도 비행성능이 훌륭했지만, 기동성과 비행 통제가 까다로웠기 때문에 사고율이 유난히 높은 기체였다. 특히 사고가 유독 많았던 기체는 독일이 도입했던 F-104G형으로, 총 270대 이상 상실되며 손실률만 30%를 상회했다. 특히 독일은 기체 도입 때부터 뇌물 사건이 터져 부정적인 여론에 시달렸으며, 사고율도 유독 높았기 때문에 금방 명성에 빛이 바랬다. 독일연방군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훈련 과정 중에서만 조종사가 100여 명이 사망했으며, 이 때문에 독일연방군 공군(루프트바페)의 요하네스 슈타인호프(Johannes Steinhoff) 장군은 1966년 F-104G가 약 104대가량 남자 해결책이 마련될 때까지 전 기체의 비행을 금지시켰다.

사고율이 높아 "과부제조기"로 불린 독일공군(루프트바페)의 F-104G형. <출처: 미 공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적인 매력과 초음속 기체의 장점 때문에 스타파이터의 수출은 1980년대까지 이어졌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현대화 작업까지 실시하며 오랫동안 운용했다. 스타파이터는 마지막으로 2004년 이탈리아가 퇴역시키면서 우여곡절 많았던 역사를 마감했지만, 높은 상승률과 속도의 장점 때문에 미 항공우주국(NASA)이 일부 기체를 인수하여 1994년까지 시험용 기체로 활용했다.
독일연방군 공군 F-104G의 ZELL 발사 장면 <출처: 유튜브 페이지>


파생형

XF-104: 라이트(Wright) 사의 J65 엔진을 임시로 장착한 시제기로, 총 두 대가 제작되었으며 한 대는 시험 운용을 위해 M61 기관포를 설치했다. 두 기체 모두 시험 운용 중 추락했다.

에드워즈 공군기지에서 시험비행 중인 록히드의 XF-104 (1번 시제기)의 모습. XF-104는 특히 동체가 짧아 식별이 쉽다. <출처: 미 공군>
YF-104A: 엔진, 장비 및 비행시험을 위해 사전 양산한 기체. 총 17대가 제작됐다.
F-104A 스타파이터. <출처: 미 공군>
F-104A 스타파이터: 초도 양산으로 153대가 제작되었으며, 미 공군이 1958년부터 1960년까지 운용한 후 1963년부터 공군 주방위군에 넘겼다. 일부 기체는 요르단 왕국, 파키스탄, 대만에 판매되어 실전에서 활약했다. 미 제319 전투비행 요격대대는 104A형과 B형의 엔진을 J79-GE-19형으로 교체하여 17,900파운드 추력까지 낼 수 있게 했으며, 실용 상승한도도 22,000m를 넘겼다. 공군 방위사령부 소속 기체는 1969년에 모두 퇴역했다.
NF-104 <출처: 미 공군>

NF-104: 6,000파운드 로켓다인(Rocketdyne) LR121/AR-2Na-1 로켓 엔진을 설치해 우주비행사 훈련용으로 개량한 기체. 무장은 모두 제거되었으며, 최대 36,800m 고도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QF-104A: F-104A형 22대를 무선조종식 무인기로 개조했던 시험용 항공기.

F-104B: 복좌식 기체로, F-104A의 훈련기 형상이다. 방향타와 수평타가 커져 통제가 쉬워졌으며, 기관포를 제거하고 내부 연료를 줄였다. 총 26대가 양산되었으며 소량이 요르단, 파키스탄, 대만에 공급됐다. 제한적이나마 전투 임무도 수행할 수 있었다.

오하이오 주 데이튼 시에 있는 미 공군 연방 박물관에 전시 중인 록히드의 F-104C형의 모습. <출처: 미 공군>

F-104C: 미 공군 전술항공사령부(TAC)에서 운용한 전폭기 형상. 고급 화력통제 레이더인 AN/ASG-14T-2가 설치되었으며, 동체 중앙과 날개 양쪽에 각각 2개씩 파일런(pylon)이 설치되었으며 중앙 파일런에는 Mk28이나 Mk43 원자탄을 장착할 수 있었다. F-104C는 공중 급유도 가능했다. 총 77대가 양산됐다.

F-104D: F-104C의 복좌식 훈련기 형상. 총 21대가 양산됐다.

일본 항공자위대의 F-104DJ <출처: Greenmats Club>

F-104DJ: 일본 항공자위대용으로 개발한 복좌식 훈련기. 록히드 항공에서 20대를 생산한 후 일본 미쓰비시(三稜)중공업에서 조립했다. 일본에서 퇴역한 후 일부 기체는 대만의 중화민국 공군에 인계됐다.

F-104F: F-104D의 훈련용 복좌 형상이지만, F-104G에 장착된 엔진이 설치됐다. 독일 공군이 운용하기 위해 양산됐으며 총 30대가 제작되어 1971년까지 운용됐다. 레이더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으며, 전투임무도 수행할 수 없었다.

F-104G <출처: Mike Freer / Touchdown-aviation>

F-104G: 다목적 항공기 형상으로, 총 1,122대가 양산되어 전 형상 중 가장 많이 제작됐다. 록히드에서 제작했으나 메서슈미트/MBB(Messerschmitt/MBB), 도르니어(Dornier), 피아트(Fiat), 포커(Fokker), SABCA로 구성된 컨소시엄인 캐나다에어(Canadair)에서 면허생산을 실시했다. 동체와 주익이 일직선으로 곧게 제작되었고, 내부 연료 공간이 늘었으며, 수직 미익이 커졌고, 랜딩기어가 강화되었다. 또한 플랩이 개량되어 전투 간 기동성을 향상시켰다. 공대공/공대지 지상 매핑(mapping) 모드가 지원되는 오토네틱스(Autonetics) 사의 NASARR F15A-41 레이더가 장착되었고, 적외선 사이트와 리턴(Litton) 사의 LN-3 관성항법체계(INS)가 장착되며 양산 기체 중에서는 최초로 INS를 채택한 기체가 되었다.

RF-104G: F-104G에 기반하여 제작된 전술 정찰용 형상. 기총 자리에서 기관포가 빠진 대신 KS-67A 카메라가 동체 전방에 장착됐다. 총 189대가 양산됐다.

TF-104G <출처: Mike Freer / Touchdown-aviation>

TF-104G: F-104G의 훈련기 형상. 기관포나 동체 중앙 파일런이 제거되었으며, 내장 연료도 줄었다. 록히드는 한 대를 민간항공기로 등록하면서 N104L로 번호를 받았으며, 재키 코크란(Jackie Cochran, 1906~1980)이 이 기체를 이용해 1964년 여성 조종사로 세계 최고 속도 기록을 수립했다. TF-104G 두 대와 F-104G 한 대는 훗날 NASA에 인계되었다.

F-104H: F-104G를 바탕으로 장비를 간소화하고, 광학 조준기를 장착한 수출용 형상. 제작에 착수하기 전 프로젝트가 취소됐다.

대한민국 광주공군기지에 착륙한 일본자위대 F-104J 전투기 <출처: 미 공군>

F-104J: F-104G에 기반한 특수 요격용 형상으로, 일본 항공자위대에서 운용했다. 미쓰비시 중공업이 면허생산으로 조립해 제공권 장악 임무를 수행했으며, 기관포와 4대의 사이드와인더를 장착할 수 있었지만 전수방위원칙에 의거해 공대지 능력은 제거됐다. 총 210대가 양산되었으며, 그중 3대는 록히드가, 29대는 미쓰비시가 록히드의 부품을 조립하는 형태로 완성했고 178대는 미쓰비시가 순수하게 제작했다. 일본에서 퇴역 후 일부 기체는 미국에 의해 중화민국 공군에 양도됐다.

F-104N: F-104G를 고속 추적용 항공기로 개량한 형상으로, 1963년부터 NASA가 운용했다. 그중 조 워커(Joe Walker)가 몰던 한 대가 1966년 6월 8일, 초음속 폭격기로 개발 중이던 노스 아메리칸 사의 XB-70 발키리(Valkyrie)와 충돌했다. 총 3대가 개발됐다.

F-104S: 이탈리아에서 주문하여 피아트(Fiat) 사가 면허생산한 형상. 246대가 완성되어 이 중 40대는 터키 공군에 판매되었으며, 나머지는 이탈리아 공군이 운용했다. 반능동형 유도미사일을 운용하기 위한 지속파 조명 기능과 이동표적 지시 기능이 추가된 NASARR R-21G/H 레이더가 설치되었고, 주익과 동체 아래에 각각 2개씩 하드포인트를 늘려 9개가 되었으며, J-79-GE-19 엔진을 설치하여 요격 능력이 강화되었다. 특히 104S형은 미사일 운용을 위한 항전장비를 추가하기 위해 기관포를 제거한 것이 요격기 형상의 특징이지만, 전폭기용 형상에는 기관포가 그대로 유지됐다. 최대 이륙중량도 타 형상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나 최대 3,400kg까지 장착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 공군의 F-104S <출처: 이탈리아 공군>

F-104S-ASA(Aggiornamento Sistemi d'Arma- “무장체계 최신화”): 104S에 주파수 도약 및 하방 탐지/하방 발사 능력이 추가된 피아트 R21G/M 레이더가 장착되었고, 신형 피아식별장치(IFF)와 무장 전달 컴퓨터를 설치한 업그레이드 형상. AIM-9L 사이드와인더와 셀레니아(Selenia)의 아스파이드(Aspide) 미사일이 통합됐다. 총 150대가 제작되어 1985년까지 운용됐다.

F-104S-ASA/M(Aggiornamento Sistemi d'Arma/Modificato – “무장체계 최신화/개량”): 1988년, GPS와 신형 TACAN, LN-30A2 관성항법체계(INS), 그리고 신형 조종석 디스플레이가 설치된 업그레이드 형상. 총 49대가 업그레이드 되었으며, 폭격과 관련된 모든 기능은 제거되었다. 스타파이터 시리즈 중 가장 마지막까지 현역을 지켰던 기체로, 2004년 12월까지 이탈리아 공군이 운용하다가 임시로 F-16과 교대되었으며, 다시 EF-2000 유로파이터 타이푼(Eurofighter Typhoon)이 임무를 승계했다.

CF-104 <출처: Public Domain>

CF-104: 캐나다에어가 면허생산한 캐나다 공군용 형상. 핵 폭격과 궤도권 밖으로 발사되는 2단계 점화식 탑재장비를 투발할 수 있었다. 공대공 기능이 갖춰진 NASARR R-24A 레이더가 장착됐으며, 기관포가 일시 제거됐었으나 1972년에 다시 설치됐다. 내부에 추가 연료 공간이 확보되었으며, 엔진 또한 10,000 파운드 급 J79-OEL-7 엔진이 설치됐다. 총 200대가 양산되었다.

CF-104D: CF-104의 복좌형 형상. CF-104와 마찬가지로 J79-OEL-7 엔진이 탑재되었으며, 총 38대가 양산됐다. 일부 기체는 중고로 덴마크, 노르웨이, 터키에 인도됐다.

F-104N 기종과 XB-70 발키리 충돌사고 영상 <출처: 유튜브 페이지>


제원

- 제조사: 록히드(Lockheed Aircraft Co.)
- 승무원: 1명
- 전장: 16.66m
- 전고: 4.11m
- 날개 길이: 6.63m
- 날개 면적: 18.22㎡
- 자체 중량: 6,350kg
- 최대 이륙중량: 13,166kg
- 추진체계: 10,000 파운드(dry)/15,600 파운드(A/B) GE J79 애프터버너 터보제트 엔진 x 1 
- 최고 속도: 2,459km/h, 마하 2
- 전투 범위: 676km
- 페리 범위: 2,623km
- 실용상승한도: 15,000m
- 상승률: 240m/s
- 양항비: 9.2
- 날개 하중: 510kg/㎡
- 추력 대비 중량: 최대 이륙중량에서 0.54 
- 기본 무장: 20mm M61A1 벌칸 6연장 개틀링 포 X 1 (720발 탑재)
- 장착 무장: 하드포인트 7개에 최대 1,800kg까지 장착 가능
미사일: AIM-9 사이드와인더(Sidewinder) x 4
기타: 폭탄, 로켓 등
- 대당 가격: $142만 달러(F-104G, 1978년 기준)


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