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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 칼럼] 軍을 不信하는 정부일수록 기무사를 못 없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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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9.12 03:14

現 정부 '해체 수준 개혁' 외치다 이름만 바꾼 채 사령부 체제 유지
'도로 기무사' 비판 들으면서도 軍 감시·견제 위해 기무사 활용

유용원 군사전문기자·논설위원
유용원 군사전문기자·논설위원
"육군참모총장을 바꿔야겠어요."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인 1993년 3월 8일 아침 청와대에서 권영해 국방장관과 단둘이 조찬을 하던 YS는 권 장관에게 대뜸 이렇게 말했다. 권 장관의 추천을 받아 신임 육참총장을 결정한 YS는 이어 "기무사령관도 바꿔야겠다"고 했다. YS는 기무사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냈고, 이에 따라 기무사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김도윤 기무사 참모장이 사령관으로 낙점됐다.

군사 정권에서 문민 정권으로 바뀐 직후 군 개혁의 신호탄이 됐던 김진영 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 기무사령관의 전격 경질은 이렇게 결정됐다. 김 총장과 서 사령관은 모두 육사 출신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핵심 멤버였다. 이 인사는 하나회 숙정의 서곡이 됐다.

YS는 기무사에도 전례 없는 숙정의 칼날을 들이댔다. 10명에 가까웠던 기무사 장군 숫자를 절반으로 줄였고 5000여 명의 전체 인원 중 1000여 명을 감축했다. 하지만 기무사 장군 숫자는 1~2년 후 거의 원위치됐고 기무사의 힘도 되살아났다. 기무사령관이 대통령 독대(獨對) 등을 통해 큰 영향력을 행사했고, 청와대가 군 인사와 군내 동향 파악에 기무사 정보를 적극 활용했기 때문이다. 여기엔 당시 하나회 숙정의 여파로 하나회가 쿠데타 등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정권 핵심부의 우려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25년이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도 YS 때 못지않은 기무사 개혁 태풍이 몰아쳤다. 막판까지 '해체 수준의 개혁' '국방부 본부로 편입' 등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 것처럼 회자됐다. 기무사 개혁을 주도한 송영무 국방장관도 현 사령부 체제 대신 국방장관 휘하의 보안·방첩 본부로 바꾸는 것을 선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결국 현 사령부 체제 유지로 결론이 났다. 인원이 30% 정도 줄고 이름만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바뀌어 '도로 기무사'란 비판이 진보 시민단체로부터도 나온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군 안팎에선 군을 불신하고 끊임없는 개혁 대상으로 삼는 현 정권 일각의 성향이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지난해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고 누락 논란이나 최근 기무사 계엄령 검토 문건 파문에서 잘 나타난다. 사드 보고 누락 논란은 국방부가 주한미군 사드 발사대 추가 반입 사실을 청와대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고 청와대가 크게 문제 삼아 초래된 것이다. 조사 결과, 놀라운 내용이 없어 청와대의 과잉 반응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기무사 계엄령 문건 사건은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지금까지 기무사와 예하 부대가 병력 출동 문제를 논의했다든지 하는 결정적 증거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 사건 또한 계엄령을 실제 실행에 옮기려 했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면 청와대가 군을 쿠데타 세력으로 몰아갔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이처럼 군을 불신하는 정권에선 군 감시와 견제를 위해 기무사와 같은 조직을 계속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 소식통은 "청와대와 교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기무사 개혁위원회의 한 고위 관계자가 통일 대비 등을 이유로 기무사 요원을 2배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 아연실색한 적이 있다"며 "기무사 해체는 현 정부의 본심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정부는 최근 올해보다 8.2% 증액된 46조7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국방 예산안을 발표했다. 최근 10년 새 가장 높은 수준이다. 문재인 대통령이나 정부 고위 인사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군에 대한 신뢰, 직업군인에 대한 존중을 언급한다. 그럼에도 군인들의 사기나 정권에 대한 신뢰는 그다지 높지 않다. 직업군인들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군에 대한 정권의 태도가 순수하지 않다면 군과 정권의 괴리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는 안보 약화로 이어져 그 피해는 정권뿐 아니라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