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의 역사

전후 일본의 제일 주적

대외 침략에 앞장섰던 일본군은 태평양 전쟁에서 패하며 철저할 정도로 몰락했다. 하지만 냉전이 격화되고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은 이틈을 이용해 패전 9년 만에 군대를 부활시키는데 성공했다. 단순한 경비조직 같은 인상을 주는 애매모호한 이름이고 군대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그렇게 탄생한 자위대는 어느덧 예산 집행 기준으로만 본다면 세계 7~9위 수준을 유지하는 거대한 무력 조직으로 성장했다.

아베 정권 등장이후에는 노골적으로 정식 군대로 바꾸려는 시도를 하는 중이지만, 1946년 공포된 신헌법에서 대외 침략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아직까지 자위대는 외부에서 공격을 받았을 경우에만 대응이 가능하다. 최근 남지나해 일대의 패권을 놓고 중국과 경쟁 중이고 핵 문제로 말미암아 북한도 껄끄러운 상대가 되었지만 1990년 이전까지만 해도 자위대에게 있어 제일 주적은 소련이었다.

20세기에만 러일전쟁, 시베리아 출병, 할힌골 전투, 만주 공세처럼 수차례의 전쟁을 치룬 악연도 있는데다, 냉전 시대에는 미국의 전략에 따라 일본이 소련을 봉쇄하는 거대한 전략 포위망의 한 축을 담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고 러시아가 들어서면서 냉전이 종식되었지만 이러한 패러다임이 바뀐 것은 없다. 최근 중국이 급격히 부상했지만 여전히 러시아는 일본의 가장 큰 주적이다.

한때 소련과 사할린, 만주 등에서 직접 접하기도 했으나 패전 후에는 지리적으로 분리되었기에 만일 두 나라가 전쟁을 벌인다면 어느 일방이 바다를 건너야 한다. 따라서 현재의 일본의 방위 전략상 해상자위대가 우선시 될 수밖에 없다. 굳이 소련이 아니더라도 섬나라라는 지리적 여건상 이는 당연한 선택이다. 그래서 재래식 전력으로만 따질 때 세계 2위로 평가하는 이들도 많을 정도로 해상자위대의 전력은 막강하다.

이에 비한다면 육상자위대의 전력은 약한 편이다. 하지만 그것도 주변의 한국, 러시아, 중국, 북한의 육군과 비교해서 그럴 뿐이지 나름대로 충실한 전력이다. 서류상으로는 일본 열도 전체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으나 전체적인 규모가 작아 러시아군이 상륙할 가능성이 많은 홋카이도에 가장 강력한 전력이 포진되어 있다. 한마디로 육상자위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소련군 상륙 저지라 할 수 있다.

그렇게 개발이 시작되다

다행히도 냉전시대에 소련군이 아무리 강력했다 하더라도 만일 재래식 전쟁만 벌인다면 순식간 일본을 제압할 수 있을 만큼의 전력을 일거에 투입할 방법은 없었다. 일본에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가 상륙 이전에 소련군을 먼 바다에서 격퇴하는 것이고, 만일 이를 통과해 일부 부대의 상륙이 이루어졌다면 증원을 막고 내륙으로 진격하기 전에 격파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처럼 상륙작전은 전력의 축차투입이 불가피하다.

최대한 초기에 축출시키는 것이 대(對)상륙전의 핵심이지만 아무리 홋카이도에 집중 배되었더라도 육상자위대의 전력으로 1,200여 km에 이르는 북부와 서부의 해안선을 촘촘히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상륙이 예상되는 곳으로 진출하기 좋은 지점에 강력한 기동 부대를 배치했다가 상황이 벌어지면 신속히 전개해서 타격하는 것이다. 이런 방어 전략의 핵심은 기동력이고 중심은 전차였다.

더구나 냉전시기의 소련군은 최강의 기갑부대를 운용하고 있었기에 경우에 따라 기갑전도 예상해야 했다. 하지만 소련군이 바다를 건너 홋카이도에 일거에 투입할 수 있는 전차의 수량이 제한되므로 1~2개 기갑사단 정도의 전력이면 충분히 대적이 가능하다. 이에 일본은 자위대 창설 직후 미국에게 막 양산을 시작한 M47 전차 지원을 요청했으나 유럽에 우선 공급이 이루어지면서 제때 도입이 불가능했다.

그러자 일본은 1955년부터 미쓰비시 중공업의 주도로 독자 전차 개발에 나섰다. 이미 제2차 대전 당시에 국산 전차로 전쟁을 치룬 경험이 있었기에 기술력이 충분하다고 자신했던 것이다. 그렇게 탄생해서 1961년부터 배치된 전후 일본 최초의 전차가 61식 전차다. 하지만 단지 외형이 M47과 유사하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모든 면에서 성능이 최악이라는 평가를 들었고 자위대 내부에서도 온갖 불만이 쏟아졌다.

전후 개발된 전차들에게 당연한 파워팩 대신 엔진과 변속기가 분리되어 유지 보수가 어려웠으며 차체 전면을 1930년대 방식인 볼트로 마감해 방어력이 형편없었다. 지난 전쟁 당시에 일본의 전차가 있으나마나 하다는 소리를 들었을 만큼 기술력이 미약하다는 점을 망각했던 것이다. 결국 61식이 배치를 시작한 직후인 1962년부터 후속 전차에 대한 개념 연구를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후계자가 바로 74식 전차이다.

실패를 교훈삼아

1960년대는 T-62, M60, 레오파르트 1, AMX-30 같은 제2세대 전차들이 속속 배치되기 시작한 시기였으므로 만일 제1세대 전차인 61식이 10년 정도 빠른 1950년대에 등장했다면 최악이라는 소리는 듣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참담한 실패를 경험했기에 미쓰비시 중공업은 일선 배치 시기를 70년대 중반으로 상정하고 최대한 시행착오를 줄이고자 당시까지 개발된 최신 전차들을 면밀히 참조해 신예 전차 개발에 나섰다.

최초 개념 연구 단계에서는 자동장전장치, 원격 작동 대공기관총, 전자제어 방식의 현가장치 같은 여러 기술을 적용하려 했다. 이는 현재의 최신 전차들이 보편적으로 채택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시대를 앞선 시도였다. 그렇게 제작한 시제품인 STB-1로 실험을 한 결과 성능의 향상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보다 구조가 복잡해지고 가격의 상승으로 인한 문제점이 커서 수동식으로 설계 변경이 이루어졌다.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된 STB-1은 1970년 언론을 통해 처음으로 존재를 알렸고 1972년 벌어진 퍼레이드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STB-6까지 총 6대의 시제품을 만들어 실험을 거친 후 1975년 74식 제식명을 부여받고 본격 양산이 시작되었다. 비록 74식은 경쟁 전차에 비해 등장은 늦었지만 유기압식 현가장치, 레이저 거리측정기처럼 여러 앞선 성능을 구현해서 종종 제2.5세대 전차로 분류된다.

74식은 1988년까지 총 893대가 생산되었다. 섬나라라는 환경과 아직까지 무기의 대외 수출이 금지되어 자위대에서 필요한 물량만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적지 않은 수량이라 할 수 있다. 제3세대 전차인 90식 전차가 여러 이유로 양산이 지체되면서 수적으로 일본의 주력전차를 계속 담당하다가 2010년부터 이를 대체할 목적의 10식 전차가 배치되면서 급속히 퇴역이 진행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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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