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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의 역사

HK(Heckler & Koch, 헤클러&코흐)는 1948년에 창립된 이래 ‘남들과는 다른 총’을 만드는 것을 주 특기로 번창한 회사이다. 이 회사의 주력 상품이던 G3계열 소총과 MP5계열 기관단총들은 모두 그 이전의 총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롤러로킹(roller-locking)'식 '지연 블로우백(delayed blowback)'이나 정밀 프레스 가공 기법으로 만든 철판 소재의 몸통을 사용하는 등 강렬한 개성을 뿜어왔다.

권총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마우저 HSC권총을 베이스로 삼았지만 슬라이드를 철판 프레스 가공으로 만들고 총열 등을 바꿔 4가지 다른 탄약을 하나의 총에서 사용할 수 있게 만든 HK4, 폴리머 프레임과 스트라이커 격발 방식의 조합을 최초로 실현한 VP70, 롤러로킹 기구를 권총에 넣어 완성한 P9, '스퀴즈 코킹(squeeze cocking)'이라는 독특한 격발구조와 '가스압 사용 지연 블로우백(gas-delayed blowback locking system)'이라는 독특한 구조를 조합해 만든 P7 등, 1980년대까지 HK가 내놓은 권총들은 하나같이 강렬한 개성을 내뿜는 총기들이었다. 다른 회사들에 의해 일반화된 기구나 구조는 일부러 피하는 것 아닌가 할 정도로 이들의 개성은 강렬했고, 이것은 HK사의 캐릭터로 거의 40년간 자리 잡았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이런 캐릭터를 더 이상 지켜나가기 어렵다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졌다. 특히 권총의 세계에 불어닥친 새로운 폭풍은 HK의 눈이 번쩍 뜨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 폭풍은 HK의 본사가 있는 오베른도르프(Oberndorf)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오스트리아에서 불어닥치고 있었다. 1980년대에만 해도 이 폭풍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깨달은 총기 업체는 의외로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업체들은 이 폭풍이 좀 세기는 해도 얼마 안 있으면 사그러질 한 때의 유행 정도라고 방심했다. 그러나 HK의 엔지니어들은 이것이 곧 지나갈 그런 바람이 아니라 모든 것을 집어삼킬 거대한 태풍임을 직감했고, 그에 맞서기 위한 새로운 권총의 개발을 1989년부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에서 불어온 폭풍은 바로 ‘글록’이었다. 폴리머(polymer) 프레임과 스트라이커(striker) 격발 방식이라는 조합으로 완성된 이 새로운 권총은 완성되자마자 오스트리아군 제식으로 채택되었고, 1986년에 미국에 수출이 시작되자 거의 한 달 만에 목표 연매출이던 3만정 판매를 달성하는 등 시장에 파란을 일으킬 조짐을 초반부터 보이고 있었다. 그 자신이 혁신을 통해 성장해 온 HK로서는 앞으로의 권총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글록이 일으킨 혁신에 맞설 제품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누구보다 분명하게 보였다.

이 때문에 새로운 권총에서 한 가지는 분명히 받아들여야 했다. 바로 폴리머 프레임이었다. 글록의 성공은 앞으로의 대세가 폴리머 프레임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줬다. 다행히 HK는 이 분야의 선구자였다. 비록 상업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폴리머 프레임을 상업화한 것은 사실 HK가 글록보다 10년 정도 먼저였다. 1970년대 초반에 개발된 VP70권총에 폴리머 프레임이 적용된 것이다. 아직 그 당시의 노하우나 관련 기술자들이 사라진 시기는 아니었던 덕분에 HK는 폴리머 프레임을 새로 되살리는데 다른 업체들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글록이 일으키는 폭풍도 문제였지만 HK 자신의 권총들 자체가 앞으로의 총기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이 분명해진 것도 문제였다. 당시 HK의 주력 상품이던 P7계열 권총은 두터운 손잡이 디자인으로 인해 13연발 이상의 탄창을 적용하기 어려웠고, 독특한 스퀴즈 코킹(쥐어짜기식 격발) 기구는 장점도 많았지만 너무 개성이 강해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기 어려운데다 복잡한 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독특한 가스압 사용 지연 블로우백이라는 구조로 인해 미국 시장에서 1990년대 초반에 돌풍을 일으킨 신형 .40S&W탄의 적용마저 어려웠다. P7은 원래 9mm탄에 특화된 총으로, .40S&W탄을 적용하려면 슬라이드를 훨씬 두껍고 무겁게 만들어야 했다. 물론 슬라이드가 너무 무겁고 두꺼우면 조작성과 휴대성이 나빠진다.

이 때문에 HK의 기술자들은 차세대 권총으로 1) 폴리머 프레임에 2) .40S&W탄을 사용하며 3) 보다 일반적인 구조와 조작성을 가진 권총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1993년에 발표된 HK의 USP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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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1993년에 처음 발표된 USP, 즉 ‘다용도 자동권총(Universal Self-loading Pistol)”은 그 동안 다른 권총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개성을 아이덴티티로 내세웠던 HK가 과거와 결별한 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간단하게 말해, USP는 당시의 HK가 글록을 최대한 따라하면서도 ‘무단복제’라는 평가는 안 듣게 하려고 노력한 총이었다. 슬라이드가 끼워지는 레일 등의 금속 부품이 미리 삽입된 상태로 성형된 폴리머 프레임은 글록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이지만, 그보다 먼저 HK도 VP70에서 실현한 기술이기 때문에 글록의 모방이라는 평가를 받을 일은 없었다. 하지만 스트라이커 격발 기구는 당시 글록이 관련 특허를 걸어놓은 탓에 쉽게 채택하기 어려웠고, 그로 인해 전통적인 해머 격발식 더블액션 기구를 채택해야 했다.

HK가 자신들의 기존 권총과 결별한 가장 확실한 부분은 바로 작동 방식이다. 그때까지 HK는 롤러 로킹이나 가스압 지연 방식 등 다른 업체들이 잘 쓰지 않는 구조를 고집함으로써 확실히 개성적인 면모를 유지했다. 이는 단순한 개성만이 아니고, 두 작동 방식 모두 총열이 발사 중에 움직이지 않는 고정식이기 때문에 명중률이 상대적으로 좋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USP는 과감하게 보다 통상적인 브라우닝식 쇼트 리코일 작동 방식을 채택했다. 총열 자체가 슬라이드와 맞물려 몇 mm정도를 함께 움직이다가 총열 뒤가 아래로 내려오면서 멈춰 슬라이드와의 결합이 풀리고 슬라이드만 뒤로 끝까지 후퇴하는 방식으로, 유명한 콜트 M1911이나 CZ75, SIG P220, 브라우닝 하이파워 등 대표적인 베스트셀러들이 먼저 채택한 방식이다. USP는 총열의 작동 방식만이 아니라 형태 그 자체도 글록이나 SIG등 경쟁작들과 거의 같은 모습, 즉 약실 부분이 네모꼴 블록 모양으로 만들어진 모습을 채택해 최대한 개성을 강조하던 과거와는 크게 동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HK가 USP에서 개성을 완전히 버린 것은 결코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부분이 바로 안전장치다. 일단 USP의 안전장치는 단순한 안전장치가 아니라 디코킹 레버를 겸한 것으로, 해머(공이치기)가 뒤로 젖혀진 싱글액션 모드라도 안전장치를 완전히 아래로 내리면 해머가 앞으로 전진하는 더블액션 모드로 전환된다. 하지만 싱글액션 모드에서 안전장치를 위로 올리면 해머는 뒤로 젖혀진 상태 그대로 안전장치만 걸리는 칵&락(Cock & Lock), 즉 1911이나 CZ75등과 똑같은 상태가 된다. 여기서 안전장치를 한 칸 아래로 내리면 안전장치가 해제되어 싱글액션 격발이 가능하고, 안전장치를 더 아래로 내리면 디코킹이 이뤄져 더블액션 격발이 가능한 것이다.

안전장치와 디코킹 레버를 겸하는 발상은 USP가 결코 최초는 아니다. 이미 발터 PP나 P38등이 도입해 널리 알려진 것이며, 유명한 베레타 M92FS권총도 같은 방식의 안전장치를 사용한다. 하지만 HK는 이것을 프레임에 설치해 오히려 1911과 같은 느낌으로 조작할 수 있게 했다. 게다가 그냥 한 가지가 아니라 다양한 변형을 내놓아 사용자의 선택이 가능하게 했다.

V(Variant)로 표기되는 이 변형은 크게 10가지가 존재하며, 각각은 아래와 같다.

V1:  기본형.
 
V2:  V1과 같으나 안전장치 우측
 
V3:  안전장치 레버에 안전장치 기능 없이 디코킹 레버 기능만 있음.
 
V4:  V3과 같으나 레버 우측

V5:  더블액션 격발만 가능(DAO). 안전장치 레버는 안전장치 역할만 함.
 
V6:  V5과 같으나 안전장치 우측.
 
V7:  더블액션 격발만 가능. 안전장치 레버 아예 없음.
 
V8:  생산 안됨
 
V9:  V1과 같으나 안전장치에 디코킹 레버 기능 없음
 
V10:  V9과 같으나 안전장치 우측.
 
LEM:  V7과 같지만 미국 경찰을 주 타겟으로 잡은 방아쇠.
        표준 DAO보다 방아쇠 리셋 거리가 짧고 압력이 다소 가벼워짐.

이 다양한 모드는 일반 사용자가 간단하게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문 교육을 받은 기술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따라서 일반 사용자보다는 경찰이나 군 등의 기관에서 주문할 때 참고가 될 특징이기는 하지만, HK가 USP를 단순한 폴리머 프레임 권총이 아니라 다양한 수요에 부응할 수 있는 제품으로 마케팅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또 다른 특징은 거의 세계 최초에 가까운 ‘레일’의 도입이다. 프레임 앞부분에 라이트나 레이저 등을 장착할 수 있는 일종의 레일을 설치한 것으로, 장래의 권총에는 라이트 등의 액세서리가 주류를 이룰 것이라는 선견지명을 보여줬다. 다만 레일의 규격이 HK의 독자적인 것이라 그 뒤에 세계적인 대세가 되는 피카티니 레일 장비들과 호환성이 없다는 약점 때문에 이 선진적인 특징은 적잖이 퇴색했다.

USP가 다른 총들에도 영향을 끼친 또 하나의 요소가 바로 2중 복좌 용수철 모듈이다. 메인 스프링 안쪽 뒤에 작은 완충용 스프링이 하나 더 들어있는 구조로, 후퇴한 슬라이드가 완충용 스프링 덕분에 너무 강하게 뒤로 후퇴하지 않는 만큼 파손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 USP컴팩트의 경우 완충용 스프링 대신 특수 수지로 만든 버퍼 튜브(완충관)가 따로 들어있는데, 이 버퍼 튜브는 일정한 양을 사격하고 나면 교체가 권장되는 소모품 개념이다.

참고로 거의 같은 시기에 HK는 유명한 MK.23, 일명 SOCOM피스톨을 개발했다. 두 총 사이에 많은 유사점이 있다 보니 USP가 MK.23을 축소해서 만든 것이라든가, 반대로 MK.23이 USP를 기초로 확대되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많지만 사실 두 총의 개발은 시기가 겹침에도 불구하고 따로따로 이뤄졌다. 물론 서로 영향을 받은 부분은 많지만, 두 총은 따로 나눠서 다뤄야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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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현황

USP는 1993년에 .40S&W탄을 쓰는 첫 모델인 USP40이 출시된 이후 9mm탄을 쓰는 USP9이 나왔다. 이 두 총은 기본적으로 같은 틀에 총열과 탄창이 다른 정도의 차이만 있는 제품이었지만, 1995년에는 약간 대형화되면서 .45ACP탄을 쓰도록 개량된 USP45가 발매되면서 미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3대 전술용 권총탄을 모두 커버하는 라인업을 완성했다.

비록 이 총의 개발에 촉매가 된 글록에 비하면 많이 뒤떨어지는 실적을 거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USP는 HK가 그때까지 개발한 그 어떤 권총들보다 큰 성공을 거뒀다. 어떤 형태로든 도입한 국가는 25~26개국 정도에 이르며, 본국인 독일에서도 USP9이 안전장치 형태를 일부 바꾼 모델을 군용 제식으로 채택해 P8이라는 이름으로 현재도 운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민수 시장에서도, 경찰용으로도 이전의 P7이나 P9같은 총들보다 훨씬 큰 성공을 거뒀다. 만약 USP가 없었다면 HK는 주류 권총 시장에서 완전히 밀려났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생각하면 USP가 HK의 ‘구세주’격인 총들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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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형

처음에는 사용 탄약이 다른 전술용 풀사이즈 모델(USP40, USP9, USP45)들만 나왔지만, 곧 이런 저런 다른 모델들이 추가되면서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전개하게 된다.

USP 컴팩트:

1996년에 등장. 9mm와 .40S&W, .45ACP외에도 .357SIG탄을 사용하는 버전이 존재한다. 전체적인 크기가 USP보다 약간 작으며 탄창 용량도 1~2발 적다(사용탄에 따라 다름). 독일 각주의 경찰용으로 P10이라는 이름으로 도입되기도 했으며, 미 이민국에서 .40S&W탄 사용 버전에 LEM방아쇠를 결합한 모델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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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P 택티컬:

USP에 조절식 가늠자와 높이를 더 높인 가늠쇠(소음기 장착시에도 조준이 가능하게 함), 소음기 장착을 위해 길이를 약간 늘리고 끝에 나사홈을 판 특수전용 모델이다. 방아쇠의 후퇴 거리를 조절하는 나사식 멈치와 총열의 흔들림을 최소화하기 위한 고무 O링도 추가되어 명중률을 극대화할 수 있게 했다. USP9, USP40, USP45모두 택티컬 버전이 있으며 USP45 택티컬은 독일 해군 특수부대인 KSK에서 P12라는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KSK가 독일군용이 아닌 .45ACP탄 사용 버전을 채택한 것은 이 탄의 탄속이 상대적으로 느리면서도 탄자가 무겁기 때문에 탄속이 음속 이하로 내려가는 서브소닉탄을 써도 상당한 운동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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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P 컴팩트 택티컬:

USP컴팩트를 USP택티컬과 유사한 방식으로 개량한 특수전용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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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P익스퍼트(Expert):

1998년 등장. 총열 길이를 132mm까지 늘리고 이를 커버하기 위해 원래보다 더 길어진 슬라이드를 올린 사격용 모델. 다른 특징들은 USP택티컬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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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P매치:

USP익스퍼트보다도 긴 153mm의 총열을 가진 사격용 모델. 다만 슬라이드는기본형과 같은 길이로, 이를 커버하기 위해 총구 앞쪽을 덮는 무게추가 프레임에 달려있다. 1999년 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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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P엘리트:

USP익스퍼트와 택티컬, 매치등의 다양한 버전 특징들을 한데 조합했다 할 사격용 버전. 총열은 USP매치와 동급이며 이를 커버하기 위해 익스퍼트보다도 더 긴 슬라이드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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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P 커스텀 스포츠: 

사격용 버전이지만 표준형 USP와 길이는 같다. 고정밀 총열과 경기용의 방아쇠, 경기용의 조절식 가늠자를 장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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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 

독일군용 바리에이션. 안전장치의 작동 방향이 표준형 USP9의 V1타입과 반대(위로 올리면 발사, 아래로 내리면 안전)이다. 안전장치 작동방향이 반대인 이유는 기존에 사용하던 P1(P38의 전후 버전)과 안전장치 작동 방향을 일치시키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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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홍희범 
1995년 월간 플래툰의 창간멤버로 2000년부터 편집장으로 출간을 책임지고 있다. 2008년부터 국군방송 및 국방일보 정기 출연 및 기고를 하고 있으며, 세계의 총기백과, 밀리터리 실패열전 등을 저작하고 2차세계대전사, 컴뱃 핸드건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