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7.23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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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식량 이야기

군대문화 이야기(7) 배가 든든해야 싸움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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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전투식량인 MRE(Meal, Ready-to-Eat)를 취식 중인 미군 병사들의 모습. <출처: Michael Stepien, NSRDEC Combat Feeding Directorate>

일찍이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 1769~1821)는 “군대는 위장(胃腸)으로 행군한다”고 말한 바 있다. 먹지 못한 군대는 걸을 수도, 싸울 수도 없음을 간파한 말로, 식량의 보급이 전쟁의 승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결코 작지 않음을 꿰뚫는 명언이다. 전쟁이라는 것이 항상 안정적인 상황에서만 터지지는 않으므로 원활한 식량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경우를 대비해 간편하게 휴대하여 취식 할 수 있도록 등장한 것이 바로 전투식량이다.
러시아군의 초토화 전술과 동장군에게 당한 후 패퇴 중인 프랑스 군의 모습. <출처: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전투식량은 보급선이 제대로 깔리지 않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만든 간이식으로, 주로 휴대성과 열량에 중점을 두고 만들어진다. 포장은 최대한 단순하고 가볍게 하며, 음식물은 최대한 고칼로리, 고열량으로 만들어 허기를 없애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전투식량’이 처음 등장한 것은 생각만큼 오래되지 않았는데, 이는 식품 공학 뿐 아니라 장기포장과 가공기술이 발달하면서야 본격적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전투식량의 역사 – 최초의 전투식량

유사이래 모든 군대는 항상 보급에 신경을 썼는데, 원활한 끼니의 공급은 전투력 유지 뿐 아니라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전의 실패는 전투에서 패배하게 하지만, 보급의 실패는 전쟁에서 패배하게 한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같은 맥락에서 적이 식량 공급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여러 나라에서 전통적인 전법으로 활용되어 왔다. 대표적인 경우는 고려가 거란족을 상대로 사용했던 청야 전술(靑野戰術)이나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때 러시아군이 활용한 초토화(焦土化)작전이다. 둘 다 모두 아군이 내륙으로 퇴각하면서 적을 끌어들이되, 동시에 아군이 퇴거하는 길목에 있는 모든 보급자산이나 식량을 없앰으로써 적을 굶주리게 하는 것이다. 이 전술로 고려를 침공한 거란족은 전력을 소모하다 귀주에서 대패했고, 나폴레옹은 러시아 내륙까지 진출했으나 초토화전술과 동장군(冬將軍)에게 말려들어 처참하게 패전했다.

"최초의 현대적 지휘관"으로 꼽히는 윌리엄 테쿰세 셔먼(William Tecumseh Sherman) 장군. 그는 적을 직접 격파하기보다는 주변 인프라와 보급선을 끊어 적의 전투의지를 끊는 방식을 선호했다. <출처: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훗날 남북전쟁 때 북군 지휘관을 지낸 윌리엄 테쿰세 셔먼(William Tecumseh Sherman, 1820~1891) 장군 역시 적을 직접 격파하기보다는 주변 인프라와 보급을 끊는 방식으로 주로 접근했는데, 이 모든 전술은 모두 아직 식량 조달이 어렵던 시대에 적의 식량을 고갈시켜 전투의지를 꺾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심지어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도 제갈양(諸葛亮)으로부터 지휘권을 받은 마속(馬謖)이 사마의(司馬懿)를 상대로 싸우면서 손자병법(孫子兵法) 허실편(虛實篇)의 문구에 착안해 산 위에 진을 치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사마의가 산을 포위하고 시간을 끌자 식수가 부족해진 마속의 군대는 갈증으로 고통받다가 결국 패퇴하였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식량과 식수의 문제는 전투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다.
니콜라 아페르(좌)가 고안한 병조림(우) <출처: Public Domain>
현대적인 전투식량이 처음으로 개발된 것은 나폴레옹 시대로, 아이러니하게도 전투식량을 고안한 계기가 바로 앞서 언급한 러시아 원정 때문이었다. 나폴레옹은 장거리 원정을 앞두게 되자 군수보급의 부담을 줄일 목적으로 휴대가 간편한 식량 보존 기술을 공모하며 1만 2천 프랑을 현상금으로 걸었다. 이 공모에는 제과업자 겸 발명가인 니콜라 아페르(Nicolas Appert, 1749~1841)가 음식을 와인 병에 담은 후 가열하여 멸균 및 진공처리한 휴대식이 선정됐다.
초기의 양철캔 <출처: Science Museum>

하지만 이것을 다시 양철 캔 안에 담아 밀봉 처리하는 휴대식으로 발전시킨 것은 영국의 피터 듀란드(Peter Durand, 생몰년대 미상)로, 그는 1810년 8월 25일에 발명을 신청하여 영국 국왕 조지 3세(George III, 1738~1820)으로부터 특허(3372호)를 받았다. 그는 특허를 브라이언 돈킨(Bryan Donkin, 1768~1855)이라는 사업가에게 1천 파운드로 팔았으며, 돈킨은 존 홀(John Hall)이라는 동업자와 함께 실제로 통조림 공장을 세운 후 1813년부터 영국군에게 납품했다. 피터 듀란드는 1818년에 자신이 앞서 땄던 동일한 특허를 미국에도 신청했다. 하지만 휴대성이 좋은 통조림이 나왔음에도 이를 따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영국군은 대검이나 칼로 통조림을 열다 칼날이 상하기 일쑤였고, 심지어는 총으로 쏴 버려 내용물이 새어 나가기도 했다. 이 문제는 1858년경 통조림 따개가 등장하고 나서야 해결이 되었다. 또한 한동안은 금속제 용기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에 납으로 된 캔에 음식을 보관하다가 병사들이 납에 중독되는 사태도 벌어졌다.


미-서전쟁과 ‘소고기 스캔들’

본격적인 전투식량의 연구는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시작됐으며, 그 계기는 미국과 스페인 간에 터진 미-서 전쟁이었다. 미국은 사상 최대규모의 내전인 남북전쟁을 겪으면서 처음으로 식사를 비롯한 대규모 군수보급의 어려움을 경험했다. 그나마 남북전쟁 때는 전쟁터가 미국 본토 내였기 때문에 장거리 수송의 부담이 적은 편이었다. 미군은 병영 내에서 직접 소를 키우다 도살하여 고기를 배급했고, 깨끗하게 씻은 후 말린 야채는 압착하여 덩어리로 보관하다가 배분했다.

미서전쟁의 일부인 산 후안 언덕(San Juan Hill) 전투 묘사도.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1898년에 터진 미-서 전쟁 때는 미군이 쿠바와 필리핀으로 원정을 떠나야 하는 장기원정의 부담이 발생했다. 이에 미 육군 총사령관(Commanding General of the United States: 1903년 육군참모총장직 설치와 함께 폐지)인 넬슨 마일즈(Nelson A. Miles, 1839~1925) 중장은 카리브 해의 푸에르토 리코나 쿠바의 현지 목장에서 소를 구입해 식량을 조달하자고 건의했으나 묵살당했고, 대신 미 전쟁부(Department of War: 국방부의 전신)의 러셀 알저(Russel A. Alger, 1836~1907) 장관은 시카고의 대형 정육 포장업체 세 곳과 계약을 체결해 소고기의 공급과 납품을 책임지게 했다. 하지만 이들 정육업체는 미군이 급박한 상황이고, 어차피 대부분의 소비가 바다 건너 쿠바와 필리핀에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미군 당국이 소고기의 질을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할 것으로 보고 양을 줄인 저질 소고기를 납품했다. 뿐만 아니라 이 고기는 장거리 수송과정에서 취급 부주의로 변질까지 되면서 수많은 병사들이 식중독 증상을 일으키게 되었다. 당시 쿠바 전선에서는 황열병과 말라리아로 고생해 쇠약해진 병사들이 많았으므로 이 부패한 소고기를 먹고 사망한 사례까지 급증했다. 전쟁기간 중 군의관들은 식중독과 황열병 증세가 비슷해 이들의 사망원인이 소고기 때문일 것이라고 인지하지 못했으나, 이 문제는 전쟁 종전 한달 뒤부터 심각한 의혹을 사게 되었다.
미 육군 총사령관을 지낸 넬슨 마일즈(Nelson Appleton Miles) 중장.

전후 미 의회는 식중독으로 사망한 병사 수가 전사한 병사 수보다 많다는 의견과 전쟁에 참전한 수의관들의 편지를 근거로 조사에 들어갔다. 수의관들은 “미국에서 온 소고기는 부족한 냉동보관 시설을 상쇄하려는 목적으로 대량의 화학 방부제를 투여했으며, 냄새는 포름알데히드 처리를 한 인간의 시신과 비슷했고, 요리의 첫 맛은 붕산 맛 같은 것이 났다”고 증언했다. 특히 당시 고기 냄새에는 알코올향 같은 것이 배어 있었다고 하여 언론은 “술 먹인 고기” 스캔들이라고 이름 붙여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이미 전쟁이 끝나버린 지 시간이 지났고, 필리핀 전선을 지휘한 웨슬리 메릿(Wesley Merritt, 1836~1910) 장군은 필리핀에선 이런 문제를 보고받은 바 없다고 하면서 진상규명이 어려워졌다. 심지어 당시 병참사령관을 지낸 찰스 이건(Charles Eagan, 1841~1919) 준장은 마일즈 장군이 거짓말을 한다며 격렬하게 비난하다가 품위 손상을 이유로 직무정지를 당했다. 이 사건은 결국 윌리엄 맥킨리(William McKinley, 1843~1901) 대통령이 개입하면서 정리되었다. 앨저 장관은 전쟁 기간 중의 부족한 리더십 문제와 ‘술 먹인 고기’ 스캔들의 책임을 지고 사임을 압박 받아 1899년 8월 1일자로 장관직을 내려놓았으며, 이 사건은 미군의 군수보급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혁할 뿐 아니라, 미군이 본격적으로 전투식량 개발에 돌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두 차례 세계대전과 미군 ‘레이션(Ration)’의 등장

1차 세계대전 중 전투식량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게 된 계기는 참호전 때문이다. 길고 지루한 참호전이 계속되면서 전선의 병사들에게 원활한 식사 공급을 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사전에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식사와 식수를 진지 내에 보급하기 시작한 것이 전투식량의 본격적인 시초다. 전쟁 초에는 가급적 야전 식당을 설치한 후 간단하게 음식을 조리하여 병사들에게 공급하는 것이 각군의 방침이었는데, 전투가 화학전 양상으로 변하게 되자 식자재가 통째로 상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식재료를 철 캔에 담은 후 다시 캔버스 상자로 포장하는 방식이 등장했으나, 전선 곳곳에 배달하기에는 무게가 엄청났기 때문에 이 방식은 금방 사라졌다.

미 육군이 1941년께 지급했던 C-레이션의 내용물. <출처: USAMHI>
전투식량이 본격적으로 체계화된 것은 2차 세계대전 때다. 우선 미군은 A, B, C, K, D형 레이션을 개발해 공급했으며, 이는 각각 레터별로 냉동보관 후 조리가 필요한 음식(A), 냉동보관 없이 조리가 가능한 형태(B), 즉각 취식이 가능한 형태(C), 공수부대를 위해 경량화 한 식단(K, 1948년 단종), 그리고 농축 초콜릿 바를 비롯한 고 열량, 고칼로리 식단으로 짠 환자식(D)이었다. 조리가 필요한 A, B형은 시설이 갖춰진 원정기지나 후방 기지에 주로 보급했으며, 전선의 대부분 병사에게는 C형이 공급되었다. 가벼운 포장을 목표로 두었던 K형은 2,830 칼로리에 맞춰 식단을 짜긴 했으나 장기섭취 시 영양 불균형과 비타민 부족현상이 발생했고, 무엇보다 포장 때문에 생산단가가 비싸 종전 후 곧 단종됐다.
1942년 5월, 정글지역에서 씨-레이션(C-Ration)으로 식사 중인 미군의 모습. <출처: USAMHI>
2차 세계대전 후 미군은 전후 전투용 개인 식량, 통칭 씨-레이션(Combat Individual Ration, C-Ration)을 비롯한 23개의 식단을 구성했다. 이 전투식에는 빵, 고기, 야채, 커피, 설탕 등을 다양하게 조합하여 넣었지만, 여전히 3개월 이상 취식할 경우 영양 불균형이 발생하기도 하고 메뉴에 질리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나마 이 시기에 미군이 고기를 배불리 먹을 수 있던 것은 전투식량보다는 스팸(Spam)의 덕이 크다. 돼지 어깨살을 모아 만든 싸구려 고기인 ‘스팸’은 상온에서 장기 보관이 가능하고, 필요하다면 굳이 조리하지 않고도 돼지 살코기를 실컷 먹을 수 있는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미군은 1958년에는 MCI (Meal, Combat, Individual)를 개발해 씨-레이션을 대체했으며, 한 끼니는 1,200 칼로리 수준을 맞추었다.
2차대전 때부터 미군의 주요 고기 공급원 역할을 한 것은 의외로 스팸(Spam)의 덕이 컸다. <출처: Spam.com>
이후에도 미 병참사령부(US Quartermaster Command)는 휴대성을 위해 중량이 가볍고 수분이 없는 음식을 개발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전투식량이 또 한 번 획기적인 발전을 이룬 것은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된 우주개발 경쟁 덕이었다. 이 시기부터 NASA를 비롯한 다양한 단체들이 우주식을 개발하기 위해 열을 올렸으며, 1962년 아폴로 11호의 달 탐사 때에는 냉동건조 치킨과 썰은 감자 요리 등을 포장한 LRP(Long-Range Patrol)가 지급됐다. 오늘날 전투식량의 대명사인 MRE(Meal Ready to Eat, 상표명)는 1970년대에 개발되면서 금속제 용기를 없애 가벼워졌고, ‘발열 팩(FRH: Flameless Ration Heater)’이 포함되어 야전에서도 뜨거운 식사가 가능해지게 되었다. FRH는 플라스틱 팩으로 포장한 산화 마그네슘이 물과 만나면 끓어오르는 현상을 이용한 것인데, 개발 초창기에는 엄청난 수증기를 뿜는 것이 기도비닉(企圖秘匿)에 방해가 된다는 지적이 있었으나 이 또한 지속적인 개선을 거치면서 오늘날 FRH는 연기를 크게 줄였다.
2012년, 미 제 105 공중수송비행단이 태풍 "샌디" 이재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구호용 전투식량을 포장 중인 모습. 전투식량은 휴대성과 보존성이 뛰어나고 섭취가 간단하여 재난구호나 인도적 지원 작전에도 많이 쓰이고 있다. <출처: US National Guard>
오늘날에는 가장 잘 알려진 전투식량인 MRE 외에도 현지 조달이 가능한 재료로 포장되는 A/B 레이션, 이동 중 취식이 가능하도록 3일치 끼니를 한 팩으로 포장해 2,000칼로리를 맞춘 FSR(First Strike Ration), 그리고 D레이션을 대체해 개발한 농축 초콜렛 바인 “후아 바(Hooah! Bar)” 등이 공급되고 있다. 이제는 메뉴도 12개에서 24개로 늘어났을 뿐 아니라 채식주의자나 이슬람교의 할랄(Halal) 음식 및 유대교의 코셔(Kosher) 음식 같은 특정 종교를 위한 식사도 제공되고 있다. 하지만 열량과 휴대성에 중점을 두는 식사다 보니 아무래도 맛에 대해서는 후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듯하다. MRE는 한 때 ‘적도 거부한 음식(Meals Rejected by Enemy)’이라는 별명이 있었으며, 이라크 자유작전 초반에는 파병 군인들의 사고를 막으려고 미 식약청의 승인이 나지 않은 성욕 감퇴제가 들어있다는 소문까지 돌아 미군 당국이 이를 부인하는 성명까지 냈었다.
미 육군 FSR(First Strike Ration)을 취식 중인 미 육군 병사의 모습. <출처: 미 해군/Petty Officer 2nd Class Jesse B. Await>

다양한 환경과 교리에 맞춰 개발된 세계 각국의 전투식량

이제는 조리기술과 포장기술이 발달하고, 전투력 유지에 있어서 “식사”의 중요성을 어느 나라나 깨닫고 있기 때문에 세계 각국이 각자 환경에 맞는 전투식량을 제작해 지급하는 추세다. 전투식량은 우선적으로 가벼운 중량과 하루 필수 열량, 그리고 적절한 비타민을 공급하는 것이 우선적인 목적이지만, ‘맛’ 또한 사기와 직결되는 부분인 데다 장기 취식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물리지 않아야 하는 문제도 전투식량의 중요한 요소다.


이스라엘 방위군

이스라엘 방위군은 2006년까지 5인 1식 기준이나 4인 1식 포장이 3일치 단위로 구성된 ‘마놋 크라브(Manot Krav)’라는 전투식량을 지급해왔다. 굳이 5인이나 4인 단위로 포장을 짠 것은 셔먼(Sherman) 전차 승무원(5인)과 메르카바(Merkava) 전차 승무원(4인)을 기준으로 잡은 것으로, 내용물은 포도 잎으로 싼 쌀밥 1개, 참치 캔 8개, 올리브 캔 1개, 옥수수 캔 1개, 콩/피클 1통, 발라 먹는 할바 1팩(디저트), 바르는 초콜릿 1팩, 과일 향 음료가루, 누룩없이 구운 크래커나 빵 1개, 케첩, 겨자, 참깨 사탕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스라엘 군 전투식량의 특징은 대부분 건조음식이나 통조림 음식이며, 전장이 대부분 온대나 열대지방이기 때문에 발열 팩은 따로 들어있지 않다는 점이다.

전투식량을 취식 중인 이스라엘 여군. <출처: Public Domain/Israel Defense Forces Spokeperson's Unit>
하지만 2006년 2차 레바논 전쟁 이후 기존 전투식량에 문제가 제기됐다. 당시 대규모 예비군 동원을 실시한 이스라엘 방위군은 4인 1팩 포장을 배포하자니 인원 수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캔이 많아 보병들이 휴대하기에 무겁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이에 따라 2007년부터 신형 전투식량이 개발되어 1인 단위의 즉각 취식, 자체 발열형으로 포장했다. 또한 중량을 줄이기 위해 모든 용기를 철이나 양철에서 플라스틱이나 알루미늄으로 교체했고, 3일치 대신 1일치(3식)로 포장을 했다. 이는 통상 전투식량이라는 것이 개전 순간부터 종전 시까지 취식 하는 용도가 아니라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적의 공격을 막는 단계에서는 아군 보급선이 살아있어 제대로 된 식사가 보급되며, 전투식량이 필요한 것은 오직 역습을 시작해 적의 영토 내로 들어간 후 아군 급양선이 깔릴 때까지 뿐이기 때문이다. 내용물도 ‘코셔(Kosher)’를 따라 만든 닭이나 소고기 햄 1통, 참치 4캔, 할바(halva, 과자의 일종) 1캔, 절인 정어리 1캔, 피클 1캔, 옥수수 1캔, 올리브나 땅콩 1캔, 음료가루, 플라스틱 스푼 및 통조림 따개, 사탕 1봉지, 미니 접시로 구성되어 있다.
이스라엘군 4인용 24시간 전투식량 개봉기 <출처: 유튜브>

사실 이스라엘의 경우 나라가 작다 보니 어지간한 전초기지가 다 인근 도시의 피자 가게로부터 30분 이내에 배달이 가능한 범위이고, 공세 상황이 되더라도 적지 종심까지 짧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실제 전투식량이 필요한 경우가 많지 않다. 심지어 내용물도 그렇게 환영받는 식단은 아니기 때문에 인기가 없어 주로 야외 기동훈련이나 전시 동원 때 소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전쟁 중에도 적지에서 보급선이 깔릴 때까지 버티는 동안 한 두 끼 정도를 해결할 목적으로 배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2011년부터는 인기 메뉴였던 콘비프를 뺄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공급업체가 파산하는 예상 밖의 상황 때문이었다. 이 교훈을 바탕으로 이스라엘 국방부는 전투식량 공급업체를 다양화하기 위해 경쟁 입찰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참치 캔의 경우 절임용 기름 무게를 줄이기 위해 참치 살코기를 기름에 절인 종이로 포장해 캔에 넣는 방식이 제안된 경우다.


이탈리아군

이탈리아도 비교적 일찍 전투식량을 도입한 국가 중 하나다. 이는 이탈리아 군이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군비확장에 집중하며 군수장비와 연구개발에 집중했던 결과다. 이 때문에 1930년대의 이탈리아군 자체는 비록 엉성한 조직구성으로 2차대전 발발 후 힘을 쓰지 못했지만, 장비만큼은 현대화가 상대적으로 잘 이루어져 있던 군대였다. 특히 1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이탈리아 군은 무엇보다도 무기체계와 수송, 그리고 식량의 원활한 공급이 있어야만 전투가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을 배웠다. 따라서 이미 2차 세계대전 시기가 됐을 무렵엔 운송이 쉽고, 장기 보관이 가능하며, 어떤 기상 상황에서도 항공기를 통한 투하가 가능하고, 영양가가 높아 높은 사기를 유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투식량을 개발했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군은 이미 2차 세계대전 시기부터 하루 식사를 세 끼로 나누어 아침, 점심, 저녁을 다르게 포장하는 방향으로 전투식량을 개발했다.

이탈리아군 전투식량의 포장(좌), 구성(중간), 그리고 내용물(우) <출처: mreinfo.com>

현대 이탈리아군의 전투식량 역시 7일치를 한 팩으로 하여 조식, 중식, 석식이 따로 구분되어 있다. 조식은 상대적으로 당이 많은 사탕이나 초콜릿 류와 커피 위주로 꾸려져 있고, 중식과 석식은 든든한 미트 소스 파스타나 핫도그 같은 식사와 과일 디저트가 들어있다. 이탈리아 전투식량은 중량에도 불구하고 철 캔이 하나 들어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가벼운 조리를 위해 냄비나 프라이팬 대용으로 쓰라는 용도이다. 또한 가벼운 식전주가 작은 병으로 포장되어 있는 것도 이탈리아 군 전투식량의 특징이다. 이탈리아 군 전투식량은 메뉴 구성과 맛에 있어서 매우 호평을 받는 전투식량 중 하나이다.


프랑스군

프랑스 군의 전투식량인 RCIR(Ration de Combat Individuelle Rechauffable: ‘재가열이 가능한 개인 전투식량’)은 약 3,200칼로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식단이 구성되었으며, 한 박스는 총 12끼니로 이루어져 있다. RCIR은 총 14개의 메뉴로 구성되어 있으며, 종교적인 이유를 고려하여 1번부터 7번 메뉴까지는 돼지고기가 포함되지 않고, 8번부터 14번까지는 돼지고기가 포함된 식단으로 짜여 있다. 각 박스 안에는 특이하게도 1회용 접이식 스토브와 고체연료가 6회분까지 들어있으며, 각 포장에는 앙트레 2캔, 에피타이저 1캔, 인스턴트 수프 1캔, 발라 먹는 치즈, 과자, 주 식사, 에너지 바, 초콜릿 바, 껌, 카라멜, 사탕, 정수용 알약 등이 들어있다.

프랑스군의 RCIR. <출처: 프랑스 국방부[Ministere des Armees]>
주 메뉴로는 비프 샐러드, 참치, 연어, 토끼 캐서롤(casserole: 찜의 일종), 얇게 저민 소고기, 양고기, 닭고기, 해산물 요리 등이 있다. 1990년 이전까지는 작은 병에 담긴 와인도 들어있었다고 하나, 2000년 이후 생산분 이후부터는 와인이 빠진 것으로 보인다. 최대 보관 가능 기간은 2년이며, 식사의 질이나 구성도 훌륭해 평도 좋은 편이다. 진담인지 농담인지는 알 수 없으나, 프랑스군과 미군이 합동훈련을 실시하게 되면 RCIR과 MRE를 1:5로 계산해 거래한다는 풍문(?)도 있다. 프랑스 식문화의 위상처럼 맛에 있어서도 가장 호평을 받는 전투식량 중 하나다.
프랑스군 전투식량 소개 <출처: 프랑스 국방부 유튜브 채널>

캐나다 육군

캐나다 군 역시 자체적으로 개발한 IMP(Individual Meal Pack)를 1980년대부터 채택하면서 기존 캔에 제공되던 개인용 레이션 팩(IRP: Individual Ration Pack)을 대체했다. IMP의 내용물은 3년 주기로 연구개발을 통해 교체한다. 캐나다 정부가 권장하는 일일 필수 영양소 기준을 따라서 제작한 IMP는 영양 불균형이나 비타민 부족 현상의 초래를 막기 위해 30일 이상 섭취하지 말도록 권장하고 있다.

신형 전투식량 속의 음료를 마시는 캐나다 여군의 모습. <출처: 캐나다 육군>

한 끼는 약 1,200에서 1,400 칼로리를 제공하며(하루 총 약 3,600 칼로리), 한 팩에는 총 21식이 포함되어 아침식사용 7식과 중/석식용 14식이 한 묶음으로 구성된다. 식사 자체와 별도로 가루 커피, 스포츠 드링크 가루, 에너지 바, 땅콩버터, 시리얼, 사탕, 초콜릿, 껌 등이 들어있다. 메인 메뉴로는 햄 스테이크, 소시지와 해시 브라운, 오믈렛과 버섯소스, 치킨, 소고기 스튜, 미트볼 등이 제공된다. IMP의 식단은 발열 팩으로 가열하는 방식이다.


러시아 연방군

러시아는 개개인의 병사들이 하루 단위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1일 포장식인 IRP(Individual'nyi Ratsion Pitaniya, 개인 전투식량)을 2000년 경부터 전투식량으로 채택했다. 러시아군 역시 전투식량이 “보급선이 깔리기 전까지 임시로 먹는 식사”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런 이유 때문에 6일 연속으로 IRP를 취식 하지 말도록 권장하고 있다.

러시아군 전투식량 <출처: Public Domain>

통상 두꺼운 종이포장이나 플라스틱 용기로 된 박스에 식사가 담겨있고, 5~6끼의 앙트레와 레토르트 식사, 크래커, 보존식 빵, 간단한 디저트, 과일 바, 농축음료, 조미료, 연유 등이 포함되어 있다. 식사로는 소고기 스튜나 돼지고기 스튜, 죽, 청어 통조림, 간으로 만든 파테(pate) 등으로 짜여 있으나 장기 보존을 위해 구운 음식은 포함되지 않는다. 포장에는 불꽃이 발생하지 않는 스토브가 포함되어 있다.


인도군

인도 역시 자체적으로 개발한 전투식량을 도입했으며, 1인용 팩, 소형 팩, 생존형 팩, 특수전부대용과 주력전차 승무원용으로 구분된다. 대부분의 음식은 따로 가열하던가 조리할 필요가 없게 만든 것이 특징이며, 한 끼 식사 전체가 올리브색 플라스틱 백 안에 모두 들어가 있다. 메뉴는 채식 식단과 비 채식 식단 위주로 나뉘어 있으며, 힌두교 특성에 맞춰 소고기는 쓰지 않는다. 주 메뉴는 곡류, 치킨 비리야니, 치킨 카레, 양고기 비리야니, 양고기 카레, 라즈마(콩의 일종) 카레, 채소 카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1인용 팩에는 아침 식사용 차(茶), 아침나절용 차, 오후용 차가 포함되어 충분하게 차를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인도군의 전투식량 <출처: defenceforumindia.com>

한 팩 중량은 880 그램이며 하루 기준 4,100 칼로리를 제공한다. 전투식량 구성 중 특이한 것은 전차병용 팩을 따로 제작한다는 점으로, 이는 전차나 장갑차 승무원 4인이 최대 72시간동안 하차하지 않고 싸워야 하는 상황을 대비한 포장이다. 이 포장은 대부분 조리과정이 필요 없는 음식과 열량이 높은 초콜릿 바 등이 들어있으며, 이틀 분 포장 무게는 약 2kg로 병사 1인당 4,000 칼로리를, 3일차 포장은 1.5kg 무게에 3,000 칼로리를 제공하도록 짜여 있다.


일본 자위대

1형 전투식량 <출처: Public Domain>
일본 자위대의 경우는 창설 초기인 1954년부터 전투양식 1형(戰鬪糧食 I型) 전투식량을 생산해오다가 2000년경부터 2형 전투식량을 생산해오고 있다. 2000년에 개선된 전투식량을 내놓은 가장 큰 이유는 중량 때문인데, 1형은 모든 용기가 금속이라 무거운 데다 조리도 별도로 해야 해서 번거로운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신형 레토르트 방식은 휴대성도 높은데 다가 요리도 발열 팩으로 간단하게 할 수 있어 편의성도 크게 개선되었다.
일본 자위대의 전투식량 2형 개선형 <출처: 일본 방위성>

2형 전투식량은 1끼니 당 200g의 쌀(백미, 팥밥, 고기 야채 밥, 볶음밥, 카레 필라프, 완두콩밥 등)과 반찬 2~3개 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반찬으로는 햄버거, 소시지, 비프 카레, 치킨, 미트볼, 돼지고기, 야끼도리, 훈제 연어, 고등어 구이, 참치 등으로 짜여 있다. 주식 외에는 크래커, 감자 샐러드, 수프 등이 포함되기도 한다. 2009년부터는 2형을 개선한 개선식이 등장했으며, 용기나 조리방법 등이 민간 인스턴트 음식의 조리 방식을 많이 참고했다.


중국인민해방군

인민해방군은 최근 레토르트 형태로 포장된 1인용 전투식량을 개발해 배포하고 있으며, 3개 메뉴로 구성된 인스턴트식과 12개 메뉴로 구성된 자체 발열식 두 종류로 개발됐다. 기본적인 중국 아침식사로 구성된 조식은 약 1,000칼로리를 제공하며, 에너지 바, 돼지고기 춘권, 가루음료 등으로 구성된다. 각 팩에는 물을 넣어 반응시키는 발열 팩이 포함되어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전투식량 <출처: housil @ mreinfo.com>

대한민국 국군

국군은 625전쟁 시기에는 주로 주먹밥을 전투식량으로 제공하거나 미군 전투식량을 공여 받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본격적인 ‘한국형’ 전투식량이 처음 등장한 것은 베트남 전쟁 때로, 이 때에도 파병 초창기에는 미군이 지급하는 씨-레이션에 의존했으나 느끼한 서양식단에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가 많고 대부분 쌀과 김치 위주의 식단을 원했기 때문에 긴급하게 “한국형 전투식량”인 케이-레이션(K-Ration)을 개발해 1967년 2월부터 지급했다. 이 케이-레이션을 레토르트 형태로 개선한 것은 1990년대로, 국방과학연구소(ADD) 주도로 개발하여 전군에 지급하기 시작했다. 2005년부터는 발열 팩이 포함된 전투식량을 지급하면서 물만 있으면 따뜻한 식사가 가능하게 되었다.

즉각취식형 전투식량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 코리아넷>
최근에는 즉석밥의 등장과 민간기업들의 노력으로 메뉴의 다양화가 이루어져 ‘맛이 없다’는 통념이 있던 전투식량의 맛이 크게 개선되었으며, 심지어는 최근 해외에서도 이들 전투식량이 호평을 받는 등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발열 팩 또한 개선이 이루어지면서 이제는 포장 밖으로 거의 연기가 새나가지 않게 설계되었으며, 여열이 한참동안 계속 남아있기 때문에 혹한기 훈련 시나 취침 시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현재 한국군에는 레토르트 형태인 1형과 동결 건조식인 2형의 두 종류 식사가 제공되며, 1형은 데우는 방식이고 후자는 물을 부어 먹는 형태다. 메뉴의 종류도 쇠고기 볶음밥, 김치볶음밥, 햄 볶음밥, 야채 밥, 잡채밥 등으로 다양화되어 있다. 2007년부터는 조리 없이 먹을 수 있는 즉각 취식형(3형)도 보급되어 볶음밥과 소시지, 볶음 김치, 파운드케이크, 새알 초콜릿, 가루음료 등이 한 팩으로 제공되며, 발열 팩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한국 전투식량을 체험하는 영국 군인들의 반응” <출처: 영국남자 유튜브 채널>

계속해서 진화하는 전투식량

최근 전투식량 시장이 확장되는 추세인데, 이는 포장이 간편하고, 무게가 가벼우며, 열량이 충분해 든든하고, 무엇보다 맛이 다양해지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군 뿐 아니라 레저용이나 야외활동 용도로도 소비되며, 구호활동 용도나 재난 대비용으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아무리 전투식량이 맛있더라도, 병사들이 원하는 식사는 따뜻하게 갓 지어낸 제대로 된 한 끼 식사일 것이다. <출차: US Army/C. Todd Lopez>

사실 앞서 살펴보았듯, 전투식량은 전쟁 기간 내내 취식 하는 음식이 아니라 보급선이나 급양시설이 설치되기 전까지 임시 방편으로 삼는 식사다. 메뉴의 개발과 보존 기술의 발전 덕에 수십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해진 것이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전선 위의 병사들이 원하는 음식은 대용식보다는 갓 만든 따뜻한 식사일 것이다. 그래도 지속적인 전투식량의 개발 덕에 이제는 일반적인 환경 뿐 아니라 혹한지에서도 식사가 가능하고, 채식이나 종교식 등 편의에 맞는 메뉴까지 개발이 되어 있어 해외파병이나 국제평화유지군 활동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물론 전투식량이 요리사가 만든 식사나 집에서 만든 밥을 따라갈 순 없지만, 짧은 기간이라도 힘을 얻고 집 생각을 덜 수 있다면 충분히 그 목적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