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의 역사

우리에게는 CZ 75로 유명한 체코슬로바키아(현재의 체코 공화국)이지만, 이 나라가 처음부터 세계적인 권총 명가는 아니었다. 애당초 체코슬로바키아라는 국가 자체가 1918년에야 독립한 신생국이니, 나라의 역사만이 아니라 업체의 역사 그 자체가 100년을 넘는 곳이 즐비한 - 베레타처럼 5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라 해도 - 유럽 지역의 기준으로는 정말 총기 제조의 역사가 짧은 것처럼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체코슬로바키아는 국가의 역사 자체는 짧아도 지역의 역사 자체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전통을 가진 곳이다. 16세기 초반까지 보헤미아 왕국으로서 중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문화를 꽃피웠고, 그 이후에도 보헤미아 왕국은 1918년까지 합스부르크 제국의 일원으로서 문화와 산업 모두를 꽃피웠다. 비록 오스트리아에 본토를 가진 합스부르크 왕가가 국왕을 겸임한다고는 하지만, 인구와 경제 모두 합스부르크 제국 내에서도 본국인 오스트리아 다음으로 강한 보헤미아는 높은 자치권을 누리며 융성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보헤미아는 합스부르크의 중요한 공업지대로서 발전하게 된다. 각종 기계나 병기 산업이 일찍부터 발전했고, 실제로 합스부르크 제국 군대의 중요한 병기 공급처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보헤미아가 합스부르크 제국으로부터 분리되어 체코슬로바키아라는 신생 공화국으로 독립하자 자연스럽게 이 새로운 나라에는 수백년의 전통을 가진 병기 산업이 존재하는 독특한 상황이 연출된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이런 환경에 더해 1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 정세의 흐름을 잘 활용해 1920년대부터 30년대 사이에 세계적인 무기 수출국으로 등극하게 된다. 특히 총기, 그 중에서도 소총과 경기관총의 수출이 크게 융성했는데, 이는 원래대로면 중요한 경쟁자가 되었을 독일의 총기 수출이 1차 세계대전의 패배와 베르사이유 조약의 규제등으로 크게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체코슬로바키아는 독일의 마우저98계열 소총을 기반으로 개발한 Vz.24등의 볼트액션 소총과 BAR등 당시의 대표적 경기관총들의 장점을 취합해 만든 ZB26 경기관총을 생산했는데, 그 중 소총류는 당시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던 독일제 마우저 소총의 수출이 어려워지자 그 대안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마우저 소총과 구조와 조작면에서 사실상 동일한데다 품질도 우수하고, 그러면서도 가격이 적정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또 ZB26 경기관총은 그 시대의 탄창식 경기관총들 중에서는 아마도 최고로 분류해야 할지도 모를 우수한 성능과 실용성, 그리고 가성비를 자랑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세계 각국으로 수출이 이뤄졌다. 특히 당시 오랜 내전과 일본과의 마찰등으로 총기 수요가 막대하던 중국에 대한 수출은 매우 중요한 외화획득원이었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체코슬로바키아는 일시적으로 세계 5위권 안에 드는 무기 수출국으로 융성했지만, 권총의 경우 처음부터 세계적인 명문으로 자리잡았던 것은 아니다. 체코슬로바키아제 권총으로 처음 역사에 나름 이름을 올릴 정도의 지명도를 갖추게 된 것은 1924년에 완성된 Vz.24, 그리고 그 개량형으로 1927년에 등장한 Vz.27정도이다. (여기서 Vz.는 체코어 Vzor, 즉 영어로 따지면 Model) 그보다 먼저 1922년에 Vz.22라는 권총이 만들어지기는 했으나, 이 총은 체코 독자 개발 총기가 아니라 독일 마우저사의 M1914를 라이센스 생산한 것이다.

Vz.24와 27도 그 기원은 Vz.22에 두고 있는데, 비록 여러가지 개량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총기들 모두 당시 유럽에 가장 일반적이던 블로우백 구조의 중~저위력 탄약을 사용하는 호신용 권총에 가까웠다. 사용 탄약도 PPk등의 동계열 총기들에 주로 쓰이는 .380ACP(9x17mm: Vz.22와 24에 사용), 그리고 .32ACP(7.65x17mm SR: Vz27에 사용)탄으로 지금 기준으로 보면 군용으로 쓰기에는 많이 약한 탄이었다. 다만 이 시대에만 해도 권총에 대한 ‘전술적’인 용도를 고민하는 경우는 의외로 적었고, 경찰이나 군대에서 호신용 권총 수준의 약하지만 휴대가 편리한 권총을 사용하는 사례가 결코 드물지 않았다. 실제로 체코슬로바키아 군과 경찰도 Vz.24와 Vz.27의 두 권총을 애용했고, 1938년에 더블액션 격발기구를 적용한 권총인 Vz.38역시 .380ACP탄을 사용하는 점에서 앞서의 체코슬로바키아제 권총들과 근본적으로 큰 차이는 없었다.

여기서 2차대전까지의 체코슬로바키아 군용 총기 업체의 흐름을 설명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원래 체코슬로바키아는 독립 직후 브루노(Brno) 지역에 있던 합스부르크 제국의 조병창을 인수, 이곳을 ZB(Zbrojovka Brno: 브루노 조병창)이라고 이름 붙이게 된다. 이 곳은 그 뒤 군용 소총 및 경기관총등의 개발과 생산에 주력하게 되지만, 이곳 하나만으로 수출과 자국군 무장 모두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또 하나의 총기 업체인 CZ(Česká zbrojovka)가 1919년에 건립된다. 그 뒤로 2차 세계대전까지 ZB가 체코슬로바키아 군용 및 수출용의 주력 볼트액션식 소총과 기관총 등의 총기를, CZ가 권총을 주로 개발하는 패턴이 정착된다. 위에 언급된 Vz.24나 Vz.27이 모두 CZ의 제품이므로, CZ 24/27, 혹은 CZ vz.24나 CZ vz.27로 불리게 된다.

2차 대전 이전까지의 체코슬로바키아제 권총들은 어느 정도 수출도 이뤄지고 생산량도 많아 보이지만, 사실 그중 상당수는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을 위해 생산된 물량이다. 한 예로 Vz.27의 경우 65만정이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중 45만정이 독일군용이었다. 그래도 28개국에 수출이 이뤄졌으니, 상업적으로는 나름 성공을 거둔 셈이었다.

그 뒤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로부터 독립한 체코슬로바키아는 군용 권총 분야에서도 과거와 결별한 새로운 총기의 설계를 추구하게 된다. 사실 이는 단순히 어두운 과거와의 연을 끊자는 감정적인 문제만은 아니었다. 2차 대전 종전 직후의 체코슬로바키아 군은 과거에 사용하던 .380ACP및 .32ACP탄 사용 권총들에 더해 독일군이 남기고 간 대량의 9mm 권총들을 사용하게 된다. 즉 한 나라 군대에 세 가지 다른 권총탄이 존재하는 혼미 상태였고, 이에 대한 교통정리가 필수적이었다. 게다가 체코슬로바키아는 1948년에 공산화되었고, 이로 인해 그 동안 서유럽제 탄약 중심으로 꾸려졌던 이 나라의 군용 총기 설계 방향도 일순간 소련군용 탄약에 맞는 것으로 바꿔져야 했다.

특히 권총의 경우 이런 탄약의 변화는 그 동안의 체코슬로바키아 권총 설계 경향과는 완전히 결별한 새로운 권총의 개발을 요구했다. 앞서 언급했듯 체코슬로바키아의 권총 설계는 폐쇄기구가 없거나 단순한 중소형 호신용 권총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공산화되면서 체코슬로바키아의 군용 권총탄은 소련의 7.62mm 토카레프(7.62x25mm)로 바뀌어야 했다. 그런데 7.62mm 토카레프탄은 그 동안 체코슬로바키아제 권총에 사용된 .32ACP나 .380ACP보다 압도적으로 약실 압력이 높은 강력한 탄약이다. 기존의 설계 개념 적용이 완전히 불가능했다.

체코의 기술자들, 특히 CZ에서 새로운 권총의 설계를 맡은 Kratochvil 형제(체코어의 정확한 발음은 필자가 모르므로 일단 원어 표기를 적용했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꽤 애를 썼음에 틀림없다. 사실 가장 쉬운 방법은 다른 동유럽 국가들처럼 토카레프 권총(TT33)의 카피를 만드는 것이었겠지만, 동유럽 국가임에도 AK소총을 받아들이지 않은데서 볼 수 있듯 독자성을 버리지 않으려던 자존심(+수출을 위한 차별화)에 더해 체코슬로바키아 군이 요구하는 높은 명중률등의 요구 조건들을 충족시키려면 토카레프를 모방하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더군다나 체코슬로바키아군이 기관단총과 함께 사용할 것을 전제로 원래보다 더 강력한 규격의 탄약을 사용하도록 요구하면서 설계가 더더욱 어려워졌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계진은 “축소판 MG42”의 개념을 적용한 신형 권총인 CZ vz.52, 혹은 CZ 52를 1952년에 완성하게 된다. 바로 MG42에 사용된 구조를 단순화한 롤러 로킹식 쇼트리코일 기구를 도입한 것이다. 체코슬로바키아는 2차 세계대전 중 MG42의 중요한 부품 공급원중 하나였고, 또 전쟁이 끝난 뒤 다량의 MG42가 체코슬로바키아에 남아있었기 때문에 이 구조를 응용하는 것이 가장 빨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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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CZ 52의 총열은 두 개의 롤러를 통해 슬라이드와 맞물리게 된다. 탄이 발사되면 총열은 슬라이드와 결합된 상태로 몇 mm를 후퇴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슬라이드와 총열을 결합시킨 롤러는 프레임에 파인 홈을 따라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게 되며, 완전히 안으로 들어가면 총열과 슬라이드의 결합이 해제된다. 이 즈음에서 총열은 프레임에 걸려 더 이상 후퇴하지 않으며, 총열과의 결합이 풀린 슬라이드만이 끝까지 후퇴하여 탄피를 총 밖으로 배출하게 된다. 끝까지 후퇴한 슬라이드는 복좌 용수철의 힘에 의해 다시 전진, 탄창에서 새 탄을 약실로 밀어넣고 재장전을 완료하게 된다.

롤러를 이용해 슬라이드/노리쇠의 후퇴 속도를 늦추고 약실 압력이 안전한 수준으로 떨어질 타이밍을 버는 원리 자체는 나중에 HK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게 하는 롤러 로킹식 지연 블로우백과 흡사하지만, HK방식과 달리 총열도 왕복하는데다 단순히 슬라이드의 왕복 속도를 늦추는 ‘과속방지턱’역할만이 아닌 확실한 폐쇄(즉 적극적으로 슬라이드를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아 주는)가 이뤄진다.

CZ 52는 구조도 특이하지만 디자인도 상당히 흥미롭다. 잘 모르고 보면 이 총은 상당히 미래적인 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며 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이 총을 매우 최근에 나온 총기나 일종의 시제품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총은 엄연히 1950년대의 기술로 설계된 총이며, 방아쇠는 당시의 군용 권총으로는 매우 전형적인 싱글 액션 방식을 채택한 것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또 복좌 용수철은 마치 PPK처럼 총열에 감기며 손잡이 후방을 감싸는 디자인의 그립 패널은 형태부터 결합 방식(금속 클립을 사용)까지 모두 발터 P38 -역시나 2차 대전중 체코슬로바키아가 생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과 매우 흡사하다. 여기에 분해 방식은 CZ vz.27처럼 별도의 분해 스위치를 아래로 내리는 방식이다. 모양은 미래적일지 몰라도 결국은 그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설계진의 상식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셈이었다.

다만 한 가지 재미있는 면은 있다. 싱글 액션이지만 디코킹 구조가 적용된 것이다. 안전장치를 맨 위까지 완전히 올리면 해머(공이치기)가 안전하게 전진하는 것이다. 거의 모든 싱글액션 권총은 이런 구조가 적용되어있지 않은 점을 생각해 보면 매우 이색적인 디자인인데, 아마도 안전성에 대한 체코슬로바키아 육군의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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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현황

CZ 52는 1952년부터 1954년의 2년 사이에 약 20만 정이 집중적으로 만들어져 1980년대 초반까지 체코슬로바키아 육군의 제식 권총으로 활용되었다. 현역에서 물러난 뒤로도 대부분이 예비용이나 후방용등으로 계속 보관 및 사용되다가 민주화로 체코군이 대대적인 군축을 단행하면서 거의 대부분이 해외로 수출되었다. 이 때문에 얼마간 미국에서 $200~250 정도의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이 총이 판매되기도 했는데, 수출 물량이 상당부분 소진된 지금은 다소 가격이 올랐지만 그래도 홀스터등의 각종 액세서리와 예비 탄창을 완전히 갖춘 최상급 컨디션의 중고가 $400~500 정도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다만 사용탄이 관통력은 매우 높아도 대인저지력이 뛰어나다고 보기는 어려운 7.62mm토카레프인 점, 장탄수가 8+1발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크기는 거의 1911에 육박하는 사이즈인 점 등으로 인해 오늘날 실용적인 권총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다만 이 저렴한 가격은 군에서 오랫동안 쓰다 방출된 중고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만약 신품을 오늘날 만들어 민간 시장에 판매한다면 제법 비싼 총이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군용으로의 수출도 잘 이뤄지지 않은 편이고, 자료에 의하면 카리브해의 섬나라 그레나다나 아프리카의 탄자니아에서 사용된 적이 있다고 하는 정도 외에는 눈에 띄는 사용국을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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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원

- 길이 : 210mm
- 무게 : 950g
- 총열 길이 : 120mm
- 탄창 용량 : 8발
- 사용탄 : 7.62mm 토카레프(7.62x25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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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홍희범
1995년 월간 플래툰의 창간멤버로 2000년부터 편집장으로 출간을 책임지고 있다. 2008년부터 국군방송 및 국방일보 정기 출연 및 기고를 하고 있으며, 세계의 총기백과, 밀리터리 실패열전 등을 저작하고 2차세계대전사, 컴뱃 핸드건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