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5.24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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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노스롭 F-20 타이거샤크

시대를 앞서간 불운의 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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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대 비행 중인 F-20 전투기 <출처 : 미 공군>


개발의 역사

2차 대전 중에 등장한 제트 엔진은 획기적인 추진기관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5년에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대부분의 주력 전투기는 아직도 왕복엔진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1950년에 일어난 6.25 전쟁에서 제트전투기의 공중전이 처음 벌어졌고 이후 제트전투기가 주력을 차지하게 되었다.

노스 아메리칸 F-86 세이버 (North American F-86 Sabre) 전투기 <출처 : 미 공군>

소련이 아음속 MiG-15, MiG-17 전투기를 주력으로 사용할 때 미국은 F-84, F-86 전투기 정도면 충분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1950년대 초에 미 공군은 우방국가에 F-84, F-86 전투기와 같은 아음속 제트전투기를 대량으로 공급하였다. 한편 미 공군은 F-100 전투기를 시작으로 성능이 우수한 제트전투기를 잇달아 개발하여 실전에 배치하였다. 이른바 센추리 시리즈(Century Series)라고 불린 미 공군의 신형 전투기는 속도성능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더 멀리에 있는 적을 탐지하기 위해 강력하고 복잡한 레이더(radar)를 탑재하였다. 그러나 대형 레이더를 탑재하면서 전투기의 크기가 커졌고 전투기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기동성능은 반대로 악화되었다.

노스 아메리칸 F-100 슈퍼 세이버 (North American F-100 Super Sabre) 전투기 <출처 : Cobatfor at wikimedia.org>

시간이 흘러 소련 제트전투기의 성능이 점차 향상되었고, MiG-19 전투기에 이르러 초음속을 돌파하자 아음속 전투기를 주력으로 사용하던 서방측 우방 국가는 미국에 새로운 전투기를 요구하였다. 미 공군은 이미 실전에 배치된 초음속 전투기가 있었지만 복잡한 전자 장비를 갖춘 고급 기종을 우방국가에 공급하는데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첨단 레이더와 미사일 기술이 유출될 염려도 있었고, 전투기 자체가 매우 크고 무거운 기종이어서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여 미 공군은 우방국가 공군이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가벼운 전투기(light weight fighter)가 필요하였고 여기에 미국의 신생업체인 노스롭(Northrop)이 도전하였다.

미코얀-구레비치 MiG-19 파머 (Mikoyan-Gurevich MiG-19 Farmer) 전투기 <출처 : 미 공군>

에드가 슈미드 (Edgar Schmued) <출처 : San Diego Air and Space Museuem>

록히드(Lockheed), 더글러스(Douglas)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던 잭 노스롭(Jack Northrop)은 1939년에 독립하여 캘리포니아(California) 호돈(Hawthorne)에서 항공회사를 창업하였다. 2차 대전 중에 노스롭은 P-61 야간전투기를 개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F-89 요격전투기를 개발하여 미 공군에 대량으로 납품하였다. 1952년에 노스롭은 노스 아메리칸(North American)에서 물러난 에드가 슈미드(Edgar Schmued)를 고문으로 초빙하여 미래의 전투기 사업에 관한 큰 그림을 그리도록 하였다. 에드가 슈미드는 2차 대전 최고의 전투기인 P-51 머스탱(Mustang)의 개발을 주도하였고 이후 F-82 전투기, F-86 전투기를 거쳐 F-100 초음속 전투기를 개발한 유명한 인물이다.

노스 아메리칸 P-51 머스탱 (North American P-51 Mustang) 전투기 <출처 : Arpingstone at wikimedia.org>

노스 아메리칸은 1950년대에 F-100 전투기를 끝으로 전투기 사업을 대폭 축소하고 냉전시기에 각광을 받던 폭격기, 우주개발 사업으로 전환하였다. 이에 따라 에드가 슈미드는 정든 회사를 떠나 노스롭에서 새로운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에드가 슈미드는 6.25 전쟁에서 제트전투기의 실전기록을 분석하고 장래의 전투기는 크고 무거운 전투기가 아닌 날렵한 전투기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러한 에드가 슈미드의 노력은 N-156F 전투기가 탄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노스롭 F-5A 프리덤 파이터 (Northrop F-5A Freedom Fighter) 전투기 <출처 : 미 공군>

작고 가볍고 기동성이 높으며 신뢰성이 높아 반복해서 재출격할 수 있는 새로운 전투기라는 개념으로 개발된 N-156F 전투기는 1960년대 미 공군이 요구한 우방국가에 공급할 초음속 전투기로 안성맞춤이었다. 미 공군은 1962년에 노스롭이 제안한 N-156F 전투기를 F-5A 자유의 투사(Freedom Fighter)라는 이름으로 채택하였고, 대량으로 구매하여 우방국에 공급하였다. 레이더가 없는 F-5A 전투기는 20 mm 기관포와 AIM-9 사이드와인더(Sidewinder) 공대공 미사일로 MiG-19 전투기를 상대하기에 충분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공대지 무장을 탑재하고 지상공격이 가능하였다.

미코얀 MiG-21 피시베드 (Mikoyan MiG-21 Fishbed) 전투기 <출처 : Tomislav Haraminčić at wikimedia.org>

1959년에 소련은 신형 MiG-21 전투기를 선보였고 1960년대 중반부터 공산권 국가에 공급하기 시작하였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의 F-4 전투기로도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던 MiG-21 전투기가 공산권 국가에 대량으로 공급되자 미국에 새로운 전투기를 고민하게 되었다. 미 공군은 MiG-21 전투기에 대응 가능한 국제전투기(IFA, International Fighter Aircraft)사업을 추진하여 입찰에 붙였다. 여러 업체가 경쟁을 벌인 끝에 1970년에 노스롭 F-5E 전투기가 최종 기종으로 선정되었다. 노스롭 F-5E 전투기는 F-5A 전투기를 기반으로 기체와 엔진, 연료탑재량을 개량한 기종이다. 특히 작지만 강력한 출력을 낼 수 있는 AN/APQ-153 레이더를 갖추고 있어서 정확한 목표물 탐지와 조준이 가능하였다. 1972년 8월 11일에 초도비행에 성공한 F-5E 전투기는 곧바로 대량으로 생산되어 서방측 우방국에게 공급되었다. 노스롭 F-5A, F-5E 전투기를 공급받은 국가는 30여개에 달한다. 노스롭은 복좌형을 포함하여 2,246대에 달하는 F-5A/B/C, F-5E/F 전투기 시리즈를 생산하면서 대형 항공업체로 성장하였고, 냉전 시기에 미국의 전투기 전문업체로 튼튼한 입지를 확보하였다.

노스롭 F-5E 타이거 II (Northrop F-5E Tiger II) 전투기 <출처 : 미 공군>

노스롭 F-5E 전투기는 초음속 비행이 가능한 전투기로 레이더를 갖추고 있어서 주야간 임무수행이 가능한 기종이다. 특히 기본설계가 우수하여 저속에서 고속에 이르는 비행영역에서 조종하기 편하도록 개발되었다. 그러나 공산권 국가에 MiG-23/-27 전투기가 실전 배치되자 성능의 한계가 지적되었다. 노스롭은 이전부터 F-5A/E 전투기로는 장래에 출현할 소련의 MiG 전투기에 충분하게 대처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였고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하고 있었다. F-5A/E 전투기의 성공을 이끈 주인공은 GE(General Electric) J85 터보제트 엔진(turbojet engine)이다. 추력 대 중량비가 높은 J85 엔진은 경량 전투기가 초음속을 내기에 충분한 동력을 공급할 수 있다.

제너럴 일렉트릭 J85 터보제트 엔진 (General Electric J85 turbojet engine) <출처 : Northrop Corporation>

그러나 F-5A/E 전투기 성능의 한계도 J85 엔진에서 비롯되었다. 원래 1950년대 말에 순항미사일 탑재용으로 개발된 J85 엔진은 F-5A 전투기(최대추력 1,850 kg)에서 F-5E(2,270 kg)로 발전하면서 추력이 향상되었다. 그러나 새롭게 등장하는 공산권의 신형 전투기에 대처하기에는 근본적으로 힘이 부족하였다. 노스롭 개발팀은 F-5X라는 명칭으로 수십 종류의 엔진 탑재를 검토하였고 마침내 F-5E 전투기에 J79 엔진을 탑재하는 방안을 추진하였다. J79 엔진은 F-4, F-104 전투기에 탑재하는 강력한 엔진으로 F-5E 전투기에 탑재하면 비행성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J79 엔진은 자체 무게만 1톤이 넘고 연료를 많이 소비하는 엔진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J79 엔진을 F-5E 전투기에 탑재한다면 전체 무게가 7톤에서 10톤으로 크게 증가하면서 본래의 특징인 높은 기동성능을 해칠 우려가 있었다.

제너럴 일렉트릭 F404 터보팬 엔진 (General Electric F404 turbofan engine) <출처 : General Electric>

그러던 중 1970년대에 미 해군에서 F/A-18 전투기를 개발하면서 등장한 GE F404 엔진은 F-5X 개념을 충족하는 적합한 기종이었다. F404 엔진은 최대추력이 7,260 kg으로 쌍발 J85-21 엔진보다 60% 증가하면서도 중량이 불과 1톤에 불과한 우수한 엔진이다. 노스롭 개발팀은 F-5E 전투기에 단발 F404 엔진을 탑재하고 레이더, 항전장비를 개량하면 F-5 전투기 시리즈의 장점을 살리면서 성능을 크게 높인 신형 전투기를 개발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더구나 터보팬 엔진을 탑재하면서 연료소비는 오히려 감소하였다.

대만 공군과 F-5G 전투기

1979년에 미국과 중국이 수교하면서 대만 공군은 자국의 전투기 유지에 큰 영향을 받았다. 당시 대만 공군의 주력 기종은 F-104, F-5A/E 전투기이었다. 그러나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한 미국 정부는 F-104 전투기를 공급하면서도 AIM-7 스패로우(Sparrow)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제외하였다. 사거리가 짧은 AIM-9 사이드와인더 공대공 미사일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대만 공군은 미국 정부에 AIM-7 미사일을 탑재하는 F-4 전투기의 공급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F-4 전투기의 공급을 거부하고 F-5E 전투기의 면허생산만 허용하였다. 이에 대만공군은 F-5E 전투기의 성능개량을 노스롭에 요구하였다. 노스롭 기술팀은 대만의 요구를 반영하여 F-5G라는 명칭으로 개발을 시작하였다.

대만 공군의 F-104 전투기 <출처 : 玄史生 at wikimedia.org>

1977년에 출범한 카터(Carter) 행정부는 이전과 달리 대외무기판매에 소극적이었다. NATO 국가, 호주, 일본,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첨단무기를 공급하면서도 중소국가에 대해서는 군비의 확산을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고성능 무기의 판매를 제한하였다. 따라서 신형 전투기의 도입이 어려운 대만 공군으로서는 F-5E 전투기의 성능을 개량하는 F-5G 전투기가 유일한 대안이었다.

미코얀 MiG-23 플로거 (Mikoyan MiG-23 Flogger) 전투기 <출처 : 미 공군>

실제로 소련은 1970년대에 공산권 국가에 MiG-23/-27, Su-17/-20/-22 전투기를 대량으로 공급하였고 서방측 우방국은 기존의 전투기로 대처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1981년에 출범한 레이건(Reagan) 행정부는 공산권 국가의 위협에 처한 서방측 우방국의 군사력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전투기의 경우에도 소련의 신형 전투기 위협에 직면한 우방국에 공급할 새로운 전투기 개발을 시작하였다. IIF(International Intermediate Fighter)라는 명칭을 붙인 새로운 전투기는 국제중간급전투기라는 명칭에서 보여주듯이 공산권의 신형 전투기의 위협에 대처할 수 있고 주변국가에 불필요한 위협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단서조항이 붙어있었다.

 1) 성능, 가격은 F-5E 및 F-16A 전투기의 중간 정도
 2) 공대공 전투능력을 중심으로 개발하되 공대지 공격능력은 제한적으로 가능
 3) 무장탑재량, 항속거리는 미국제 전투기의 일반적인 수준 이내
 4) 실전 배치와 정비가 쉬울 것
 5) 미국 정부의 도움이 없이 업체 스스로 수출 판매할 것
 6) 향후 성능개량이 쉬울 것

이러한 조건은 전투기 제작업체가 신형 전투기를 개발하기에는 매우 까다로운 요구사항이었다. 1960년대 F-5A, 1970년대 F-5E 전투기 사업의 경우 미 공군에서 대량으로 구매하여 우방국가에 군사원조로 공급하였다. 즉 항공기 생산업체의 입장에서는 미 공군에 기종으로 채택되면 판매가 보장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IIF 사업의 경우 성능조건에 제약이 심할 뿐만 아니라 해외국가에 대한 판매도 보장되기 어려웠다. 따라서 대부분의 미국 항공업체들은 IIF 사업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소극적이었다. 다만 F-5E 전투기 개량을 진행하던 노스롭과 당시 미 공군에 F-16A 전투기를 납품하기 시작하던 제너럴 다이나믹스 (General Dynamics) 등 2개 업체만이 예외였다.

F-20 전투기의 등장

이전부터 대만에 가장 많은 F-5 전투기를 판매한 노스롭의 입장에서는 카터 행정부의 수출제한조치에 따라 신형 전투기를 개발하여 판매하는데 제동이 걸렸다. F-5E 전투기의 면허생산으로 일단 관계를 유지하면서 F-5G 전투기를 개발하여 대만에 수출하는 방법을 고민하였다. 노스롭은 미국 정부의 정책을 준수하면서 대만에 판매 가능한 전투기와 더불어 대만을 제외한 다른 서방국가에 판매 가능한 전투기를 동시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노스롭 개발팀은 F-5E 전투기를 기반으로 신형 GE F404 터보팬 엔진을 탑재하는 기본적인 기체를 개발하고 판매국가에 따라 레이더, 항전장비와 미사일을 차별화하는 방법을 추진하였다. 즉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판매가 어려운 대만에는 새로 개발하는 기체에 기존 F-5E 레이더, AIM-9 사이드와인더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만 탑재하는 F-5G-1 전투기를 판매할 예정이었다. 반면에 다른 서방국가에는 새로 개발하는 기체에 신형 다기능 레이더, AIM-7 스패로우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탑재하는 F-5G-2 전투기 판매를 계획하였다.

이렇게 대만에 대한 판매를 전제로 개발하던 F-5G 전투기 사업은 레이건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레이건 행정부는 소련을 압박하고자 중국의 도움이 필요하였고 이러한 과정에서 대만에 대한 신형 무기의 판매는 더욱 어렵게 되었다. 실제로 레이건 행정부는 노스롭 F-5G 전투기의 대만 판매를 제한하였다. 다만 레이건 행정부는 민간기업 차원의 기술협력은 제한적으로 허용하였다. 이에 따라 대만 정부는 AIDC(Aerospace Industrial Development Corporation)를 중심으로 미국의 민간업체와 기술협력을 추진하여 자국산 전투기인 F-CK-1 Ching-Kuo (經國) 전투기를 개발하였다.

AIDC F-CK-1 Ching-Kuo 전투기 <출처 : Russavia at wikimedia.org>

사정이 이렇게 되자 노스롭은 대만에 대한 F-5G-1 전투기의 개발, 판매를 포기하고 이전부터 F-5, F-104 경량급 전투기를 사용하는 서방국가로 판매시장을 변경하였다. 그런데 F-5E 전투기를 개량하였다는 의미를 가진 F-5G 전투기는 고성능 전투기로 보이기 힘들었다. 노스롭은 최신기술을 적용한 최신예 전투기라는 인상을 줄 수 있도록 F-20 전투기라는 이름을 새롭게 붙였다. 실제로 F-20 전투기는 당시 최신 기종인 F-16, F/A-18 전투기보다 큰 번호를 사용하면서 최신예 전투기라는 인상을 강하게 주었다. F-20 전투기는 이전의 F-5E 전투기와 비교할 때 레이돔이 납작한 모양으로 변경되었다. 이러한 레이돔의 형태에서 유래되어 1983년 3월에는 타이거샤크(Tigershark)라는 애칭을 얻게 되었다.

F-16/79 전투기와 경쟁

노스롭의 존스(Thomas Victor Jones) 회장은 창업주인 잭 노스롭 회장의 후계자로 전 세계를 다니며 F-5 전투기를 판매한 영업의 달인이었다. 노스롭은 대만에 대한 판매를 단념하면서도 세계시장에 대한 수출에 자신감을 가지고 사업을 추진하였다. 이전부터 F-5G-2라고 불리던 신형 전투기는 F-5E 전투기와 비교할 때 조종실을 포함한 전방동체만 같을 뿐 엔진을 변경하면서 주익, 중앙동체, 후방동체가 모두 새롭게 교체되었다. 특히 전투기의 성능을 결정하는 레이더를 비롯한 항전장비와 무장은 모두 새롭게 개발되었다.

노스롭 F-20 타이거샤크 (Northrop F-20 Tigershark) 전투기 출고식 <출처 : Northrop Corporation>

미 공군 IIF 사업의 정책을 준수하면서 구형 F-5E 전투기의 성능을 대폭 향상시킨 F-20 전투기는 해외국가의 시각에서 새로 개발된 신형 전투기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엔진을 변경한 F-20 전투기는 신형 레이더를 탑재하여 AIM-7 스패로우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까지 발사할 수 있었다. 한편 경쟁사인 제너럴 다이나믹스는 기존의 F-16A 전투기의 탑재엔진을 J79 엔진으로 변경한 F-16/79 전투기로 IIF 사업에 도전하였다.

제너럴 다이나믹스 (General Dynamics) F-16/79 전투기 <출처 : 미 공군>

F-16/79 전투기는 본래의 F100 엔진을 J79 엔진으로 교체하면서 추력이 25% 낮아져 IIF 제한조건을 맞출 수 있었다. 그러나 엔진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마하 2급 속도성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다만 F-16A 전투기에 AIM-7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탑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F-16/79 전투기의 경우에는 엔진 이외에 기체와 항전장비는 대부분 그대로 유지하므로 개발비가 절약되는 장점이 있었다.

본격적인 판매활동의 시작

F-20 전투기는 기존의 F-5 시리즈와 전혀 다른 신형 전투기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노스롭 기술팀은 YF-17, F/A-18 전투기를 개발한 경험을 살려 GE F404 엔진을 선택하였고 이러한 선택은 적중하였다. 엔진을 변경하면서 추력 대 중량비는 1.0에서 1.13으로 향상되었고 최대속도 역시 마하 2로 높아졌다. 특히 가벼운 기체에 강력한 엔진을 탑재하면서 상승력이 대폭 좋아졌다. 고도 55,000 피트(16,800 m)까지 상승이 가능한 F-20 전투기는 이륙한 다음 곧바로 분당 52,800 피트(16,100 m/min)로 급상승할 수 있다.

비행시험 중인 F-20 전투기 <출처 : 미 공군>

1982년 8월 30일에 실시한 초도비행에서 F-20 전투기는 40분 동안 40,000 피트까지 상승하여 곧바로 마하 1.04를 돌파하는 초음속 비행에 성공하였다. 노스롭은 비행시험을 진행하면서 잠재적인 수출국가의 평가비행까지 동시에 실시하였다. 항전장비를 보강한 시제 2호기는 1983년 8월 26일에 비행을 실시하였으며 곧바로 비행시험에 동참하였다.

AIM-7 스패로우 공대공 미사일 발사 시험 <출처 : Northrop Corporation>

1,500시간에 달하는 비행시험을 진행하면서 F-20 전투기는 기본적인 비행성능을 확인한 다음 공대공 무장인 AIM-9 사이드와인더, AIM-7 스패로우 공대공 미사일 발사 시험을 실시하였다.
이어서 다양한 공대지 무장의 발사 시험으로 전환하여 AGM-65 공대지 미사일, 70 mm 로켓탄, Mk.82 폭탄, M39 20 mm 기관포, GPU-5/A 30 mm 기관포 발사 시험을 단계적으로 실시하였다.

AGM-65 매버릭 공대지 미사일 발사 시험 <출처 : 미 공군>

특히 F-20 전투기의 기본적인 비행성능은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방공임무를 맡는 전투기인 만큼 긴급출격 성능을 만족시키고자 노스롭 기술팀은 가벼운 기체, 강력한 엔진을 조합한 고성능 전투기를 개발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비행시험 결과 F-20 전투기는 일단 출격 명령이 떨어지면 곧바로 이륙하여 불과 2.3분 만에 고도 40,0000 피트(12,200 m)까지 상승하는 성능을 보여주었다. 특히 출격할 때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엔진 시동은 불과 55초, 관성항법장비(INS) 가동은 22초면 충분하였다.

척 예거(Chuck Yeager) 장군과 F-20 전투기 <출처 : San Diego Air and Space Museum>

F-20 전투기의 비행시험을 마친 노스롭은 1983년 5월에 미 공군의 승인을 받았으며, 최초의 초음속 조종사인 척 예거(Chuck Yeager) 예비역 준장을 홍보대사로 초빙하여 본격적인 판매활동을 시작하였다.

치열한 경쟁 그리고 좌절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F-20 전투기의 첫 번째 고객은 바레인(Bahrain) 공군이다. 바레인 공군은 노후 전투기를 대체하기 위해 4대를 예약하였다. 그러나 4대 만으로는 판매수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노스롭 영업팀은 활발한 판매 활동을 벌였다. 노스롭은 파리 에어쇼(Paris Air Show), 판보로 에어쇼(Farnborough Air Show) 등 주요 에어쇼에 참가하는 한편 잠재 고객을 회사로 초청하거나 직접 해당 국가를 방문하여 직접 시범비행을 보이기도 하였다. 활발하게 판매활동을 벌인 국가 중에는 대만에 이어 F-5 전투기를 많이 사용하는 우리나라도 포함되어 있었다.

파리 에어쇼에 참석한 F-20 전투기 <출처 : 미 공군>

1984년 판보로 에어쇼에 참석한 다음 노스롭 영업팀은 2대의 F-20 전투기로 순회 방문을 시작하였다. 이는 영국을 출발하여 독일, 스위스, 터키, 이집트, 튀니지, 요르단, UAE, 쿠웨이트, 파키스탄, 싱가포르를 거쳐 한국에 도착하는 긴 여정이었다. 1984년 10월 10일에 수원 비행장에서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F-20 전투기의 시범비행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멋진 비행을 이어가던 F-20 전투기는 배면비행으로 상승하다가 실속하여 추락하는 사고를 일으켰다. 관계자들이 사고의 원인을 조사한 결과 급격한 중력에 의한 조종사의 의식상실(G-LOC, G-force induced Loss Of Consciousness)로 추정하였다.

1984년 수원비행장에서 비행하던 F-20의 추락직전 모습 <출처: 유투브>

추락사고로 인하여 노스롭은 판매활동에 큰 타격을 입었지만 곧바로 판매활동을 회복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은 1985년 5월 14일에 파리 에어쇼에 참가하기 위해 캐나다에서 연습 중이던 F-20 2호기가 또다시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번에도 조종사의 의식상실로 결론을 내렸지만 노스롭으로서는 판매활동에 큰 타격을 입고 말았다.

마지막 도전

냉전 당시 미 공군은 본토를 침공하는 소련의 장거리 폭격기를 요격하는 전투기 부대를 주방위군 소속으로 편성하고 있었다. 방공통제소에서 출격명령이 떨어지면 빠른 시간 내에 긴급 출격하는 요격전투기는 뛰어난 상승능력과 빠른 출격이 필요하다. 1980년대 초에 미국 주방위군은 구형 기종인 F-106 전투기를 사용하였는데 기체의 노후에 따른 성능저하로 임무수행에 지장이 많았다. 주 방위군은 F-20 전투기 도입을 검토한 결과 F-16 전투기에 없는 AIM-7 스패로우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발사가 가능하고 신속한 출격 성능에 주목하였다. 그러나 주방위군은 독자적으로 기종을 결정할 권한이 없었으며 미 공군에게 결정권이 있었다. 노스롭은 주방위군 요격전투기로 F-20 전투기를 채택한다면 대당 1,500만 달러의 고정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다고 파젹적인 제안을 하였다.

미 공군의 요격전투기로 제안한 F-20 <출처 : Northrop>

그러나 1986년 10월에 미 공군은 전체적인 전투기 운영을 감안하여 F-20 전투기 구매가 아닌 F-16 전투기 성능개량을 선택하였다. 미 공군은 AIM-7 스패로우 공대공 미사일을 탑재하도록 F-16A 전투기를 개량하여 주방위군에게 이관하고 대신 현역 비행부대에는 새로 개발하는 F-16C 전투기를 배치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렇게 할 경우 F-20 전투기를 새로 구매하는 것보다 예산이 절감된다고 미 공군은 판단하였다.
이러한 미 공군의 결정에 따라 F-20 전투기 판매활동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고 1986년 1월 17일에 노스롭 경영진은 F-20 전투기 사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하였다. 1981년에 개발을 시작한 이후 6년간 회사 자체적으로 진행한 F-20 전투기 사업은 약 12억 달러의 자금이 투입되었다. 그러나 활발한 판매활동에도 불구하고 바레인 4대, 모로코 20대 등 적은 수량만 판매되었고 미 공군을 비롯한 대량 판매에는 실패하였다. 바레인과 모로코는 F-20 전투기의 구매가 어렵게 되자 대신 F-5E 전투기를 도입하였다.

F-20 전투기가 판매에 실패한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 IIF 사업의 경쟁기종인 제너럴 다이나믹스 F-16/79 전투기 역시 제한된 성능으로 인하여 판매에 실패하고 말았다. 해외국가 공군은 기왕에 전투기를 구매한다면 의도적으로 성능을 낮춘 F-16/79 전투기가 아닌 완전한 F-16 전투기를 구입하고 싶었다. F-16/79 전투기는 유일하게 싱가포르 공군과 계약되었는데 F-16/79 전투기 사업이 종료되면서 F-16A 중고 전투기가 대신 공급되었다.

F-20 타이거샤크의 홍보영상 <출처: 노스롭>

노스롭은 F-20 전투기 사업으로 회사에 큰 손실을 입었지만 곧바로 이어진 B-2 스텔스(stealth) 폭격기 사업으로 인하여 손실을 보전할 수 있었다. F-20 전투기 사업을 이끌던 토마스(Thomas Victor Jones) 회장은 책임을 지고 1989년에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특징

기체

F-20 전투기의 기본적인 형태는 F-5E 전투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낮은 주익 배치, 단일 수직미익은 F-5E 전투기와 같지만 기존의 J85 쌍발엔진을 F404 단발엔진으로 변경하면서 중앙동체와 후방동체를 새롭게 설계하였다. 전방동체는 기본적으로 F-5E 전투기와 같지만 조종실과 캐노피는 조종사의 시계를 확대하기 위해 변경되었다.

F-20 전투기의 내부 구조 <출처 : Northrop Corporation>

주익은 F-5E 전투기와 비슷하지만 최대중량과 비행속도의 증가에 따라 면적이 1.6% 증가하였다. 특히 동체와 주익을 이어주는 부분(LEX, Ledign Edge Extension)의 면적이 12% 증가하여 기수를 높여도 안정된 비행이 가능하다. 그리고 기수 레이돔(radome)도 F-5E 전투기의 둥근 모양에서 납작한 모양으로 변경되어 비행안정성이 높아졌다.

엔진

엔진은 GE(Genenral Electric)에서 개발한 F404-GE-100 엔진을 탑재한다. F404-GE-100 엔진은 F/A-18 전투기에 탑재하는 F404-GE-400 엔진을 개조함으로써 개발되었다. 원래 쌍발이었던 엔진을 단발로 개조하면서 발전기, 유압펌프, 연료펌프를 이중으로 장착하여 안전성을 확보하였다.

무장

F-20 전투기는 F-5E 전투기와 같이 2문의 M39 20 mm 기관포를 고정무장으로 탑재한다. 최대 외부 무장탑재량은 3.6톤이며 5개의 파일론에 탑재한다.

Mk.82 500 파운드 폭탄을 투하하는 F-20 전투기 <출처 : 미 공군>

파일론은 동체 아래에 1개, 좌우 주익 아래에 각각 2개씩 있다. 공대공 무장은 AIM-9 사이드와인더, AIM-7 스패로우 미사일을 탑재한다. 공대지 무장은 70 mm 로켓탄, AGM-65 매버릭 공대지 미사일, AGM-84 하푼(Harpoon) 공대함 미사일, Mk.80 시리즈 폭탄, CBU 확산탄 등을 탑재할 수 있다.

70 mm 로켓탄을 발사하는 F-20 전투기 <출처 : 미 공군>

항전장비

F-20 전투기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레이더를 포함한 항전장비이다. 최초로 글라스 콕피트(glass cockpit)를 적용한 F/A-18 전투기 개발에 참여한 노스롭은 경험을 살려 F-20 전투기의 조종실에도 글라스 콕피트를 적용하였다. 당시 F-16A 전투기에도 적용하지 못한 글라스 콕피트만으로 F-20 전투기의 가치를 충분히 높일 수 있었다. F-20 전투기는 조종사의 바로 앞에 위치한 HUD(Head-Up Display)와 더불어 계기반에 설치된 2개의 MFD(Multi-Function Display)에 모든 비행정보와 전투상황을 표시한다. 따라서 조종사는 전방을 주시하면서 조종간에서 손을 떼지 않고 모든 스위치(switch)를 작동할 수 있다.

F-20 전투기의 글라스 콕피트 <출처 : 미 공군>

레이더는 GE에서 새로 개발한 AN/APG-67 다기능 레이더(multi-function radar)가 탑재되어 있다. APG-67 레이더는 F-16A 전투기의 APG-66 레이더와 동등한 성능을 가지며, AIM-7 스패로우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


운용 현황

F-20 전투기는 모두 3대가 완성되었다.

F-20의 시제 1호기인 82-0062 기체 <출처 : 미 공군>

F-5E 전투기의 전방동체를 사용한 시제 1호기(82-0062, N4416T)는 비행성능 시험에 사용되었으며 1984년 10월 10일에 일어난 비행사고로 손실되었다. 조종실이 개량된 시제 2호기(82-0063, N3986B)는 비행성능, 무장발사 시험에 사용되었으며 1985년 5월 14일에 일어난 비행사고로 손실되었다.

레이더를 포함한 항전장비를 완전하게 탑재한 시제 3호기(82-0064, N44671)는 레이더 성능과 무장발사 시험에 사용되었다. F-20 사업이 종료된 다음 시제 3호기는 미국 LA(Los Angeles) 시내에 위치한 캘리포니아 과학센터 (California Science Center)에 전시되어 있다.

캘리포니아 과학센터에 전시 중인 F-20 시제 3호기 <출처 : Darkest tree at wikimedia.org>

연속적인 추락사고의 원인이었던 실속 문제를 해결하고자 기체의 모양을 개선한 시제 4호기(82-0065)는 제작 도중에 F-20 사업이 중단되자 완성되지 못한 채 폐기되었다.

척 예거까지 등장시킨 F-20 타이거샤크의 홍보영상 <출처: 노스롭>

제원

- 형식 : 단발 단좌 전투기
- 전폭 : 8.13 m
- 전장 : 14.20 m
- 전고 : 4.22 m
- 자체중량 : 5,964 kg
- 전투중량 : 7,022 kg
- 최대이륙중량 : 12,474 kg
- 엔진 : GE F404-GE-100 터보팬 엔진 (A/B 7,711kg) × 1
- 최대속도 : M 2.0
- 실용상승한도 : 16,673 m
- 전투행동반경 : 1,019 km(최대연료, Hi-Lo-Hi)
- 페리항속거리 : 3,704 km(최대연료)
- 무장(고정) : 20mm 기관포 × 2
- 무장(폭탄) : 3,765 kg
- 무장(미사일) : AIM-9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 2, AIM-7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 2
- 승무원 : 1명


저자 소개

이재필 | 군사저술가
항공 및 방위산업 분야에 대한 깊은 관심과 실무적 경험을 바탕으로, 군용기와 민항기를 모두 포함한 항공산업의 발전과 역사, 그리고 해군함정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국내 여러 매체에 방산과 항공 관련 원고를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