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1.29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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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 미군을 운용하는 두뇌부

군사잡학사전 (1) 펜타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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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방부 청사인 펜타곤은 백악관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 <출처: 미 국방부>

펜타곤(pentagon)은 우리말로 오각형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또한 펜타곤(The Pentagon)이라고 하면, 미국 국방부 청사의 명칭이자 국방부 자체를 일컫는 별명이기도 하다. 펜타곤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되어버린 미국의 강력한 국방력을 상징하는 건물로 유명하다.


펜타곤의 역사

펜타곤 건설은 제2차 세계대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1년 당시 전쟁성(War Department: 국방부의 전신)은 비효율의 극치였다. 애초에 전쟁성이 입주해 있던 건물은 뮤니션즈 빌딩(Munitions Building)으로,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을 지휘하기 위해 급하게 만든 가건물이었다. 1939년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전쟁성은 워싱턴 D. C. 북부에 신청사를 건설했는데, 전쟁으로 늘어난 인력을 전부 수용하기에는 건물이 너무도 작았다. 이로 인해 전쟁성 장관은 처음 청사로 쓰던 스테이트 워 앤 네이비 빌딩(State, War, and Navy Building)에 입주해 업무를 보는 등 2만 4,000여 명의 직원이 17개 건물에 흩어져서 있어 업무가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의 확대로 인해 이듬해에 대략 3만 명의 직원이 충원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전쟁성은 새로운 청사를 짓기로 결정했다.

뮤니션즈 빌딩 <출처: 미 해군>

새 건물은 포토맥(Potomac) 강 건너편 알링턴 카운티(Arlington County)에 건설하기로 했다. 애초에는 공무원 임시숙소가 있던 알링턴 팜스(Arlington Farms)에 청사를 세우기로 했었다. 그러나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이 그 옆에 있던 워싱턴-후버 공항(Washington-Hoover Airport)을 부지로 결정했다. 새 건물을 알링턴 팜스에 건설할 경우 강 건너의 백악관에서 알링턴 국립묘지를 바라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애초에 워싱턴-후버 공항이 열악하기도 했거니와 순국선열에 대한 예우를 위해 공항을 없애고 그 자리에 국방부 청사를 지은 셈이다. 이에 따라 펜타곤에서 백악관까지의 거리는 약 5km가 되었다.

워싱턴 D. C.에 있었던 워싱턴-후버 공항의 모습. 1935년에 촬영된 사진으로 DC-2 항공기가 이륙하고 있다. <출처: 미 육군>

신청사 건축 사업은 공병감이던 소머벨(Brehon B. Somervell) 준장의 감독 하에 빠르게 진행되었다. 설계는 버그스트롬(George Edwin Bergstrom, 1876~1955)과 위트머(David J. Witmer, 1888~1973)가 담당했는데, 워낙 시간이 촉박하여 1941년 7월 17일부터 22일까지 불과 6일간 기본설계를 마쳤다고 한다. 시공사는 필라델피아의 존 맥셰인(John McShain Inc. of Philadelphia) 건설회사로, 제퍼슨 기념관(Jefferson Memorial), 베데스타 해군병원(Bethesda Naval Medical Center), 워싱턴 국립공항[Washington National Airport: 현 로널드 레이건 워싱턴 국립공항(Ronald Reagan Washington National Airport)] 등을 건설하여 ‘워싱턴을 만든 건설회사’로 유명한 곳이었다.

펜타곤 북서 구획의 건축 장면 <출처: 미 육군>

건물 기공식은 1941년 9월 11일에 실시되었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건축과 설계가 동시에 진행되어 최초 설계안이 1941년 10월에 나왔고, 1942년 6월 1일이 되어서야 설계가 완성되었다. 게다가 1941년 12월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자, 소머벨 준장은 1943년 4월 1일까지는 건물을 사용 가능한 상태로 만들어야만 했다. 이에 따라 건물이 완공된 것은 1943년 1월 15일로, 기공식으로부터 불과 16개월 만에 완공하는 일대 기록을 세웠다. 전시에 건설하다 보니 강철을 아끼기 위해 콘크리트를 많이 사용했다. 일부 자료에는 빠른 건설에도 불구하고 사망자가 없다는 주장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초고속 건설로 인해 작업 환경은 최악이었고 사망자가 많이 발생했지만, 전시의 필요성으로 인해 문제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건립 당시 비용은 약 8,000만 달러였다.

펜타곤은 서쪽에는 알링턴 국립묘지, 남쪽에는 395번 고속도로와 남측 주차장, 동쪽에는 포토맥 강을 두고 있다. <출처: 미 국방부>

당대의 가장 독특했던 건물

펜타곤은 세계에서 가장 큰 저층 사무건물로 유명하다. 지평은 3만 5,500평으로, 한때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사무건물로 기록된 적도 있었다. 연건평은 무려 10만 4,133평에 이르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의 세 배나 된다. 펜타곤 건물을 포함한 부속건물들이 차지하는 총면적은 71만여 평에 이른다. 건물은 7층이라고 하나, 지하 2개층을 제외하면 지상 5층 건물이다. 그럼에도 건물의 높이는 23m에 불과하다. 오각형의 1개면 길이는 281m다.

펜타곤은 지하 2층, 지상 5층으로 된 7층 건물이다. <출처: LCpl. Tia Dufour / 미 해병대>

펜타곤이 오각형으로 만들어진 이유는 원래 건설하려던 부지와 관련이 있다. 백악관에서 곧바로 마주볼 수 있는 장소를 찾다가 포토맥 강 건너의 알링턴 팜스를 부지로 결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알링턴 팜스의 부지 모양이 비대칭 오각형이었다. 그래서 이에 맞춰 건물을 오각형으로 설계했던 것이다. 이후 부지가 워싱턴-후버 공항으로 바뀐 뒤에도 설계를 바꾸지 않은 것은 설계를 바꿀 시간이 없는 데다가 루스벨트 대통령이 이 오각형 설계를 마음에 들어했기 때문이다. 다만 부지를 옮기면서 비대칭 오각형이 아니라 정오각형으로 건물을 만들었다.

애초의 펜타곤 건설 예정지였던 알링턴 팜스 <출처: (cc) Jguy227 at Wikimedia.org>

펜타곤은 오각형의 환형(環形) 동이 5개가 연결된 구조다. 바로 이러한 동을 링(Ring)이라고 부르는데, 안쪽으로부터 A링, B링, C링, D링, E링으로 구성된다. E링은 창 밖을 조망할 수 있기 때문에 통상 고위직의 사무실이 많다. 펜타곤 전체로 치면 창문이 7.754개나 된다. 그리고 5개 동을 총 9개의 복도가 연결하고 있다. 1개 동은 지상 5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펜타곤의 구성도 <출처: 미 국방부>

펜타곤의 수많은 복도들을 합치면 길이가 총 28km에 이른다. 재미있는 점은 건물의 독특한 구조로 인해 실내의 어느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데 아무리 길어도 7분이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잡한 구조로 인해 길을 잃기도 쉬운데, 조지 마셜(George Marshall),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 딕 체니(Dick Cheney) 등도 길을 잃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방의 주소를 붙이는 방법도 독특한데, 층-동-복도-방번호의 순이다. 예를 들어, 2C314라면 2층 C링의 3번 복도에 있는 14호실이란 뜻이다.

펜타곤 복도의 모습 <출처: briankurtz.me>

펜타곤의 맨 가운데에는 오각형의 정원인 중정(Center Courtyard)이 있는데, 그 면적은 5에이커(6,120평)다. 이 정원은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라고 불리는데, 이는 냉전 시절 소련이 핵공격을 하면 이곳을 조준하고 쏠 것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한다. 정원 한가운데에는 ‘그라운드 제로 카페(Ground Zero Cafe)’라는 핫도그 판매점 가건물이 있었다. 냉전 시절 첩보위성으로 펜타곤을 감시하던 소련은 이곳에 사람이 붐비자 극비시설이 있는 것으로 착각했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 카페 건물은 노후하여 2006년에 철거되었고 2008년에 새 건물이 들어섰다.

펜타곤의 중정은 5에이커의 면적으로 가운데 있는 건물은 스낵바다. <출처: Public Domain>
과거의 핫도그 판매점을 대신하여 새로운 매점 건물이 들어섰다. <출처: Public Domain>

펜타곤에서의 생활

펜타곤에 인원이 가장 많았을 때는 4만 명이 근무했었다고 한다. 현재는 2만 4,0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입주해 있는 인원들도 다양하다. 국방장관과 함께 차관 및 차관보 5명, 각 실국 인원은 물론이고 육군성∙해군성∙공군성에 합참까지 입주해 있다. 2만 4,000여 명이 근무하지만 공간은 충분하고, 아직 비어 있는 공간도 있다고 한다. 물론 가장 넓고 좋은 사무실은 국방장관의 몫이다. 건물 규모가 굉장히 크다 보니 같은 건물 안에 6개의 우편번호가 별도로 있는데, 각각 국방장관실, 합참, 육군, 공군, 해군, 해병대의 것이다. 실제 펜타곤의 위치는 버지니아 주 알링턴 카운티이지만, 우편번호는 워싱턴 D. C.로 분류된다.

국방장관실의 모습 <출처: 미 국방부>

사람이 많다 보니 모든 게 많다. 하루에 오가는 전화만도 20만 통이고, 월간 우편물은 120만 통을 수발한다. 청사 내에서 열리는 컨퍼런스는 연간 7,800여 회나 된다. 청사 내에는 엘리베이터 70개, 에스컬레이터 54개, 계단 131개가 있다. 걸린 시계만도 4,200여 개이고, 취수대는 691개다. 구내식당으로는 카페테리아 2개와 스낵바가 4개 있고, 중정의 스낵바가 1개 있다. 화장실은 무려 284개인데, 이는 과거 인종차별법으로 존재하던 시절에 지어져서 버지니아 주의 법에 따라 백인용과 흑인용 화장실을 별도로 만들다 보니 숫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물론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사실을 알고 나서 전쟁성에서만큼은 인종차별을 금지했다고 한다.

주차장 수는 16개로 8,770대를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하철과 버스 등 다양한 대중교통수단이 연결되어 있어 많은 인원이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한다. 펜타곤역에는 워싱턴의 지하철(블루와 옐로우 라인)이 연결된다. 물론 지하철역에는 무장병력이 24시간 철통같이 감시하고 있다. 9∙11 테러 이전만 해도 지하철역에서 펜타곤 로비로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가 운영되었지만, 테러 이후 봉쇄되었고 펜타곤 건물개수사업 이후에는 아예 없어졌다.

펜타곤으로는 지하철과 버스 등 다양한 대중교통수단이 연결된다. <출처: Public Domain>
펜타곤역의 모습 <출처: Public Domain>

펜타곤의 경비는 헌병이 아니라 펜타곤 경찰이 담당한다. 펜타곤 경찰이 있기 전까지는 미연방정부 특별경찰이 펜타곤을 관리해왔으나, 베트남 전쟁 당시 반전시위 등에는 헌병이 동원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1987년부터 국방방호국(Defense Protective Service)이라는 전담조직이 생기면서 펜타곤 경찰을 발족했다. 하지만 9∙11 테러 후 2002년부터는 국방방호국이 펜타곤 부대방호처(PFPA, Pentagon Force Protection Agency)로 승격되어, 펜타곤과 수도지역 국방부 자산의 경비업무뿐만 아니라 부대방호업무도 광범위하게 수행하고 있다.

펜타곤 경찰은 헌병이 아니라 민간인으로 만들어진 연방경찰조직으로, 현재는 PFPA 산하의 기관이다. <출처: PFPA twitter>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펜타곤의 호칭이다. 국방부 청사의 이름이 펜타곤이 맞지만 실제 언어의 사용은 다르다. 통상 "The Pentagon"이라고 부를 때는 국방부 청사 건물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국방부를 의미하며, 청사 건물은 그냥 "the building"이라는 말을 쓴다.

펜타곤 도서관(왼쪽)은 본청 내부가 아니라 동쪽의 테라스 지하(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출처: Kimley-Horn and Associates, Inc.,TCE & Associates, Inc.>

사건과 사고

아무리 경비가 삼엄한 펜타곤 건물이라지만 사고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1959년 7월 2일 오전 11시 펜타곤에 화재가 발생했다. 발화 장소는 공군통계사무소로 C동과 D동, 그리고 제1복도와 제10복도의 사이였다. 맹렬한 화염은 오후 3시가 되어서야 겨우 진압되었고, 피해도 상당했다. 우선 당시 국방부가 IBM으로부터 리스한 컴퓨터는 완전히 불타버렸고, 공군이 비밀로 분류한 마그네틱 테이프 7,000여 개가 소실되었다. 피해액은 정부 자산 기준으로 69만 달러였지만, IBM 컴퓨터 피해액은 수백만 달러에 이르렀다고 한다. 화재로 인한 사망자는 없었지만, 화염이 심해 소방관 30여 명이 부상당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59년 펜타곤 화재 현장 <출처: arlingtonfirejournal.blogspot.kr kimley-horn.com>

조사 결과, 화재는 천장의 전구가 과열되어 파이버보드 천장에 불이 붙어서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최초에 펜타곤을 지을 때는 화재 위험이 없도록 돌과 시멘트로만 만들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건물을 확장하면서 내장공사 시 나무로 된 파티션이나 바닥 등을 사용하면서 화재 위험이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화재복구작업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는데, 특히 펜타곤에서 사용하는 컴퓨터는 당시 설치하는 데만 1년이 걸렸지만, IBM은 불과 15일 만에 설치를 완료했다.

9∙11 테러를 당한 펜타곤의 모습(왼쪽)과 당시 서쪽의 E링이 무너져내린 모습(오른쪽) <출처: 미 국방부>

한편 2001년 9월 11일 아메리칸 항공(American Airlines) 소속 77번 여객기가 펜타곤에 충돌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것이 바로 9·11 테러의 일부였다. 덜레스 국제공항(Dulles International Airport)에서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Los Angeles International Airport)으로 향해 오전 8시 20분 이륙한 아메리칸 항공 소속 보잉 757 여객기가 5명의 이슬람 극렬 테러범들에게 납치되었다. 납치 주모자인 하니 한주르(Hani Hanjour)가 직접 조종한 피랍기는 오전 9시 37분 펜타곤 건물로 충돌하여, 펜타곤 직원 125명이 숨지고 항공기에 탑승한 64명이 사망했다.

복구작업 중인 펜타곤 건물(왼쪽)과 복도에 새겨진 희생자 명단(오른쪽) <출처: 미 국방부>

범인들이 충돌한 곳은 펜타곤의 서쪽으로 4번과 5번 복도 사이의 건물이었다. 특히 피해가 심했던 동은 외부에 있던 E동으로, 1층과 3층까지의 피해가 컸으며, 특히 해군작전센터의 피해가 컸다. 그러나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에 비해 펜타곤은 저층이었을 뿐만 아니라 다중구조였기 때문에 피해는 제한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펜타곤은 곧바로 피해복구작업에 들어가 이듬해 8월 15일까지 복구를 완료했다. 한편 2008년에는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기념비와 추모공원을 건립하여 개방했다.

2008년 개방된 추모공원은 테러 공격을 당했던 서쪽 건물 앞에 건설되었는데, 테러범을 제외한 펜타곤과 피랍기의 희생자 184명을 상징하는 184개의 벤치로 구성되었다. <출처: 미 국방부>

그러나 펜타곤은 9·11 테러를 당하기 이전에 이미 개보수의 필요성을 느끼고 1998년부터 건물 전체에 대한 개보수 작업을 하고 있었다. 석면을 제거하고 인터넷과 통신 배선 등을 현대화하는 등 21세기에도 충분히 기능할 수 있는 건물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펜타곤 리노베이션 사업은 2011년 6월에서야 무려 13년 만에 종료되었다.

포토맥 강 건너쪽에서 바라본 펜타곤의 모습 <출처: 미 국방부>

저자 소개

양욱 | 군사전문가
서울대학교 법대를 거쳐 국방대학교에서 군사전략을 공부했고, 줄곧 국방 분야에 종사해왔다. 중동지역에서 군 특수부대를 훈련시키기도 했고, 아덴만 지역에서 대(對)해적 업무를 수행하는 등 민간군사요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수석연구위원 겸 WMD 대응센터장으로 재직하며, 국방부·합참·방위사업청 자문위원, 해·공·육군 정책자문위원으로 우리 국방의 나아갈 길에 대한 왕성한 정책제안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