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1.03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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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을 본격 무장시킨 붉은 미니트맨

UR-100 IC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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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100 ICBM <출처: Public Domain>

개발의 역사

소련은 R-7 세묘르카로 세계 최초의 ICBM(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대륙간탄도미사일) 보유국이 되었지만, 실제 핵전력은 보잘것없었다. 특히 1세대 ICBM들은 소련이나 미국 모두 군사적 가치보다는 정치적 가치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소련의 지도자인 흐루시초프(Nikita Sergeyevich Khrushchev)는 R-7의 능력을 과장했지만, 실제로 R-7은 ICBM의 습작에 불과했다. 코롤료프(Sergei Korolev)의 또 다른 작품인 R-9A는 세계 최초로 지하 사일로(silo)에서 발사가 가능한 미사일로 개발되어 나름의 군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적연질산을 증오하던 코롤료프가 여전히 액화산소를 산화제로 사용하여 장기 보존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군용 미사일로서는 한계가 역력했다. 게다가 R-9A의 개발이 지연되자 흐루시초프는 아예 개발 계획 자체를 취소하려고까지 했었다.

R-9A 미사일 <출처: Public Domain>

한편 R-16이 개발되면서부터 상황은 그나마 호전되었다. R-16은 코롤료프의 부하였던 미하일 얀겔(Mikhail Kuzmich Yangel)이 개발주임을 맡아 사업을 추진해왔다. 얀겔은 진작 코롤료프로부터 독립하여 OKB-586 설계국을 이끌며 코룔로프와는 달리 적연질산을 사용하여 군사적으로 의미 있는 미사일 개발을 추진해왔다. R-16은 1961년 2월 2일 시험발사에 성공하여, 그해 11월 1일부터 배치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R-16은 발사 전 연료주입 작업에 최소 1시간에서 최대 3시간까지 소요되었다. 미국의 타이탄(Titan)-I ICBM이 불과 15분 내에 연료주입이 가능한 것에 비한다면 한계가 컸다. 게다가 1960년 10월 24일에는 신형 R-16 ICBM의 시험발사 도중 1단 로켓에 불이 붙어 미사일이 폭발하는 바람에 무려 100여 명이 사망한 네델린 참사(Nedelin catastrophe)가 발생하기도 했다. 소련은 1961년부터 1965년 사이에 R-16 시리즈를 186발 제작하여 실전배치했다.

R-16 ICBM의 시험발사 장면. 북한의 시험발사처럼 간이발사대를 이용한다. <출처: Public Domain>

그러나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겪으면서 막상 ICBM으로 대결할 상황이 되자 소련은 점차 불리해지고 있었다. 미국이 미니트맨(Minuteman)의 개발을 시작하여 1963년부터 본격적인 양산체제에 들어가자, ICBM 경쟁에서 미사일 공백으로 공포에 떨어야 할 것은 이제 미국이 아니라 소련이었다. 쿠바 미사일 위기 시작 당시 전략미사일 수는 “미국 347발 대 소련 108발”이었는데, 미국이 소련의 ICBM 기지도 핵공격의 대상이라고 밝히면서 소련은 핵전략에서 지극히 불리해졌다. 게다가 1964년 드디어 1,000발의 미니트맨이 승인되면서 미국은 이제 소련의 ICBM을 압도할 수 있게 되었다.

네델린 참사 장면 <출처: Public Domain>

한편 걱정이 극에 달한 흐루시초프는 쿠바 미사일 위기 이전인 1962년 2월 긴급회의를 개최했다. 군 원로들을 흑해 피춘다(Pitsunda)에 모아놓고 미사일 개발 방향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는데, 이것이 바로 피춘다 회의다. 열띤 논쟁 끝에 1세대 미사일은 적당히 생산을 중단하고 2세대 미사일을 본격적으로 개발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였다. 여기서 소련은 미국의 미니트맨과 타이탄에 대응하는 ICBM을 각각 개발하며, 미국의 핵지휘통제소를 격파할 수 있는 미사일도 개발할 뿐만 아니라 대탄도탄 조기경보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결정했다. 소련의 ICBM 개발과 핵전략에 일대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우선 코롤료프가 미니트맨에 대항할 미사일인 RT-2의 개발에 착수했다. RT-2는 21m 길이의 3단 고체로켓으로 콜드 런칭(cold launching)을 채용하는 등 매우 독창적인 미사일이었다. 그러나 페이로드(payload: 탑재중량)가 문제였다. 미사일에는 500kg짜리 탄두를 장착할 경우 1만 km 이상을 비행할 수 있었지만, 1.4톤짜리 탄두를 장착하면 사거리는 4,000~5,000km로 현저히 줄어들었다. 시험발사는 1966년부터 무려 32회나 실시되어 그중 22회가 성공하여 1968년 12월부터 실전배치되었다. 그러나 RT-2는 미니트맨에 비하면 성능이 현저히 떨어져 미국 본토 타격을 위해 결국 600kg의 페이로드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불과 60발만 만들어진 채 개발이 끝났다.

고체연료 ICBM인 RT-2는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출처: Public Domain>
블라디미르 첼로메이 <출처: Public Domain>

한편 소련은 RT-2의 개발이 실패할 경우에 대비하여 백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우주선 설계를 담당하던 OKB-52의 블라디미르 첼로메이(Vladimir Nikolayevich Chelomey)는 이미 1950년대부터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경량 ICBM을 구상해왔는데, 그것이 바로 UR-100이었다. 특히 첼로메이는 코롤료프의 실패에 불안해하던 흐루시초프를 공략하여 UR-100도 RT-2와 동시에 개발할 수 있도록 승인을 얻어내어, 1963년 3월 30일부터 개발을 시작했다.

UR-100은 1965년 4월부터 시험발사를 시작했다. 애초의 존재 목적이던 사일로 발사는 1965년 7월 17일 최초로 실시되었다. UR-100은 무려 60여 회나 발사를 거듭하면서 성능을 검증하여 1966년 10월에 개발을 완료했다. UR-100에는 미사일 분류법에 따라 8K84이라는 코드가 부여되었는데, 실제 개발된 8K84는 과거 첼로메이가 구상했던 UR-100과는 다른 모델이 되었다.

결국 RT-2의 개발이 사실상 실패로 끝나자 UR-100을 양산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1966년부터 실전배치되었으나 양산 및 배치가 완료된 것은 1972년에 이르러서였다. UR-100은 나토(NATO) 분류명인 SS-11 세고(Sego)로도 불리었다.

UR-100의 시험발사 <출처: Public Domain>

특징

UR-100은 소련 최초로 3분 내 발사가 가능한 ICBM이었다. 시동부터 발사까지 3분 내에 가능하다는 것은 액체연료 미사일로서는 엄청난 진보였다. 이렇게 신속한 발사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부식방지 코팅을 한 탱크에 UDMH 연료와 사산화이질소(N2O4) 산화제를 주입해놓고 5년까지 보존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보존 기간이 처음에는 5년이었지만, 이후 8년, 10년,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17년까지 늘어났다.

UR-100이 신속한 발사가 가능한 비밀은 캐니스터에 있었다. <출처: Public Domain>

빠른 발사 시간의 비밀은 바로 운반 및 발사용 캐니스터(TLC, Transport-Launch Canister)에 있었다. TLC는 아예 미사일을 처음 만들 때부터 캐니스터 속에 넣어 각종 전선과 소켓류 등 결합부를 모두 연결한 채로 모듈로 만든 것이다. 이렇게 모듈화함으로써 TLC를 사일로에 결합하여 곧바로 발사만 하면 되므로 엄청나게 발사 시간이 줄어들었다. TLC는 14.4톤의 무게에 직경 2.7m 전장 19.5m의 크기로 보존과 운반이 용이했다. TLC라는 아이디어가 나온 것도 첼로메이가 순항미사일을 개발하면서 활용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덕분이었다.

캐니스터 상태로 애초에 출고되어 사일로 장전 및 운용이 용이하다. <출처: Public Domain

미사일 자체는 길이 16.9m에 직경 2m로 미국의 미니트맨 ICBM과 유사했다. 중량은 약 42톤으로, 35톤짜리 미니트맨보다는 무거웠지만, 이 역시 경량 ICBM으로서 미니트맨과 유사했다. 미사일은 2단 구성으로 1단(분류명 8S816)은 RD-216 엔진 4개를, 2단(분류명 8S817)은 15D13 이조토프(Izotov) 엔진을 장착했다. 2단 추진 후의 최종 속도가 초당 7.12km였으므로, UR-100은 그 자체로는 우주발사체로 활용되지 않았다. UR-100 ICBM은 사정거리가 10,600km이고, 원형공산오차(CEP, Circular Error Probability)가 1.4km로 정확도가 우수했다. 성능상 여러모로 미국의 미니트맨-I과 유사했다.

UR-100의 1단 엔진(왼쪽)과 2단 엔진(오른쪽) <출처: Public Domain>

UR-100은 경량 ICBM이었으므로 탑재중량이 한계가 있어 탄두 무게에 따라 세 가지 사양으로 운용되었다.

●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사양: 기본사양으로 770kg짜리 경량 핵탄두(파괴력 500킬로톤)를 장착했고, 사거리는 10,600km다. VNIITF(러시아 물리실험과학연구소)의 코카리야츠(Kocaryats)에서 설계한 재진입체(RV, Reentry Vehicle)와 아르자마스(Arzamas)-16[현(現) 샤로프市)에서 만든 탄두를 채용했다.

● MRBM(중거리 탄도미사일) 사양: 1,750kg짜리 대형 핵탄두(파괴력 1.1메가톤)를 채용하여 사거리는 약 4,000km로 제한된다. 재진입체(RV)는 VNIITF에서 만들었으며, 핵탄두는 첼야빈스크(Chelyabinsk)-70에서 만들었다.

● ABM(탄도탄요격미사일) 사양: ‘타란(Taran)’으로 불리었으며, 사거리는 2,000km 미만으로 알려졌다. 10메가톤급 탄두를 장착하여 단 한 발로 레닌그라드부터 모스크바까지 지킬 수 있다.

UR-100의 내부 구성. 2단 액체로켓임을 알 수 있다. <출처: bastion-karpenko.ru>

쿠즈네초프(Kuznetsov) 유도장치와 필류긴(Pilyugin) 관성항법장치를 채용하여 24시간 내에 세 가지 사양으로 변환이 가능하도록 모듈러 설계를 채용한 점도 특징이다. 또한 적의 탄도미사일 요격을 피하기 위해 NII-108의 게라시멘코(Gerasimenko)팀이 개발한 팔마(Palma) 디코이(decoy) 장비를 장착한 것도 특징이다.

연료탱크는 AMG-6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었으며, 미사일 본체는 통상 하얀색으로 도색했다. 경량 탄두를 채용한 ICBM 사양은 단순한 원뿔형 첨두부를 특징으로 한다. 대형 탄두를 채용한 MRBM(Medium Range Ballistic Missile: 중거리 탄도미사일) 사양은 경량 탄두를 채용한 ICBM 사양과 직경이 비슷하지만 탄두의 길이가 좀 더 길다. 초도발사부터 5회 발사까지는 바이코누르(Baikonur)에서 무선지령 수정을 통한 무선관성유도방식으로 발사되었으나, 이후부터는 순수하게 독자적으로 관성항법유도방식으로 발사되면서 양산 모델에서 무선수신기가 제거되었다.


운용 현황

발사 준비를 마친 UR-100 <출처: Public Domain>

UR-100을 사용하는 최초의 연대는 시험발사도 완료되기 전인 1966년 7월 17일에 드로뱌나야(Drovyanaya)에서 창설되었다. 1966년까지 모두 90개의 사일로가 실전배치되어 3개 연대가 준비되었으며, 미사일 자체가 실전배치되기 시작한 것은 1967년 7월 21일부터였다. 운용 개념은 1개 지휘소가 사일로 10개를 통제하는 방식이었다. 사일로는 20기압이 넘는 압력을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되었는데, 핵폭탄으로 치면 1메가톤 폭탄을 1.3km 밖에서 폭발시켰을 때의 압력을 버틸 수 있는 정도였다.

UR-100의 지하발사 사일로 <출처: Public Domain>

UR-100은 소련에서 가장 많이 만들어진 미사일로 1968년경에는 540발, 1970년까지는 840발, 그리고 1971년에는 940발까지 생산되었다. 1974년에 최대치인 1,030발이 배치됨으로써 미국의 미니트맨의 생산 숫자를 넘어섰다. 이때까지 비행시험을 위해 발사된 미사일만 해도 106발에 이르렀다. UR-100 계열 전체로 치면 모두 162발이 시험발사되거나 작전운용검증을 위해 발사되었다. 소련군은 전략로켓군(Strategic Rocket Forces) 소속 사단 12개에 UR-100 계열 미사일을 배치시켰었다. UR-100은 이후 여러 차례 개수를 거쳤으나, 순수한 초기형은 1988년에서야 일선에서 물러났다.


파생형

● UR-100: 기본형으로 분류명은 8K84. 추후에 성능이 개량된 8K84M으로 본격 양산되었다. 탄두 사양에 따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MRBM(중거리 탄도미사일), ABM(Anti-Ballistic Missile: 탄도탄요격미사일) 등으로 변환이 가능했으나, ABM인 타란은 흐루시초프 사후에 완성되지 못하고 개발이 취소되었다.

UR-100 캐니스터 <출처: Public Domain>

● UR-100K: 분류명 15A20. 1단 엔진의 성능을 강화하여 12,000km까지 사거리를 향상시킨 모델로, 원형공산오차(CEP)도 1km로 줄어들어 정확성도 향상되었다. 1971년 12월부터 실전배치되었다.

성능강화형 UR-100K <출처: Public Domain>

● UR-100U: 분류명 15A20U. UR-100K는 단일 탄두이지만 UR-100U는 탄두 3개를 장착한 다탄두(MRV, Multiple Reentry Vehicle) 모델이다. MRV는 다른 탄두를 하나의 목표로 날린다는 점에서 탄두마다 각기 다른 목표를 공격하는 MIRV(Multiple Independently-targetable Reentry Vehicle: 다탄두 각개 목표 재진입체)와 다르다. 팔마 디코이도 적용되었다. 1973년 9월부터 실전배치되었다.

다탄두형 UR-100U의 탄두부 <출처: Public Domain>


제원

- 중량: 약 42톤
- 길이: 16.93m
- 직경: 2m
- 최대사거리: 10,600km
- 탄두수: 1개
- 탄두중량: 770kg
- 재진입체(RV): 15F842
- 탄두파괴력: 500킬로톤
- 원형공산오차(CEP): 1.4km
- 추진체계: 연료 - UDMH / 산화제 - 사산화이질소(N2O4)


저자 소개

양욱 | 군사전문가
서울대학교 법대를 거쳐 국방대학교에서 군사전략을 공부했고, 줄곧 국방 분야에 종사해왔다. 중동지역에서 군 특수부대를 훈련시키기도 했고, 아덴만 지역에서 대(對)해적 업무를 수행하는 등 민간군사요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수석연구위원 겸 WMD 대응센터장으로 재직하며, 국방부·합참·방위사업청 자문위원, 해·공·육군 정책자문위원으로 우리 국방의 나아갈 길에 대한 왕성한 정책제안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