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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가 떠난 날 시작된 공세

공세를 위해서는 모든 예하 부대가 톱니바퀴처럼 정확하게 목표를 달성해야 했다. 만슈타인은 제4기갑군의 호트(Herman Hoth), 제1기갑군의 마켄젠(Eberhard von Mackensen), 파견군을 이끄는 홀리트와 켐프(Werner Kempf),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친위장갑군단의 하우서를 모아 놓고 자신의 의지를 충분히 숙지시켰다. 더불어 항공 지원에 나설 제4항공군도 하루 평균 1,000소티의 출격이 가능할 정도로 준비를 완료했다.

히틀러가 친위장갑군단의 통제권을 넘기고 떠난 바로 그날 마침내 독일의 공격이 시작되면서 전세가 순식간에 반전되었다. 독소전쟁 동안 하르코프를 무대로 네 차례의 공방전이 있었는데 모두 의미가 있는 전투였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상황 반전이 너무나 극적이었고 전쟁사에 끼친 영향도 가장 컸던 전투가 바로 제3차 공방전이었다. 따라서 전사 관련 서적에서 대표적인 전례로 언급하는 하르코프 전투는 대부분 이를 의미한다.

독일군의 대대적인 움직임이 포착되었다는 소식은 곧 소련군 지휘부로 전해졌다. 지난 석 달간 기분 좋은 승리만 계속해 왔던 소련군은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최후의 발악 정도로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밀리기만 했던 독일이 공세로 나올 것이라곤 예상하지도 못했고 그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사실 당시까지의 전황만 놓고 보자면 이것이 결코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바로 그날 아침까지도 소련군의 진격이 계속되었고 독일은 후퇴하기 바빴는데 상식적으로 그 상황에서 공세로 나온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일단 전선이 정체되고 준비를 갖출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공세가 가능한 것인데, 분명히 겉으로 드러난 상황으로는 독일에게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고 소련은 본 것이다. 하지만 만슈타인은 후퇴의 와중에도 공세를 준비하고 있었고 소련은 계속적인 승리에 도취되어 그것을 간과하고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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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만에 뒤바뀐 전세

엄밀히 말해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전환점이 되었던 소련의 천왕성 작전도 독일이 승리를 눈앞에 뒀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에 벌어졌다. 소련은 자신들이 했던 일을 독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고 그것은 만용이었다. 그리고 이미 제2차 하르코프 전투 당시에도 비슷한 과오를 겪은 적이 있었다. 독일군의 엄청난 반격을 접한 보로네시 전선군 사령부와 남서전선군 사령부에는 전방 예하 부대의 다급한 전화가 빗발쳤다.

기름이 없어 움직이지 못하는 소련군 전차는 순식간에 독일군의 포위망에 갇혀 파괴되어 나갔고, 줄곧 달려오다 지쳐버린 보병들도 후퇴할 여력이 없었다. 공세에만 맛을 들여 방어 준비를 제대로 못했던 소련군은 이처럼 처절하게 격파되어가기 시작했다. 예외 없이 지원군을 요청하는 다급한 일선 부대들의 절규를 독일 감청부대가 포착했고 만슈타인의 계획대로 작전이 진행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동안 소련 제40군과 제3전차군에게 거의 포위됐다고 생각했던 친위장갑군단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동진하자 소련군은 왜 이들이 서쪽으로 후퇴하지 않고 반대로 움직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동시에 남쪽에서 독일 제1기갑군이 북진을 개시하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독일의 진출 방향을 충분히 알 수 있었고 이것이 독일의 대대적인 공세라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하지만 소련은 아직도 무사태평이었다.

그냥 최후의 발악이라 생각했지만 2월 22일이 되자 소련은 집요하게 파고든 독일 제1기갑군에 의해 파블로그라드까지 전진한 포포프 전차군, 제6군, 제1근위군의 배후가 절단될 상황임을 깨닫게 되었다. 불과 3일 만에 전세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었고 이런 황당한 상황을 STAVKA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멀리 떨어진 STAVKA는 그렇다 치더라도 바로 뒤에서 지휘하던 바투틴조차 포포프(Markian Popov)의 보고를 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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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소련의 꿈

따라서 포포프가 후퇴하겠다고 하자 바투틴은 마치 히틀러나 스탈린처럼 현지 사수 엄명을 내렸다. 독일군을 거세게 몰아붙이던 전선 남부 최강의 소련군 부대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도움을 요청하는 처지로 바뀌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바투틴의 오판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비난할 수 없을 만큼 전황이 너무 급속하게 바뀌어 있었다. 마치 한여름에 갑자기 겨울 날씨가 닥친 것과도 같았다.

포포프가 남동쪽에서 서북진하며 깊숙이 파고드는 제1기갑군의 공격에 당황해하고 있을 때 서쪽에서 진격을 개시한 친위장갑군단이 측면을 강타했다. 한마디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이렇게 급속도로 바뀐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아는 이는 소련군 내에 없었다. 사실 이 상황은 소련군의 허점을 정확히 찌른 만슈타인의 전략이 대단해서였지, 소련군이 무능해서 생긴 것은 아니었다.

뒤는 도네츠 강이고 앞은 독일 제4기갑군이 막아서고 있었다. 포포프 전차군의 오른편에서 지금까지 사이좋게 진격해 오던 소련 제6군도 함께 포위망에 갇히기 일보직전이어서 도움을 줄 처지가 아니었다. 급기야 2월 24일에 포포프 전차군과 제6군이 포위망에 완벽히 갇혀버렸다. 이미 오래전에 보급이 차단된 그들이 대응할 수 있는 여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믿기 힘든 현실에 바투틴은 당황했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북쪽에서 하르코프를 수복하고 폴타바와 수미로 향하던 소련 제3전차군과 제69군도 독일 제4기갑군과 켐프 파견군의 협공에 걸려들면서 전투 불능 상태에 빠져 버린 것이었다. 격렬히 저항했지만 급속히 배후로 치고 들어온 그로스도이칠란트 장갑척탄병사단이 퇴로를 차단해 버리자 그들의 수명은 마감되었다. 1943년 봄까지 독일군을 소련 땅에서 완전히 몰아내겠다던 소련의 꿈은 불과 일주일 만에 완전히 깨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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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하르코프로 향하다

소련군이 포위망에 갇히자 독일군의 대대적인 공격이 개시되었다. 숨을 곳이 없는 우크라이나 대평원에 고립된 소련군은 사방에서 날아오는 포탄에 하염없이 무너져 내렸다. 제일 먼저 공격 목표가 되었던 포포프의 전차군은 순식간에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가장 앞장서서 진격해 왔던 제6군도 비슷한 운명에 빠져들었다. 그때서야 바투틴은 이들에게 탈출 명령을 내렸지만 너무 뒤늦은 결정이었다.

그나마 소련에게 다행이었던 것은 포위망을 형성한 독일군이 포위된 소련군보다 너무 적었다는 점이었다. 병력의 차이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지만 독일군이 5배나 많은 소련군을 완벽하게 포위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이런 고질적인 불균형을 잘 알던 만슈타인은 성급히 달려들지 않고 무지막지한 포격과 폭격으로 소련군을 압박해서 말려버리는 작전을 구사했다.

덕분에 생포된 포로는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자포리자에서 하르코프 사이에 포진해 있던 소련군은 모두 격멸되었다. 2월 말이 되었을 때, 지난 한 달 동안 300여 km를 쾌속 진격해 왔던 소련 남서전선군은 거의 붕괴되었다. 북쪽에 있던 보로네시 전선군도 하르코프로 후퇴해 도시 방어에 나섰으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불과 보름 전에 탈환되어 기쁨에 들떠 있던 하르코프는 또다시 독일의 수중에 떨어질 공산이 컸다.

사실 만슈타인에게 도시 자체는 중요하지 않았지만 히틀러와 약속한 일이기에 탈환을 해야 했다. 지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처럼 적들이 우글거리는 도심으로 섣불리 뛰어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친위장갑군단이 소련 제3전차군을 궤멸시키는 동안 도시를 남쪽 외곽에서부터 천천히 봉쇄하면서 퇴로인 동쪽은 제1기갑군이, 서쪽은 제4기갑군이 틀어막도록 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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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남도현｜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