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12.0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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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1943년 3차 하르코프 전투 [4]

독일의 마지막 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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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의 상황이 나쁘다는 정보를 획득한 만슈타인은 그동안 귀중하게 보존한 기갑부대를 반격의 선봉에 세우고자 했다.

최전선까지 날아온 히틀러

친위장갑군단이 명령을 어기고 철군했다는 소식에 히틀러는 경악했다. 항명을 한 하우서와 이를 막지 못한 란츠를 즉각 해임한 것으로도 모자라 직접 만슈타인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2월 17일, 남부집단군 사령부가 있는 자포리자(Zaporizhia)로 날아갔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패배 후 외부 노출을 최대한 삼가던 히틀러가 소련군이 인근까지 다가온 최전선으로 직접 찾아왔을 만큼 히스테리는 극에 달했다.

하우서의 항명에 격노해 남부집단군 사령부까지 직접 찾아 온 히틀러를 영접하는 만슈타인. <출처: (cc) Bundesarchiv at Wikimedia.org>

지난 1941년 겨울 모스크바 전투 당시 중부집단군이 현지 사수의 엄명에도 불구하고 후퇴하자 격분한 히틀러가 수많은 장군들을 해임시키고 스스로 육군 총사령관에 오르는 극약 처방을 내렸을 때도 없었던 초유의 일이었다. 어떠한 칼바람이 불어올지 전혀 예측이 되지 않았다. 추후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당시 히틀러는 만슈타인을 해임하고 현장에 남아 직접 남부집단군을 지휘할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 전투 당시 차지한 육군 총사령관 자리로도 부족해 1942년 9월 지지부진한 전황에 대한 책임을 물어 리스트(Wilhelm List)를 해임하고 한때 A집단군 사령관도 겸직했던 전례가 있어 그런 예상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베를린까지 가기 힘들었던 만슈타인은 총통이 찾아오자 오히려 이를 좋은 기회로 생각했다. 자신의 구상대로 차후 작전을 펼치려면 어차피 히틀러를 설득해야 했기 때문이다.

히틀러를 설득하기 위해 베를린까지 갈 생각을 하고 있던 만슈타인은 전격적인 그의 방문이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만슈타인은 벌겋게 상기된 총통을 어르고 달래며 차분히 전황을 설명했다. 요점은 자신들의 후퇴가 남부집단군의 궤멸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뿐이며 전선을 추스르고 난 후 기회를 보아 반드시 총통이 원하던 하르코프를 되찾겠다는 것이었다. 만슈타인의 조리 있는 분석에 히틀러는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프로이센 귀족 출신이라며 내심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능력은 익히 알고 있어서 당장 반박을 하기도 어려웠다.


만슈타인의 설득

베를린에서 2,000km를 날아와 직접 살펴본 남부전선의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어쩌면 총통이 이러한 전방 순시를 석 달 전에만 했더라도 제6군의 비참한 몰락을 막을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히틀러는 그래도 자존심이 있어서 불평불만을 늘어놓았지만 정작 자신의 의도대로 친위장갑군단이 하르코프에 고립된 채 방어전을 펼쳤다면 외곽에서 이들을 도와줄 현실적인 방법이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제4항공군 사령관 리히트호펜으로부터 브리핑을 받는 히틀러. 직접 와서 전선을 살펴 본 히틀러는 고립을 자초해 사수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상황이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결국 우유부단했던 란츠의 해임은 그대로 유지했지만 소신 있게 부대를 지휘한 하우서의 해임 명령은 취소했다. 반격을 하려면 그 정도로 강단 있는 인물이 친위장갑군단을 계속 지휘해야 한다고 본 만슈타인이 히틀러를 설득한 결과였다. 그리고 만슈타인은 차기 작전의 효율을 위해 친위장갑군단의 지휘권을 자신에게 위임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던 히틀러는 이를 거부했다.

그런데 히틀러가 도착한 다음 날인 2월 18일, 소련 제6군이 독일 제1기갑군과 켐프 파견군(Armeeabteilung Kempf, 구 란츠 파견군) 사이를 가르고 들어왔다는 급박한 소식이 남부집단군 사령부로 전해졌다. 크라스노그라드가 함몰될 위기였고 이렇게 된다면 하르코프에서 탈출에 성공한 친위장갑군단이 또다시 포위될 가능성이 커졌다. 히틀러는 노발대발했지만 곧이어 들려온 소식은 그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것이었다.

히틀러가 있는 자포리자의 코앞까지 소련군이 밀고 들어오자 히틀러는 노발대발했지만 만슈타인은 오히려 소련군의 진격로가 길어져서 좋다고 생각했다.

별 작전을 주도하며 하르코프를 탈환한 보로네시 전선군의 활약에 바로 남쪽에서 질주 작전을 진행 중이던 남서전선군 사령관 바투틴(Nikolai Vatutin)이 조급증이 생긴 것이다. 전공을 빼앗길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제1근위군과 포포프 전차군의 진격을 거칠게 독려했다. 이로 인해 철도 분기점인 파블로그라드(Pavlograd)를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곳은 자포리자의 바로 코앞이었다.


원하는 것을 얻다

바투틴은 이곳에 히틀러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지만 자칫 한 번 더 공세가 이어지고 독일이 방어에 실패한다면 히틀러가 생포될 수도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히틀러는 간신히 참았던 감정을 폭발시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정작 만슈타인은 소련군이 허점을 보일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고 설득했다. 변덕스런 모습을 바로 앞에서 지켜본 만슈타인은 이후 히틀러를 벼락출세한 하사관일 뿐이라고 두고두고 조롱했다.

슈타인은 흥분한 히틀러를 설득해 결국 자신의 의도대로 전투를 벌일 수 있게 되었다.

바로 그때 제40장갑군단에서 기다리던 보고가 올라왔다. 선두의 소련군이 연료와 보급품이 고갈되어 진격을 멈춘 채 지원을 요청하고 있는 무전을 감청한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소련군 전위부대와 후방과의 간격이 크게 벌어진 사실도 확인되었다. 만슈타인은 드디어 기회가 왔음을 히틀러에게 설명했고 반격의 선봉에 나설 친위장갑군단의 지휘권을 달라고 총통에게 재차 요구했다.

히틀러가 머뭇거리는 사이에도 소련군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연료 부족으로 진격을 멈춘 상태였지만 그렇다고 공격이 중단된 것은 아니었다. 남부집단군 사령부가 있는 자포리자 일대에 대대적인 포격이 가해졌고 자칫하면 히틀러가 탈출할 수 없을지도 모를 급박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싫든 좋든 총통을 전선 한가운데 놔둘 수 없었던 만슈타인은 제4항공군 사령관 리히트호펜(Wolfram von Richthofen)과 함께 히틀러에게 퇴거를 요청했다.

결국 2월 19일, 히틀러는 자포리자를 떠나면서 만슈타인에게 친위장갑군단을 비롯해 남부집단군 관할 기갑부대에 대한 지휘권도 함께 부여했다. 엄밀히 말해 히틀러도 대안이 없었고 만슈타인의 예측대로 전선의 상황이 돌아가고 있었기에 싫든 좋든 일단 그의 말에 따라야 했다. 평소 만슈타인을 경원시했지만 그렇다고 독일군 내에서 최고로 평가되는 그의 능력까지 부정할 수는 없었다.


놀라운 반격 계획

이제 뜻대로 전쟁을 지휘할 수 있게 된 만슈타인은 즉시 예하 부대의 재정비에 착수했다. 지난 1942년 11월 22일에 실시된 소련의 천왕성 작전 이후 계속되어 온 지긋지긋한 후퇴와 방어를 끝내고 드디어 공세로 전환하기 위한 준비였다. 경쟁적으로 진격해 오던 소련군은 서쪽과 남쪽으로 두 개의 거대한 돌파구를 형성했는데, 만슈타인은 이를 일거에 제거해 전세를 완전히 반전시킬 계획이었다.

후퇴 직전인 1943년 1월 하르코프 도심의 모습. 만슈타인은 이곳을 소련군의 무덤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중앙에 있는 제4기갑군이 돌파구 사이를 견제하면, 우익을 담당한 제1기갑군이 북상해 소련 남서전선군 선도 부대들을 포위하고 동시에 좌익의 켐프 파견군이 벨고로드까지 직진해 하르코프 북쪽을 차단하는 것이 골자였다. 그리고 히틀러와 실랑이 끝에 지휘권을 얻어낸 친위장갑군단이 포위망 안쪽을 청소하는 동안 홀리트 파견군이 미우스 강을 방패 삼아 여타 소련군의 서진을 막아야 했다.

만슈타인의 계획은 크게 3단계로 나뉘었다. 첫째, 부대원이 지치고 자원이 고갈되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인 전방의 소련군 부대를 일거에 격멸하고, 이를 달성하면 히틀러가 그렇게 불평을 늘어놓았던 하르코프를 탈환하고 마지막으로 독일 중부집단군과 연합해 쿠르스크 일대에 포진한 소련군을 제거해 독일의 극성기였던 1941년 11월 이전의 상태로 전선을 돌려놓는 것이었다.

출동 준비를 완료한 제3친위사단 소속 티거 전차. 만슈타인은 후퇴의 와중에도 반격을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만슈타인은 단지 전선 남부의 위기 극복에 머물지 않고 독소전선 전체를 흔들어 놓을 어마어마한 복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처음 이런 계획을 피력했을 때 단지 하르코프에만 매몰되어 있던 히틀러가 귀담아듣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동안 기회를 엿보던 만슈타인은 후퇴의 와중에도 공세에 나설 준비를 해 놓은 상태였다. 물론 3단계 목표까지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제1단계를 성공해야 했다.


남도현|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