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10.27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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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메르스엘케비르 해전 [2]

혈맹을 갈라놓은 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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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압도적인 영국 함대와 싸우다가 라플라타 해전에서 자침해 최후를 맞은 독일의 포켓 전함 그라프 쉬페. 전력은 뒤졌지만 그렇다고 독일 해군이 약한 것만은 아니었다.

영국의 선택

프랑스가 항복한 후 독일의 다음 목표는 당연히 영국이었다. 육지에서 전선을 맞대고 싸운다면 영국이 이길 가능성은 없었지만 다행히도 섬나라였고 세계 최강의 해군이 보호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력한 독일 공군의 엄호 하에 상륙부대가 영불해협을 건너올 것이 확실하므로 결코 안심할 상황이 아니었다. 또 아무리 독일 해군이 약하더라도 무시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바로 그런 점에서 고스란히 살아남은 프랑스의 함정들은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만일 이들을 독일이 확보해 영국 침공전에 사용한다면 영국으로선 곤혹스러울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독일이 놀랍게도 프랑스 해군의 함정들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결정한 사실을 영국은 이때까지 알지 못했다. 설령 알았어도 당시 상황을 놓고 본다면 독일이 그냥 놔두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어려웠다.

휴전 후 프랑스는 대외 중립을 선언했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해 영국과의 동맹관계를 끊겠다는 것이었지 독일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았다. 일단 독일이 영국을 공격하는 데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항구를 포기한 상태였고 육군, 공군의 장비들은 즉시 노획되었다. 이럴 정도였으니 여차하면 독일이 알토란 같은 프랑스의 함정들을 노획해 사용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영국은 이런 최악의 상황을 막아야만 했다.

프랑스 북부 브레스트 군항의 도크에서 수리 중인 독일 전함 그나이제나우. 이처럼 많은 시설들을 독일이 점유해 사용했다.

최선책은 바로 직전까지 함께 피를 흘린 혈맹답게 프랑스 함정들이 영국 해군에 합류하거나 아니면 통제를 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프랑스는 항복한 것이지 나라가 망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그나마 보장받은 무력을 순순히 내줄 의향이 없었다. 영국에게 차선은 프랑스가 적대적으로 나오지 않는 것인데, 독일의 강압이 있을 시에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격멸시키는 것이었다.


캐터펄트 작전

사실 영국의 움직임은 프랑스의 패전이 가시화된 6월 중순부터 시작되었다. 처칠이 레노에게 함정의 인도를 요구했고 여의치 않을 경우 제3국으로의 망명을 대안으로 제시했었다. 이는 영국 혼자 살겠다는 행위라며 프랑스의 반발을 부르긴 했지만 동맹으로서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 해군 총사령관 다를랑은 처칠에게 만일 독일이 프랑스 함정을 빼앗으려 한다면 자침시켜 버릴 테니 안심해도 좋다고 답변했다.

비시 정부 당시의 프랑수아 다를랑(앞줄 가운데). 영국과 독일의 압력으로부터 해군력을 보존하는 데 성공했으나 이후 변절을 일삼는 기회주의자로 낙인찍힌다.

결국 영국은 최선에서 최악의 상황을 모두 염두에 두고 캐터펄트 작전(Operation Catapult)을 수립했다. 프랑스가 알아서 영국의 의도에 따라 행동할 가능성이 없더라도 원하는 방향으로 몰고는 가야 했다. 적지로 변한 프랑스 본토의 툴롱(Toulon), 브레스트(Brest) 등에 위치한 함정들은 설령 영국에 합류하려 해도 독일의 감시를 벗어나기 어려우니 포기하고 일단 해외에 주둔한 함정들을 대상으로 했다.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보유한 프랑스는 많은 해외 기지를 운용 중이었다. 이 중 영국의 우선 목표가 된 것은 지중해 일대를 작전권으로 삼는 프랑스령 북아프리카 일대에 배치된 함정들이었다. 이들은 배수량으로 따져 프랑스 해군의 40퍼센트에 해당되는 거대한 전력으로, 여차하면 대서양으로 신속히 전개할 수 있었다. 프랑스와 독일이 휴전 협상을 개시하자 처칠은 지브롤터(Gibraltar)에 주둔하고 있던 H기동함대(Force H)를 출동시켰다.

지브롤터를 출발하는 H기동함대의 모습을 묘사한 기록화

당대 최대의 전투함인 순양전함 후드(HMS Hood)를 기함으로 하여 전함 2척, 항공모함 1척, 경순양함 2척, 그리고 구축함 11척으로 구성된 H기동함대를 이끈 이는 소머빌(James Somerville) 제독이었다. 이들이 향한 곳은 알제리 북부에 위치한 메르스엘케비르(Mers-el-Kébir)였다. 100년이 넘게 지배한 알제리는 어느덧 프랑스인들에게는 본토의 일부처럼 여겨질 만큼 중요한 곳이었다.


격전 직전의 협상

메르스엘케비르와 10여 km 동쪽에 위치한 오랑(Oran)에는 장술(Marcel-Bruno Gensoul)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제1함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기함인 됭케르크(Dunkerque)를 포함한 전함 4척과 수상기모함 1척, 그리고 구축함 6척으로 이루어진 전력은 H기동함대와 거의 대등한 수준이었다. 소머빌이 제1함대 사령부를 방문하여 장술과 협상에 들어간 것은 휴전이 성립된 지 이틀 후인 6월 27일이었다.

알제리 메르스엘케비르에 위치한 프랑스 해군 기지. 불과 일주일 전까지 동맹이던 영국과 프랑스가 포격전을 벌인 비극의 장소가 되었다.

소머빌은 장술에게 함대를 이끌고 영국에 오면 안전하게 함정을 보관하고 있다가 전쟁이 끝난 후 돌려줄 것이고, 수병들은 원하면 즉시 본국으로 귀환하도록 조치하겠다고 설득했다. 만일 힘들다면 제3국이라 할 수 있는 서인도 제도나 미국으로 함대를 옮기는 대안도 제시했다. 하지만 영국은 최선이라 할 수 있는 이런 제안을 장술이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소머빌도 처칠로부터 지시받은 사항을 그대로 전한 것처럼, 이 정도로 중요한 문제를 일개 제독인 장술 혼자 결정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프랑스라는 국가나 정부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에 본국의 지시 없이 영국의 의도에 동조하는 것은 반역이라 할 수도 있었다. 독일 점령기 동안 프랑스를 지배한 비시 정권(Régime de Vichy)은 종전 후 척결의 대상이 되지만 당시에는 명백한 합법 정부였다.

처칠의 명령에 따라 H기동함대를 이끌고 출동한 소머빌 제독(우)

분명히 프랑스는 협상에 의해 교전 행위를 중단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장술이 영국의 의견에 동조한다면 프랑스와 독일이 맺은 휴전 조약을 정면 위반하는 것이어서 어떤 보복이 떨어질지 몰랐다. 바다 건너 알제리는 독일군의 간섭이 직접 미치지 못하는 곳이어서 독단적으로 행동할 여지는 있었지만, 영국의 요구를 따르면 온갖 굴욕을 감내하고 간신히 전쟁을 끝낸 본국에 고통을 줄 가능성이 컸다.


선택의 시간

하지만 여전히 독일과 전쟁 중인 영국은 프랑스의 입장을 고려할 입장이 되지 못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독일의 손에 함정들이 넘어가는 것을 막아야 했던 소머빌은 만일 영국 편이 되거나 제3국으로 갈 생각이 없으면 차라리 자침하라고 요구했다. 장술은 본국에 의견을 물어보려 했지만 정부가 비시로 이전 중이어서 다를랑과 연락이 되지 않았다. 결국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고자 그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알제리에 주둔한 프랑스 제1함대를 지휘한 마르셀-브루노 장술 제독(좌). 우유부단한 성격의 그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한 영국의 요구는 어쩌면 너무 가혹했다. <출처: 프랑스 장군 박물관>

하지만 7월 2일이 되도록 답변이 없자 다음 날 아침 소머빌의 명령을 받은 홀랜드(Cedric Holland) 대령이 장술을 방문하여 6시간 내에 확답을 주지 않는다면 부득이 공격에 나서겠다는 최후통첩을 전했다. 바로 엊그제까지 독일을 상대로 같이 싸우던 동맹이었지만 협조하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소머빌은 압박을 가하기 위해 항구 주변에 H기동함대를 공격 대형으로 배치했다.

사실 영국으로서도 어지간해서는 피하고 싶은 최악의 시나리오였지만 장술의 태도는 몹시 우유부단했다. 그는 홀랜드에게 "프랑스의 함정이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보장하겠다."고 답변했는데, 이는 영국의 요구 조건에도 확답을 주지 못하는 그가 장담할 수 있는 수준의 약속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영국이 공격하면 즉시 반격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표했다.

소머빌은 H기동함대를 공격 대형으로 배치해 장술을 압박했다.

우유부단한 장술은 이런 식으로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벌고자 했다. 다급한 영국은 항복과 자침 외에는 다른 제안을 주지 않았다. 오로지 객관식 문제처럼 자신들이 제시한 내용 중에서만 택일하라고 다그치다 보니 장술의 의견은 철저히 묵살되었다. 이는 같은 날 알렉산드리아에서 성공적으로 프랑스 함정을 무장 해제시킨 영국 지중해함대 사령관 커닝햄(Andrew Cunningham)의 대응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남도현|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