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10.20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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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50여 년간 미국을 지켜온 ICBM의 주축

LGM-30 미니트맨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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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트맨 III의 발사 장면 <출처: 미 공군>

개발의 역사

1950년대 말 미국은 소련과의 ICBM(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대륙간탄도미사일) 경쟁에서 뒤지고 있었다. 소련이 1957년 스푸트닉(Sputnik)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하면서 R-7 ICBM을 최초로 실전배치하자, 미국은 뒤늦게 1959년 10월에서야 SM-65 아틀라스(Atlas) ICBM을 실전배치했다. 그러나 미국의 1세대 ICBM은 작전적 신뢰성이 그다지 높지 않았기에 무기체계로서는 가치가 낮았지만, 핵무기를 보유했다는 정치적 의미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1세대 ICBM은 극명한 작전적 한계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액체연료를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이에 따라 로켓의 내부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로켓 자체의 크기가 커졌고, 내부에 부품수가 증가하면서 반대로 탑재중량이나 사거리는 줄어들어야만 했다. 또한 발사 설비가 복잡했고 매번 주유를 해야만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으며 사일로 안에서 주유 작업 중의 폭발 위험을 생각하면 안전성도 지극히 낮았다. 무엇보다도 액체연료 미사일을 무인 사일로(Silo)에 장기간 보관하고 있다가 즉각 발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고체연료 미사일이 필요했다.

미니트맨의 아버지인 에드워드 홀 <출처: 미 공군>

공군에서 ICBM의 개발을 맡은 것은 WDD(Western Development Division)였다. 애초에 WDD는 SM-65 아틀라스에 고체연료 방식을 채택하려고 했지만, 당시 기술로서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액체연료 방식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고체연료 엔진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어, 특히 WDD의 추진체계 책임자인 에드워드 홀(Edward N. Hall) 대령의 주도 하에 1950년대 중반 이후에도 꾸준히 고체연료 엔진이 개발이 계속되었다. 1957년 3월경 홀 대령은 이제 차세대 ICBM을 고체연료 방식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성숙했다고 판단했다.그러나 홀 대령은 1957년 여름 WDD 지휘관인 슈리버(Bernard A. Schriever) 소장과 충돌하면서 보직해임을 당했다. 빈 사무실로 내던져진 홀 대령은 그 자리에 차분히 앉아 고체연료 미사일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몇 개월 동안 홀로 앉아 연구하면서 홀 대령은 일련의 전술·중거리 미사일 및 ICBM을 설계했는데, 이는 ‘Q 미사일’로 불렸다. 홀 대령은 이 가운데 특히 ICBM에 대해서는 미니트맨(Minuteman)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미니트맨은 아틀라스(Atlas)나 타이탄(Titan) 등 1세대 ICBM에 비해 훨씬 작은 크기의 미사일이 될 터였다. 전장 16m에 무게는 29톤 정도에 불과했지만, 3단 추진방식을 적용하여 1~5메가톤(Mt)의 파괴력을 가진 탄두를 최소 2,400km에서 최대 10,000km까지 날려보낼 수 있었다.

홀 대령은 미사일 설계에 그치지 않고 운영 개념까지 제시했다. 비교적 작은 크기에 정비 소요가 적은 고체연료 미사일들을 수십, 수백 개의 무인 사일로에 배치한 다음 필요시에 동시에 발사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 우선 무인 사일로는 200psi(pounds per square inc, 1제곱인치당 파운드를 뜻하는 압력 단위)의 압력을 버틸 수 있으면 충분했다. 고체연료이다 보니 지상지원장비도 거의 필요 없고 현장유지관리 인원도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미사일 10발당 1개의 발사통제시설에 통제요원 2명을 운영하면 충분했다.

그러나 6월부로 공군탄도미사일국(AFBMD, Air Force Ballistic Missile Division)으로 바뀐 WDD는 다른 사업에 우선순위를 두었고, 미니트맨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홀 대령의 성과에 눈독을 들인 것은 미 해군이었다. 폴라리스(Polaris) SLBM(Submarine Launced Ballistic Missile: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의 개발에 최우선순위를 부여한 미 해군은 미 공군의 연구 결과를 폴라리스 사업에 채택했다. 홀 대령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개발을 추진한 미 해군은 1957년 가을에 폴라리스 미사일의 지상발사형을 개발하고 공군이 이 미사일을 사용하면 어떻겠냐고 공군에 역제안했다. 위기감을 느낀 AFBMD는 고체연료 ICBM으로 관심을 돌렸다.

미니트맨은 불과 3년의 시험발사를 통해 빠르게 개발에 성공했다. <출처: 미 공군>

1958년 2월 슈리버 장군은 홀 대령을 워싱턴으로 급파하여 국방장관, 공군성 장관, 그리고 커티스 르메이(Curtis LeMay) 전략공군사령관에게 미니트맨 개념을 브리핑하도록 했다. 홀은 그간 자신의 노하우를 빠짐없이 설명했다. 이미 고체연료 기술도 충분히 성숙하여 1965년까지 미니트맨 1,600발을 생산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이 보고를 들은 미 국방부와 공군 수뇌부는 크게 만족했다. 기존의 ICBM 개발사업들은 하나같이 실현 가능성이 낮았지만, 홀의 제안은 충분한 성능에 만족스러운 가격으로 빠른 양산이 가능했다. ICBM 개발에서 앞서 나가고 있는 러시아와의 미사일 공백(missile gap)을 메우기 위해서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우수한 대안이 미니트맨이었다. 이에 따라 공군은 즉시 미니트맨의 타당성 검토 사업에 5,000만 달러의 예산을 배정하면서 타당성이 검증되면 추가로 1억 달러를 배정하기로 했다.

AFBMD는 곧바로 개발에 착수하여 1958년 7월이 되자 구성품 개발을 시작하고 사업자를 선정했다. 그리고 1959년 9월에는 미니트맨의 조립과 시험비행 사업자로 보잉 사(Boeing Airplane Company of Seattle, Washington)를 선정했다. 유도장치 사업자로는 노스 아메리칸[North American Aviation, 추후에 록웰 인터내셔널(Rockwell International)]을, 재진입체 사업자로는 AVCO를 선정했다. 한편 1·2·3단 로켓모터의 사업자로는 티오콜(Thiokol) 화학과 에어로젯 제너럴(Aerojet General), 허큘리스 파우더(Hercules Powder) 3개사를 경쟁시켰다. 당시 미국이 미니트맨에 거는 기대는 엄청나서, 1959년 9월 4일에는 미니트맨 사업이 DX-1 레벨(국가 최고 우선순위)로 분류되었다.

시험발사를 준비 중인 미니트맨 I 미사일 <출처: 미 공군>

사업자가 선정되자 미니트맨 개발은 가속도가 붙었다. 우선 1959년 9월 15일 AFBMD는 미니트맨의 1단 추진을 사일로에서 실시했다. 이날 발사는 1단 로켓모터의 연료를 3초만 연소시켜 사일로 발사를 시험하는 것으로, 2단과 3단은 같은 중량의 모의 로켓을 장착하고 미사일에 전선을 연결하여 발사하는 유선비행시험(tethered flight test)이었다. 사일로에서 엄청난 고열을 버티면서 1단 발사에 성공하면서 사업은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미사일 개발과 동시에 사일로의 대대적인 건설도 진행되었다. <출처: 미 국방부>

5월 6일에는 제8차 유선시험발사가 있었는데, 시험 결과가 충분히 성공적이라고 판단한 미 공군은 원래 18차까지 계획되어 있던 유선비행시험을 종료하고 본격적인 시험발사로 접어들었다. 1961년 2월에는 플로리다의 공군 미사일시험센터에서 미니트맨의 초도시험비행이 있었다. 초도시험비행에서 3단 분리와 유도장치를 모두 시험했는데, 미니트맨은 7,400여 km를 비행하여 깔끔하게 목표지점으로 진입하면서 초도시험비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미사일만 준비된다고 끝은 아니었다. 공군은 시험비행이 성공하자마자 맘스트롬(Malmstrom) 공군기지 안에 미니트맨의 지하 사일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미 1962년 10월까지 미니트맨 미사일 10발을 실전배치하면서 쿠바 미사일 위기에 늦지 않게 발사태세를 갖췄다. 이후에도 미니트맨은 꾸준히 배치되어 1966년 11월까지 모두 800발의 미니트맨 I 미사일이 실전배치를 마쳤다.

한편 미니트맨 I의 성능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판단한 미 공군은 이미 1962년부터 미니트맨 개량형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LGM-30F 미니트맨 II가 개발되었는데, 2단 로켓모터에 TVC(Thrust Vector Control: 추력방향제어장치)를 장착하는 등 추진체계도 개선하여 사거리도 12,500km로 증가했다. 넉넉한 추력 덕분에 무거운 W-56 핵탄두도 장착할 수 있어서 파괴력도 1.2메가톤으로 증가했다. Mk-11C RV(Reentry Vehicle: 재돌입체)를 장착하여, 미니트맨 I에서 1km 수준이던 CEP(Circular Error Probable: 원형공산오차)를 미니트맨 II에서는 200m 수준으로 낮춤으로써 정밀도를 끌어올렸다. 무엇보다도 유도장치가 개선되어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표적정보를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파괴력과 정밀도 향상이 결합된 결과 미니트맨 II는 기존의 모델보다 실질적인 파괴력이 8배 이상 증가했다.

마지막 시리즈인 LGM-30G 미니트맨 III는 1964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었다. 특히 미니트맨 III부터는 MIRV(Multiple Independent Targetable Reentry Vehicle: 다탄두 미사일) 개념이 적용된 제3세대 ICBM이었다. 소련의 ICBM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ICBM의 숫자를 더욱 늘리는 것은 미국에게조차 경제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또한 소련의 ABM(Anti-Ballistic Missile: 탄도탄요격미사일) 방어망이 구축되는 상황에서 여러 탄두를 분산하여 생존성을 높이는 것은 군사적으로도 당연한 선택이었다. 이에 따라 하나의 미사일에 여러 개의 탄두를 장착하여 다양한 표적을 공격하도록 하는 MIRV가 실전배치된 것이다. 미니트맨 I을 개량하여 만든 미니트맨 III는 1970년부터 배치되기 시작하여 1976년 7월 11일에 생산이 완료되었다. 미니트맨 전력은 미니트맨 II 500발과 미니트맨 III 500발로 구성되었다.

미니트맨 III는 세계 최초의 MIRV로 미국의 핵타격 능력을 비약적으로 늘렸다. <출처: 미 국방부>

미니트맨은 이후 미국 ICBM 전력의 주축으로 일선을 지켜왔다. 생산은 1977년 1월 14일에 정식으로 종료되었으나, 이후에 끊임없이 유지보수가 이어졌다. 1978년 7월에는 미니트맨 II의 2단 로켓모터에서 크랙이 발견되어 보수작업이 시작되었다. 보수사업을 추진하는 중에 미니트맨 II와 III의 2단·3단에서 유사한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 확인되어 보수사업은 크게 확대되었다. 1985년부터는 미니트맨을 21세기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성능을 보완하는 사업인 리벳 마일(Rivet MILE, Minuteman Integrated Life Extension) 사업이 실시되었다.???) 이후에도 추진제 교환 사업이나 항법 교체 사업 등 꾸준한 개수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러한 와중에 미니트맨은 그 세력이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낡아서 도태한 것이 아니라 냉전 후 미국과 러시아의 군축합의에 따라 그 숫자가 점차 줄어들게 된 것이다.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y)에 따라 1991년 미니트맨 II를 300발 퇴역시켰고, 남은 미니트맨 II 150발은 미니트맨 III 사양으로 개수되었다.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에 따라 미니트맨은 꾸준히 감축되어, 2018년 2월까지 핵탄두 장착 미사일 400발과 비장착 미사일 50발로 줄어들 예정이다.

한편 미 공군은 미니트맨 전력을 2030년까지 운용할 예정이었으므로, 이제 점차 퇴역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차세대 ICBM인 GBSD(Ground Based Strategic Deterrent: 지상기반 전략억제무기)의 개발을 시작했다. 미 공군은 2017년 8월 21일 GBSD의 후보사업자로 보잉과 노스럽 그러먼(Northrop Grumman)을 선정하여 시제품을 만들도록 했으며, 2020년 사업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GBSD는 2027년부터 실전배치된다.


특징

미니트맨은 세계 최초의 고체연료 방식 ICBM이다. 미니트맨은 3단 추진 방식으로, 1단에 장착된 티오콜의 TU-122 로켓모터는 20만 파운드를, 2단에 장착된 에어로젯-제너럴(Aerojet-General)의 SR-19-AJ-1 로켓모터는 60,600파운드를, 3단에 장착된 에어로젯과 티오콜이 공동제작한 SR73-AJ/TC-1 로켓모터는 34,000파운드의 추력을 낼 수 있다. 이에 따라 미니트맨 III는 최대 13,000km를 비행할 수 있다. 1998년부터 2009년까지는 추진제 교환 사업을 통해 오래된 고체연료를 교체함으로써 미사일의 수명을 늘렸다.

미니트맨의 구성 <출처: Public Domain>
미니트맨의 발사 과정. ① 사일로에서 발사되어 1단 로켓모터(A) 추진, ② 60초 연소 후 1단 분리 및 2단 로켓모터(B) 점화 / 페어링(E) 분리, ③ 120초 후에 2단 분리 및 3단 로켓모터(C) 점화, ④ 180초 후에 3단 추진체 분리 및 PBV(D) 분리, ⑤ PBCV 기동 및 RV 분리 준비, ⑥ RV와 디코이 및 채프 분리, ⑦ RV 대기권 진입 및 탄두 가동, ⑧ 핵폭발(공중폭발 및 지표폭발) <출처: Public Domain>

미니트맨 III는 세계 최초로 MIRV를 채용한 ICBM이기도 하다. 우선 RV(재진입체)로는 Mk 12를 채용하여, 170킬로톤(kt)의 파괴력을 지닌 2단 내폭(2 stage radiation implosion)의 W62 탄두를 내장했다. 이에 따라 미니트맨 III에는 Mk 12 RV 3개가 탑재된다. 또한 RV의 사거리를 늘림과 동시에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미니트맨 III는 PBV(Post Boost Vehicle: 후추진체)를 채용하고 있다. PBV를 추진하는 PSRE(Propulsion System Rocket Engine)는 액체연료를 사용한다.

미니트맨 III는 미국의 유일한 ICBM으로 핵억제력을 발휘하고 있다. <출처: 미 국방부>

탄두는 계속적으로 진화해왔다. 1979년부터는 340킬로톤의 파괴력을 가진 W78 탄두를 탑재한 Mk 12A RV로 교체사업이 실시되어 기존 탄두 상당수가 교체되었다. 또한 2005년부터는 퇴역한 피스키퍼(Peacekeeper) ICBM에 장착되었던 W87 핵탄두와 Mk 21 RV를 미니트맨 III로 옮기는 SERV(Safety Enhanced Reentry Vehicle) 사업이 진행 중이다.

유도장치로는 NS20 항법장치가 채용되어 D37D 비행컴퓨터가 사용되었다. 과거 미니트맨 I에 사용되었던 D17은 하나의 목표를 설정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D37D에서는 다양한 표적과 경로를 입력할 수 있게 되었다. 항법교체사업(Guidance Replacement Program)을 통해 현재는 NS50A 항법장치가 채용되어 2030년까지도 사용될 수 있도록 성능이 개선되었다.


운용 현황

미니트맨 III 시험 발사 영상<출처 : 미 국방성>

미니트맨은 본격적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했던 냉전 시절의 대표적인 ICBM이다. 현재 미국의 ICBM은 피스키퍼가 퇴역한 이후 오직 미니트맨 III만 운용되고 있다. 미니트맨 IA는 1962년부터 실전배치되었는데, 첫 미사일이 맘스트롬 공군기지에 도착한 것이 1962년 7월 23일이었다. 미 공군은 이후 11월 20일 실전배치된 미사일 2발을 시험발사함으로써 IOC(Initial Operating Capability: 초도작전운용능력)을 선언했다.

본격적인 배치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이루어져, 1963년 2월에는 5개 편대(flight)에 10발씩 배치되었으며 첫 대대(squadron)가 만들어졌고, 7월까지는 150발로 3개 대대가 구성되어 1개 단(wing)이 형성되었다. 10월까지는 300발이 배치 완료되면서 2개 단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1964년 3월까지 450발이 배치되더니, 급기야 1965년 6월에 이르러서는 800발째 미니트맨 미사일이 전략공군에 인계되었다.

미니트맨 II는 1966년부터 배치가 시작되어, 1967년 4월까지 200발이 인계되었다. 이에 따라 맥나라마(Robert McNamara) 국방장관이 계획했던 1,000발 배치가 마무리되었다. 이후는 추가 생산보다는 업그레이드 사업이 중점적으로 이루어져, 기존의 미니트맨 I이 점차 미니트맨 II로 개량됨에 따라, 1969년 5월경에는 미니트맨 I과 미니트맨 II의 수가 각각 500발로 동률이 되었다. 현재는 피스키퍼 미사일이 퇴역함에 따라 미군의 핵전력 3요소 중 유일한 ICBM으로 미니트맨 III 450발이 현역을 지키고 있다.

미니트맨은 미국의 유일한 ICBM으로 여전히 시험발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사진은 2017년 8월 2일 반덴버그(Vandenberg) 공군기지에서 미니트맨이 발사되는 장면이다. <출처: 미 공군>
미니트맨 발사통제소의 모습 <출처: 미 공군>

미니트맨은 지하발사시설에서 운용된다. 발사통제소(LCC, Launch Control Center)에서 10개소의 미사일 사일로(LF, launch facility)를 통제한다. 적 ICBM 공격에도 생존하기 위해 사일로는 발사통제소에서 약 5.5km 떨어진 곳 지하에 설치하고 700~1,000psi의 압력에도 버틸 수 있도록 설계했다.??? 미니트맨은 통상 1개 편대(편대당 10발 배치)에 의해 운용되며, 편대 5개가 모여 미니트맨 대대가 구성된다. 대대는 작전의 최소 단위로, 한 번에 50발을 동시에 발사함으로써 대량보복이 가능하다.

발사통제소는 2명의 미사일 통제장교가 운용하는데, 만의 하나 적의 공격으로 발사통제소가 파괴될 때를 대비해 공중에 ALCS(Airborne Launch Control System: 공중발사통제시스템)를 대기시킨다. ALCS는 발사통제소 파괴 시 발사통제소를 대신해 미니트맨의 발사 명령을 내린다. ALCS로는 과거에 EC-135 특수임무기가 사용되었으나, 1998년부터는 E-6B 공중지휘통제기가 그 임무를 대신하면서 SLBM과 ICBM의 통합관제임무를 동시에 수행한다.

미니트맨은 미국의 유일한 ICBM으로 현역을 지키고 있으며, 1년에 수차례 시험발사를 실시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시험발사는 최근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 이후에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미국의 핵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ALCS 임무를 수행하는 E-6B 머큐리(Mercury) 공중지휘통제기 <출처: 미 국방부>

파생형

● LGM-30A 미니트맨 IA: 미니트맨의 초도형으로, 1962년 6월 29일 시험발사에 성공하면서 실전배치되었다. 최초에는 SM-80으로 분류되었으나, 1963년 육·해·공군이 합동분류체계를 채용하면서 LGM-30으로 분류명이 바뀌었다. 모두 150발이 생산되었다.

미니트맨 I 미사일 <출처: Public Domain>

● LGM-30B 미니트맨 IB: 1963년 4월부터 배치되기 시작한 미니트맨 IA의 개량형으로, Mk-11 RV를 채용하고 2단 추진체의 표면 재질이 철에서 티타늄으로 바뀌었다. 이후 미니트맨은 IB 사양으로 생산되어 1965년 6월 650발을 마지막으로 생산이 종료되었다.

● LGM-30F 미니트맨 II: 미니트맨 IA/IB 시리즈의 개량형으로, 1964년 9월 24일 첫 발사에 성공했다. 실전배치는 1965년부터 시작되어, 1967년 4월 21일 1,000발째 미사일이 출고되면서 생산이 종료되었다. 새로운 미사일의 생산이 종료되었지만, 기존의 IA와 IB를 개수하여 II 사양으로 만드는 작업은 계속되어 1969년 7월 2일까지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이에 따라 미니트맨 II는 200발이 신규 생산되고, 300발이 IA/IB로부터 개량되어 총 500발이 만들어졌다.

사일로 안의 미니트맨 II 미사일(왼쪽)과 미니트맨 II 미사일 발사 장면(오른쪽) <왼쪽 사진 출처: 미 공군> / <오른쪽 사진 출처: Public Domain>

● LGM-30G 미니트맨 III: 미니트맨 시리즈의 최종 개량형이자 MIRV로, 1968년 8월 초도시험발사가 실시되었으며 1970년 4월부터 배치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현역을 지키고 있으며, 특히 피스키퍼 미사일이 퇴역함에 따라 유일한 ICBM으로 미 공군에서 운용 중이다. 모두 550발이 생산되었다.

미니트맨 III 미사일 발사 장면 <출처: Public Domain>

제원

- 중량: 35,300kg
- 길이: 18.2m
- 직경: 1.7m(제1단)
- 탄두: W78(340킬로톤), W87(475킬로톤)
- 추진방식: 3단 고체연료 로켓모터 + PBV
- 사정거리: 약 13,000km
- 속도: 종말단계 시 최대 마하 23
- 항법장치: NS50
- CEP(원형공산오차): 200m


저자 소개

양욱 | 군사전문가
서울대학교 법대를 거쳐 국방대학교 국방관리대학원에서 군사전략을 공부했고, 줄곧 국방 분야에 종사해왔다. 중동지역에서 군 특수부대를 훈련시키기도 했고, 아덴만 지역에서 대(對)해적 업무를 수행하는 등 민간군사요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컨설팅과 교육, 훈련을 제공하는 민간군사서비스(PrivateMilitary Service) 기업인 AWIC(주)의 대표이사다. 또한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수석연구위원이자 국방부·합참·방위사업청 자문위원, 해·공·육군 정책자문위원으로 우리 국방의 나아갈 길에 대한 왕성한 정책제안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