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9.18 16:19

글자크기

[전쟁사]

그들만의 스탈린그라드

벨리키예루키 전투 [1]

0 0
소련은 철도망이 촘촘하지 못한 편이어서 열차가 연결되지 않는 곳에 대한 보급은 상당히 어려웠다.

가려진 혈전

2015년 5월 9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대조국전쟁 승전 70주년 기념식이 벌어졌다. 오전 10시에 사상 최대 규모라는 군사 퍼레이드를 시작으로 하루 종일 각종 공연이 이어졌고, 12시간이 지난 오후 10시의 불꽃쇼를 끝으로 거대한 행사는 막을 내렸다. 그중 오전의 군사 퍼레이드와 더불어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벤트는 땅거미가 내린 후 광장에 설치된 특설무대에서 벌어진 대규모 콘서트였다.

2015년 5월 9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 특설무대에서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배경으로 ‘백학’을 열창하는 이오시프 코브존 <출처: 유튜브 캡처>

푸틴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내외 귀빈들이 직접 참관한 콘서트의 절정은 러시아의 국민가수인 코브존이 ‘백학(Zhuravli)’을 부르는 장면이었다. 국내에서는 1995년 방영된 드라마 ‘모래시계’의 OST로 유명하지만, 사실 이 곡은 제2차 대전 당시 죽어간 무명용사들을 기리는 반전가요다. 러시아를 비롯한 구소련 소속의 여러 나라에서 독소전쟁 관련 행사를 벌일 때 부르곤 한다.

당시 코브존이 노래를 부를 때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설치한 무대의 배경과 배우들이 연출한 장면이 바로 스탈린그라드 전투였다. 그만큼 이 전투는 거대했던 제2차 대전을 상징하는 엄청난 사건 중 하나였다. 그런데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잔상이 이처럼 강렬해서인지 같은 시기에 동부전선의 다른 곳에서 벌어진 혈전들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

파괴된 벨리키예루키 시가지의 모습.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축소판이라 불린 독소전쟁의 숨겨진 격전이었다.

예를 들어 르제프(Rzhev) 돌출부 일대에서 벌어진 화성 작전(Operation Mars)만 해도 소련이 패했기에 일부러 감추어진 부분도 있지만 스탈린그라드 전투 못지않게 격렬했다. 이럴 정도이니 규모가 작았던 수많은 전투들은 단지 그들만의 숨겨진 이야기로 끝난 경우가 부지기수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축소판이라 불린 벨리키예루키 전투(Battle for Velikiye Luki)도 그러한 사례 중 하나다.


평범했던 철도의 교차점

모스크바 서쪽 450km에 있는 로바트(Lovat) 강 상류에 연한 벨리키예루키는 1199년에 발간된 사서에도 나와 있을 만큼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다. 하지만 그런 내력과는 별개로 거대한 러시아 평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작은 농촌 지역으로, 특별한 지하자원이나 산업 시설은 없다. 이처럼 별 볼 일 없는 곳이 독소전쟁 당시에 혈전의 무대가 된 이유는 오로지 철도 때문이었다.

리가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는 중간에 위치한 벨리키예루키. 러시아 평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작은 도시다. <출처: 구글 지도>

20세기 초 리가(Riga)와 모스크바를 동서로 연결하는 철도가 개통되었을 때, 남북으로 오데사(Odessa)와 레닌그라드를 연결하는 기존 철도와 벨리키예루키에서 교차했다. 하지만 이렇게 동서남북으로 나뉘는 철도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음에도 벨리키예루키는 단지 허허벌판에 놓인 러시아 평원의 흔한 교차점 중 하나였을 뿐이다. 이처럼 그다지 큰 의미를 둘 만한 이유가 없었던 인구 7만의 작은 도시는 전쟁이 발발하자 위상이 급격히 바뀌었다.

독소전쟁 당시에 병력의 이동과 물자의 보급은 기본적으로 철도가 담당하고, 철도에서 멀리 떨어진 전선은 가까운 역을 중간 포스트 삼아 트럭이나 우마차로 연계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우기와 해동기에 닥치는 라스푸티차와 열악한 도로망 때문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철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는데, 사실 이 점은 홈 코트의 소련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소련은 여타 유럽 국가들에 비해 철도망이 조밀한 편이 아니어서 양측 모두 매우 한정된 노선을 따라 작전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 거대한 소련 땅을 빗자루로 쓸고 다니듯이 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그렇다 보니 가장 먼저 확보해야 할 인프라가 철도 관련 시설이었고 그중에서도 교차점은 요지 중의 요지가 되었다. 한적한 시골이었던 벨리키예루키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부각된 생명선

1941년 7월 19일, 스몰렌스크(Smolensk) 일대에 몰려 있는 70여만의 소련군을 섬멸하기 위해 북쪽에서 신속히 포위망을 만들어가던 독일 제3기갑집단 예하 제57군단에게 점령되면서 벨리키예루키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곳의 함락은 스몰렌스크를 사수하던 소련군에게 엄청난 위기였다. 북쪽 견부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면서 독일 쪽으로 전선이 크게 돌출되어 버린 것이었다.

스몰렌스크에 몰려 있던 소련군을 섬멸하기 위해 독일군은 북쪽에 위치한 벨리키예루키를 먼저 점령했다. 이로써 한적한 시골 도시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들어갔다. <출처: 미 육군 사관학교>

스탈린이 후퇴를 허락하지 않았기에 소련군 주력은 스몰렌스크 일대에서 고립된 상태로 항전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후방과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진다면 대참사가 벌어질 것이 확실했다. 어려운 가운데 소련 제22군이 반격에 나서 다음 날 벨리키예루키를 탈환하고 이후 계속 이어진 독일군의 공격을 격퇴하는 데 성공했다. 일방적으로 밀려나기 바빴던 독소전쟁 초기에 보기 힘든 소련의 놀라운 응전이었다.

하지만 8월 5일, 무려 30여만 명이 포로가 되면서 스몰렌스크 전투가 막을 내리자 더 이상 벨리키예루키를 사수하고 있기가 어려웠다. 독일이 모스크바의 코앞까지 다가왔기에 일대의 모든 전력을 긁어모아 방어선을 구축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독일의 공세가 재개되자 8월 26일, 소련은 도시를 포기하고 후퇴했다. 이렇게 독일이 확보한 벨리키예루키는 북부집단군과 중부집단군으로 향하는 병력과 물자의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동서남북으로 철도가 교차하지만 역의 규모에서 알 수 있듯이 벨리키예루키는 평범한 곳이었다. 하지만 독소전쟁이 발발하면서 순식간에 요충지가 되었다. <출처: (cc) Pavel A. at russiatrek.org>

하지만 전략적 중요성과 별개로 점령지 후방이다 보니 독일은 이곳에 많은 병력을 주둔시키지 않았다. 이때만 해도 혹독한 스탈린 치세를 경험한 소련인들의 독일군에 대한 반응은 상당히 미묘했다. 특히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컸던 발트 3국이나 서부 우크라이나의 경우는 해방군으로 여길 정도여서 독일군은 1941년 겨울이 오기 전까지 뒷걱정 없이 앞만 보고 싸울 수 있었다.


독일도 포기할 수 없는 곳

하지만 히틀러가 스탈린 못지않은 악마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점령지 곳곳에서 슬라브인,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이들이 학살당하고 수시로 수탈이 자행되면서 점령군에 대한 반감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이런 민심의 변화는 무너져가던 소련이 회생할 수 있었던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곳곳에서 파르티잔 조직이 형성되면서 갈수록 독일군의 안전지대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독일의 혹독한 점령지 지배 정책은 많은 반발을 불러와 파르티잔 활동을 촉진시켰다.

1942년 1월 7일, 소련은 독일군을 100여 km 정도 밀어내고 모스크바를 사수하면서 단기전을 노리던 히틀러의 야욕을 좌절시켰다. 당시 대다수의 지휘관들이 후퇴를 원했을 정도로 독일의 상황이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전략적으로 전쟁의 주도권을 내준 것은 아니었다. 이를 오판한 스탈린은 군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석 달 동안의 모스크바 격전으로 지쳐있던 군대에게 진격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독일군의 강력한 저항에 걸려 르제프와 데미얀스크(Demyansk)에 기묘한 포켓이 형성되면서 전선의 모습은 상당히 이상하게 변했다. 그래서 정작 토로페츠(Toropets)를 정점으로 하는 드비나(Dvina) 강 유역에 소련군이 커다란 돌파구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자료에서 독일이 소련의 르제프-브야즈마 공세(Rzhev–Vyazma Offensive)를 좌절시킨 것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르제프-브야즈마 공세로 벨리키예루키 앞까지 소련군이 진격했고 그 여파로 르제프와 데미얀스크에 커다란 돌출부가 형성되었다. <출처: 미 육군 사관학교>

스몰렌스크의 탈환 가능성도 있었을 만큼 당시 소련군의 진격이 대단했기에 르제프, 데미얀스크를 사수한 독일 제9군과 제2군단의 선전은 특히 돋보인다. 하지만 많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이들 포켓 좌우의 벨리키예루키, 홀름(Kholm), 벨리즈(Velizh)에서 더 이상 소련군의 돌파를 허용하지 않은 여타 부대의 노고도 대단했다. 특히 홀름 같은 경우는 완전히 고립된 상황에서도 저항을 멈추지 않고 소련군을 격퇴시켰다.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