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9.0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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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K-9에도 영향을 준 영국 육군의 주력 자주포

AS-90 자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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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90 자주포 <출처: (OGL) Sgt Si Longworth RLC (Phot) / UK MOD at Wikimedia.org>

개발의 역사

1973년 영국은 서독, 이탈리아와 함께 NATO의 주력으로 사용하기 위한 SP70으로 명명된 새로운 자주포 개발에 착수했다. 당시 영국군은 105mm 구경의 국산 FV433 애보트(Abbot) 자주포와 155mm 구경의 M109 자주포를 사용 중이었다. 그럭저럭 성능이 좋은 자주포들이기는 했지만, 1990년대부터 시작될 노후 물량을 순차적으로 대체하려면 이때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해야 했다.

3국은 가장 중요한 포신을 자주포와 별개로 이미 공동 개발 중에 있던 FH70 견인포가 채택한 39구경장 155mm으로 결정했다. 이는 지난 1963년에 NATO 표준으로 정한 규격이었다. 하지만 참여국들의 세부적인 요구 조건이 상이하여 수시로 의견 충돌이 벌어지면서 개발에 난항을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1982년 12문의 시제품이 만들어져 1986년에 시험까지 진행했으나 결국 프로젝트는 취소되었다.

FH70 곡사포 <출처: (cc) Hugh Llewelyn at Wikimedia.org>

이에 영국 국방부는 자주포 독자 개발 계획을 공표하고 업체들에게 참여를 요청했다. 그러면서 혹시 있을지 모를 실패와 이로 인한 전력 공백에 대비하여 미국에서 개량형 M109의 도입도 함께 고려했다. 그만큼 사정이 급했다. 바로 이때 VSEL(Vickers Shipbuilding and Engineering: 현재 BAE Systems)이 지난 1981년 독자 개발했으나 여러 이유로 양산에는 실패한 GBT155 포탑을 기반으로 한 신형 자주포 개발안을 내놓았다.

VSEL이 처음부터 SP70이 실패할 것이라고 예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거의 비슷한 시기에 독자적인 대외 판매 등을 염두에 두고 자비로 자주포 관련 기술 습득을 위해 GBT 155를 개발했었다. FH70을 탑재한 GBT155는 포탄은 자동으로, 장약은 수동으로 장전하는 구조를 갖추었고, 뛰어난 사격통제장치를 장착하여 명중률이 높았다. 차체를 별도로 개발하지 않고 빅커스(Vickers) MBT Mk I, M60 같은 기존 MBT 차체에 탑재가 가능했다.

하지만 전용 차체를 개발하지 않다 보니 포탑 구동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주요 장치와 승무원 활동 공간이 포탑에 집중되면서 탄약과 장약의 탑재 여력이 부족했다. 한때 인도를 비롯한 일부 국가들이 관심을 보이기도 했으나 채택이 불발되면서 GBT155는 그렇게 사라질 뻔했다. 그러던 차에 공교롭게도 SP70이 실패하자 영국 내에서 당장 자주포 개발에 나설 수 있었던 업체는 VSEL이 유일했고 자연스럽게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GBT155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던 VSEL은 내부 공간을 늘리기 위해 포탑을 전면 재설계하고 동력장치 등을 별도 제작한 차체에 설치했다. 이는 단지 포탄과 장약의 탑재량을 늘리는 것뿐 아니라 추후 개량이나 추가적인 장비의 장착도 용이하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일사천리로 제작이 완료된 새로운 자주포는 1990년대 야포(Artillery System for the 1990s)라는 의미의 AS-90으로 명명되어 1992년부터 야전에 배치되었다.

포신을 고각 발사 상태로 올린 모습 <출처: (OGL) Sgt Si Longworth RLC (Phot) / UK MOD at Wikimedia.org>

특징

AS-90은 정비 및 확장의 편리를 위해 주요 부착 장비나 부품이 모듈식으로 제작되어서 유사시 4시간 내에 교환이 가능하다. 또한 처음부터 넉넉하게 설계되어 화력 강화를 위해 주포를 39구경장에서 52구경장으로 업그레이드할 때 특별히 리코일 시스템(recoil system)을 교체하지 않아도 되었다. 신속 정확한 사격을 위해 관련 시스템 대부분을 자동화했으나 유사시 수동으로도 충분히 작동할 수 있다.

개발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안정성이 이미 검증된 미국 커민스(Cummins)의 VTA903T 엔진과 독일 렌크(Renk)의 ZFL-SG2000 변속기를 채용했다. 이것들은 차체 전방에 장착되어 후방 공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야전에서도 1시간 내에 충분히 교환이 가능하다. 또한 보조동력장치(APU, Auxiliary Power Unit)를 장착하여 정지 상태에서 엔진 가동을 하지 않고도 충분한 전력을 공급해줄 수 있다.

차체와 포탑은 최대 17mm 장갑을 사용하여 동구권의 152mm 포탄에 피격당했을 경우 10m 범위 내에서 방어가 가능하며 NBC(Nuclear, Biological and Chemica: 화생방) 방호능력도 갖추었다. 사실 서방의 표준 곡사포를 채택했기에 여타 경쟁 자주포와 비교하여 공격력에서 유별나게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최초로 유기압식 현수장치를 채용하여 M109처럼 지지대를 설치하지 않고도 빠른 사격이 가능하게 되었고, 이는 국산 K-9 자주포의 개발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영국 윌트셔(Wiltshire) 주 더링턴(Durrington)에 위치한 라크힐(Larkhill) 기지에서 기동 훈련 중인 AS-90 <출처: (cc) Andrew Smith at Wikimedia.org >

운용 현황

AS-90의 개발이 완료된 때는 공교롭게도 소련이 해체되면서 냉전체제가 붕괴된 시기여서 국방 환경이 엄청나게 변화했고 자연스럽게 군비 축소가 시작되었다. 따라서 최초 영국 육군은 AS-90 229문을 획득할 예정이었으나 3억 파운드에 총 197문을 도입하는 것으로 수량이 감소되었다. 이처럼 도입 수량이 줄어들면서 대당 도입가가 30억 원(1992년 기준)으로 상승하게 되었는데, 이는 대외 판매에 애를 먹는 요인이 되었다.

현재 영국군만 운용 중으로 제1기병 포병연대, 제19포병연대, 제26포병연대가 장비하고 있다. 2003년에 발발한 이라크 전쟁에 참가하여 실전에서 활약하기도 했으나 국방비 절감을 위해 2008년부터 대대적인 성능 개량을 실시한 대신 2015년까지 보유 수량을 117문으로 감축했다. 비록 수량은 적지만 현재 K-9, PzH2000, M109A6과 더불어 서방 측의 대표적인 자주포로 여전히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2008년 이라크 전쟁 당시 AS-90의 사격 모습 <출처: Public Domain>

변형 및 파생형

● AS-90 브레이브하트(Breveheart): 주포를 L7A1 52구경장 장포신으로 교체하고 새로운 데이터 통신이 가능한 최신 사격통제장치인 BMS(Battle Management System)를 장착하여 공격력을 강화한 개량형. 총 96문을 브레이브하트로 개량할 예정이었으나 국방 예산 감축에 따라 취소되었다.

● AS-90D: 사막지대 전투를 위해 승무원용 에어컨과 엔진, 전자장비 등의 냉각 기능을 강화하고 캐터필러를 교체한 개량형

● AHS ‘크랩(Krab)’: AS-90 브레이브하트 포탑을 K-9 차체에 결합한 자주포. 애당초 폴란드는 면허생산한 브레이브하트의 포탑을 자국 내 PT-91 전차 차체에 탑재하여 총 120문을 보유하려 했으나 문제가 많아 2016년부터 K-9 차체를 직도입 및 면허생산하여 Krab을 제작하고 있다.

AS-90 브레이브하트 포탑에 K-9 차체를 결합한 AHS 크랩 <출처: (cc) Szczepan Głuszczak at Wikimedia.org>

제원

- 전장: 9.07m
- 전고: 3.0m
- 전폭: 3.3m
- 중량: 45톤
- 장갑: 최대 17mm
- 주무장: 155mm L31 39구경장 주포 1문(48발 탑재)
- 부무장: 7.62mm L7 GPMG 1정
- 엔진: 커민스 VTA903T 수랭식 4스트로크 V8 터보차지 디젤엔진(660마력)
- 톤당 마력: 14.66마력/톤
- 현가장치: 하이드로뉴매틱 서스펜션
- 항속거리: 370km(도로 주행)
- 최고속도: 55km/h
- 사거리: 24.9km
- 발사속도: 10초당 3발(급속발사), 3분간 분당 6발(최대발사), 60분간 분당 2발(지속발사)
- 승무원: 5명

AS-90의 사격 장면 <출처: Sarah Ward at flickr>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