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8.2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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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대전쟁의 전환점

스탈린그라드 전투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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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를 자축하며 소련 깃발을 흔드는 병사. 독소전쟁 사상 가장 거대하고 무서웠던 전투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크리스마스

12월 24일, 고립된 제6군 병사들은 밤하늘에 번쩍이던 돈 집단군의 포화를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바라던 그들은 이제 절망의 나락으로 한없이 떨어졌다. 폐허에서 부상, 기아, 질병으로 숨진 병사들이 이미 8만에 이르면서도 12월 한 달 동안을 구출의 희망에 기대어 초인적으로 버티던 그들의 사기는 돈 집단군의 철수와 더불어 더할 수 없이 떨어졌다.

동사한 독일군 병사. 혹한의 폐허 속에서 굶주린 그들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스탈린그라드의 독일군에게 1인당 150그램의 말라비틀어진 빵이 특식으로 지급되었다. 말이 특식이지 오랜만에 맛본 유일한 음식이었다. 추위와 허기도 문제였지만 이제 구원받을 수 없으리라는 절망감으로 고통이 배가되면서 그해 크리스마스이브는 그렇게 저물어 갔다. 마치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크리스마스 새벽에 쓸쓸히 숨져간 성냥팔이 소녀 같은 신세였다.

1943년 새해가 밝았다. 파울루스는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항복이나 몰살 중 하나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히틀러에게 증원군과 군수품을 보내 달라는 전문을 보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제6군의 영웅적인 항전은 볼셰비키의 위협으로부터 기독교 세계를 구하는 위업으로 남을 것이다”라는 허무맹랑한 선전문구 밖에 없었다.

도심 속으로 돌격해 들어가는 소련군 T-34 전차. 독일군에게는 죽음이냐 항복이냐의 선택 밖에 없었다.

이제 전선을 돈 강 너머 로스토프까지 밀어붙이는 데 성공한 소련에게는 스탈린그라드에 고립되어 서서히 죽어가는 제6군을 처단하는 일만 남았다. STAVKA는 이들을 신속히 정리하고 투입된 부대를 전선으로 돌리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더 이상 소련군의 희생은 없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사실 지금까지 스탈린그라드를 사수하기 위해 소련이 바친 희생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무언의 압력

1943년 1월 10일, 스탈린그라드를 엄중히 포위하고 있던 돈 전선군 사령관 로코솝스키(Konstantin Rokossovsky)가 파울루스에게 항복 권고문을 보냈다. 파울루스가 거부하자 이틀 후인 1월 12일 고리 작전(Operation Ring)으로 명명된 소련의 대공세가 시작되었다. 항상 그래왔듯이 엄청난 포격이 작전의 개시를 알렸고 스탈린그라드 도심은 소련군이 쏘아대는 포탄의 비에 다시 한 번 뒤집혀 갔다.

독일이 최후통첩을 거부하자 소련군의 대대적인 포격이 시작되었다.

포격이 멈추자 사방에서 소련군이 진격해 들어왔다. 마지막 비행기로 탈출한 연락장교가 총통을 직접 만나 비참한 상황을 설명하고 항복을 허락해 주기를 애원했지만 히틀러는 고집을 바꾸지 않았다. 1월 25일, 유일한 통로였던 비행장들이 모두 소련군에게 접수되었다. 1월 31일, 파울루스는 히틀러에게 애원했다.

“항복을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히틀러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파울루스의 노고를 깊이 치하하며 원수로 진급시킨다. 스탈린그라드를 사수하라.”

독일군 원수는 항복하지 않는다는 전통이 있었기에 이것은 파울루스에게 자결로써 독일군의 명예를 지키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잔인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전문은 그동안 히틀러의 말을 충실히 따르던 파울루스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원수로 진급한 그날 파울루스는 소련에게 항복했다. 북부에 고립된 제24전차사단이 단말마적인 저항을 계속했지만 결국 2월 2일까지 독일 제6군은 모두 항복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전사한 독일군의 시신들. 고립된 33만의 병력 중 약 24만이 전사, 실종되었는데 동사 같은 비전투 손실도 상당했다.

이로써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여섯 달 동안의 사투 끝에 독일군의 패배로 종결되었다. 제6군의 항복 소식을 들은 히틀러는 온갖 육두문자로 그들을 저주하면서 벽과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고 발광했다. 이유는 단 하나, 파울루스와 제6군이 저급한 볼셰비키 슬라브인들에게 비겁하게 목숨을 구걸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군대를 사지로 몰아넣고 죽음 직전까지 괴롭혔던 인물은 바로 히틀러 자신이었다.


감당하기 힘든 전략적 패배

독일을 포함한 추축군은 스탈린그라드 전투 기간인 1942년 8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대략 50만의 전사자를 포함해 무려 150만의 인명 피해를 입었다. 포위당한 독일군 33만의 대부분이 전사하고 포로가 된 병력은 24명의 장성을 포함한 9만 명뿐이었다. 그러나 이들도 대부분 포로수용소에서 각종 질병과 노역으로 죽어갔고 결국 전쟁이 끝난 뒤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은 겨우 5,000명뿐이었다.

9만이 살아서 포로가 되었으나 이들 대부분도 수용소에서 죽었다. 단지 생명을 잠시 연장했을 뿐이었다.

거기에 더해 독일은 전차 및 자주포 3,500대, 공군기 3,000기를 비롯해 70여 개 사단을 무장시킬 수 있는 어마어마한 장비를 손실했다. 이 정도의 피해는 사실 독소전쟁 초기인 1941년 하반기 동안 소련이 독일에게 당한 엄청난 피해에 비한다면 극히 적은 숫자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련은 그 무한한 잠재력을 풀가동하여 피해를 최단 시간 내 극복할 수 있었던 데 반해 독일은 그렇지 못했다.

루마니아, 헝가리, 이탈리아군의 피해도 극심했다. 특히 루마니아 같은 경우는 당시 보유한 대부분의 군사력을 일거에 날렸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이 전투를 계기로 계속 독일 편에 붙어 싸워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을 만큼 이들 국가들의 동요가 심해졌다. 결국 동맹국의 이탈을 우려한 히틀러는 이후 군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모한 군사적 결정을 수시로 내렸고 이는 독일의 패전을 촉진시킨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이 전투를 기점으로 전쟁의 균형추가 소련 쪽으로 서서히 기울게 되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제2차 대전을 통틀어 독일이 겪은 가장 큰 전략적 패배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만큼 이곳에서 당한 피해는 당대 유럽을 휘어잡은 독일에게도 감당하기 힘들 만큼 심대한 타격이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막을 내린 지 1주도 안 되어 소련군은 아조프 해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전사에 길이 남을 비극

비록 승리하긴 했지만 이 전투에서 소련이 입은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청색 작전 개시 후부터 따진다면 공식적으로 150만의 전사자, 실종자를 포함해 독일의 3배가 넘는 약 300만여 명의 인명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미확인 자료에는 무려 500만으로 추정하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다. 경기도 정도의 넓이에서 여덟 달 동안 있었던 전투의 결과로는 상상이 되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규모다.

승리한 소련의 피해가 사실 더 컸다. 인명 피해뿐 아니라 물적 피해도 대단해 스탈린그라드는 지구 상에서 사라진 도시와 다름없었다. 러시아는 당시의 참상을 기억하기 위해 일부 건물을 복구하지 않고 기념관으로 사용 중이다. <출처: (cc) RIA Novosti archive at Wikimedia.org>

이처럼 승자인 소련의 피해가 엄청났던 이유는 인명을 경시하는 소련 공산주의 집권층의 사고방식 때문이기도 했다. 전쟁 초기부터 작전 능력의 차이로 계속 패전을 거듭했던 소련은 스탈린의 이름을 딴 이 도시를 수호하기 위해 자국민을 소모품으로 이용했다. 물론 전략적으로 독일군을 붙잡아 놓기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건지는 모르지만 그 희생이 너무나 컸다.

또한 물적 피해도 상상을 초월했는데, 소련 붕괴 후 조금씩 드러난 자료에 따르면 약 200개 사단을 무장시킬 수 있는 군비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소모되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혈전의 무대였던 스탈린그라드는 마치 지도에서 사라진 것 같은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다. 전략적으로 전쟁의 전환점이 된 중요한 전투임에는 틀림없었으나 피해 규모로만 놓고 본다면 승리라고 하기엔 너무나 고통이 컸다.

격전의 무대인 마마예프 언덕 위에 1967년 세워진 조국 어머니상. 세계 전쟁사에 영원히 기억될 만큼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규모도 크고 잔인했다. 승패를 떠나 잊지 말아야 할 인류사의 비극이었다. <출처: (cc) www.volganet.ru archive at Wikimedia.org>

자료에는 ‘전투(Battle)’라고 표현되지만 사실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그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전쟁(War)’이었다. 인류가 지구 상에 등장한 이래 현재까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충돌이 있었지만 그처럼 비참한 살육의 현장들 중에서도 1942년에 있었던 스탈린그라드의 아비규환은 악한 인간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악의 지옥이었다. 군사전략상이라는 관점을 벗어난다면 과연 이 전투에 승자가 있다고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