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8.0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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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대전쟁의 전환점

스탈린그라드 전투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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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질 것 같았던 소련 제62군의 저항은 집요하리만큼 계속되었다. <출처: Bundesarchiv>

블랙홀이 되어버린 도시

애초에 스탈린그라드 점령을 최대한 빨리 마친 후 제6군을 빼내어 코카서스까지 늘어진 전선의 측면을 방어하려 했던 히틀러는 오히려 한창 진격 중이던 A집단군의 일부 부대까지 뒤로 돌려 이 블랙홀로 보냈다. 청색 작전의 애초 목표인 석유와 식량에 대한 집념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스탈린그라드가 요충지임에는 틀림없지만 이 정도로 독일군의 희생이 크고 앞으로의 전망도 좋지 않다면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 했다.

붉은 10월 제철공장 안으로 진입하는 독일군. 시간이 갈수록 이 도시에 대한 히틀러의 편집증이 심해졌고 청색 작전은 본질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당시 상황에서는 차라리 전선 북부의 레닌그라드처럼 부대를 외곽으로 빼내어 도시를 밖에서 철저히 봉쇄해 버리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참모총장 할더는 코카서스의 유전과 곡창지대를 장악하면 소련 내부로의 석유와 식량 공급이 저절로 차단되므로, 스탈린그라드 점령을 위해 더 이상의 희생을 무릅쓸 필요는 없다고 총통에게 간곡히 진언했다. 하지만 히틀러는 할더를 비롯한 수많은 지휘관을 해임하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가 이렇게 고집을 부린 이유는 이 도시가 스탈린그라드였기 때문이다. 만일 이름이 예전의 차리친이었다면 히틀러도 청색 작전 전체를 틀어버리며 이곳을 점령하려 애쓰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어쩌면 스탈린 또한 막대한 희생을 감수하며 이곳을 사수하느라 목매지 않고 다른 대안을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포악하고 잔인한 성격이 꼭 닮은 두 독재자는 어느덧 ‘스탈린’이라는 이름을 딴 도시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잔인한 두 독재자들의 경쟁터가 되면서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본질은 바뀌어갔다.

두 악마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이곳에 집중 투입했고 스탈린그라드는 명분과 자존심의 대결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이 도시를 확보하여 상대편의 콧수염을 뽑아야 직성이 풀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결국 그동안 쏟은 피가 아까워서라도 양측 모두 발을 뺄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 양측은 독소전쟁의 모든 판돈을 스탈린그라드에 걸고 포커게임을 하는 셈이었다.


피로 물든 폐허

지금까지 양측 합쳐 150만의 병력과 막대한 장비가 이 도시 일대의 격전에 투입되었고 여기서 지는 쪽은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입을 판이었다. 어떻게든 이 블랙홀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은 파울루스는 10월 20일, 일단 공격을 멈추고 대책을 궁리했다. 하지만 대안은 없었다. 도시의 점령 외에 어떠한 것도 총통의 고려 대상이 아님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이제는 후퇴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11월이 되면서 이제 도시를 완전히 점령하는 것 외에는 독일 제6군에게 다른 선택이 없었다. <출처: Bundesarchiv>

이 사이 소련군은 전열을 가다듬고 방어막을 재구축했다. 그로부터 이틀 후 독일군이 5개 사단을 투입해 공격을 재개한 끝에 마침내 트랙터 공장을 점령했고 10월 27일에 이르러 도시의 90퍼센트를 차지했다. 나머지 10퍼센트는 마지막 일격만 집중하면 점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독일군은 힘들어했고 반대로 궤멸될 것 같았던 추이코프의 제62군은 독일군보다 더 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미 계절은 독소전쟁의 두 번째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으나 더 이상 전황은 독일이 봄에 세웠던 작전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히스테리가 극에 달한 히틀러는 동부전선 전체의 공격을 중단시켰고 스탈린그라드에 모든 것을 걸었다. 하지만 소련군은 여전히 부서진 건물 잔해를 방패 삼아 필사의 방어를 하고 있었다. 독일군은 소련군이 숨어있을 만한 곳이면 정찰이고 관측이고 필요 없이 무조건 포탄을 날려버렸다.

11월 초가 되었을 때 독일은 볼가 강 서쪽을 거의 장악하며 승리를 목전에 둔 듯했다. <출처: 미 육군 사관학교>

소련군의 유일한 생명선은 볼가 강 교두보였는데, 이곳 또한 독일의 무자비한 공격을 받아 강물이 점점 핏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파괴된 폐허를 덮은 것은 양측 병사의 시체였고, 더 이상 탈 것이 남아 있지 않은 도심은 화약 연기가 계속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소련 제62군은 남북으로 양단되었고 10월 말 도시는 독일군이 실질적으로 장악하게 되었다. 남은 것은 잔불 정리와 같은 최후의 소탕전뿐이었다.


꺼지지 않는 불씨

그런데 이상하게 아무리 밟아도 소련 제62군의 잔불이 계속 타오르고 있었다. 소련이 모든 희생을 감수하고 볼가 강을 건너 이곳에 병력과 탄약을 공급했기 때문이다. STAVKA는 이 잔불을 계속 태움으로써 독일을 어떻게든 이곳에 잡아두려 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자존심 싸움으로 변질된 소모전에 휘말린 독일은 눈앞의 꺼지지 않는 잔불을 없애기 위해 더욱 악착같이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남은 잔불을 정리하는 것은 전차도 대포도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전차는 폐허에서 기동하기 힘든 거추장스러운 물건이 되었다. 마지막 소방수는 착검을 완료한 보병들이었다. 11월 11일 오전 6시 30분, 총 7개 사단으로 구성된 독일군이 불을 끄려고 달려들었고 추이코프의 제62군도 불씨를 살리기 위해 착검을 하고 뛰어나갔다. 무려 다섯 시간에 걸쳐 백병전이 이어졌고 독일의 승리는 바로 10미터 앞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난 석 달 동안 도심의 폐허 속에 숨어 항전하던 제62군의 무용담도 이제는 타버린 재만 남은 형국이었고 지긋지긋한 지옥의 시가전도 마침내 독일의 승리로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거대한 산불이 등 뒤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을 독일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동안 독일은 도심에서 자신들을 물고 늘어지는 제62군이라는 눈앞의 불을 끄는 데만 너무 매몰되어 있었던 것이다.

스탈린그라드 도심 빌딩에 게양된 하켄크로이츠기. 독일이 스탈린그라드를 완전히 장악했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 위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출처: Bundesarchiv>

청색 작전 기간 중 제6군을 비롯한 독일군 주력이 도심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스탈린그라드 전선의 남북을 경계하고 있던 부대는 루마니아 제3, 4군이었다. 소련군 총참모장 바실렙스키는 이곳을 주목했다. 그는 독일군에 비해 약체인 루마니아군이 지키고 있는 이곳을 절단해 급속히 돌파하면 스탈린그라드에 집중된 독일 주력을 한번에 포위해 전세를 반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소련의 반격 준비

바실렙스키는 천왕성 작전(Operation Uranus)으로 명명된 회심의 카운터 펀치를 준비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스탈린그라드에서 분전하는 제62군을 계속 살려둘 필요가 있었다. 이들의 분전이 계속될수록 독일군은 더욱 더 도심으로 집중할 것이고 그만큼 측방이 노출될 것이었다. 제62군이 독일군을 붙잡아 놓는 미끼 역할을 맡았기에 볼가 강을 피로 물들여 가며 보급과 충원이 계속 이루어졌던 것이다.

소련 제62군은 독일군을 스탈린그라드 도심에 잡아 놓는 미끼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러는 동안 바실렙스키는 스탈린그라드 북쪽의 돈 강 지류와 남쪽 호수 지대 동쪽에 막대한 예비대를 집중시켰다. 시가전이 절정으로 치닫던 두 달 동안 소련은 싱싱한 150만의 병력, 1만 문의 대포, 1,000대의 전차, 그리고 1,500기의 전투기로 구성된 어마어마한 전력을 모았다. 지금까지 분투하던 스탈린그라드 전선군은 남측으로 이동했고 대신 새롭게 편성된 돈 전선군(Don Front)이 전면을, 그리고 북쪽은 재창설된 남서전선군이 담당했다.

이들은 11월 10일경 배치를 완료했고 독일은 이러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반면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은 루마니아 제3군은 소련군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고 보고 상부인 B집단군에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제48장갑군단이 파견되었으나 여타 기갑부대에 비해 장비의 수준이나 병력이 부족한 2선급 부대였다. OKH나 B집단군 사령부는 그 순간까지도 전선을 거시적으로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대적인 반격에 나설 엄청난 소련군이 스탈린그라드 도심 외곽 남북에 은밀히 집결했다.

독일은 강이 동결되면 고립된 소련 제62군에 대한 보급이 원활해질 것으로 예상해 이곳에만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파울루스는 예비로 아껴둔 제44보병사단까지 투입해 강이 얼기 전에 소련군을 격파하려 했다. 그러나 강의 동결은 독일에게 단지 도심의 소련 제62군을 향한 보급로가 열리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앞에만 정신이 팔려있던 독일군의 좌우로 150만의 소련군이 돈 강을 건널 준비를 완료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