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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의 역사

- 미국의 고민

냉전이 시작되면서 미국과 소련은 치열한 군비경쟁을 벌였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지상전의 왕자가 된 전차도 마찬가지였는데, 미국은 유독 이 분야의 격차가 크다고 생각했다. 당장 재래식 군비 중에서 서유럽에 가장 위협을 가하던 무서운 존재도 바르샤바 조약군의 무지막지한 기갑전력이었다. 냉전의 마지막인 1980년대까지도 양으로는 경쟁이 불가능했고 질적으로도 뒤지고 있다고 보았을 정도였다.

특히 지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미국의 전차는 북아프리카와 서유럽에서 독일 전차로부터 상당한 수모를 겪은 반면, 소련의 전차는 독일 전차와 당당하게 싸웠다는 사실이 이런 우려를 불러온 근거 중 하나였다. 전차로 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원 없이 치르면서 얻은 소련의 풍부한 경험은 원래 육군 강국이 아니었던 미국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부분이었다. 서방에서 이 정도의 경험을 가지고 있던 나라는 패전국 서독뿐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소련 전차의 성능도 대단했다. 일방적으로 패배를 거듭하던 독소전쟁 개전 초에도 KV나 T-34는 독일군을 당혹스럽게 만들 정도였다. 이러한 기술력과 풍부한 실전 경험을 발판으로 소련은 종전 후에도 뛰어난 전차를 쉴 새 없이 개발해냈다. 어떻게 보면 미국은 소련이 신예 전차를 내놓을 때마다 쫓아가는 모양새였다. 그러니 당연히 자격지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냉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미국이 주력 전차로 사용한 M46, M47, M48, 그리고 M60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4년에 개발된 M26을 베이스로 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물론 M26과 최종형인 M60을 평면적으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능의 차이는 현격하지만, 기본적으로 전혀 다른 별개의 새로운 전차가 아니었다. 한마디로 미국은 소련의 변화에 발맞추어 기존 전차를 개량하는 방법으로 근근이 대응해왔던 것이다.

- 새로운 개념의 전차

그러나 실제로는 한국전, 중동전, 월남전 같은 여러 국지전 결과를 놓고 보았을 때 소련제 전차가 생각만큼 뛰어난 전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소련이 외부에 공급한 전차가 다운그레이드형이고 훈련이 부족한 아랍 병사들의 오합지졸 같은 전투력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냉전 당시에 미국이 필요 이상으로 소련의 전차를 과대평가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그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충분한 군비를 갖추기 위해서 상대를 과대평가하는 대신 나를 낮게 보는 군사정책 때문이다. 특히 미군의 경우는 칼자루를 쥐고 있는 의회를 설득하여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지금도 이런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실제로 교전을 벌이지 않는 이상 상대방 무기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내리기는 힘들다. 따라서 일단 소련의 새로운 전차 소식이 전해지면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1960년대 초, 미국은 소련이 이후 T-64가 될 최신 전차 개발에 한창이라는 정보를 획득했다. 알려진 바로는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전차들을 뛰어넘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전차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미국도 즉시 대항마를 내어놓아야 했지만, 지금까지처럼 더 이상 기존 전차를 개량하는 형태로는 곤란했다. 1970년대 이후의 전장을 고려한 새로운 개념의 전차가 필요했다.

이에 미국은 차세대 전차 개발을 준비 중이던 서독과 손잡고 1963년부터 MBT-70(독일명 KPz 70)으로 명명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오늘날 제3세대 전차에는 일반적인 기능이지만 그때까지 개념 연구 중이던 많은 신기술의 탑재가 대거 계획되었는데, 이는 T-64를 철저하게 의식한 것이었다. 자동장전장치나 대전차미사일의 발사도 가능한 XM150E5 건런처 (Gun Launcher)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 에이브럼스로 명명되다

그렇다 보니 MBT-70은 개발에 난항을 겪던 T-64처럼 당대의 기술로 쉽게 달성하기 어려운 이상만 앞선 전차가 되어버렸다. 결국 여러 문제로 말미암아 1969년 개발이 전격 취소되었고 6년 정도의 시간과 많은 비용을 날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소련의 T-64도 개발이 지지부진하다는 점이었다. T-64는 MBT-70처럼 취소하지 않고 결국 개발을 완료했지만, 1970년대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배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련은 미국과 달리 전력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T-64와 별개로 다른 옵션을 사용하고 있었다. T-55 차체에 대구경 활강포를 장착한 T-62를 이미 실전 배치했고, 이를 기반으로 더욱 성능이 개량된 T-72의 개발도 눈앞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당장 현실적인 대안이 없던 미국은 MBT-70을 축소한 형태인 XM803의 개발을 시도했으나 역시 실패로 막을 내렸다.

이에 미국은 1971년 MBT-70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고 XM815로 명명된 새로운 전차 개발에 착수했다. 이때 개념 검토에 나선 육군은 당장 실현이 가능하냐 하는 점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나 구상이라도 실제로 사용할 수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너무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당시는 이후 제3세대로 정의하게 되는 전차에 대한 개념이 어느 정도 정립된 상태였기에 이 정도만 달성하면 된다고 보았다.

그렇게 육군이 확정한 컨셉에 따라 1973년 XM1로 프로젝트 이름이 바뀐 신예 전차 개발에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와 크라이슬러(Chrysler)가 참여했다. 치열한 경쟁 끝에 1978년 크라이슬러가 승자가 되어 제식부호 M1을 부여받았다. 개발과 실험을 끝낸 M1은 1981년부터 일선에 배치되기 시작했는데, 이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기갑부대 지휘관으로 활약했고 1972년 육군참모총장까지 역임했던 에이브럼스(Creighton Abrams)의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 현존 최강의 명성

강력한 가스터빈 엔진, 주행성이 뛰어난 서스펜션(suspension), 정확도가 향상된 신형 사격통제장비 등은 분명히 이전 전차와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현존 최고라는 평가와 달리 데뷔 당시에 M1은 가장 중요한 공격력과 방어력에서 기대에 못 미쳤다. 원래 120mm 활강포를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지만 예산 문제 등으로 초도 양산형에 장착한 M68 105mm 강선포로는 소련군용 T-64, T-72를 격파하기 어려운 것으로 분석되었다.

전면 방어력은 M60에 비해 향상된 수준이나 소련 전차의 주포인 2A46 125mm 활강포에서 발사하는 APDSFS(Armour-piercing fin-stabilized discarding sabot: 날개안정분리철갑탄)를 막아내기 어렵다고 분석되었다. 이처럼 곧바로 공격력과 방어력을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 될 만큼 문제가 있었음에도, 미국이 서둘러 M1을 배치한 이유는 그만큼 급했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가 되어서야 미국은 M1의 배치에 들어갔지만 소련은 이미 T-64와 T-72로 주력 전차의 개편을 한창 진행 중인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미국은 양산과 동시에 개량도 함께 시작해야 하는 처지였다. M1의 본격적인 배치가 이루어지던 1980년대는 그나마 동서 화해의 한 가닥 희망이 보이던 데탕트(detente)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막을 내리고 다시 치열한 경쟁으로 전환되던 시기였다. 이전에 비해 전차의 역할이나 위력은 상대적으로 감소했지만 여전히 유럽에서 소련의 기갑부대는 무서운 존재여서 M1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시대상을 발판으로 화력과 방어력이 대폭 향상된 후속 모델들이 속속 등장하게 되었다. 1992년부터 배치된 M1A2의 경우는 단지 베이스만 이어받았지 차원이 전혀 다른 전차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성능이 향상되었다. 이처럼 M1은 개발부터 고단한 과정을 겪었지만 어느덧 세계 최강의 전차라는 명성을 얻고 앞으로도 오랜 기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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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