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4.28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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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의세계]

조연에서 또 다른 주연으로

포케불프 Fw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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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w 190은 제2차 대전 당시 활약한 독일 공군의 또 다른 주력 전투기였다. <출처: Kogo at Wikimedia.org>

제2차 대전 당시에 루프트바페(Luftwaffe), 즉 독일 공군은 상당히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결국 한계에 봉착했지만, 한때나마 대단한 위세를 떨쳤다. 1939년 전쟁 발발 당시에 전통의 독일 육군은 프랑스나 소련보다 강하지 않았지만, 공군만큼은 자타가 세계 최고로 인정할 만큼 강력했다. 공군을 떼어 놓고는 초기에 있었던 독일의 전과를 논하기 힘들 정도다.

공군 전력은 일단 보유하고 있는 항공기에 의해 결정된다. 물론 양도 중요하지만 독소전쟁 초기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질이 우열을 나누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런 점에서 독일 공군이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는 사실은 뛰어난 작전기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의미와 같다. 특히 폭격기나 수송기들이 마음 놓고 활약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제공권 확보 임무에 투입된 제공 전투기 분야가 그러했다.

그런데 Me 262처럼, 이른바 비밀병기로 언급되는 실험작들 때문에 독일이 여러 종류의 전투기를 운용했던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전쟁 내내 활약한 주력 전투기는 단 두 가지 밖에 없었다. 우선 독일 공군의 상징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Bf 109다. 그리고 또 하나가 도살새(Butcher bird)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포케불프 Fw 190(이하 Fw 190)이다. Bf 109의 존재감이 워낙 강해서 그렇지 Fw 190 또한 무기사의 한 장을 차지할 만큼 대단한 전투기였다.

출격 준비 중인 Fw 190. 독일 공군의 욕심과 영국 공군의 동향 등이 맞물려 탄생한 걸작 전투기다. <출처: (cc) Bundesarchiv at Wikimedia.org>



독일 공군의 욕심


1936년 독일 공군은 Bf 109를 주력 전투기로 채택했다. 이후 계속 개량을 거듭해 종전 시점까지 사용했을 만큼 기본적으로 잘 만들어진 전투기였으나 단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착륙과 조종이 어려워 최고의 성능을 발휘하려면 조종사들이 엄청난 연습을 해야 했던 것이다. 앉으면 눕고 싶다는 말처럼 이런 부족한 부분이 눈에 들어오자 독일은 새로운 전투기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군비 확충의 열의가 커진 시점에서 영국이 두 가지 신예 전투기를 배치 중이라는 정보에 자극받은 독일은 1938년 새로운 전투기 사업을 전격 개시했다. 사실 영국이 스피트파이어(Spitfire)와 허리케인(Hurricane)을 동시에 제식화했던 것은 수량을 시급히 확보하기 위한 임기응변적 정책이었다. 하지만 독일은 이런 속사정까지는 알지 못했고 다만 경쟁국이 두 전투기를 동시에 운용한다는 사실에 위협을 느꼈을 뿐이었다.

실험 비행 중인 Fw 190. 미군이 노획한 기체인데 도색이나 표식이 변경되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모습이다.

Bf 109가 이제 막 본격 배치되기 시작한 시점이어서 새로운 전투기는 Bf 109의 핸디캡을 보완하는 보조 전투기 정도로 구상되었다. 그러나 도입 예정가격이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아, 오늘날 예산 문제 등으로 고가의 상위급 전투기와 저가의 하위급 전투기를 적절히 섞어 전력을 구성하는 하이로우 믹스(Hi Low Mix) 개념도 아니었다. 결국 이후 Fw 190은 또 다른 주력 전투기가 되었다.

사실 군수나 정비 측면에서만 본다면 단일화가 좋지만, 다양한 작전 구사를 염두에 두고, 또 어느 한 주력기에 심각한 구조적 결함이나 문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한다면 다양화도 결코 나쁜 정책은 아니다. 어쨌든 이런 목적 때문에 실시된 새로운 전투기 도입 사업에 대부분의 독일 항공기 제작사들이 참여했는데, 모두의 예상을 깨고 포케불프(Focke-Wulf)가 최종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개발 사업 당시 경쟁을 벌였던 하인켈의 He 100 전투기.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지만 전작인 He 112가 Bf 109에 패한 전철을 그대로 답습한 비운의 전투기다.



Bf 109의 약점을 개선하다


포케불프의 제안이 받아들여진 이유는 공군의 희망사항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Bf 109의 약점을 개선한 조종의 편이성과 튼튼한 내구성이 크게 어필한 것이었다. 신예기 개발은 학창 시절에 글라이더를 개발해 직접 비행까지 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인 탕크(Kurt Tank)가 주도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비행체를 조종해 보았기에 어떤 기체가 좋은지에 대한 개념이 오래전에 정립된 엔지니어였다.

탕크는 공군의 사업 개시 이전부터 이미 새로운 전투기에 대한 구상을 하고 있던 상태였다. 그래서 개발도 일사천리로 이루어져 지금은 상상도 하기 어렵지만 프로젝트 시작 불과 1년 만인 1939년 6월 1일, Fw 190 V1 시제기가 초도 비행에 성공했다. 일련의 실험 비행을 통해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제식화하기까지 손볼 부분이 많았지만 적어도 비행 성능이나 기체의 구조 면에서는 우수성이 입증되었다.

Fw 190의 아버지인 쿠르트 탕크. 전후에 아르헨티나, 인도의 국산 전투기 개발에도 참여했다. <출처: (cc) Bundesarchiv at Wikimedia.org>

우선 각지고 구조물이 많은 Bf 109와 달리, 돌출된 유선형의 캐노피가 조종사의 시계를 넓게 확보했다. 레이더 같은 다양한 센서로 적기를 추적하는 지금과 달리 오로지 조종사의 눈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교전하던 시기여서 시계 확보는 그만큼 중요했다. 채택 당시만 해도 속도를 저하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지만 전쟁 말기가 되었을 때 피아 모두가 사용하는 보편적 방식이 되었다.

방향타나 보조날개의 작동이 쉬운 데다 통합엔진제어 장치인 코만도게래트(kommandogerät)를 장착하여 편이성을 대폭 높였다. 덕분에 경험이 일천한 조종사들도 쉽게 조종할 수 있었다. 더불어 세미모노코크(Semi-monocoque)식 금속 동체를 채택해 구조를 단순화하면서도 내구성을 높였다. 폭이 좁아 이착륙 중 종종 전도되곤 했던 Bf 109와 달리 랜딩 기어의 간격을 넓게 설치해 안정성을 향상시켰다.

1939년 6월 1일, 초도 비행에 성공한 Fw 190 V1 시제기.



놀라웠던 등장


무엇보다 Fw 190의 인상적인 특징은 독일 전투기로서는 특이하게 공랭식 엔진을 장착해 야전에서의 운용 효과를 높였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독일은 고속 비행을 하는 전투기는 기체를 공기역학적으로 날렵하게 만들어야 하므로 수랭식 엔진을 당연시하고 있었다. 반면 탕크는 정비의 용이성, 피탄 시의 안정성 등을 고려할 때 공랭식 엔진이 낫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에서 포케불프 개발팀 내에서도 많은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는데, 탕크는 미 해군의 사례를 들어 공랭식 엔진도 충분히 효과적이라고 설득했다. 거기에다가 일단 DB 601 계열 엔진이 Bf 109의 수요를 감당하기도 벅차서 물량 확보가 어려웠던 반면, BMW에서 폭격기 장착을 염두에 두고 개발 중이던 강력한 801 공랭식 엔진은 양산이 가능하다는 현실도 고려되었다. 탕크의 예상대로 공랭식 엔진은 충분한 위력을 발휘했다.

Fw 190의 심장이었던 BMW 801 공랭식 엔진. 고공에서 성능이 저하되는 단점이 있었지만 1,500마력의 강력한 힘을 낼 수 있었다. <출처: (cc) Clayton Tang at Wikimedia.org>

그러나 시험 비행에서 조종사가 고통스러워할 만큼 엄청난 과열이 발생해 제식화 이전까지 많은 개량을 거쳐야 했다. 비행 고도가 6,000m를 넘어가면 성능이 저하되는 양상을 보였으나 그 이하에서는 오히려 Bf 109보다 뛰어난 성능을 발휘했다. 하지만 애초에 Fw 190을 보조 전투기로 정했던 독일 공군은 이 정도면 사용하는 데 그다지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후 각종 시험과 개량을 거친 Fw 190은 1941년 양산이 개시되어 7월부터 일선에 공급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근접 선회력 정도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능력에서 스피트파이어를 압도하는 성과를 보였다. Bf 109를 능가하는 정체불명의 적기를 맞닥뜨린 영국 조종사들은 당황했다. 이러한 어려움은 이듬해 7월 강력한 멀린(Merlin) 60 엔진을 장착한 스피트파이어 Mk. IX형이 등장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갑작스런 Fw 190의 등장에 놀란 영국이 기체 확보를 위해 특공작전까지 기획하던 중 영국 본토에 불시착하면서 노획된 Fw 190 A-3. 한창 진행 중이던 스피트파이어 Mk. IX의 등판을 촉진시켰다.


또 하나의 주연

당시는 독일이 독소전쟁에 전력투구하던 시기여서 영국 해협 일대에서는 제한적 교전만 반복되던 중이었다. 하지만 신예기가 등장해 거세게 몰아붙이자 영국 공군은 이를 상당히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얼마나 시달림을 받았는지 영국 조종사들이 이때 붙인 '도살새'가 Fw 190의 별명으로 자리 잡았고, 기체 분석을 위해 프랑스에 위치한 독일 기지에 특공대를 침투시켜 노획하려는 작전까지 세웠을 정도였다.

이처럼 등장과 동시에 인상적인 전과를 올린 Fw 190은 전 전선에 걸쳐 활약을 펼쳤고 어느덧 보조 전투기라는 애초의 의도와 달리 독일 공군의 또 다른 주력 전투기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구조가 튼튼한 데다 최초 개발 당시에 차후 확장성을 염두에 두고 넉넉하게 기체를 설계한 덕분에 제공 임무뿐 아니라 다양한 작전에도 투입이 가능했다. 특히 저고도에서의 비행 성능이 탁월해 대지 공격 임무도 무난하게 소화했다.

수랭식 엔진을 장착한 Fw 190D-9. 전쟁 말기에 공대공 전투는 물론 대지 공격 임무에도 맹활약한 기종으로 도라(Dora)라고 불렸다.

Fw 190은 등장과 동시에 전쟁이 격화되면서 생산량도 급격히 늘어나 종전 시점까지 20,000기 이상이 제작되었다. 수적으로도 독일 공군 전투기의 양대 축으로 당당하게 자리 잡았고, 당시 활약한 여타 경쟁기처럼 많은 개량형이 존재했다. 그중 1944년에 강력한 융커스 유모(Junkers Umo) 213A 수랭식 엔진을 장착하여 고질적인 고고도 비행 능력의 저하 현상을 개선한 Fw 190D는 최고의 프로펠러 전투기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처럼 Fw 190은 또 하나의 주연이었지만 당시 각국을 대표한 스피트파이어, P-51은 물론 선배이자 탄생의 이유라 할 수도 있는 Bf 109에 비해 지명도는 떨어진다. 처음 언급한 것처럼 Bf 109라는 봉우리가 워낙 높은 데다 나중에 나오다 보니 존재감을 크게 어필하지 못했을 뿐이다. 사실 무기에 있어 중요한 것은 싸워서 이기는 것이지 인기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Fw 190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진정한 강자라고도 할 수 있다.

전쟁 말기에 활약한 후기형 Fw 190 A8. 모든 Fw 190 중에 가장 많은 6,655기가 생산된 모델이다. <출처: Kogo at Wikimedia.org>



제원(A-8 형)


전장 : 9.00m / 전폭 : 10.51m / 전고 : 3.95m / 최대이륙중량 : 4,900kg / 최고속도 : 656km/h / 전투행동반경 : 800km / 상승한도 : 11,410m / 무장 : 13mm MG131 기관총 2문 또는 20mm MG151 기관포 4문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