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4.21 09:54

글자크기

[전쟁사]

만용이 부른 참극

1942년 2차 하르코프 전투 [2]

0 0
공격 중인 소련군의 모습. 적어도 전투 초기에는 기습의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출처: ©Universal Images Group / Sovfoto>


시작된 소련의 공세


5월 12일 새벽, 준비를 마친 소련군이 기습을 개시하면서 피로 얼룩진 2차 하르코프 전투가 시작되었다. 돌출부인 이지움을 발판으로 기갑부대를 앞세우고 진격을 개시한 소련 남부전선군 예하 제9군과 제57군의 돌파는 경이로울 정도였다. 반면 예기치 못한 기습을 당한 독일군 진영은 혼란에 빠졌다. 당시 OKH(독일 육군 최고사령부)는 소련의 전력이 모스크바 방위에 집중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허를 찔린 것이었다.

그렇지만 독일이 무방비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 일대의 전력은 한창 증강 중이거나 증강이 완료된 상태였다. 1942년 봄이 되면서 히틀러는 모스크바를 완전히 포기하고 다음 공세를 벌일 장소를 자서전인 ‘나의 투쟁(Mein Kampf)’에서 게르만족의 당연 점령지로 공개 언급했을 만큼 애착을 보인 코카서스(Caucasus)로 결정했다. 이에 발맞추어 ‘청색 작전(Fall Blau)’으로 명명한 새로운 공세를 앞두고 남부집단군을 대대적으로 재편하던 중이었다.

독일은 당연히 기습의 효과를 노려 철저하게 소련을 기만하며 준비해 나갔다. 당시 르제프를 중심으로 하는 전선 중앙에서 소모전을 마다하지 않았던 이유 중에는 독일이 여전히 모스크바를 노리고 있다고 소련이 믿도록 만들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 앞으로 전혀 예상치 않았던 소련군이 놀랍게도 먼저 출몰했던 것이다. 특히 소련 남부전선군이 집중 공략한 제17군은 독일 남부집단군의 여타 예하 부대에 비해 아직 준비가 덜된 상태였다.

1942년 봄, 야전에서 점검 중인 독일 남부집단군 소속 전차. 일부 부대는 아직 교전을 벌일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련의 공격을 받았다.

공격을 가한 티모셴코도,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스탈린과 STAVKA도 독일이 한창 청색 작전을 준비하던 중임을 알지는 못했다. 그들은 오로지 처음에 세워둔 계획대로 이지움 돌출부 일대의 독일군을 격멸시키고 전선을 곧게 펴는 것이 목적이었을 뿐이다. 티모셴코는 크라스노그라드 선점이 작전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보고 이곳으로 진격할 부대에 대부분의 기갑전력을 집중 배치해 놓은 상태였다.




당황하지 않은 이유


선봉부대가 전선을 가르고 30여 km를 진격하자 소련은 5월 15일부터 돌파구 확대를 위해 준비한 예비대를 집중 투입하면서 전과를 속속 늘려 나갔다. 독일 제17군은 구멍을 틀어막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전망이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북쪽에서 커다란 문제가 발생했다. 함께 진격해 포위망의 한 축을 담당할 소련 남서전선군이 독일 제6군에 가로막혀 꼼짝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련 남부전선군의 돌파는 성공적이었지만 함께 병행하여 진격해야 할 좌우의 부대들이 독일군의 강력한 저항에 막혔다. <출처: 미 육군 사관학교>

이렇게 된 이유는 제17군과 달리 제6군이 부대 재편을 완료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6군은 다음 달 말로 예정된 청색 작전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독일 쪽으로 튀어나와 있던 이지움 돌출부를 제거하여 전선을 단축시키려던 참이었다. 이를 위해 프리데리쿠스(Friderikus)로 명명된 제한적 작전을 개시하기 직전인 상태였다. 결국 [1]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지움 돌출부는 비슷한 시기에 양측 모두에게 다음 작전을 실행할 동기를 부여한 셈이었다.

한창 전력을 증강 중이던 제17군과 달리 하르코프 일대에 대기 중이던 제6군은 그야말로 명령만 내리면 달려 나갈 수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적의 공세를 예견한 것은 아니었지만 소련군의 등장에 당황하지 않았다. 덕분에 소련 남서전선군은 강력한 저항에 걸려 계속 제자리에 머물러야 했다. 거기에 더불어 제17군 남쪽에 위치한 제1기갑군이 돌파에 성공한 소련 제9, 57군을 제외한 여타 부대들의 견제에 성공했다.

돌파를 시도하다가 독일 제1기갑군에게 격파된 소련군 T-34, KV-11 전차의 잔해

하지만 독일은 후속 투입할 수 있는 예비대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어서 이런 상태를 계속 유지하기는 어려웠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는 2배나 많은 압도적인 병력을 동원한 티모셴코의 생각이 맞아 들어가는 듯 했다. 그는 적진의 상황을 정확히는 몰랐지만 머지않아 독일이 한계에 다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예비대의 부족을 절감한 독일 제6군 사령관 파울루스(Friedrich Paulus)는 총통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공군의 떨떠름한 반응


당장 투입할 예비대가 인근에 없었기에 히틀러는 공군에게 하르코프 일대에서 분투를 벌이고 있는 제6군을 구원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문제는 당장 이곳에 투입할 공군 자원이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남부집단군을 지원한 부대는 제4항공군(Luftflotte 4)이었는데, 주력인 제8항공군단을 비롯한 대부분의 전력이 당시 절정으로 치닫던 흑해 연안의 크림 반도 전투에 투입된 상황이었다.

독일 남부집단군을 지원한 제4항공군 사령관 뢰어(왼쪽)와 제8항공군단장 리히트호펜. <출처: (cc) Bundesarchiv at Wikimedia.org>

한창 진행 중인 세바스토폴(Sevastopol)과 케르치(Kerch) 반도 전투에서 공군의 역할은 절대적이어서 부대를 당장 이동 전개할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공군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육군의 요청이 있을 때마다 무조건 부대를 이동할 수는 없다는 자존심의 문제도 있었다. 그동안 독일 공군은 지상군의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 주었지만, 넓은 소련 땅에서는 지상군의 모든 요구를 수용하기가 너무 벅찬 상황이었다.

공군은 툭하면 부대를 이동 배치해 달라는 육군의 요구에 진저리가 난 상황이었다. 부대를 전개하려면 먼저 비행장을 확보하고 각종 시설을 갖추는 등, 준비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만 육군은 이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히틀러도 당장은 하르코프 일대보다 크림 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이 크다고 보고 있어, 부대의 이동 전개가 쉽지 않다는 공군의 주장에 나름대로 귀를 기울이고는 있었다.

출격을 위해서는 비행장처럼 사전에 준비해야 할 부분이 많지만 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즉각 지원만을 요구하는 육군의 태도 때문에 수시로 충돌이 벌어지곤 했다. <출처: Bundesarchiv>

하지만 그러면서도 욕심 많은 그답게 선전을 펼치는 제6군의 사정도 즉시 해결해 주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히틀러는 크림 반도에 배치된 공군 전력 중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본 제4항공군단을 하르코프로 즉시 이동 전개하도록 조치했다. 이에 대해 당시 제8항공군단장이었던 리히트호펜(Wolfram von Richthofen)은 “공군이 육군의 창녀냐”며 격분했지만 총통의 결정을 바꿀 수는 없었다.




하늘을 지배한 자


플루크바일(Kurt Pflugbeil)이 이끄는 제4항공군단은 즉시 전개에 들어가 지원 임무에 돌입했다. 돌파구를 더 이상 확대하지는 못했지만 계속 공격을 가하면서 독일군의 소모를 촉진시키던 소련 제38군이 제일 먼저 화를 입기 시작했다. 슈투카(Stuka)를 비롯한 수많은 폭격기들이 소련군의 집결 지역을 정확히 강타하면서 제6군에 대한 압박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들을 막기 위해 소련 공군이 날아올랐지만 역부족이었다.

폭격을 위해 급강하 기동에 들어가는 Ju 87 폭격기. 흔히 슈투카로 불린 이 폭격기는 느린 속도 때문에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약점을 보여 뒤로 물러났지만 제공권을 완벽하게 확보한 독소전쟁 초기에는 엄청난 위력을 떨쳤다. <출처: Bundesarchiv>

아직까지도 루프트바페(Luftwaffe)는 세계 최강의 위용을 자랑할 만큼 강력한 존재였다. 공방전이 벌어진 지 삼일 후인 5월 14일이 되었을 때, 제공권은 완전히 독일이 장악했고 소련군은 하늘로부터의 공격이 무서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많은 소련군 부대가 독일이 준비해 온 프리데리쿠스 작전 때문에 기습의 이점도 얻지 못하고 계속 제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비록 우여곡절과 반목 속에 투입되기는 했지만 육군 참모총장 할더(Franz Halder)가 그 역할과 노고에 격찬을 아끼지 않았을 만큼 제4항공군단은 2차 하르코프 공방전에서 인상적인 전과를 기록했다. 그동안 공세를 준비하고 있었기에 아주 크게 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불의의 기습으로 초반에 고전했던 독일군도 충격에서 벗어나 서서히 반전을 노릴 수 있게 되었다. 바로 그때 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하르코프 인근에서 작전을 벌이는 소련군 병사들. 하지만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개전과 동시에 가장 앞서 달려갔던 소련 남부전선군의 선봉인 제9, 57군이 어느덧 독일군 한가운데 위치하게 되었던 것이다. 크라스노그라드로 향하던 이들은 좌우의 부대들이 독일군에게 막혀 제자리에 머무르다 보니 좌우 측면이 길게 노출되어 있었는데, 만일 이 상태에서 배후가 절단되면 그것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들을 후퇴시킬 것인지, 아니면 여타 부대를 독려해 전선을 연결할 것인지 티모셴코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