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3.1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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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의세계]

독일의 마지막을 함께한 전차

5호 전차 판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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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브레다의 공원에 전시 중인 판터 D. 초기 양산형 모델로 너무 서둘러 실전에 투입되다 보니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출처: (cc) Alf van Beem at Wikimedia.org>

1940년 6월 25일 프랑스가 항복하면서 노도와 같았던 독일의 진격이 멈추었다. 20년 전에 있었던 제1차 대전 당시 4년 동안 수백만 명의 피를 쏟아 부으면서도 실패했던 프랑스 정복이 불과 7주 만에 완료된 것이었다. 대승을 거둔 독일 스스로도 믿기 어려울 만큼 엄청난 전과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개전 직전의 독일군 전력이 객관적으로 연합군에 뒤졌기 때문이다.

1939년 10월 폴란드 점령 직후 히틀러가 곧바로 프랑스 침공을 명했을 때, 성급한 침공은 자멸 행위라며 군부가 극렬히 반발하고 나설 정도였다. 공군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전력이 열세였는데, 이후 전격전(Blitzkrieg)으로 명명된 독일의 전략에서 커다란 역할을 담당한 기갑부대도 마찬가지였다. 본격적인 전차인 3, 4호 전차가 일부 동원되었지만 전력의 대부분은 전차라고 하기도 민망한 1, 2호 전차였다.

그러나 독일은 하드웨어적인 열세를 낫질작전이라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극복했다. 문제는 너무 쉽게 이기다 보니 프랑스 침공 이전에 가지고 있던 두려움과 조심성을 시나브로 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듬해 6월 소련을 침공할 때 어느덧 독일 기갑부대의 주력이 된 3, 4호 전차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자신감대로 독일은 소련 침공 초기에 연이은 대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등장한 소련의 T-34 전차는 독일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소련을 폄훼하던 독일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 베껴서라도 가지고 싶어 했을 만큼 T-34는 훌륭했다. 지금은 이기고 있어도 전쟁이 장기화되면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은 확실했다. 결국 독일은 1943년 T-34를 참고하여 뛰어난 중형(中型)전차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바로 5호 전차 판터(Pz.Kpfw Ⅴ Panther, Sd.kfz.171, 이하 판터)였다.

1944년 동부전선에서 작전 중인 판터 A형. 최초 양산형인 D형의 문제점을 개선한 모델로 본격적인 판터의 신화를 써 내려갔다. <출처: (cc) Bundesarchiv at Wikimedia.org>


전차에 대한 독일의 열망


1944년 보병을 근접 지원하는 판터. 흔히 독일 전차 하면 판터나 티거 같은 걸작을 연상하지만 정작 이들은 나치 독일의 쇠퇴기에 등장한 전차들이었다. <출처: (cc) Bundesarchiv at Wikimedia.org>

독일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을 만큼 전선에서 마주한 소련의 T-34는 경이의 대상이었다. 사실 전쟁 이전부터 독일은 자신들의 전차가 부족한 점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지난 제1차 대전 말에 20대의 A7V를 만들었지만 전차를 대량으로 전선에 투입한 연합군에 비해 상당히 늦은 행보였고 패전 후에도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전차의 개발이나 보유에 제한을 받아 왔다.

노획한 T-34의 조종석에 탑승하는 독일 군수성 장관 알베르트 슈페어. 이처럼 T-34는 독일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고 보류된 새로운 중형전차의 개발을 이끌었다. <출처: (cc) Bundesarchiv at Wikimedia.org>

1934년 재군비 선언 후에 본격적인 개발에 나섰지만 출발이 늦었던 만큼 독일제 전차의 성능은 인상적이지 못했다. 실험작이었던 1, 2호 전차가 스페인 내전에서 보여준 실망스런 전과 때문에 마침 그때 시작한 3, 4호 전차의 개발이 더욱 촉진되었을 정도였다. 사실 평시의 전차 개발사에서 이렇게 여러 종류의 전차를 불과 1~2년의 짧은 기간 동안 동시에 개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만큼 독일은 다급했다.

그렇지만 독일 육군병기국(Waffenamt)은 상당히 체계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3, 4호 전차의 양산이 막 개시된 1938년부터 VK20.01로 명명된 무게 20톤 규모의 새로운 후속 전차 개발에 나섰을 정도로 계획적이었다. 하지만 아직 3, 4호 전차에 대한 일선의 평가가 나오기 전이었으므로 단지 후속 전차는 3, 4호 전차의 주행력과 방어력을 보강하는 정도로 개념 연구를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독일이 1939년 전쟁 개시 후 연전연승을 거두자 3, 4호 전차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 대신 5호 전차로 예정된 VK20.01에 대한 관심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오히려 두터운 방어력과 화력을 바탕으로 요새화된 적 진지를 돌파하기 위한 45톤 규모의 중(重)전차 프로젝트 VK45.01의 진행이 탄력을 받았다. 이처럼 현실에 안주하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에 등장한 T-34는 그야말로 뒤편에 묵혀두었던 중형전차의 모범 답안과도 같았다.




사연이 많았던 개발 기간


더 이상 3, 4호 전차의 성능을 향상시키기 어렵다고 본 독일은 흐지부지하던 VK20.01을 즉시 폐기하고 1941년 VK30.02를 새롭게 시작했다. 비록 자존심 상하는 일이긴 했지만 조속한 개발을 위해 T-34는 철저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었다. 같은 두께라 하더라도 피탄 면적을 획기적으로 줄인 경사장갑, 험지에서 주행성이 뛰어난 광폭의 궤도, 당시로서는 대구경인 76.2mm 포는 좋은 해답이 되었다.

이러한 요구에 맞춰 진행된 개발 사업에서 만(MAN)의 모델이 벤츠의 경쟁작을 이겼다. 경사장갑을 사용하고 강력한 7.5cm Kwk42 L/70 전차포의 탑재가 확정되었기에 주행 능력에서 경쟁이 판가름났다고 볼 수 있다. 수급이 불확실했던 MB507 디젤 엔진을 장착하기로 한 벤츠와 달리 만은 6호 전차의 엔진과 같은 계열의 HL210 엔진을 사용하고 토션바 현수장치를 채택해 야지 주행력을 높인 점이 크게 주목을 받았다.

판터는 독일 특유의 오버래핑 방식의 로드 휠을 채택했다. 하중을 분산하고 방어력도 증가시키는 이점이 있었지만 이물질이 많이 끼고 정비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어 현재는 채택되지 않고 있다. <출처: (cc) Bundesarchiv at Wikimedia.org>

하지만 보고 베낄 대상이 있었고 목표가 확실히 정해졌는데도 불구하고 개발이 순조롭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시간도 촉박했고 예기치 못한 기술적 난제도 있었지만 전면부 장갑을 늘리라는 히틀러의 지시처럼 이러저러한 간섭도 덩달아 있었기 때문이다. 전시를 이끄는 국가 원수, 그것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철권 독재자가 이처럼 시시콜콜하게 관여할 정도면 무기가 쉽사리 개발되기는 힘들다.

덕분에 무게가 당초 예정된 30톤을 훨씬 초과한 43톤에 이르렀고 목표로 한 시속 60km의 속도도 낼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신예 전차는 6호 전차 티거(Tiger)보다 늦게 제식화되었음에도 사전에 정한 대로 5호 전차라는 이름을 부여받고 1943년부터 최초의 양산 모델인 D형의 일선 배치가 개시되었다. 전시다 보니 곧바로 실전에서 활약이 펼쳐졌는데, 대규모의 전차전으로 유명한 쿠르스크(Kursk) 전투가 데뷔전이었다.

최초의 양산형인 판터 D가 쿠르스크 전투의 투입을 위해 열차에 적재되고 있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출처: (cc) Bundesarchiv at Wikimedia.org>


실망스러웠던 데뷔전


판터의 7.5cm Kwk42 L/70 주포. 탄속이 빨라 근거리 전투에서 티거의 88mm 포보다 뛰어난 관통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출처: (cc) Bundesarchiv at Wikimedia.org>

당시 히틀러가 판터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작전 개시 이틀 만에 184대 중 겨우 40대만 기동이 가능했을 정도로 안정성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어이없게도 동력 계통 등의 심각한 결함으로 말미암아 싸워보지도 못하고 전선에서 이탈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실 기갑총감 구데리안(Heinz Guderian)과 개발진은 아직 검증이 완료된 상태가 아닌 판터의 쿠르스크 전투 투입을 반대했었다.

하지만 결함을 해결하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은 충분했다. 비전투 손실이 실망스러웠지만 교전을 벌인 판터의 전과를 분석한 결과 방어력과 공격력이 기대대로 뛰어남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판터의 주포는 구경이 75mm임에도 탄속이 빠른 70구경장이어서 근거리 교전에서는 88mm 56구경장인 티거의 주포보다 오히려 뛰어난 관통력을 자랑할 정도였다.

판터는 소련도 첫눈에 예사롭지 않은 전차임을 알아볼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쿠르스크 전투 직후 유기된 31대의 판터를 철저히 조사한 소련은 기존의 T-34로는 맞상대하기 버겁다는 점을 인정해야 했다. T-34가 판터의 개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독일은 당연히 T-34 이상의 위력을 발휘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결국 판터는 화력이 강화된 85mm 구경 D-5T를 장착한 T-34/85의 등장을 촉진시켰다.

이후 문제점을 해결한 A, G, F 등의 개량형이 속속 개발되어 전선에 투입되면서 많은 전과를 올렸다. T-34보다 오히려 중전차인 IS-2와 당당히 맞상대했을 정도였다. 특히 서부전선에서 연합군들 사이에 티거 못지않게 격파하기 어려운 전차로 유명했다. 그리하여 독일은 1944년부터 3, 4호 전차의 생산을 중단하고 시설을 판터 양산에 전용했다. 전쟁 후반기에 등장했지만 당당히 독일 주력 전차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1944년부터 생산된 G형. 가장 많이 제작된 판터로 전쟁 말기에 독일의 주력 전차의 역할을 담당했다. <출처: (cc) Stahlkocher at Wikimedia.org>


마지막을 함께하다


판터는 강력한 장갑에 의해 보호받는 정면으로 교전을 벌이면 소련이나 연합국의 거의 모든 전차를 쉽게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성능인데다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작비에 생산성도 좋아 수적으로 독일의 주력 전차가 되었다. 6,000대의 생산량은 T-34나 미국의 M4는 물론 3, 4호 전차와도 비교하기 힘들 만큼 적은 수량이지만 양산 시점이 시설이 많이 파괴되고 자원도 부족한 전쟁 후반기였음을 고려하면 상당한 양이라 할 수 있다.

판터는 독일이 항복하는 그 순간까지 그야말로 장소 불문하고 모든 작전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다. 현재 대부분의 전차는 모든 임무를 수행하는 MBT(주력 전차)이지만 당시만 해도 주행 능력, 방어력, 화력 등의 차이 때문에 목적에 따라 각기 다른 종류의 전차가 운용되었다. 물론 당시 독일은 그렇게 임무를 나누어 투입할 여건도 되지 못했지만 이처럼 여러 임무에 다양하게 활약한 점 때문에 판터를 최초의 MBT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파리 개선문 앞에 배치된 판터. 전후 프랑스는 노획한 판터로 기갑부대를 편성하여 1947년까지 운용했다. <출처: (cc) Bundesarchiv at Wikimedia.org>

하지만 끝까지 트랜스미션을 비롯한 동력 계통의 문제점을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해 수시로 어려움을 겪었고 후기형으로 갈수록 오히려 속도가 떨어졌다. 여러 원인이 거론되는데 엔진을 억지로 구겨 넣었다는 표현처럼 제한된 크기에 최고의 성능을 구현하려다 보니 발생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었다. 하지만 문제점을 고치고 성능을 개량할 시간이 없을 만큼 독일의 상황이 너무 급박했던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할 수 있다.

판터는 전후 재건에 나선 프랑스군이 50여 대를 1947년까지 운용하기도 했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핍박한 독일의 전차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기분 나쁠 만한 상황이었지만, 그만큼 성능이 좋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만일 판터의 등장이 독일의 극성기 이전에 이루어졌다면 끝까지 애를 먹였던 고질적인 고장 문제는 많이 해결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독일의 입장에서는 너무 늦게 등장한 걸작이었다.

측면과 전면의 장갑을 대폭 강화한 후속작이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말미암아 양산에 이르지는 못한 판터 II. 미국 켄터키 주 포트 녹스의 패튼 기갑박물관에 전시 중인 해당 전차는 노획한 미완의 판터 II 차체에 G형 터렛을 결합한 것이다. <출처: (cc) Fat yankey at Wikimedia.org>


제원


중량 44.8톤 / 전장 6.87m / 전폭 3.27m / 전고 2.99m / 항속거리 250km / 최대속도 55km/h / 승무원 5명 / 무장 7.5 cm Kwk42 L/70포 1문, 7.92mm MG34 기관총 2문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