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3.10 11:30

글자크기

[전쟁사]

하늘에서의 전쟁

영국 본토 항공전(The Battle of Britain) [5]

0 0

독수리의 날


제2차 대전사에서는 한 달 가까이 이어진 해협 전투의 승자를 독일로 기록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영국 공군이 전략상 본토 방어에 집중하기로 결정하면서 대응을 포기한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수세적인 모습은 계속 공격을 가하던 독일을 고무시킨 측면이 있었다. 이에 영불 해협 상공을 완전히 평정했다고 판단한 독일은 다음 단계로 본격적인 영국 본토 대공습의 준비에 들어갔다.

출격에 앞서 지도를 보고 작전을 검토하는 독일 폭격기의 승무원들. 이들은 공군이 전면에 나서는 최초의 전쟁을 앞두고 의욕에 차 있었다. <출처: Bundesarchiv>

이미 지난 8월 1일, 괴링은 육군의 예정 상륙 지점을 제외한 영국 남부의 모든 군사 요충지를 제거하라는 총통 명령 17호까지 하달 받은 상태였다. 히틀러는 지상군의 상륙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을 지시한 것이었지만, 괴링은 내심 영국에게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타격을 입혀 항복을 받아내는 시나리오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즉 자신의 영도 하에 공군의 힘만으로 영국을 굴복시키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싶었던 것이다.

괴링의 의지를 받든 OKL(Oberkommando der Luftwaffe, 독일 공군 최고사령부)은 지금까지 시도해본 적 없는 대공습을 8월 10일 실시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독수리의 날(Adlertag)’로 명명했다. 가동 가능한 제2, 3항공군 예하의 작전기 대부분을 출격시켜 목표물을 일거에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한다는 계획이었다. 타격 목표는 영국 남부의 폭 250여 킬로미터 내에 위치한 공군 기지, 방공망, 무기 생산시설이었고 런던 같은 대도시는 배제되었다.

영국 본토 폭격 준비를 하는 Ju 88 승무원들과 이들의 출격을 돕는 지상 요원들

일선의 조종사들, 특히 지상의 목표물을 공격할 폭격기의 조종사들은 드디어 때가 왔다고 흥분했다. 지금까지 독일 공군은 전격전의 선봉장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는 있었으나 육군의 보조역에 그친 측면이 있었다. 사령관 괴링처럼 자신들이 전쟁의 주역이 되고자 했던 공군의 조종사들에게 영국 본토 공습은 그야말로 호기였다. 하지만 이런 의지와 달리 악천후로 인해 8월 13일에서야 작전이 개시될 수 있었다.



실수로 시작된 최초의 공습


최초의 공습은 70여 기의 Do 17 폭격기로 구성된 제2항공군 예하 KG2(제2폭격비행단)에 의해 개시되었는데, 사실 이들의 공습은 실수였다. 당시 OKL은 계속해서 날씨가 좋지 않자 오전으로 예정된 출격을 취소하고 오후에 작전을 시작하거나 다음날로 연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04시 50분에 출격한 KG2는 공교롭게도 무전 계통에 문제가 발생해 회군 명령을 전달받지 못하고 계속 영국을 향해 날아갔다.

출격하는 KG2 소속 Do 17 폭격기 편대. 이들은 독수리의 날 당시 서전을 장식했다. <출처: (cc)Bundesarchiv at Wikimedia.org>

문제는 당시 이들을 호위하기로 예정된 EG2(제210시험비행단) 소속의 Bf 110 전투기들은 작전 취소를 확인하고 출격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만일 이처럼 호위가 없는 상태에서 KG2가 영국 공군의 영접을 제대로 받았다면 아마 독수리의 날은 전쟁사에 다르게 기록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영국의 레이더와 방공 감시망은 짙게 낀 구름 때문에 KG2의 규모를 잘못 파악해 불과 1개 편대의 스피트파이어만 출격시켰다.

예상과 달리 엄청난 규모의 독일 폭격기들을 마주한 영국 전투기들은 용감히 요격에 들어갔으나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비록 4기가 영국 공군의 요격에 격추되었지만 KG2는 예정된 이스트처치(Eastchurch) 비행장 공습을 완료하고 유유자적하게 귀환했다. 현장에서 공습을 이끈 KG2 부대장 핑크(Johannes Fink)는 비행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고 보고했고 이는 OKL을 고무시켜 연기된 작전을 오후에 개시하도록 만들었다.

Do 17 폭격기를 요격 중인 스피트파이어. KG2는 4기의 폭격기를 잃었지만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했다.

그런데 비행장이 폭격으로 사용 불능 상태가 되었던 것은 맞지만, 독일은 영국의 시설이 불과 하루 만에 사용 가능 상태로 복구되었다는 점까지는 알지 못했다. 이런 패턴은 이후 영국 본토 항공전 내내 벌어진 일이었다. 독일은 정작 드러나는 효과가 그들이 판단한 전과보다 적어 당황하곤 했다. 한마디로 독일은 영국의 의지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택과 집중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야전 지휘관이었던 제11전투비행단장 키스 파크.

엉겁결에 실행된 것이긴 했지만 KG2의 전과에 고무된 독일은 오후에 예정된 공습을 시작했다. 오후 3시 45분을 전후하여 비행단별로 프랑스 각지에서 발진한 대규모의 작전기들이 백여 기씩 거대한 대형을 이뤄 영국 본토의 목표 지점을 향해 날아갔다. 이러한 모습은 이들이 출격을 개시한 순간부터 영국의 방공 감시망에 포착되었다. 하지만 영국은 이들을 모두 요격하기엔 아직 역부족이었다.

제일 먼저 방어에 나선 제11전투비행단장 파크(Keith Park)는 모두를 지킬 수 없다면 순위를 정해 중요한 곳부터 순서대로 보호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관제 센터의 보고를 취합해 독일 비행대의 진출 방향을 면밀히 확인한 후 전투기의 출격을 지시했다. 그리고 작전을 완수한 전투기들은 귀환하여 재보급을 받은 후 다른 목표를 향해 즉시 재출격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조종사들에게 상대보다 3~4배의 출격을 강요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전술이었지만, 당장 전력이 부족한 영국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영국 남부 상공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규모의 항공기들이 섞여서 난전을 벌이는 거대한 싸움터로 바뀌었다. 영국 전투기들이 독일 폭격기들을 공격하면 고고도에 위치한 독일의 전투기들이 비호처럼 내려와 응전했다.

출격 명령을 받고 애기로 달려가는 영국의 조종사들. 그들은 하루에 수차례의 출격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싸웠다.

하지만 영국 조종사들은 공대공 전투가 독일의 페이스에 말려드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최대한 공중전을 피하고 폭격기 격추에 초점을 맞춰 작전을 벌였다. 영국 공군은 수량이 부족한 스피트파이어들이 독일 전투기들을 물고 늘어지는 동안 허리케인을 비롯한 2선 급 전투기들이 폭격기를 공격하는 작전을 구사했다. 결론적으로 영국 본토 항공전 내내 구사한 이 전술은 영국을 구한 가장 효과적인 선택이 되었다.



하지만 독일은 이기지 못했다


속도가 느리고 기동력이 둔한 독일의 폭격기들은 전투기들의 보호를 받지 못하자 손쉬운 제물로 전락했다. 특히 그동안 전격전의 주인공을 자부하며 체제 선전 영화에도 자주 등장한 Ju 87 급강하 폭격기는 영국 조종사들에게 격추 기록을 늘려준 최고의 선물이었다. 결국 엄청난 손실을 감당할 수 없어 Ju 87은 2선으로 물러났고 1년 후 공군력이 약한 소련을 침공하여 발발한 독소전쟁에서야 다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격추된 Ju 87 급강하 폭격기를 살펴보는 영국 공군의 조종사들. 슈투카 파티로 불릴 만큼 많은 전과를 올려 결국 Ju 87을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퇴출시켰다.

영국은 지난 해협 전투를 경험하며 이런 전투 기법을 터득했지만 독일 공군의 대처는 상당히 부족했다. Bf 109는 뛰어난 고성능 전투기였지만 공중전을 벌인 직후 귀환해야 했을 만큼 항속 거리가 짧아 영국 상공에서 오래 체류할 수 없었다. 그런데 독일은 보조연료탱크를 부착하여 비행시간을 늘릴 생각은 하지 않고 이미 성능이 열세로 드러난 Bf 110 장거리 전투기에 폭격기 호위를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데틀링(Detling) 비행장 폭격에 나선 LG1(제1교도비행단)처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수월하게 폭탄을 던지고 온 부대들도 있었다. 이처럼 영국 전투기들이 집요하게 저지에 나섰지만 독일 폭격기들이 떨어뜨린 폭탄에 의해 많은 시설들이 파괴되었다. 귀환한 조종사들로부터 정보를 취합한 OKL은 하루 만에 영국 제11전투비행단에게 회복이 쉽지 않은 타격을 입혔다고 판단했고 보고를 받은 괴링은 몹시 만족해했다.

괴링은 영국 공군에 치명적인 타격을 안겨주었다는 보고에 만족했으나 실제로는 독일의 손실이 더 컸다.

그러나 실제로 영국은 가장 중요한 자산인 전투기의 손실이 14기에 불과했던 반면 독일은 48기의 각종 작전기가 손실되었고 40여 기가 크게 파손되는 피해를 입었다. 또한 6곳이 완파된 것으로 평가한 비행장도 불과 1~2일 만에 가동될 수 있을 만큼 복구되었다. 따라서 독일은 영국보다 2배나 많은 1,500여 회의 출격을 감행해 맹폭을 가했지만 흡족한 성과를 냈다고 단언할 수 없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