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2.08 09:59

글자크기

[무기의세계]

비운의 전투기

F-20 타이거샤크

(F-20 Tigershark)

0 0
F-20 타이거샤크는 과거 미 노스롭(현 노스롭 그루먼)사가 개발한 전투기로, 우리 공군이 지금도 사용중인 F-5E/F를 대대적으로 개량한 모델이다. 회사의 사활을 걸고 개발되었지만 시대를 잘못 만난 비운의 전투기로 알려지고 있다. 비록 시제기만 제작되고 양산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이후 개발되는 경전투기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F-20 타이거샤크는 과거 미 노스롭사가 개발한 전투기로 비록 시제기만 제작되고, 양산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이후 개발되는 경전투기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출처: 미 노스롭사>



수출형 전투기로 개발된 F-5A/B


1 미국의 일선 동맹국들은 F-104 전투기를 갖추고 있었지만 그 밖의 동맹국들은 F-104 전투기를 구매하거나 운용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출처: 미 공군>

2 F-5A/B는 미국이 개발했지만 정작 미군은 사용하지 않고 미국의 동맹국에게 공여 및 수출된 전투기였다. <출처: 미 공군>
지난 1962년부터 양산된 F-5A/B는 미국이 개발했지만, 정작 미군은 사용하지 않고 미국의 동맹국에게 공여 및 수출된 전투기였다.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미·소 양국은, 자국의 동맹국들에게 막대한 수의 자국산 전투기들을 무상으로 주거나 판매했다. 1만 여대가 넘게 생산된 미그-21 전투기의 경우, 심지어 동맹국의 통화로 결제하는 파격적인 조건을 걸기도 했다. 당시 미국의 일선 동맹국들은 F-104 전투기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밖의 동맹국들은 F-104 전투기를 구매하거나 운용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56년에 F-86 전투기가 도입되면서 꿈에 그리던 제트기 전력화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북한이 F-86 보다 우수한 미그-17/21 전투기를 보유함에 따라 최신예 전투기의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미그-21 전투기를 잡기 위해 개발된 F-5E/F


1 F-5E/F 전투기에는 F-5A/B에는 없던 레이더가 장비되었고 추력이 향상된 J85-GE-21 터보제트 엔진이 장착되었다. <출처: 미 공군>

2 F-5E/F 전투기 이후 1,300여대 넘게 생산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제공호”란 이름으로 면허 생산되었다. <출처: 공군>
공군에서는 최대속도 마하2를 자랑하는 F-104 전투기의 도입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그 결과 1960년 미국의 군사원조계획에 F-104 전투기 도입계획이 반영되었고, 1962년 6월에는 F-104 전투기 비행부대 창설계획까지 수립되었다. 하지만 1963년 1월 24일 미 군사고문단이 발송한 “대한민국 공군 1963 회계연도 군사원조인가표”에서, F-104는 사라지고 F-5A/B 전투기가 새롭게 등장했다. 1965년 미국의 군사원조로 제공된 최초의 F-5A/B 전투기를 공군이 인수했다. 이렇게 도입된 F-5A/B 전투기는 우리 공군에 초음속 시대를 열게 해준다. F-5A/B 전투기는 800여대가 넘게 생산되었고, 1972년에는 미그-21 전투기에 대응하기 위한 F-5E/F 전투기가 등장한다. F-5E/F 전투기에는 F-5A/B에는 없던 레이더가 장비되었고, 추력이 향상된 J85-GE-21 터보제트 엔진이 장착되었다. F-5E/F 전투기 이후 1,300여대 넘게 생산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제공호”란 이름으로 면허 생산되었다.


F-5 전투기의 최종형 F-20 타이거샤크의 등장


1 1982년 8월 30일에 첫 비행에 성공한 F-5G 전투기는 이후 F-20으로 개명되고 범상어라는 별칭을 갖게 된다. <출처: 미 노스롭사>

2 대만은 세계에서 F-5E/F 전투기를 가장 많이 운용했던 국가로 1973년부터 항공공업발전중심에서 F-5E/F 전투기 300여대를 면허 생산했다. <출처: 대만 국방부>
1970년 말 대만공군은 성능이 향상된 중국군의 전투기에 대응할 수 있는 신형 전투기를 찾고 있었다. 신형 전투기는 AIM-7 스패로우(Sparrow) 공대공 미사일을 장착하고, 가시거리 밖 공중전이 가능해야 했다. 당시 대만공군은 세계에서 F-5E/F 전투기를 가장 많이 운용하고 있었고, 1973년부터 항공공업발전중심에서 F-5E/F 전투기 300여대를 면허 생산했다. 하지만 미 정부는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고성능 전투기의 대만판매를 불허하고 있었다. 또한 당시 지미 카터 행정부는 미국이 개발한 최신형 전투기의 대외판매에 제동을 걸었다. 이를 눈치챈 노스롭사는 F-5E/F 의 성능을 한 차원 끌어올린 F-5G 전투기를 개발하게 된다. 1982년 8월 30일에 첫 비행에 성공한 F-5G 전투기는 작지만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는 APG-67 레이더를 장착해, AIM-7 공대공 미사일로 가시거리 밖 공중전이 가능했다. 또한 F/A-18 전투기에 사용되는 F404 터보팬 엔진을 장착해, 최대 마하2의 속도로 비행할 수 있었다. F-5G 전투기는 이후 F-20으로 개명되고 타이거샤크 즉 범상어라는 별칭을 갖게 된다.


정책변화로 나락으로 떨어지다


F-20 전투기는 불과 수분 만에 엔진 시동을 걸고, 각종 항공전자장비를 작동시킨 채 긴급출격 할 수 있었다. <출처: 미 노스롭사>
대만을 노리고 개발되었던 F-5G 전투기는, 미중수교와 함께 미 정부가 AIM-7 공대공 미사일 장착을 불허함에 따라 대만공군의 작전요구성능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또한 1981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고 동맹국에 대한 최신예 전투기 판매 정책을 실시하면서, 노스롭사가 개발한 F-20 전투기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F-20 전투기는 F-16 전투기와 용호상박 을 겨룰 정도로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다. 당시 F-16 전투기에는 장착되지 못했던 하푼 대함미사일의 운용이 가능했고 메버릭 공대지 미사일도 사용할 수 있었다. 특히 긴급출격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능을 자랑했다. 불과 수분 만에 엔진 시동을 걸고, 각종 항공전자장비를 작동시킨 채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었다. 노스롭사는 대만 다음으로 F-5E/F 전투기를 많이 운용 중이던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판촉활동을 실시했다. 노스롭사는 F-20 전투기를 판매하기 위해,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낸 박종규씨에게 수천억 원의 경비를 주고 중개상으로 고용했다.


경전투기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다


1 F-20 전투기는 F-16 전투기와 용호상박을 겨룰 정도로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다. <출처: 미 노스롭사>

2 F-20 전투기는 일본 애니메이션 에어리어 88에서 주인공인 카자마 신의 애기로 등장해 마니아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출처: 주식회사 피에로>
1984년 10월 10일 수원공군기지에서는, 전두환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F-20 전투기의 시범비행이 실시되었다. 노스롭사의 사활이 걸렸던 시범비행 그러나 최악의 결과가 발생했다. 시범비행을 선보이던 조종사가 G-LOC(G-force induced Loss Of Consciousness) 즉 중력에 의한 의식상실에 걸려 F-20 전투기가 추락하게 된 것이다. 1985년에 캐나다에서도 G-LOC으로 다시 한번 F-20 전투기가 추락하게 된다. 결국 1986년 노스롭사는 F-20 전투기와 관련된 모든 계획을 취소한다. 3대의 시제기가 제작되었던 F-20 전투기는 2대가 시범비행 중 추락하는 바람에, 현재 단 한대의 시제기만 남게 되었다. 비록 생산되지는 못했지만 F-20 전투기의 DNA는 이후 개발된 경전투기에 이식되었다. 대만이 독자 개발한 징궈(經國) 전투기와, 우리와 미국이 공동 개발한 T-50 고등훈련기와 FA-50 경공격기에는, F-20 전투기에 사용되었던 항공전자장비와 엔진이 사용되었다. 이밖에 일본 애니메이션 에어리어 88에서 주인공인 카자마 신의 애기로 등장해 마니아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F-20 전투기 제원



전폭 8.53m / 전장 14.4m / 전고 4.2m / 최고속도 마하 2 / 실용상승한도 약 16,800m / 최대 항속 거리 약 2,759㎞ / 엔진 F404-GE-100 엔진 1기 / 조종사 1명 / 무장 M39A2 20㎜ 기관포, 공대공 레이더 미사일 X 4발, 공대공 적외선 미사일 X 2발 <출처: 미 노스롭사>


김대영 | 군사평론가

용인대학교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0여 년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국방관련 언론분야에 종사했으며, 현재 사단법인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해군발전자문위원 및 방위사업청 반 부패 혁신추진단 민간자문위원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