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12.30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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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방어전의 백미

데미얀스크 전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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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방어전의 표본이 된 전투


제2차 대전은 가히 인류사 최악의 전쟁이라 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독일과 소련이 정면으로 충돌한 동부전선은 가장 무서운 싸움터였다. 전선의 길이만도 남북으로 2,000 킬로미터가 넘었고 양측 합쳐 최대 1,000만의 병력이 전선에 동시 투입되어 끊임없이 격전을 벌였으며 최소 추정으로만 무려 3,000만 명이 죽었다. 이처럼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모든 내용을 세세히 기록하고 설명하기가 물리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독소전쟁은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만큼 수많은 전투들이 벌어졌고 그만큼 모든 내용을 세세히 설명하기가 어렵다. <출처: Bundesarchiv>

그래서 전쟁의 흐름에 큰 영향을 끼친 중요하고 인상적인 전투들을 위주로 소개되고 있다. 일단 규모가 엄청나기도 했지만 전쟁의 전환점이 되었던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스탈린그라드 전투 등은 전쟁사에 관심이 없는 이들이라도 한 번쯤 들어보았을 만큼 수많은 자료들로 넘쳐난다. 반면에 주 전장이 아닌 곳에서 벌어졌던 싸움들은 경우에 따라 소개를 생략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사실 개별 병사의 입장에서는 유명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싸웠든 점령지 후방의 이름 없는 소규모 유격전에서 싸웠든, 목숨을 건 일이었다는 점에서 결코 차이가 없다. 하지만 전쟁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살펴볼 때 이런 점은 철저히 무시되고 대의만 부각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래서 독소전쟁사에서는 수천 명, 아니 그 이상의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음에도 부수적인 사례로 취급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데미얀스크 전투는 가히 방어전의 꽃이라 할 만한 사례다. 하지만 주변에서 벌어진 거대한 전투들로 인해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출처: Bundesarchiv>
앞으로 소개할 내용은 바로 인근에서 벌어진 일련의 전투들이 워낙 크고 거대했기에, 거기에 묻혀서 생각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한 전투에 관한 이야기다. 대부분의 제2차 대전사에서 언급하지 않거나 간략하게 소개하고 넘어갈 정도지만, 무려 50여만의 병력이 치열하게 충돌한 격전이었다. 그러면서도 전사를 다루는 이들에게는 상당히 흥미로운 사례이기도 하다. 바로 경이로운 방어전의 표본인 데미얀스크 전투(Battle of Demyansk)다.



멈추지 않은 소련의 공세


대부분의 전사에는 1942년 1월 7일, 모스크바 전투가 끝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날 모든 작전이 종결되고 전투가 소강상태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모스크바를 위협하던 독일군을 100여 킬로미터 정도 밀어내는 데 성공한 소련 군부는 잠시 쉬면서 전력을 추스르고 싶었지만 스탈린은 계속적인 공세를 명령했다. 소련군은 내심 못마땅했지만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고, 그렇게 전투는 쉬지 않고 이어졌다.
모스크바 방어에 성공한 직후 소련군은 부대를 재편해야 했지만 스탈린의 강력한 주장으로 공세를 계속해야 했다. <출처: (cc)RIA Novosti archive at Wikimedia.org>

2월 초에 이르러 르제프(Rzhev) 일대를 중심으로 커다란 돌출부가 형성되며 전선은 상당히 기형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다. 스탈린의 강요로 마지못해 공격에 나섰기에 소련군의 준비가 부족하기도 했지만, 현지를 사수하라며 많은 지휘관을 해임한 히틀러의 엄명이 맞물린 탓도 있었다. 만일 군부의 의견을 받아들여 스탈린이 공세를 잠시 미루는 데 동의했거나, 히틀러가 전략적 후퇴를 용인했다면 전선의 모습은 사뭇 달랐을 것이다.

그렇게 형성된 르제프 돌출부는 장장 1년간 엄청난 피와 철이 녹아 사라지는 살육의 현장으로 변해갔다. 이후 이 일대에서 벌어졌던 전투는 바로 직전에 있었던 모스크바 전투에 비해 전선의 변동이 거의 없어서 그 치열함과 엄청난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모스크바를 향해 돌출되어 있었기에 OKH(독일 육군 최고사령부)나 STAVKA(소련군 최고사령부) 모두에게 항상 요주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1941년 겨울에 있었던 소련의 공세로 동부전선 중북부에 두 개의 포켓이 형성되었다. 르제프에 비해 데미얀스크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아서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출처: 미육군 사관학교>
그런데 의외로 같은 시기에 르제프 북쪽 인근의 데미얀스크(Demyansk)에 형성되었던 또 다른 돌출부는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당시 양측 지휘부가 소홀히 취급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전쟁사 등에서 다루는 빈도가 적다는 의미다. 지도에 그려진 돌출부를 자칫 간과할 수도 있지만 앞에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이곳에서 벌어진 전투의 규모가 작았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소련 북서전선군의 계획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의 중간인 노브고로드 주(Novgorod Oblast) 남동부에 위치한 데미얀스크는 지금도 인구가 5,000명 내외에 불과한 한적한 시골이다. 산업 시설도 거의 없고 도시의 규모도 작아 전략적 중요성은 크지 않았지만 북쪽의 거대한 일멘(Ilmen) 호수를 비롯한 여러 호수들과 그 일대를 관통하는 하천들 때문에 독일군과 소련군 모두 이곳을 경계로 부대를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일멘 호수 남쪽에 위치한 데미얀스크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이런 곳을 정점으로 형성된 전선에서 양측 합쳐 50만의 대군이 1년 넘게 격전을 펼쳤다. <출처: (cc)Дар Ветер at Wikimedia.org>

일멘 호수는 독일군에게 북부집단군과 중부집단군의 관할을 나누는 기점이 되었고 소련군에게는 볼호프 전선군(Volkhov Front)과 북서전선군(Northwest Front)의 경계가 되었다. 즉 데미얀스크 북쪽에서는 레닌그라드 전투가, 남쪽에서는 르제프 전투가 벌어지던 중이었다. 비록 두 거대한 격전지의 중간이었지만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어 어느 쪽에도 크게 영향을 줄 만한 위치는 아니었다. 즉 이곳에서의 싸움은 별개의 전선이 될 수밖에 없었다.

데미얀스크에 기묘한 전선이 구축된 것은 앞에서 소개한 르제프 전투의 여파다. 전사에는 1월 8일 개시된 소련의 공세를 르제프 전투의 시작으로 표기하지만 전혀 새롭게 준비된 별도의 작전은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면 모스크바를 수호하기 위해 지난 1941년 12월 5일 개시된 대공세의 연장선이었다. 이때 200여만의 소련군이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장장 800여 킬로미터에 이르는 전선에서 반격을 감행했다.

독소전쟁 개전 직후부터 북서전선군을 지휘한 파벨 쿠로츠킨. 데미얀스크 포위에 성공하며 기세를 올렸으나 섬멸은 실패하였고 이후 좌천되었다.
당시 일멘 호수에서 남동쪽의 발다이(Valday) 호수에 이르는 100여 킬로미터의 전선을 담당한 소련군은 쿠로츠킨(Pavel Kurochkin)이 지휘하는 약 50만의 북서전선군이었다. 이들은 신속히 데미얀스크를 거쳐 홀름(Kholm)을 점령함으로써 독일 북부집단군의 남익을 맡고 있는 제16군을 프스코프(Pskov)까지 밀어붙이고자 했다. 만일 이들이 예정선까지 진출한다면 전선 전체의 전황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것은 확실했다.



음지에서 활약한 조연


당장은 비텝스크(Vitebsk)를 목표로 이번에 함께 공세에 나서는 칼리닌 전선군(Kalinin Front)의 북익을 안전하게 엄호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보다 생사의 기로에서 혈전을 벌이고 있던 레닌그라드에 가해지는 독일의 압력을 분산시키는 효과가 더욱 컸다. 당시 독일 북부집단군은 레닌그라드를 봉쇄하고 있었는데, 만일 배후를 담당하던 제16군이 밀려난다면 더 이상 레닌그라드에만 매달리기가 곤란해지기 때문이었다.
데미얀스크 전투 승리에 크게 일조한 제16군 사령관 에른스트 부쉬. 어려운 여건에서도 무난하게 부대를 지휘하여 이후 중부집단군 사령관으로 영전되었다. <출처: (cc)Bundesarchiv at Wikimedia.org>

반면 부쉬(Ernst Busch)가 지휘하는 약 30만의 독일 제16군은 한마디로 그동안 티 나지 않게 전선을 담당하고 있었다. 북쪽에 위치한 제18군은 레닌그라드 전투로, 남쪽에 위치한 독일 중부집단군 예하의 각 부대들은 동부전선 중앙에서 연이어 벌어진 민스크, 스몰렌스크, 모스크바 전투 등에 참전하며 나름대로 명성을 떨쳤다. 그런 인접 부대들에 비해 제16군의 관할 지역은 개전 이후 그다지 인상적인 전과가 없었다.

하지만 제4기갑군이 모스크바 공략을 위해 차출당하면서 독일 북부집단군의 전력이 급속히 약화된 이후 공백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며 무려 세 배나 많은 소련 북서전선군과 칼리닌 전선군을 효과적으로 견제하던 중이었다. 사실 이러한 제16군의 드러나지 않은 노고가 없었다면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라는 전략적 목표를 향해 독일이 전력을 집중시키기 어려웠다. 그들은 한마디로 음지에서 충실히 제 역할을 수행한 조연과도 같았다.

발다이 호수 서안의 구릉에 위치한 발다이는 프스코프와 모스크바를 연결하는 중간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다. 이곳에서 서쪽의 스타라야루사에 이르는 이른바 발다이 구릉을 독일 제2군단은 1년 후 후퇴 명령이 하달될 때까지 사수하였다. <출처: (cc)Nikolay N. Ivanov at Wikimedia.org>
1월 8일, 공세에 나선 북서전선군은 데미얀스크로 향하는 초입에 위치한 발다이의 공략에 들어갔다. 이곳은 지난 10월에 제16군 예하 제2군단이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를 연결하는 철도를 단절하기 위해 점령하고 있던 고지대였다. 지난 모스크바 전투의 승리로 사기가 올라있던 쿠로츠킨은 이곳을 신속히 탈환한 후 프스코프까지 진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꿈은 머지않아 악몽으로 바뀌었다.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