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12.2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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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거함거포 시대의 짧고 굵었던 대해전

유틀란트 해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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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들의 대결


거리를 떨어뜨려 공세로 나갈 위치까지 왔다고 판단한 쉐어는 18시 55분, 또 한 번 함대를 변침시켜 원위치로 돌린 후 대함대의 우현을 향해 돌진하며 포격을 개시했다. 반면 노련한 젤리코는 측면을 내주지 않기 위해 함대를 남쪽으로 틀어 다시 T자형 대형을 만들며 유리한 위치를 잡았다. 결국 상황이 불리함을 깨달은 쉐어는 19시 15분 우측으로 다시 반전하여 공역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너무 서두르다가 선봉에 있던 히페르의 수색전대가 전열에서 떨어졌다.
데플링게르의 파손 부위. 유틀란트 해전에서 함 상부가 거의 사라지는 타격을 입었지만 살아남았다. <출처: (cc)Bundesarchiv at Wikimedia.org>

결국 영국의 집중포화가 그동안의 격전으로 지쳐 있던 히페르에게 집중되어 데플링게르와 폰데어탄이 더 이상 전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얻어맞았다. 동행한 구축함들이 용감하게 뛰어나가 속도를 앞세워 대함대를 유인하는 동안 이들은 겨우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다. 젤리코는 후퇴하는 쉐어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대함대를 일렬로 길게 펴서 무려 26km에 이르는 대형을 유지한 채 남쪽으로 항진시켰다.

허겁지겁 도망치던 히페르의 수색전대가 다시 눈에 들어오자 이들을 처단하기 위해 필생의 라이벌이라 할 비티의 순양전대가 나섰다. 20시경, 10km의 거리를 두고 다시 포격이 재개되었다. 이미 만신창이였던 데플링게르는 함 상부가 완전히 사라졌고 자이들리츠도 함교가 날아갔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폭발과 침몰은 면하고 달아나는 데 성공했다. 적어도 이번 해전을 통해 독일 함정의 방어력이 영국보다 훨씬 뛰어남이 확실히 입증되었다.

함교에 타격을 입는 등 만신창이가 된 채 모항을 향해 퇴각하는 순양전함 자이들리츠.
그 사이에 서서히 해가 지기 시작했고 양측 모두 등화관제를 실시하자 유틀란트 해역은 암흑의 적막 속에 빠졌다. 주로 인간의 오감에 의지해 정찰하던 시기다 보니 젤리코는 현재의 대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 다음 날 해가 뜨면 다시 전투를 벌이기로 했다. 비록 함정의 피해만 놓고 보면 대함대의 손실이 컸지만 전반적으로 상황이 유리하다고 보고 이번 기회에 대양함대를 완전히 격멸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결전을 포기한 독일


반면 정면으로 부딪혀 본 쉐어는 대함대의 우위를 확실히 인정해야 했다. 개별 함만 따로 놓고 보면 독일 주력함들의 성능이 좋았지만 일단 전체 규모에서 영국에게 밀렸고 특히 함대 간 전투 기법에서 경험이 많은 영국보다 분명히 열세였다. 예상을 벗어난 변칙적인 변침 항로를 택하며 반격을 취해보기도 했지만 영국은 항상 한 발 앞서 유리한 전투 대형을 선점해 대양함대를 포위하다시피 했다.
본함대 간의 해전 상황도. 전반적으로 전력이 우세한 젤리코의 대함대가 쉐어의 대양함대를 포위한 형국이었다. <출처: (cc)Grandiose at Wikimedia.org>

대함대는 우세한 전력으로 대양함대의 동쪽과 남쪽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쉐어는 대함대와의 격돌을 회피할 생각이 없었고 당연히 승리를 원했지만 그렇다고 의욕만 앞세워 최악의 경우까지 감수하며 무모하게 싸울 수는 없었다. 물론 격돌이 벌어지면 대함대에게도 상당한 피해를 줄 수는 있겠지만 자칫 지난 20년간 독일의 모든 국력을 집중시켜 만든 대양함대를 순식간에 잃을 수도 있었다.

쉐어는 싸움을 중단하고 신속히 후퇴하여 모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이제 어느덧 퇴로를 차단하고 있는 영국의 포위망을 뚫고 나가야 했다. 그는 어차피 그런 상황이라면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도 있는 희생을 감내하고 최단 거리를 가로질러 가기로 했다. 21시 30분 쉐어는 예하 부대에게 대형을 유지해 호른스 레우(Horns Rev) 등대 동쪽 연안으로 나아가라는 명령을 내렸다.

종렬진으로 항진 중인 독일 대양함대의 모습. 쉐어는 어둠을 틈타 이런 형태를 유지하며 영국 대함대 진영을 돌파해 후퇴하기로 결심했다.
젤리코는 이런 상황까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대양함대의 퇴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는 있었다. 그는 퇴각로로 유력한 호른스 레우 입구를 차단하기로 하고 독일이 후퇴에 돌입한 것과 거의 동시인 21시 32분에 기뢰부설함 아브디엘(HMS Abdiel)을 출동시켰으나 결과적으로 조금 늦은 셈이었다. 만일 이때 영국의 출동이 훨씬 빨랐다면 유틀란트 해전의 결과가 많이 달라졌을 가능성도 있었다.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다


대양함대는 횡으로 도열한 대함대의 대열을 종으로 돌파해야 했다. 그들이 통과하려는 곳에 진을 친 대함대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랐지만 X자로 교차하다 보니 반드시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마침내 본격적으로 후퇴를 시작한 지 30분 정도 지난 23시 15분경, 양측의 함정들이 조우했지만 너무 어두워 상대의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공교롭게도 최초로 접촉한 이들은 양측 모두 앞에서 초계 활동을 벌이던 경순양함과 구축함들이었다.
주력함들 전방에서 탈출로를 열다가 격침된 독일의 경순양함 플라우엔롭.

불빛 신호를 교환하다가 상대의 정체가 밝혀지자 곧바로 다시 포성이 들리기 시작하면서 유틀란트 해전의 마지막 전투가 시작되었다. 어둠 속의 근접전으로 인해 영국의 경순양함 사우샘프턴과 더블린(HMS Dublin)이 대파되었고 독일의 경순양함 플라우엔롭(SMS Frauenlob)이 침몰했다. 이곳을 담당하던 영국 제4구축함전대의 모든 전력이 독일이 출몰한 곳으로 달려들었고 전투는 마치 백병전 같은 난전으로 격화되었다.

공교롭게도 쉐어가 선택한 퇴각로는 영국 대함대 중에서 유일하게 주력함이 없는 가장 취약한 부분이었다. 워낙 좁고 어두운 곳에서 빠른 속도로 전투가 벌어지다 보니 영국 구축함끼리 충돌할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영국 입장에서는 돌발적인 상황에서 갑자기 벌어진 교전이어서 젤리코에게 상황 보고가 제때 이루어지지도 못했다. 나중에 대양함대가 이곳으로 통과한다는 정보를 취한 젤리코가 전속력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대양함대의 탈출을 저지하다 격침된 영국의 구축함 아덴트.
이처럼 꼬마들이 격전을 벌이는 와중에 벌어진 공간을 통해 대양함대의 주력은 무사히 빠져나갔다. 마침내 쉐어는 6월 1일 03시, 안전지대인 호른스 레우 등대를 통과해 제이드(Jade) 강 하구에 들어섰고, 더 이상 추격이 불가능함을 알게 된 젤리코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뱃머리를 돌려 영국으로 회항했다. 그렇게 11시간에 걸쳐 세 차례 전투가 벌어진 짧고 굵었던 유틀란트 해전이 막을 내렸다.




거함거포 시대의 종언을 알린 해전


유틀란트 해전은 거함거포 시대를 상징하는 역사적인 격돌이었다. 양측 합쳐 총 250척으로 구성된 최강의 함대가 비좁은 해역에 몰려들어 정면으로 충돌한, 인류사에서 다시는 재현되기 어려운 엄청난 규모의 해전이었다. 그런데 출동한 전력에 비해 정작 싸움은 흐지부지 막을 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누가 이겼는지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그렇게 된 데는 전투에서 입은 피해와 그로 인해 얻은 효과가 상반되었기 때문이다.
영국보다 뛰어난 전과를 올렸다고 주장하는 독일의 선전물. 하지만 정작 독일 해군은 그 뒤로 영국 해군을 겁내 북해로 나가지 못하였다.

독일은 1척의 순양전함을 포함한 총 11척(배수량 62,300톤)이 침몰당한 반면 영국은 3척의 순양전함을 비롯한 총 14척(배수량 113,300톤)을 잃었다. 인명 피해도 전사자가 2,551명 대 6,091명으로 영국이 훨씬 많았다. 따라서 단지 겉으로 드러난 숫자만 놓고 본다면 독일이 승리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쉐어가 후퇴하지 않고 계속 교전을 벌였다면 상황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컸다.

오히려 그런 가정보다 승패에 대해 말이 많은 이유는 영국 해군의 무서운 위력을 톡톡히 경험한 독일 해군이 이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더 이상 북해로 나오지 못하고 잠수함을 이용한 특공작전에만 매달린 점 때문이었다. 따라서 전술적으로는 독일이, 전략적으로는 영국이 승리했다고 주장하는 자료가 많다. 이런 현실에 빌헬름 2세가 실망한 것은 당연했고 결국 신뢰를 잃은 티르피츠는 해군성 장관에서 물러나야 했다.

엄청난 배기 연기를 내뿜으며 전속 항진 중인 대양함대의 모습. 그때는 몰랐지만 유틀란트 해전은 거함거포 시대의 최대 해전이면서 종말이 시작된 시점이기도 했다.

1905년의 쓰시마 해전으로 인해 본격 개막된 거함거포 시대는 엄청난 국력을 소모하며 치열하게 경쟁을 벌인 영국과 독일에 의해 제1차 대전 중 심화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하지만 그처럼 상징성이 컸던 유틀란트 해전은 정작 제1차 대전에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만한 사건이 되지는 못했다. 아직 아무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유틀란트 해전은 거함거포 시대의 종언을 알린 시작점이기도 했던 것이다.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